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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돌아온 ‘그 남자네 집(박완서 소설의 조선 기와집)’ 다시 한옥이다

Special Report - 돌아온 ‘그 남자네 집(박완서 소설의 조선 기와집)’ 다시 한옥이다

은퇴 앞둔 베이비부머 수요 늘어 … 전주 한옥마을 집값 5년 새 10배로 뛰어
전남 화순 잠정햇살마을에 입주한 한 주민이 자신의 집 마당에서 장독대를 열어보고 있다. 주민들은 한옥의 장점으로 널찍한 마당을 꼽는다.



양 옆으로 살짝 들린 팔짝지붕이 뒷산의 곡선을 그대로 빼닮았다. 바람이 드나들 때마다 처마 끝에 달린 물고기 풍경이 노래를 부른다. 널찍한 대청마루에 가만히 앉아 산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절로 정화되는 듯하다. 건축비가 많이 들고 편의시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 받던 한옥이 각광받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불기 시작한 한옥 바람은 아예 한옥을 직접 지어 살겠다는 태풍급으로 거세졌다. 전통한옥 마을 집값은 다락같이 올랐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공사비를 낮추고 현대식 시설을 접목한 보급형 한옥 단지 조성에 한창이다. 답답한 아파트를 떠나 한옥살이를 택한 사람들을 만났다. 전국 곳곳에 새로 조성되는 한옥마을도 돌아봤다.


‘50년대 초, 내가 결혼해서 시집살이를 한 동네는 좁고 꼬불탕한 골목 안에 작은 조선 기와집들이 처마를 맞대고 붙어있는 오래된 동네였다. 특별히 가난할 것도 넉넉할 것도 없는 평범한 주택가였지만 전쟁이 막 끝난 때니만큼 사는 모습들은 제각기 치열하고도 남루했다.’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남자네 집』 서문 내용이다. 그는 1950년 전후 자신이 살던 서울 성북구 일대를 이렇게 묘사했다. 남루하고 특별할 것 없던 ‘조선 기와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한옥은 아파트의 ‘물량 공세’에 밀려 근근이 명맥을 이어올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그 남자네 집’이 일대 변화를 맞았다.

서울 성북구청은 구내에 남아있는 한옥에 대해 한옥밀집지역 지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1월 17일 밝혔다. 성북구는 지난해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한옥에 대한 전수조사를 했다. 그 결과 서울시 전체 한옥의 11.8%인 1618채가 성북구에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구는 한옥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구역부터 순차적으로 서울시에 한옥밀집지역 지정을 요청할 계획이다.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되면 한옥 신축 때 보조금으로 8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융자 2000만원 별도). 전면 개보수의 경우 보조 6000만원, 융자 4000만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부분 보수를 할 때도 1000만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김승연·신동빈 회장 가회동 한옥 이웃한옥에 대한 대접이 후해지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 서울 북촌 한옥마을이 주목을 받으면서부터다. 서울 계동·가회동·삼청동 일대 한옥 밀집 지역인 이곳엔 1000여채의 한옥이 들어서있다. 배산임수라는 최적의 입지에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는 한옥마을이라는 이점 때문에 내로라 하는 대기업 ‘회장님댁’도 즐비하다.

헌법재판소에서 감사원에 이르는 오르막길에 자리한 김승연 한화 회장의 집은 ‘가회동 1번지’로 통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이웃사촌이다. 신 회장은 대지면적 482㎡, 건물면적 265㎡ 한옥을 2011년, 45억원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집의 시세는 3년 새 10억원이나 올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도 가회동 일대에 한옥 두 채를 소유하고 있다.

북촌 일대 집값도 크게 뛰었다. 북촌 표준지로 꼽히는 가회동 1-38번지는 2003년 공시지가가 1㎡당 150만원에서 지난해 378만원으로 올랐다. 삼청동 35-77번지 역시 108만원(2003년)에서 337만원(2013년)으로 10년 새 3배로 뛰었다. 실 거래가는 이보다 높은 수준이다.

현재 이곳의 실거래 가격은 건물면적 기준 3.3㎡당 3000만원 수준이다. 반면 거래량은 많지 않아 한해 10여건에 머문다. 가회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거래 물량은 1년에 10개 남짓일 정도로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도 “집값이 최소 10억원에서 최고 30억~40억원에 이르다 보니 시세는 여전히 높게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을 비롯한 전국 한옥마을은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주거지’의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옥에 대한 관심이 3~4년 간 지속되며 그저 구경하는 것을 넘어 직접 짓고, 살고자 하는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저서 『지혜롭고 행복한 집 한옥』을 통해 “한옥에 대한 관심은 전통 문화와 건축 두 분야를 아우르며 이젠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사람들이 한옥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한국인의 본성에 가장 잘 맞는 집이기 때문”이라며 “바쁘고 피곤한 삶에서 벗어나 지혜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해석했다.



30~40대도 한옥 매력에 빠져서울 서초동의 50평(165㎡)대 아파트에 사는 김진원(57)씨는 올 가을 이사를 계획 중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기 성남시 백현동의 단독주택을 구입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도권에 한옥을 짓는 것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김씨는 “은퇴 후 마당있는 집에 살고 싶어 이사를 계획했는데 아내가 이왕이면 한옥이 더 좋지 않을까 해서 고민 중”이라며 “나무·황토와 같은 친환경적 소재로 지으면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옛 것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며 한옥을 찾는 이들도 늘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의 한옥 수는 2008년 5만5000여 가구에서 2010년 9만9000여 가구로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화를 거치며 줄곧 아파트에 살아오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은퇴와 동시에 한옥에서 거주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어린 시절 한옥에 살던 경험이 있는 세대라는 점도 한 몫을 했다”고 말했다.

50~60대 베이비부머는 물론이고 30~40대 젊은층도 한옥을 찾는 사례가 늘었다. 전문직 종사자인 구현목(42)씨는 2년 전 서울 목동아파트를 처분하고 경기도의 30평(99㎡) 짜리 한옥으로 이사했다.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를 앓아온 딸을 위한 결정이었다. 구씨는 “이사온 지 세 달이 지난 후부터 아토피가 많이 호전됐고 현재 거의 완치됐다”며 “출퇴근이 다소 불편하고,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고민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옥으로 이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옥의 최대 단점으로 단열 문제를 꼽는다. 아파트에 비해 외풍이 심해 난방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목재로 짓기 때문에 건축비가 비싼 점도 단점이다. 일반적으로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생활 여건도 좋지 않다. 그럼에도 한옥 거주자들은 “모든 불편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초 경기도 양평에 한옥을 지어 입주한 양지선(46)씨는 “주변 경관을 해치는 건물도 없고, 마당만 나가면 언제든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파트보다 훨씬 좋다”며 “아이들도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양한 형태의 한옥 개발해야한옥 열풍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한옥 주거지인 전주 한옥마을은 2010년 슬로시티국제연맹이 ‘슬로시티’로 지정하며 관광객이 급증했다. 전북 전주시 풍남동과 교동 일대 약 30만㎡에 들어선 이곳엔 전통 한옥 540여채가 모여있다. 찾는 사람이 늘자 몸값도 치솟았다. 한옥마을 내 이면도로의 3.3㎡당 토지 가격은 2007년 100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1000만원을 거뜬히 넘는다. 목이 좋은 곳은 3.3㎡당 4000만원에 거래되는 물건까지 등장했다. 전주 한옥마을 내에 20년 넘게 살던 한 주민은 지난해 말 살던 집을 내놨다. 토지 380㎡에 들어선 집의 매매가는 7억원. 그는 “원래 살던 이웃들은 대부분 세를 주고 시내로 나가 살거나 직접 게스트하우스나 가게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에선 경매로 나온 낡은 한옥이 감정가의 9배가 넘는 가격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법원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경주 교동 한옥마을 내 66.47㎡ 단독주택(토지 109.09㎡) 경매에 62명이 응찰했다. 단독주택에 62명이 몰려든 것은 지난해 최고 경쟁률로, 전체 경매물건 가운데 4번째로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곳의 감정가는 1786만원(주택 200만원, 토지 1500만원)에 불과했지만 치열한 경합 끝에 최종 낙찰가는 1억6111만원을 기록했다.

한옥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정부가 건축법 개정을 통해 한옥에 대한 규제 완화에 나섰다. 그러나 관련 정책이 주로 기존 한옥 보전에 집중돼 있어 신규 공급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대규모 한옥마을 단지 조성에 나선 곳도 있다. 서울시 SH공사는 은평뉴타운 3-2지구 단독주택 부지 3만㎡에 122가구의 한옥마을을 조성 중이다. 전용 60~200㎡의 다양한 규모로 공급되고 3.3㎡당 분양가는 730만원이다. 땅을 구입한 후 자체적으로 한옥을 지으면 된다.

전라도와 강원도에서도 15~50세대 규모의 한옥마을 분양에 나섰다. 내년에는 서울 성북동 일대에 한옥 50동이 들어서 일반에 분양될 예정이다.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며 대규모 신규 공급도 늘었지만 이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한옥의 특성상 아파트처럼 천편일률적인 시공·분양이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옥은 지형이나 가족 구성 형태 등에 따라 다르게 지어지는 주택이라 똑같이 지어 분양하기가 쉽지 않다”며 “한옥 주택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는 만큼 아파트의 장점을 접목한 다양한 형태의 한옥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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