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은밀한 엿보기 vs 의도적 노출 욕망
Management |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은밀한 엿보기 vs 의도적 노출 욕망
피겨 여왕 김연아의 연애사가 화제다. 올림픽 영웅의 사생활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기사에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다. 관련 기사를 가장 먼저 보도한 매체는 선수가 경기를 앞둔 예민한 시기에 파파라치 사진을 찍었단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자신들은 사진만 찍었을 뿐이고 실상 선수의 사생활을 무리하게 파헤친 건 한꺼번에 200여개의 관련 기사를 내보낸 다른 언론사라며 억울함도 토로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이토록 많은 사람이 한 개인의 인생에 관심을 보이고 있단 점이다.
사실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모습은 무척 익숙한 광경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터넷에서 도는 ‘찌라시’다. 찌라시는 증권가에서 나도는 소문을 모아서 정리한 것이다. 주로 연예인의 가십거리나 스캔들에 관한 내용이 많다. 찌라시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사실처럼 부풀리며 대중의 ‘훔쳐 보기’ 심리를 자극한다. 사람들은 이런 걸 남몰래 주고받으면서 동류의식과 공범의식을 느낀다. 마치 서로 차례대로 돌아가며 은밀한 것을 훔쳐보는 행위와 유사하다.
김연아 연애사 온·오프라인에서 화제상대의 삶을 은밀히 엿보고자 하는 관음 트렌드는 대중문화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예능프로그램에서 많이 보이는 리얼리티쇼가 대표적인 사례다. 군인을 소재로 한 MBC의 ‘일밤-진짜사나이’, 소방관이 주인공인 SBS의 ‘심장이 뛴다’ 등 리얼리티 예능이 각 방송사의 시청률을 이끌고 있다. 한 출연자의 자살로 막을 내린 SBS의 ‘짝’도 일반인을 전면에 내세워 관음증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이들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카메라의 시선이 마치 엿보는 듯한 화면 앵글과 움직임을 강조해 관음증적 시선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이처럼 다른 사람의 삶을 은밀히 엿보려는 감정이 존재하는 반면에, 다른 한 쪽에서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노출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공존한다. 미니홈피·페이스북·블로그·인스타그램·카카오스토리….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형태의 SNS를 활용하는 사람들은 마치 누군가 자신의 일상을 봐주길 기다리는 듯하다. 자신을 알리고,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미포머족(mefomer)’이나 ‘텔올제너레이션(tell-a llgeneration)’은 관음 사회를 가속화시키는 주역이다.
도시의 모습도 그렇다. 최근 서울에서 가장 핫(hot)한 장소로 꼽히는 이태원의 경리단길, 상수동의 카페거리, 신사동의 세로수길 등의 공통점은 바로 유럽문화의 간판처럼 된 ‘노천카페’다. 까페에 마련된 야외 테라스는 거리를 지나가는 군중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마치 구경꾼 문화의 ‘아지트’가 됐다.
길에서 음식먹는 것조차 낯설어하던 나라에서 이제 드러내놓고 노천카페 문화를 즐긴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즐거운 노출을 일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은근히 엿보며 쾌락을 즐기는 것이다. 타인을 감시하는 ‘응시의 주체’가 때로는 감시를 당하는 ‘응시의 대상’으로 수시로 자리바꿈하며 사회적 관음의 양상이 확대 재생산된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도 사회에 만연한 관음증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단 점이다. 네트워크 서비스의 가속화, 리얼리티 콘텐트 증가, 첨단기술의 발전은 관음의 본능을 더욱 자극할 것이다. 우리 사회 또한 관음의 사회로 문화의 방향성을 형성해나갈 것이다.
특히 기술의 발달은 이런 관음 욕망을 부추기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가령, 스마트폰의 다음 세대로서 주목 받는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가 대중화된다면, 관음 욕망은 더욱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웨어러블 기기는 몸에 부착해서 휴대성이 높고 활용도가 크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자동으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직 출시 전임에도 미국 샌프라시스코의 어느 술집에서는 ‘구글 글래스 착용 손님은 입장 불가’라고 선언해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노출 기피해 폐쇄형 SNS 선호하는 사람 늘어관음 욕망을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커질 것이다. 서울시는 시내를 달리는 버스에 센서와 카메라를 장착해 도로의 구멍인 포트홀(pot hole)을 찾아내는데 활용할 예정이다. 영국의 한 자전거 거치대 제작업체는 몰래카메라를 통해 자전거가 실제로 도난 당하는 모습을 영상을 촬영해 유투브에 올렸다. 이를 통해 자전거 거치대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을 조성해 매출을 늘렸다고 한다. 많은 기업이 관음적 욕망을 반영하는 동영상을 마케팅에 활용하게 될 것이며, 일반인·현장감·사실성을 강조하며 리얼리티에 의존하는 광고도 늘어날 것이다.
관음을 부추기는 기술이 확대될수록 이에 반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덩달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공적인 영역에서는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누구나 수치스러운 일, 불명예스러운 사건, 사적인 정보 등은 삭제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서 정보를 삭제할 권한은 기업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럽연합은 온라인 데이터에 유효기간을 설정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데이터를 인위적으로 삭제하는 권한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자신이 작성한 글과 동영상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잊혀질 권리’에 대한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사적인 영역에서도 관음사회의 등장에 대비한 고육책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완전개방형 SNS으로부터 카카오의 그룹, 네이버의 밴드 등의 폐쇄형 SNS로 활동 무대를 옮기도 있다. 막연한 다수와 관계를 맺는 대신, 나와 잘 아는 지인들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을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해 최소한 불특정 다수에게 내 삶이 노출되는 걸 막으려는 것이다.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기술, 무궁무진한 정보의 바다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비단 혜택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 사회가 건강하지 못할 때 그 부작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타난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고, 지켜봄을 당하는 관음의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선 각 사회주체의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다만, 소비자와 기업에게 요구되는 한 가지는 기술의 ‘드러냄’과 ‘감춤’의 저울질 속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자세일 것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관음이 본격화된 시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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