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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북핵합의가 주는 교훈

1994년 북핵합의가 주는 교훈

1998년 방한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미2사단과 오산 공군기지를 방문해 대북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란 핵합의와 관련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가장 큰 도전은 의회보다는 내년 대선이다. 최근의 역사를 보면 그가 우려해야 할 이유가 많다.

이란 핵합의는 협상 과정과 내용, 의회의 반응에서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과 서명한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와 판박이다. 그러나 클린턴의 후임자 조지 W 부시가 백악관에 입성한 후 그 합의는 흐지부지됐다.

이번 이란 핵합의처럼 1994년 제네바 합의도 성격상 조약이 아니라 ‘행정협정’이었다. 조약은 의회의 비준이 필요하고 좀 더 지속력을 갖는다. 그러나 행정협정은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긴 하지만 차기 대통령이 쉽게 뒤집을 수 있다.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와 이란 핵합의는 둘 다 핵기술 개발의 완전한 중단을 강요하지 않는다. 북한 핵합의의 경우 핵발전에 사용될 수 없고 핵무기에만 사용되는 플루토늄의 농축 시설만 폐쇄하고 국제사찰을 받기로 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에너지 수요에 필요한 연료(석유)를 제공하기로 했다.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는 미국 공화당의 즉각적인 반발을 샀다. 의회를 지배하던 공화당은 여러 차례의 청문회를 통해 합의의 당위성을 조목조목 따졌다.

미국 협상대표로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를 타결한 주역 로버트 갈루치 북핵특사(현 조지타운대 교수)는 나중에 공영방송 PBS의 ‘프런트라인’에 출연해 “가장 먼저 우리가 협박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나왔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프로그램으로 위협하자 우리가 백기를 들고 북한에 후하게 보상했다는 지적이었다. 그 다음 우리가 유화론자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또 북한은 불량정권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런 불량정권과 거래한 유화정책이 과거 여러 번 실패했는데도 우리가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고 비난받았다. 또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우리를 속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북한이 믿지 못할 정권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몰랐느냐는 지적이었다.”

1994년 10월 21일 로버트 갈루치 미국 북핵특사(왼쪽)와 강석주 북한 외교부 부부장은 제네바에서 북미 기본합의문에 서명했다.
공화당의 반대에도 빌 클린턴 대통령은 2001년 임기를 마칠 때까지 그 합의를 유지했다. 4년 동안 북한은 최소한 일부 시설에서 핵사찰을 받았고, 미국은 북한에 석유를 제공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에 선출되자 그 합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사찰단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은 다른 시설에서 플루토늄을 계속 농축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다가 미국 중심부를 강타한 9·11 테러 사태 후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는 유명무실해졌다. 부시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묶어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지칭했다. 다음 해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더욱 비판적이 됐다. 2002년 10월 마침내 한계점에 도달했다.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방북했을 때 북한 관리들은 그에게 핵무기 재료용으로 우라늄을 농축한다고 시인했다.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의 명백한 위반이었다. 그해 11월 미국은 북한에 석유 제공을 중단했다. 12월 북한은 폐쇄했던 핵발전소를 재가동했고 그달 31일 국제사찰단이 북한에서 추방됐다.

미국 신보수주의자 주창자인 리처드 펄 전 국방정책위원장은 PBS ‘프런트라인’에 출연해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합의에서 ‘골 포스트를 옮겼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클린턴 행정부 아래서 마련된 경기장이 맘에 들지 않아 골 포스트를 옮겼다고 말하는 게 옳을 듯하다. 북한이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연료를 퍼주는 식이었다. 그건 올바른 정책이 아니다. 부시가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북한과의 대화는 즉시 단절됐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에 선출되면 오바마의 이란 핵합의도 비슷한 운명을 맞을지 모른다.

공화당 대선 후보들은 곧바로 이란 핵합의를 비난하고 나섰다.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는 이란 핵협상이 타결되기 하루 전 대선 출마를 발표하며 “선출되면 취임 첫날 이란과의 터무니없는 합의를 폐기하고 가혹한 경제제재를 가하면서 동맹국들도 그에 동참하도록 설득하겠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선거대책본부를 통해 발표한 성명서에서 “말도 안 되는 합의”라고 비난했다. “미국과 동맹국,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근본적인 배신행위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도 “오바마 행정부가 발표한 이란 핵합의는 위험하고 크게 잘못됐을 뿐 아니라 너무나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란, 중동, 이스라엘, 미국, 그리고 세계는 철권으로 통치하는 이란의 폭력적인 혁명주의 이슬람 성직자들의 권력 장악을 강화해주는 합의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건 외교가 아니라 회유다.”

1994년 제네바 북미 기본 합의가 체결됐을 당시 미국 공화당이 쏟아낸 비판과 거의 비슷하다.

물론 희망적인 면도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를 즉시 폐지하진 않았다. 따라서 이란 핵합의도 정착할 시간이 있을지 모른다. 또 제네바 북미 기본 합의와 달리 이란 핵협상에는 유럽의 주요 국가들도 참여했다. 따라서 이란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더 커 구속력이 강하다.

이번 합의를 살릴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는 것이다. 그녀는 지난 7월 14일 하원 민주당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합의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중요한 진전이라고 믿는다.”

- GINGER GIBSON IBTIMES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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