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커지는 K뷰티노믹스] 품질+가격+기술로 지구촌 사로잡다
[영향력 커지는 K뷰티노믹스] 품질+가격+기술로 지구촌 사로잡다
변방에 머물렀던 국내 화장품 산업이 거침없이 성장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는 올해 12조6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세계 10위로 5년 새 20% 넘게 성장했다. 경기 침체에도 한류열풍이 이어지면서 ‘K-뷰티(Korean beauty)’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특히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특히 올 상반기 화장품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9% 늘어 둔화된 수출의 주름살을 폈다. 아직 업력·R&D·브랜드·마케팅 면에서 글로벌 회사에 뒤지지만 중국을 넘어 미국·유럽으로도 한국의 향을 퍼뜨리고 있다. 원재료·용기·완제품 모두에서 세계 시장으로 뻗어가고 있는 한국 화장품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저 슈 치앙쇼우후워 마?(이게 그 유명한 제품이죠?) 워 요우 메이 저 거(이거 주세요).” 지난 9월 30일 오후 서울 잠실에 자리한 롯데월드면세점 8층 화장품 ‘설화수’ 매장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매장 직원에게 건넨 얘기다. 이런 말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면세점 내 중저가 브랜드인 더 페이스샵과 네이처리퍼블릭 매장에서도 중국인은 물론 일본, 미국인 관광객이 물건을 구입하고 있다. 화장품 매장 직원은 “이들이 구입하는 제품은 대부분 로션과 스킨 등의 기초 제품과 얼굴 팩”이라며 “중국인 관광객이 제품을 많이 사지만 미국과 유럽인의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방문객은 총 1420만명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구입한 제품은 무엇일까. 바로 화장품과 향수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이 구입한 물건 중 화장품과 향수가 전체 쇼핑 물품의 59.6%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보다 9.5%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한국 화장품의 인기는 2000년대 초반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반향을 일으키면서 시작됐다. 한국 연예인의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배우려는 중국 여성들이 늘어나면서다. 그 후 서울 강남과 명동 거리에 있는 국내 화장품 매장에서 양손 가득 화장품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중국인 관광객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중국에서 시작된 화장품 한류열풍은 태국, 홍콩 등으로 이어졌고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는 11조 8000억원이다. 올해 규모는 지난해보다 약 7% 성장한 12조 6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5년 동안 20% 넘게 성장했다. 이처럼 빠른 성장은 해외 시장에서도 한국 화장품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화장품 수출액은 13억9233만 달러(약 1조7654억원)로 작년 상반기보다 79.1% 늘었다. 수출 지역을 보면 중국의 비중이 가장 컸다. 지난해 상반기 중국 화장품 수출 비중은 39%로 전년보다 12% 증가했다. 그 다음으로 홍콩(24.7%), 미국(8.4%) 순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산업정보통계센터 박종숙 연구원은 “중국과 홍콩 등에 수출한 제품은 기초 화장품이 가장 많았고, 미국에는 눈화장용 제품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시장이 커지면서 국내 화장품 기업의 실적도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국내 1위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매출은 사상 최대인 4조711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6591억원으로 전년 대비 40% 이상 늘어났다. 화장품 개발·생산 전문인 국내 1위, 세계 2위의 제조업체개발생산(ODM) 기업인 한국콜마도 지난해 매출 4613억원, 영업이익 468억원의 호실적을 달성했다. 역시 사상 최대다.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의 성장도 만만찮다. LG생활건강이 인수한 더 페이스샵의 지난해 매출은 5230억원이었다. 토니모리는 205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토니모리는 4년 연속 두 자릿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들의 고성장은 중국 소비자의 덕이 컸다. 중국 화장품 시장은 화장품 기업에게 놓칠 수 없는 곳이다. 국내 화장품 기업들은 높은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일찌감치 중국에 진출해 큰 성과를 냈다. 지난 1993년 중국 시장에 첫 진출한 아모레퍼시픽은 20여년 만에 해외 매출의 60% 이상이 중국 몫이 됐다. 시장점유율도 2012년 1.6%에서 지난해 2.2%로 높아졌다. 토니모리는 중국에서 복을 상징하는 복숭아,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대나무 모양 등의 독특한 용기 마케팅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미세먼지 등 중국의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는 점에 착안해 자연주의를 내세워 인기를 모았다. 네이처리퍼블릭의 알로에베라 수딩젤은 지난해 6월 중국 최대 온라인 마켓 ‘T몰’에서 하루에 10만개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중국 시장에서 안착하면서 자신감을 얻자 글로벌 무대로도 영토를 넓히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설화수는 지난 2010년 미국 니만 마커스, 블루밍데일 등 백화점에 진출한 이후 연평균 40%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토니모리와 LG생활건강 브랜드인 빌리프는 세계 최대 화장품 전문점인 세포라에 입점하며 뉴요커 사이에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배해동 토니모리 회장은 “자극적인 화학성분을 배제하고 천연성분으로 만들어 민감한 피부를 가진 사람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어 미국 여성 사이에서 인기”라고 말했다. 글로벌 마케팅 에이전시인 JWT는 ‘2015년 주목할 만한 100대 트렌드 보고서’에서 세계 뷰티시장이 주목할 트렌드로 한국 화장품을 꼽았다.
한국 화장품이 인기인 첫째 요인은 우수한 품질이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은 “주름 방지나 미백과 같은 기능성 제품이나 한방 화장품 등은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다”며 “피부색은 달라도 한 번 얼굴에 발라보면 효과가 금방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고품질에 가격 경쟁력까지 있으니 고객으로선 1석 2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인 에스티로더와 로레알 등이 ODM 기업인 한국콜마와 코스맥스 등에게 제품을 공급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업계에서는 한국 화장품의 성장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본다. JWT 측은 “세계적 브랜드의 화장품과 비교하면 한국 화장품의 인지도가 아직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늘고 있어 뷰티시장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건산업진흥원 박종숙 연구원은 “성장 잠재력이 큰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이 인기에 비해 낮은 편이어서 중장기적으로 한국 화장품 기업의 성장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다 보니 바이오·의료기업 등도 화장품 시장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의약품 캡슐 제조 전문 업체인 서흥과 밀폐용기 기업인 락앤락, 줄기세포 치료 개발 업체 파미셀 등에 이어 올 들어 손목시계 제조 기업인 로만손, 조직재생용 의료용구 제조 업체 나이벡 등이 화장품 시장에 가세했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화장품 기업의 기업공개(IPO)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월 토니모리가 코스피 시장에 상장한 데 이어 중국에서 ‘달팽이 크림’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잇츠스킨과 에프엔코 등도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화장품의 성장 전망이 밝지만 과제도 수두룩하다. 미국 패션뷰티 전문 언론사인 WWD에 따르면 2013년 매출 기준 세계 100대 화장품 기업 중 한국은 아모레퍼시픽(17위), LG생활건강(26위), 에이블씨엔씨(56위) 등 불과 3개 기업뿐이다. 미국 30곳, 프랑스 14곳, 일본 13곳, 독일 8곳인 것과 대비된다. 한국 화장품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른 만큼 수출이 살 길이지만 세계 시장의 벽은 아직 높다. 그러나 중국만 겨냥해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국, 유럽 등의 시장으로 적극 진출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 유럽의 경우 이미 오랜 기간 글로벌 기업이 뿌리를 내린 만큼 공략이 쉽지 않다. 국내 화장품 기업의 올 상반기 북미 지역 화장품 수출 비중은 8.4%로 전년 동기(9.7%)보다 줄었다. 유럽쪽 사정도 비슷하다. 지난해 상반기 5.2%에서 3.3%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부진의 원인으로 연구·개발(R&D)과 마케팅 능력, 브랜드 파워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유통망도 적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크리스찬디올이 지난 5월 쿠션파운데이션에 대한 국내외 특허를 보유한 아모레퍼시픽과 쿠션파운데이션 생산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처럼 우리만의 독특한 제품을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R&D 투자가 중요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2010년 4.2%에서 2012년에는 2.9%로 줄었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그룹은 매출액의 3~4%를 R&D로 투자하고 있지만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국내 화장품 대표 기업은 2%대에 불과하다. 그나마 한국콜마와 코스맥스 등은 4%대를 유지하고 있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은 “R&D 투자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될 만큼 매우 중요하다”며 “투자 없이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ins.com
한국 첫 화장품은 ‘박가분’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은 뭘까. 바로 1916년 출시된 ‘박가분’이다. 박가분은 두산그룹을 창업한 박두병의 선친인 박승직이 만든 화장품이다. 지금의 파우더 형태 제품이었다. 하루에 5만갑이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지만 1937년 납 성분 부작용으로 자진 폐업했다. 이후 서가분, 서울분, 정가분 등 다양한 제품이 나왔지만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45년 9월 우리나라 최초 화장품 기업인 ‘태평양화학공업사’가 창립되면서 한국 화장품 시대를 열게 된다. 태평양화학공업사는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이다. 창립 후 선보인 국내 최초의 브랜드 화장품 ‘메로디크림’(1948년), 국내 최초의 순식물성 오일 화장품 ‘에이비시(ABC)포마드’(1951년)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내 제품 생산은 거의 중단됐다. 휴전 이후 1961년 9월 1일 시행된 ‘특정외래품 판매금지법’ 제정으로 화장품 제조 업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화장품 제조 업체가 생기면서 판매원을 직접 채용하는 방문판매의 형태로 화장품 유통이 시작됐다. 1962년 쥬리아화장품을 시작으로 아모레퍼시픽, 한국화장품, 피어리스화장품(현 스킨푸드) 등이 방판조직을 갖췄다. 1980년대 초반까지 이들 화장품이 전체 화장품 유통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1980년에 들어 매장에 제품을 진열하는 화장품 전문점의 등장으로 방문판매 시장은 위축됐다. 직판유통은 1990년 코리아나를 시작으로 아모레퍼세픽, 한불화장품, LG생활건강, 한국화장품 등이 진출해 새로운 유통 형태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1990년대 초 수입 화장품 규제 완화에 따라 백화점에 입점하며 국내 화장품 시장에 진출하는 수입 화장품이 크게 늘어났다. 수입 화장품 매출이 늘면서 국내 화장품 시장은 또 한번 위축기를 맞았다. 당시 대한민국 화장품 유통을 주도했던 화장품 전문점은 과도한 할인 정책으로 제조사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했고, 무리한 할인 경쟁과 외상 등의 문제로 2000년 초 위기를 맞았다. 위기 속에 국내 화장품 시장에 등장한 것이 화장품 브랜드숍이다.
‘화장품의 원가 공개’라는 컨셉트로 2002년 에이블씨엔씨는 중저가 브랜드인 미샤를 만들었다. 시장의 예상을 깨고 성공하면서 2003년부터 더 페이스샵, 스킨푸드 등 화장품 브랜드숍이 등장했다. 국내 화장품 선도기업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도 이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화장품 유통 형태는 백화점과 방문판매에 이어 브랜드숍 시장으로 삼등분됐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방문객은 총 1420만명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구입한 제품은 무엇일까. 바로 화장품과 향수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이 구입한 물건 중 화장품과 향수가 전체 쇼핑 물품의 59.6%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보다 9.5%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한국 화장품의 인기는 2000년대 초반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반향을 일으키면서 시작됐다. 한국 연예인의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배우려는 중국 여성들이 늘어나면서다. 그 후 서울 강남과 명동 거리에 있는 국내 화장품 매장에서 양손 가득 화장품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중국인 관광객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중국에서 시작된 화장품 한류열풍은 태국, 홍콩 등으로 이어졌고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한국콜마 사상 최대 실적
시장이 커지면서 국내 화장품 기업의 실적도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국내 1위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매출은 사상 최대인 4조711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6591억원으로 전년 대비 40% 이상 늘어났다. 화장품 개발·생산 전문인 국내 1위, 세계 2위의 제조업체개발생산(ODM) 기업인 한국콜마도 지난해 매출 4613억원, 영업이익 468억원의 호실적을 달성했다. 역시 사상 최대다.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의 성장도 만만찮다. LG생활건강이 인수한 더 페이스샵의 지난해 매출은 5230억원이었다. 토니모리는 205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토니모리는 4년 연속 두 자릿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들의 고성장은 중국 소비자의 덕이 컸다. 중국 화장품 시장은 화장품 기업에게 놓칠 수 없는 곳이다. 국내 화장품 기업들은 높은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일찌감치 중국에 진출해 큰 성과를 냈다. 지난 1993년 중국 시장에 첫 진출한 아모레퍼시픽은 20여년 만에 해외 매출의 60% 이상이 중국 몫이 됐다. 시장점유율도 2012년 1.6%에서 지난해 2.2%로 높아졌다. 토니모리는 중국에서 복을 상징하는 복숭아,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대나무 모양 등의 독특한 용기 마케팅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미세먼지 등 중국의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는 점에 착안해 자연주의를 내세워 인기를 모았다. 네이처리퍼블릭의 알로에베라 수딩젤은 지난해 6월 중국 최대 온라인 마켓 ‘T몰’에서 하루에 10만개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품질은 세계적 수준
한국 화장품이 인기인 첫째 요인은 우수한 품질이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은 “주름 방지나 미백과 같은 기능성 제품이나 한방 화장품 등은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다”며 “피부색은 달라도 한 번 얼굴에 발라보면 효과가 금방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고품질에 가격 경쟁력까지 있으니 고객으로선 1석 2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인 에스티로더와 로레알 등이 ODM 기업인 한국콜마와 코스맥스 등에게 제품을 공급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업계에서는 한국 화장품의 성장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본다. JWT 측은 “세계적 브랜드의 화장품과 비교하면 한국 화장품의 인지도가 아직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늘고 있어 뷰티시장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건산업진흥원 박종숙 연구원은 “성장 잠재력이 큰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이 인기에 비해 낮은 편이어서 중장기적으로 한국 화장품 기업의 성장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다 보니 바이오·의료기업 등도 화장품 시장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의약품 캡슐 제조 전문 업체인 서흥과 밀폐용기 기업인 락앤락, 줄기세포 치료 개발 업체 파미셀 등에 이어 올 들어 손목시계 제조 기업인 로만손, 조직재생용 의료용구 제조 업체 나이벡 등이 화장품 시장에 가세했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화장품 기업의 기업공개(IPO)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월 토니모리가 코스피 시장에 상장한 데 이어 중국에서 ‘달팽이 크림’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잇츠스킨과 에프엔코 등도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화장품의 성장 전망이 밝지만 과제도 수두룩하다. 미국 패션뷰티 전문 언론사인 WWD에 따르면 2013년 매출 기준 세계 100대 화장품 기업 중 한국은 아모레퍼시픽(17위), LG생활건강(26위), 에이블씨엔씨(56위) 등 불과 3개 기업뿐이다. 미국 30곳, 프랑스 14곳, 일본 13곳, 독일 8곳인 것과 대비된다. 한국 화장품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른 만큼 수출이 살 길이지만 세계 시장의 벽은 아직 높다. 그러나 중국만 겨냥해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국, 유럽 등의 시장으로 적극 진출해야 한다.
한국 화장품 R&D 투자 더 늘려야
이를 위해서는 R&D 투자가 중요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2010년 4.2%에서 2012년에는 2.9%로 줄었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그룹은 매출액의 3~4%를 R&D로 투자하고 있지만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국내 화장품 대표 기업은 2%대에 불과하다. 그나마 한국콜마와 코스맥스 등은 4%대를 유지하고 있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은 “R&D 투자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될 만큼 매우 중요하다”며 “투자 없이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ins.com
[박스기사] 한국 화장품 시장 발전사
한국 첫 화장품은 ‘박가분’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은 뭘까. 바로 1916년 출시된 ‘박가분’이다. 박가분은 두산그룹을 창업한 박두병의 선친인 박승직이 만든 화장품이다. 지금의 파우더 형태 제품이었다. 하루에 5만갑이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지만 1937년 납 성분 부작용으로 자진 폐업했다. 이후 서가분, 서울분, 정가분 등 다양한 제품이 나왔지만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45년 9월 우리나라 최초 화장품 기업인 ‘태평양화학공업사’가 창립되면서 한국 화장품 시대를 열게 된다. 태평양화학공업사는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이다. 창립 후 선보인 국내 최초의 브랜드 화장품 ‘메로디크림’(1948년), 국내 최초의 순식물성 오일 화장품 ‘에이비시(ABC)포마드’(1951년)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내 제품 생산은 거의 중단됐다. 휴전 이후 1961년 9월 1일 시행된 ‘특정외래품 판매금지법’ 제정으로 화장품 제조 업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화장품 제조 업체가 생기면서 판매원을 직접 채용하는 방문판매의 형태로 화장품 유통이 시작됐다. 1962년 쥬리아화장품을 시작으로 아모레퍼시픽, 한국화장품, 피어리스화장품(현 스킨푸드) 등이 방판조직을 갖췄다. 1980년대 초반까지 이들 화장품이 전체 화장품 유통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1980년에 들어 매장에 제품을 진열하는 화장품 전문점의 등장으로 방문판매 시장은 위축됐다. 직판유통은 1990년 코리아나를 시작으로 아모레퍼세픽, 한불화장품, LG생활건강, 한국화장품 등이 진출해 새로운 유통 형태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1990년대 초 수입 화장품 규제 완화에 따라 백화점에 입점하며 국내 화장품 시장에 진출하는 수입 화장품이 크게 늘어났다. 수입 화장품 매출이 늘면서 국내 화장품 시장은 또 한번 위축기를 맞았다. 당시 대한민국 화장품 유통을 주도했던 화장품 전문점은 과도한 할인 정책으로 제조사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했고, 무리한 할인 경쟁과 외상 등의 문제로 2000년 초 위기를 맞았다. 위기 속에 국내 화장품 시장에 등장한 것이 화장품 브랜드숍이다.
‘화장품의 원가 공개’라는 컨셉트로 2002년 에이블씨엔씨는 중저가 브랜드인 미샤를 만들었다. 시장의 예상을 깨고 성공하면서 2003년부터 더 페이스샵, 스킨푸드 등 화장품 브랜드숍이 등장했다. 국내 화장품 선도기업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도 이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화장품 유통 형태는 백화점과 방문판매에 이어 브랜드숍 시장으로 삼등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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