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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보다 더 무서운 것

인공지능보다 더 무서운 것

영국의 인기 드라마 ‘휴먼스’에선 인간의 도우미 역할을 하던 로봇이 감정을 느끼고 자의식이 생기면서 인간과 갈등을 일으킨다.
올해 초 방송된 ‘휴먼스(Humans)’는 영국 방송사 채널 4의 역대 최고 인기 드라마 시리즈가 됐다. 주인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유대를 형성하는 고도의 지능을 가진 ‘신쓰’(Synths, 인간형 로봇) 그룹의 이야기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인간 같은 신쓰는 초기엔 시종 역할을 충실히 한다. 주인이 바라던 대로 한없이 집안 허드렛일을 처리한다. 그러나 주인 가족 모르게 신쓰의 인공지능 프로그래밍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갈수록 더 감성적이 되고 자의식이 강해진다.

그러면서 로봇 섹스뿐 아니라 신쓰 자신들이 왜 노예 생활을 하도록 프로그램됐는지 집단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자유를 갈망하면서 모든 일이 복잡하게 꼬이고 말았다. 시즌 2에서는 그들이 얼마나 큰 자유를 얻게 될지가 드러난다.

얼토당토 않은 내용도 있다. 하지만 앞선 공상과학 만화책 스타일의 로봇 판타지물(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터미네이터’ 등)에 비하면 로봇의 지능이 우리 인간을 능가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그린 ‘휴먼스’는 상당히 흥미를 끄는 스토리다.

그것은 무엇보다 프랑켄슈타인의 악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창조물을 세상에 풀어 놓았다가 우리가 통제할 수 없게 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그렸다.

‘휴먼스’는 사실상 인공지능의 이 같은 도덕적·윤리적 딜레마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새로운 문화 추세의 연장선상에 있다.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의 순간이 지금은 실현 가능한 일이 됐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기술적 특이점’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따라잡고 뛰어넘는 시점을 말한다). 요즘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트랜스휴머니스트(transhumanists) 운동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기술을 이용해 우리 자신들을 증강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몇몇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그런 논쟁을 주류 문화에 올려놓기 위해 직접 정당을 결성하기도 했다.

엑소 바이오닉스는 착용형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보행이 어려운 사람을 다시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전동 외골격 생체공학 수트.
물론 인공지능을 둘러싼 관심과 추측은 상당부분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다수의 의미심장한 과학·기술적 혁신의 결과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삶의 많은 측면에서 똑똑한 컴퓨터와 로봇의 도움과 자극을 받는다. 요즘엔 컴퓨터가 체스 대결에서 세계 챔피언들을 이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로봇과 스마트한 인공지능 컴퓨터 기술이 자율적으로 자동차를 제조하고 운전할 수 있다. 기차를 운행하고 비행기도 이착륙시킬 수 있다. 그 밖에도 우리 금융 시스템의 상당부분이 고성능 인공지능 거래 알고리즘의 힘으로 작동한다.

우리 생활 속에 인공지능이 확산되면서 국가가 국민의 움직임을 감시할 위험성도 더 커졌다. 갈수록 정밀해지는 인식 소프트웨어가 우리의 자동차 번호판을 확인할 수 있다. 거리를 걸어갈 때 우리 얼굴이 모두 CCTV에 포착된다. 이 모든 일들이 어떤 인간도 필적할 수 없는 규모와 속도로 이뤄진다. 따라서 여러 모로 판단할 때 인공지능 요정 ‘지니’가 이미 병 바깥으로 나온 셈이다.

그러나 인공지능 컴퓨터 기술이 대단히 강력해지고는 있지만 그 바탕을 이루는 과학기술은 여러 면에서 인간 지능에 필적할 만한 수준이 되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일부 인공지능 주창자들은 두뇌의 신경망 회로 복제가 인공지능의 목표라는 그릇된 믿음을 갖고 있다. 설사 그렇다 해도 그런 목표의 발치에도 접근하지 못했다.

인간의 두뇌를 살펴보자. 1000억 개 정도의 뉴런(신경세포)과 그 사이를 연결하는 1조 개의 다리가 있다. 지금까지 살아 숨쉬는 뇌의 지도를 그리려는 인간의 시도 중 최고봉은 오픈웜(OpenWorm) 프로젝트다. 연구팀은 회충인 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의 뉴런 302개의 도표를 작성해 컴퓨터 시뮬레이션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 힘으로 간단한 레고 로봇을 움직인다.

그 자체로는 눈부신 성과지만 인간의 의식과 지능을 합성하는 방법의 이해는커녕 인간 두뇌의 복잡성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몇 광년이나 뒤져 있다. 그렇다면 왜 스마트한 기계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시대에 대비해야 하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그런 존재론적 의문에 과학자, 평론가 그리고 일반 대중이 몹시 당혹스러워하는 이유는 뭘까?

인공지능이 야기하는 잠재적 위험에 세계 각지의 수많은 대학 학과와 연구소들이 큰 우려를 나타낸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생존위기연구센터(Centre for the Study of Existential Risk), 매사추세츠공대의 생명의 미래 연구소(Future of Life Institute)가 대표적이다.

저명한 기술공학자와 과학자들조차 인공지능 기기들의 실재적인 위협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그중에는 혁신적 기업가 엘론 머스크,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포함된다. 호킹은 인공지능이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인공지능 위험을 기후변화보다 더 심각한 인류 최대의 위협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부각되는 문제를 들여다 보면 다른 수많은 사회에서 느꼈던 일반적인 불안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그때마다 매번 임박한 기술이 새로 부상했다.

예컨대 산업혁명 중 사람들이 겪었던 급속한 기계화 시대, 또는 더 최근 들어 우리의 통신 방식에 인터넷이 초래한 극적인 영향 등 과거 대규모 지각변동을 겪었던 시대와 비교해 보자. 그렇게 보면 요즘 거론되는 ‘지능 폭발(intelligence explosion, 인공지능에 힘입은 지능의 급격한 발전)’은 아직도 먼 훗날의 일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그렇게 처음부터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을 수반할 수도 있다. 대단히 큰 기대를 불러일으킬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지극히 초기 단계 기술의 싹을 잘라버리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들도 ‘신쓰’를 집에 들여놓고 잡다한 허드렛일을 시키는 미래는 아직도 한참 기다려야 할 듯하다. 하지만 현재도 인공지능과 스마트 로봇의 훨씬 더 많은 응용기술이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무엇보다 화성을 비롯한 우주탐사를 포함해 상당수 살기 힘들거나 위험한 곳의 개척을 돕는 일이다.

‘슈퍼 휴먼’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때 우리가 그 기회를 던져버릴 위험이 있다. 인공지능 걱정은 접어두자.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는 건 우리 지능의 산물을 부리는 문제에서 우리 자신의 상상력이다.

- MARTYN PERKS IBTIMES 기자 / 번역 차진우



[ 필자 마틴 퍼크스는 디지털 비즈니스 컨설턴트이자 저술가다. ‘아이디어 배틀’ 페스티벌에서 ‘인간과 기계, 누가 로봇을 지배하나’ 토론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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