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가상현실] 첨단 헤드셋·콘텐트 속속 등장
[손에 잡히는 가상현실] 첨단 헤드셋·콘텐트 속속 등장
IT업계에서 가상현실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그저 말뿐이었다. 마침내 소비자를 사로잡을 진짜 가상현실 제품이 등장했다. 지난 9월 미국 LA 할리우드 호텔에서 열린 컨퍼런스는 가상현실이 마법 세계에서 월마트로 넘어오는 전환점이었다. 게임 개발자들과 3D 기기 개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가상현실 장비 오큘러스 리프트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킥스타터에서 투자받아 개발된 가상현실 헤드셋이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뒤 페이스북에 수백 만 달러에 인수됐다.
지금까지 가상현실 기기는 종종 세상을 바꿔놓을 차세대 기술인양 포장됐다가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조용히 사라졌다. 닌텐도의 버추얼보이나 인텔의 고해상도 TV용 바이브PC 같은 제품을 누가 기억이나 하겠는가? 리프트는 다르다. 몇 분만 머리에 써보면 냉소적인 회의주의자조차 가상현실의 잠재력을 확신하게 된다. 리프트가 보여주는 건 단순한 화면이 아니다. 온몸을 둘러싸는 3차원 가상현실의 한가운데로 이용자를 인도한다. 그 안에서 움직일 수도 있다. 리프트의 가상현실이 현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대형 화면 TV를 20세기의 유물로 만들기엔 충분한 기술이다. 인상적인 하드웨어 못지 않게 콘텐트 역시 잠재력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시연 제품은 ‘불렛트레인’였다. 인기 게임 ‘언리얼’과 ‘기어스오브워’를 제작한 에픽게임스의 1인칭 슈팅게임이다. 오큘러스 리프트의 실감나는 영상과 몰입도 높은 음향효과 덕분에 이용자는 마치 자신이 영화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라도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간을 느리게 만들어 날아오는 탄환을 잡아 적들에게 다시 집어던질 수도 있다.
기존처럼 가만히 앉아서 즐기는 게임이 아니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 체력은 소모되지만 아주 신명나는 체험이다. 앉지도, 조이스틱을 움직이지도 않는다. 선 채로 리프트를 머리에 쓰고 오큘러스가 개발한 터치 컨트롤러를 양손에 장착한다. 머리나 몸을 좌우로 돌리면 게임의 배경이 되는 기차역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총을 쥐려면 손을 뻗어야 하고, 쏠 때는 방아쇠를 당기기에 앞서 팔을 들어 조준선을 정렬해야 한다. 마치 진짜 총을 쏘듯이 말이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들을 상대하려면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총알이 다 떨어지면 터치에서 손을 떼서 총을 버린 뒤 주변에 있는 적의 시체에서 새 총을 집어든다.
그다지 혁신적이지 않은 게임이라도 숨막히는 360도 화면과 신체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음향 풍경을 제공한다. ‘이브:발키리’는 이용자를 우주 전투 비행선의 조종석으로 인도한다. 실제 우주선을 조종하듯 수많은 적들 사이를 누빈다. 몸은 스타벅스에 있을지라도 마음만은 마치 우주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그 밖에도 휴대용 헤드셋으로 실물 크기 영상을 제공하는 ‘팩맨’이나 전 세계에서 2000만개 판매된 건설 게임 ‘마인크래프트’ 등 다양한 게임이 시연됐다.
게임 업계뿐 아니라 넷플릭스와 20세기폭스 등 영상 관련 기업부터 부동산 업체, 원격 회의 시스템, 조각 작업소, 무술이나 원심분리기 관리 등을 위한 훈련 설비까지 폭넓은 분야 업체가 이 기술의 고객이다. 가상현실 기기를 사용하면 가상 공간 속을 돌아다니면서 컴퓨터로 만들어진 가상의 물건들을 만지거나 잡을 수 있다. 이미 출시된 제품도 있고, 일부는 몇 달 내에 판매나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오큘러스는 라틴어로 눈을 뜻한다. 저명한 게임 개발자 팰머러키가 2012년 내놓은 새 3D 헤드셋이 그 시초다. ‘둠’ ‘퀘이크’ 등의 개발자로 유명한 게임 업계의 전설 존 카맥이 여기에 게임을 공급했다. 카맥은 자신의 소속사 ID소프트웨어에서 3D 애니메이션 분야에 많은 진전을 이뤄낸 인물이다. 러키는 또 다른 유명 개발자 브렌든 이리브를 섭외해 킥스타터에서 투자금 유치 캠페인을 벌였다. 모금액은 순식간에 100만 달러를 넘어 200만 달러에 달했다. 리키와 이리브는 오큘러스를 설립하고 카맥을 영입했다. 지난해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20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회사 규모는 수천 배로 뛰었고, 사무실도 미국 LA에서 실리콘밸리로 옮겼다. 페이스북 임원들은 리프트가 향후 페이스북을 포함해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시선을 빼앗을 잠재력이 있다는 점을 깨달은 듯하다.
오큘러스의 설립자들은 페이스북의 인수가 끝이 아니라 가상 현실을 보다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한 새 출발점이라고 여긴다. 이를 위해선 기술을 조금 개선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 가상현실을 현실처럼 보이게 하려면 “해상도를 지금보다 500배 높여야 한다”고 이리브는 말했다. “평면을 촬영하는 카메라 대신 깊이까지 포착하는 진짜 3D 캡처 도구가 필요하다.”
가상현실 시장을 개척하는 업체는 페이스북과 오큘러스뿐만이 아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삼성전자는 99달러 헤드셋 ‘기어 VR’을 선보였다. 오큘러스와 공동으로 개발한 이 제품에 최신형 삼성 스마트폰을 장착하면 이용자의 눈앞에 입체 영상이 펼쳐진다. 소니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에 연결하는 경쟁 제품 플레이스테이션VR을 준비 중이고, HTC는 PC 헤드셋 바이브를 내년에 출시할 계획이다. 가상현실은 게임뿐 아니라 평면 TV를 즐기기에도 좋은 방법이다. 기어VR로 넷플릭스를 보면 마치 노트북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이 아니라 대화면 TV를 보는 듯한 경험이 가능하다. 넷플릭스는 컨퍼런스 도중에 기어VR 소유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영상을 내보냈다. 훌루·티보·20세기폭스·라이언스게이트 등 다른 영상 업체도 내년에 가상현실 서비스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비행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제격이다. 옆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대화면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옆에 앉은 사람은 이용자가 뭘 보는지 알 길이 없다. 휴대 전화로 드라마를 보면서 노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몸을 어색하게 뒤틀 필요도 없다. 편하게 누운 채로 공공장소 한 가운데서 자신만의 시간을 누리면 된다. 비록 컨퍼런스에선 성인용 영상과 관련된 논의가 없었지만, 성인용 가상현실 콘텐트는 온라인에 이미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내년에 가상현실 해드셋이 1200만개 팔린다고 예상했다. 아직까지는 가격이 너무 비싸 대중화가 어렵다. 초기 단계인 기어VR만 해도 가격이 수백 달러에 달할 뿐 아니라 최고급 삼성 스마트폰이 있어야 이용 가능하다. 리프트 역시 가장 좋은 설정을 적용하려면 사양이 아주 높은 컴퓨터가 필요하다.
일부 컴퓨터 제조 업체들은 리프트 이용에 충분한 모델을 1000달러 미만으로 내놓겠다고 발표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든 제품을 갖추는 데는 1500달러에서 2000달러가 소요된다. 하지만 몇 년만 더 지나면 가상현실은 아이폰 출시 후 8년이 지난 현재의 스마트폰과 입지가 비슷해질 것이다. 적절한 가격으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고 아무도 그 필요성을 묻지 않는 기기 말이다. 오큘러스의 기조연설 도중 복도에서 만난 한 독일 출신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가상현실은 쓸 데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한번도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꼭 그런 말을 한다.”
- 폴 바우틴 뉴스위크 기자 / 번역=이기준
영화·게임 몰입 체험용 고급형 제품은 아직지난 10월 중순 일부 얼리 어답터는 미국 CNN 방송의 민주당 대선 주자 토론을 가상현실(VR)로 시청할 수 있었다. 방송 시청은 무료였지만 삼성전자의 특수 헤드셋이 필요했다. 삼성의 기어 VR 신모델이 11월 중 미국에 출시됐고, 구글의 20달러짜리 DIY 헤드셋도 나와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소니 등의 야심작 VR은 내년 초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 가면 HTC 바이브,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VR, 오큘러스 리프트, 레이저·센식스 ‘OSVR 해커 디벨로프먼트 키트’ 등 헷갈릴 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가격 외에 VR 업계가 극복해야 할 최대 과제는 콘텐트다. CNN의 실험은 그렇다 해도 머리에 헤드셋을 착용한 채 옛날 TV를 시청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레이저의 지반 아우롤소프트웨어 제품 마케팅 팀장은 “VR에 관심을 보이는 열성 팬과 골수 PC 게임 팬이 많지만 주류 시장에선 거의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임 개발자, 영화 제작자, 앱 개발자가 VR 기술의 특성과 활용법을 연구 중이다. 영화·게임을 비롯한 기타 VR 콘텐트는 아직 개발 초기 단계다. 현재 몇 가지가 발표됐지만 대형 게임 타이틀과 장편 영화가 나오려면 최소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 이는 주로 이용자에게 몰입 체험을 제공하는 고급형 VR 헤드셋 중 대다수가 아직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동작 인식과 손 안의 조작장치, 특히 게임 플레이 환경 제어 기능을 갖춘 기기들이다.
3개 대형 브랜드 HTC 바이브,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VR, 오큘러스 리프트 모두 내년 상반기에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며 판매가도 아직 미정이다.
쌍방향 체험을 극대화하고 실제로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콘트롤러, 센서 또는 2가지 기능을 모두 갖춘 이른바 프리미엄 VR 제품들이다. 그 밖에 ‘OSVR 해커 디벨로프먼트 키트’가 있다. 레이저와 VR 업체 센식스의 합작품이다. 3가지 모델에 가격은 200~300달러다. 몸동작 인식과 광학기술이 주된 차이점이다. 최신 OSVR 키트 2종은 자세 인식 기능을 갖췄다. 이 기능을 이용해 몸을 앞뒤로 움직이고 일어서고 앉을 수 있다.
OSVR에선 콘텐트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레이저와 센식스는 유비소프트 같은 일류 게임 개발사, 약 80개의 독립 게임 개발사, 엔비디아와 ‘레전더리 VR’ 같은 기업, 언리얼과 유니티 같은 게임 엔진(게임을 구동시키는 핵심 소프트웨어)과 손잡았다. OSVR 콘텐트는 여러 온라인 매장과 플랫폼에서 판매된다. 35종의 VR 게임 타이틀을 보유한 디지털 게임스토어 ‘스팀’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데스티니’ ‘그랜드 세프트 오토’ 같은 게임을 VR로 보게 될까? 아우롤 팀장은 “우리와 함께 일하는 개발사 중 두어 곳이 기존 게임의 VR판 출시를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영화제작자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마이크 자자예리 구글 VR 제품관리 팀장은 말한다. 그는 VR 영화 제작과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오큘러스의 ‘스토리 스튜디오’를 지목한다. 스토리 스튜디오는 지난 7월 28일 두 번째 VR 영화 [헨리(Henry)]를 출시했다. 생일을 맞은 고슴도치가 주인공인 영화다.
허풍인가 혁신인가IT업계 외부 사람들은 플로리다 대니아비치에서 증강현실 헤드셋을 개발 중이라고 알려진 비밀스런 스타트업에 대해 들어 본 적이 거의 없으리라. 스타트업 매직립은 유튜브 동영상 몇 개로 보여준 자사 기술을 바탕으로 현실세계와 연결된 3D 그래픽을 보여주고자 한다.
매직립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여러분에게 정보가 별로 없는 이유는 우리가 언론에 말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매직립의 홍보실장 앤디 푸셰는 말했다.
매직립의 신비주의와 잠재력은 많은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부 언론은 천문학적인 수치를 거론했다. 지난 10월 21일 사우스플로리다비즈니스저널은 매직립이 차기 투자자 유치회에서 10억 달러 이상을 모금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스타트업으로서는 유치하기가 어려운 금액이다. 심지어 실리콘밸리에서 5000㎞ 넘게 떨어진 스타트업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10억 달러는 매직립이 지난 10월 가진 투자자 유치회에서 모금한 액수의 2배에 가깝다. 당시 매직립은 구글과 퀄컴으로부터 5억4200만 달러를 유치하며 총 투자금 5억9200만 달러를 달성했다. 사우스플로리다비즈니스저널에 따르면 매직립의 기업가치는 45억 달러로 추정된다. 구글 CEO 순다르 핀차이는 5억4200만 달러 투자가 결정됨에 따라 매직립의 이사진에 합류했다. 퀄컴의 폴 제이콥스 대표이사 역시 지난해 참관인 자격으로 이사진에 올랐다.
믿어지지 않는 투자금과 막강한 인맥에도 매직립은 자사 기술을 보여주는 사진이나 명료한 설명을 홈페이지에 게재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이 웹사이트에는 100개 이상의 구인 공고가 올라와 있다. 대부분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모집하는 공고다. 자못 과장돼 보이는 문구와 베일에 싸인 제품 탓에 가상현실 업계 종사자들 상당수는 매직립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가상현실 개발자 여러 명은 매직립의 과장된 문구가 부당하며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농담거리로 치부된다고 말했다. “그저 허풍에 불과하다. 그들이 현재 가진 기술과 아무 관련 없다.”
매직립을 설립한 로니 애보비츠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매직립이 플로리다 남부의 버려진 모토롤라 공장에서 증강현실 해드셋을 제작할 준비 중이라고 발표했다. 애보비츠는 출시일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시기는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4년 애보비츠는 외과 수술 지원 로봇을 제조하는 의료기기 업체 마코서지컬을 공동설립했다. 마코서지컬은 2013년 16억5000만 달러에 매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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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가상현실 기기는 종종 세상을 바꿔놓을 차세대 기술인양 포장됐다가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조용히 사라졌다. 닌텐도의 버추얼보이나 인텔의 고해상도 TV용 바이브PC 같은 제품을 누가 기억이나 하겠는가? 리프트는 다르다. 몇 분만 머리에 써보면 냉소적인 회의주의자조차 가상현실의 잠재력을 확신하게 된다. 리프트가 보여주는 건 단순한 화면이 아니다. 온몸을 둘러싸는 3차원 가상현실의 한가운데로 이용자를 인도한다. 그 안에서 움직일 수도 있다. 리프트의 가상현실이 현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대형 화면 TV를 20세기의 유물로 만들기엔 충분한 기술이다.
3차원의 가상현실로 인도
기존처럼 가만히 앉아서 즐기는 게임이 아니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 체력은 소모되지만 아주 신명나는 체험이다. 앉지도, 조이스틱을 움직이지도 않는다. 선 채로 리프트를 머리에 쓰고 오큘러스가 개발한 터치 컨트롤러를 양손에 장착한다. 머리나 몸을 좌우로 돌리면 게임의 배경이 되는 기차역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총을 쥐려면 손을 뻗어야 하고, 쏠 때는 방아쇠를 당기기에 앞서 팔을 들어 조준선을 정렬해야 한다. 마치 진짜 총을 쏘듯이 말이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들을 상대하려면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총알이 다 떨어지면 터치에서 손을 떼서 총을 버린 뒤 주변에 있는 적의 시체에서 새 총을 집어든다.
그다지 혁신적이지 않은 게임이라도 숨막히는 360도 화면과 신체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음향 풍경을 제공한다. ‘이브:발키리’는 이용자를 우주 전투 비행선의 조종석으로 인도한다. 실제 우주선을 조종하듯 수많은 적들 사이를 누빈다. 몸은 스타벅스에 있을지라도 마음만은 마치 우주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그 밖에도 휴대용 헤드셋으로 실물 크기 영상을 제공하는 ‘팩맨’이나 전 세계에서 2000만개 판매된 건설 게임 ‘마인크래프트’ 등 다양한 게임이 시연됐다.
게임 업계뿐 아니라 넷플릭스와 20세기폭스 등 영상 관련 기업부터 부동산 업체, 원격 회의 시스템, 조각 작업소, 무술이나 원심분리기 관리 등을 위한 훈련 설비까지 폭넓은 분야 업체가 이 기술의 고객이다. 가상현실 기기를 사용하면 가상 공간 속을 돌아다니면서 컴퓨터로 만들어진 가상의 물건들을 만지거나 잡을 수 있다. 이미 출시된 제품도 있고, 일부는 몇 달 내에 판매나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오큘러스는 라틴어로 눈을 뜻한다. 저명한 게임 개발자 팰머러키가 2012년 내놓은 새 3D 헤드셋이 그 시초다. ‘둠’ ‘퀘이크’ 등의 개발자로 유명한 게임 업계의 전설 존 카맥이 여기에 게임을 공급했다. 카맥은 자신의 소속사 ID소프트웨어에서 3D 애니메이션 분야에 많은 진전을 이뤄낸 인물이다. 러키는 또 다른 유명 개발자 브렌든 이리브를 섭외해 킥스타터에서 투자금 유치 캠페인을 벌였다. 모금액은 순식간에 100만 달러를 넘어 200만 달러에 달했다. 리키와 이리브는 오큘러스를 설립하고 카맥을 영입했다.
해상도 지금보다 500배 높여야
오큘러스의 설립자들은 페이스북의 인수가 끝이 아니라 가상 현실을 보다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한 새 출발점이라고 여긴다. 이를 위해선 기술을 조금 개선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 가상현실을 현실처럼 보이게 하려면 “해상도를 지금보다 500배 높여야 한다”고 이리브는 말했다. “평면을 촬영하는 카메라 대신 깊이까지 포착하는 진짜 3D 캡처 도구가 필요하다.”
가상현실 시장을 개척하는 업체는 페이스북과 오큘러스뿐만이 아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삼성전자는 99달러 헤드셋 ‘기어 VR’을 선보였다. 오큘러스와 공동으로 개발한 이 제품에 최신형 삼성 스마트폰을 장착하면 이용자의 눈앞에 입체 영상이 펼쳐진다. 소니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에 연결하는 경쟁 제품 플레이스테이션VR을 준비 중이고, HTC는 PC 헤드셋 바이브를 내년에 출시할 계획이다. 가상현실은 게임뿐 아니라 평면 TV를 즐기기에도 좋은 방법이다. 기어VR로 넷플릭스를 보면 마치 노트북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이 아니라 대화면 TV를 보는 듯한 경험이 가능하다. 넷플릭스는 컨퍼런스 도중에 기어VR 소유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영상을 내보냈다. 훌루·티보·20세기폭스·라이언스게이트 등 다른 영상 업체도 내년에 가상현실 서비스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비행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제격이다. 옆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대화면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옆에 앉은 사람은 이용자가 뭘 보는지 알 길이 없다. 휴대 전화로 드라마를 보면서 노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몸을 어색하게 뒤틀 필요도 없다. 편하게 누운 채로 공공장소 한 가운데서 자신만의 시간을 누리면 된다. 비록 컨퍼런스에선 성인용 영상과 관련된 논의가 없었지만, 성인용 가상현실 콘텐트는 온라인에 이미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내년에 가상현실 해드셋이 1200만개 팔린다고 예상했다. 아직까지는 가격이 너무 비싸 대중화가 어렵다. 초기 단계인 기어VR만 해도 가격이 수백 달러에 달할 뿐 아니라 최고급 삼성 스마트폰이 있어야 이용 가능하다. 리프트 역시 가장 좋은 설정을 적용하려면 사양이 아주 높은 컴퓨터가 필요하다.
일부 컴퓨터 제조 업체들은 리프트 이용에 충분한 모델을 1000달러 미만으로 내놓겠다고 발표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든 제품을 갖추는 데는 1500달러에서 2000달러가 소요된다. 하지만 몇 년만 더 지나면 가상현실은 아이폰 출시 후 8년이 지난 현재의 스마트폰과 입지가 비슷해질 것이다. 적절한 가격으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고 아무도 그 필요성을 묻지 않는 기기 말이다. 오큘러스의 기조연설 도중 복도에서 만난 한 독일 출신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가상현실은 쓸 데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한번도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꼭 그런 말을 한다.”
- 폴 바우틴 뉴스위크 기자 / 번역=이기준
[박스기사] 가상현실이 미디어의 미래도 바꿀까
영화·게임 몰입 체험용 고급형 제품은 아직지난 10월 중순 일부 얼리 어답터는 미국 CNN 방송의 민주당 대선 주자 토론을 가상현실(VR)로 시청할 수 있었다. 방송 시청은 무료였지만 삼성전자의 특수 헤드셋이 필요했다. 삼성의 기어 VR 신모델이 11월 중 미국에 출시됐고, 구글의 20달러짜리 DIY 헤드셋도 나와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소니 등의 야심작 VR은 내년 초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 가면 HTC 바이브,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VR, 오큘러스 리프트, 레이저·센식스 ‘OSVR 해커 디벨로프먼트 키트’ 등 헷갈릴 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가격 외에 VR 업계가 극복해야 할 최대 과제는 콘텐트다. CNN의 실험은 그렇다 해도 머리에 헤드셋을 착용한 채 옛날 TV를 시청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레이저의 지반 아우롤소프트웨어 제품 마케팅 팀장은 “VR에 관심을 보이는 열성 팬과 골수 PC 게임 팬이 많지만 주류 시장에선 거의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임 개발자, 영화 제작자, 앱 개발자가 VR 기술의 특성과 활용법을 연구 중이다. 영화·게임을 비롯한 기타 VR 콘텐트는 아직 개발 초기 단계다. 현재 몇 가지가 발표됐지만 대형 게임 타이틀과 장편 영화가 나오려면 최소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 이는 주로 이용자에게 몰입 체험을 제공하는 고급형 VR 헤드셋 중 대다수가 아직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동작 인식과 손 안의 조작장치, 특히 게임 플레이 환경 제어 기능을 갖춘 기기들이다.
3개 대형 브랜드 HTC 바이브,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VR, 오큘러스 리프트 모두 내년 상반기에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며 판매가도 아직 미정이다.
쌍방향 체험을 극대화하고 실제로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콘트롤러, 센서 또는 2가지 기능을 모두 갖춘 이른바 프리미엄 VR 제품들이다. 그 밖에 ‘OSVR 해커 디벨로프먼트 키트’가 있다. 레이저와 VR 업체 센식스의 합작품이다. 3가지 모델에 가격은 200~300달러다. 몸동작 인식과 광학기술이 주된 차이점이다. 최신 OSVR 키트 2종은 자세 인식 기능을 갖췄다. 이 기능을 이용해 몸을 앞뒤로 움직이고 일어서고 앉을 수 있다.
OSVR에선 콘텐트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레이저와 센식스는 유비소프트 같은 일류 게임 개발사, 약 80개의 독립 게임 개발사, 엔비디아와 ‘레전더리 VR’ 같은 기업, 언리얼과 유니티 같은 게임 엔진(게임을 구동시키는 핵심 소프트웨어)과 손잡았다. OSVR 콘텐트는 여러 온라인 매장과 플랫폼에서 판매된다. 35종의 VR 게임 타이틀을 보유한 디지털 게임스토어 ‘스팀’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데스티니’ ‘그랜드 세프트 오토’ 같은 게임을 VR로 보게 될까? 아우롤 팀장은 “우리와 함께 일하는 개발사 중 두어 곳이 기존 게임의 VR판 출시를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영화제작자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마이크 자자예리 구글 VR 제품관리 팀장은 말한다. 그는 VR 영화 제작과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오큘러스의 ‘스토리 스튜디오’를 지목한다. 스토리 스튜디오는 지난 7월 28일 두 번째 VR 영화 [헨리(Henry)]를 출시했다. 생일을 맞은 고슴도치가 주인공인 영화다.
[박스기사] 구글·퀄컴에게 5억 달러 투자받은 매직립
허풍인가 혁신인가IT업계 외부 사람들은 플로리다 대니아비치에서 증강현실 헤드셋을 개발 중이라고 알려진 비밀스런 스타트업에 대해 들어 본 적이 거의 없으리라. 스타트업 매직립은 유튜브 동영상 몇 개로 보여준 자사 기술을 바탕으로 현실세계와 연결된 3D 그래픽을 보여주고자 한다.
매직립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여러분에게 정보가 별로 없는 이유는 우리가 언론에 말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매직립의 홍보실장 앤디 푸셰는 말했다.
매직립의 신비주의와 잠재력은 많은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부 언론은 천문학적인 수치를 거론했다. 지난 10월 21일 사우스플로리다비즈니스저널은 매직립이 차기 투자자 유치회에서 10억 달러 이상을 모금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스타트업으로서는 유치하기가 어려운 금액이다. 심지어 실리콘밸리에서 5000㎞ 넘게 떨어진 스타트업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10억 달러는 매직립이 지난 10월 가진 투자자 유치회에서 모금한 액수의 2배에 가깝다. 당시 매직립은 구글과 퀄컴으로부터 5억4200만 달러를 유치하며 총 투자금 5억9200만 달러를 달성했다. 사우스플로리다비즈니스저널에 따르면 매직립의 기업가치는 45억 달러로 추정된다. 구글 CEO 순다르 핀차이는 5억4200만 달러 투자가 결정됨에 따라 매직립의 이사진에 합류했다. 퀄컴의 폴 제이콥스 대표이사 역시 지난해 참관인 자격으로 이사진에 올랐다.
믿어지지 않는 투자금과 막강한 인맥에도 매직립은 자사 기술을 보여주는 사진이나 명료한 설명을 홈페이지에 게재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이 웹사이트에는 100개 이상의 구인 공고가 올라와 있다. 대부분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모집하는 공고다. 자못 과장돼 보이는 문구와 베일에 싸인 제품 탓에 가상현실 업계 종사자들 상당수는 매직립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가상현실 개발자 여러 명은 매직립의 과장된 문구가 부당하며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농담거리로 치부된다고 말했다. “그저 허풍에 불과하다. 그들이 현재 가진 기술과 아무 관련 없다.”
매직립을 설립한 로니 애보비츠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매직립이 플로리다 남부의 버려진 모토롤라 공장에서 증강현실 해드셋을 제작할 준비 중이라고 발표했다. 애보비츠는 출시일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시기는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4년 애보비츠는 외과 수술 지원 로봇을 제조하는 의료기기 업체 마코서지컬을 공동설립했다. 마코서지컬은 2013년 16억5000만 달러에 매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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