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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형 펀드에 몰리는 자금

채권형 펀드에 몰리는 자금

한 달 새 주식형 펀드에서 자금이 빠지고, 채권형 펀드에 자금이 몰렸다. 시장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는 투자자들의 불안감 탓이다. 초저금리 시대에 채권을 가지고 수익 내기가 쉽지 않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권이 안전자산이란 인식은 아직도 강했다.
지난해부터 헬스케어와 에너지 분야 주식형 펀드에 투자했던 이시현(35·서울시 노원구) 씨. 지난해부터 한미약품 주가가 폭등하는 등 헬스케어 분야가 유망 종목으로 떴고, 유가와 금값이 오르면서 에너지와 원자재 분야 관련주 펀드가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씨는 운 좋게도 두 펀드를 다 가지고 있어 30% 이상 수익을 냈다. 일단 환매하고, 당분간 시장을 지켜볼 생각이다. 방송 뉴스를 달구던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연기됐다는 소식, 그리고 여전히 국내 경기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소식에 이 씨는 현금을 가지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은행이자는 수익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적었다. 그래서 이 씨는 안전자산이라 불리는 국공채나 중장기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에 넣어둘 생각이다. 또 자산 일부는 요새 이자수익이 상당하다는 이머징시장 채권에 투자한 펀드에도 담을 계획이다.

위에서 사례로 거론한 이 씨의 경우 오랜 펀드 투자로 다져진 소위 스마트한 투자자였기에 가능한 계획이다. 하지만 주식 시장이 오락가락하고, 고용 시장에도 여전히 찬바람이 불면서 이 씨처럼 채권 같은 안전자산을 찾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채권도 1%대 초저금리 시대에는 과거만큼 많은 이자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이지만, 원금을 보장하면서도 만기이자가 있는 채권의 기본 성격조차 장점으로 주목받는 추세다. 실제로 올해 채권형 펀드에 자금이 빠르게 몰렸다. 펀드평가사 KG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4월 12일까지 국내 채권형 펀드에 1조3700억원이 넘는 자금이 들어온 것. 해외 채권형 펀드 특히 선진국 위주에 투자하는 글로벌 채권형 펀드에는 2000억원 가까이 몰렸다.
 올해 국내 채권형 펀드에 1조3000억원 몰려
펀드별로 보면 ‘한화단기국공채’에 올해만 3000억원 넘게 몰렸고, ‘삼성코리아단기’와 ‘미래에셋솔로몬중장기’ 펀드에도 같은 기간 5200억원 이상 늘었다. ‘이스트 스프링중장기’, ‘키움단기국공채’, ‘한국투자퇴직연금’ 펀드에서 각각 1000억원 이상씩 자금이 들어왔다.

채권형 펀드를 찾는 이가 확연하게 늘어난 셈이다. 황윤아 KG제로인 연구원은 “작년 한 해 9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국내 채권형 펀드에 들어왔지만, 올해는 4개월 만에 1조원을 훌쩍 넘어섰다”며 “주식형 펀드에서 빠진 자금이 채권형 펀드로 유입되고 있어 작년과는 대조적”이라고 봤다. 금융투자협회는 “미국 기준금리 동결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채권형 펀드로의 순유입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을 회피하려는 욕구 덕분이라는 것이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이 올해 단기전략 중심으로 안전성이 강화된 상품에 투자하는 경향을 보여 채권형 펀드가 좀 더 인기를 끌 것 같다”고 했다.

개인투자자뿐만이 아니다. 최근 증권·은행에서 적극 모집에 나서고 있는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덕분이기도 하다. 모델 포트폴리오상 안전자산에 투자할 경우 주로 채권형 펀드에 넣어두기 때문에 채권형 펀드로 들어오는 자금 중 기관 자금이 70%나 차지한다.

수익은 어땠을까? 보통 채권형 펀드는 대부분을 국공채나 회사채 등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해 채권의 이자수익과 채권 자체를 거래하는 차익이 주된 수입원이다. 주식형 펀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수익률이 낮은 이유다. 하지만 최근 수익 면에서도 채권형 펀드가 주식형 펀드를 앞섰다. 연초 이후 국내 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은 -0.83%지만 채권형 펀드는 0.95% 수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기간을 늘릴수록 격차가 더 벌어졌다. 국내 주식형 펀드 1·2년 수익률은 각각 -5.80%, -2.04인데 반해 채권형 펀드는 같은 기간 수익률이 각각 2.04%, 7.43%이 수익률이 점차 높아졌다. 주식 투자가 빠진 펀드가 뜨고 있는 것도 주식형 펀드·채권혼합형 펀드마저 국공채 펀드 수익보다 못한 탓이다.

 안정적이라는 장점에 수익도 주식형 펀드 앞서
정책적 요소도 한몫했다. 바로 기준금리 인하 이슈다. 통상 금리를 내리면 채권값은 상승한다. 기존 채권 보유자에게는 유리하다는 뜻이다. 특히 이번 4·13 총선 때 여당의 ‘한국판 양적완화’ 이슈와 추경을 편성할 것이란 공약이 화제였다. 더불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란 기대도 한층 커졌다.

총선결과 ‘여소야대’ 정국이 되면서 ‘한국판 양적완화’ 이슈나 정부의 재정정책은 불투명해졌지만,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는 변함없이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도이체방크는 “새로운 금융통화위원을 중심으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5월 또는 6월에는 인하할 것”이란 전망했다. 오온수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도 “총선 다음날인 4월 14일 금리가 반등했음에도 시장에선 여전히 추가 하락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채권형 펀드로 유입되는 자금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 외에도 변액보험·국민연금 등 안정적으로 운용돼야 하는 자금 규모가 더 커지고 있어 앞으로 채권형 펀드에 자금이 몰릴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변액보험·국민연금 순자산이 각각 91조원, 512조원이나 된다.

물론 유의할 점도 있다. 최근 자금이 가장 많이 몰린 ‘한화단기국공채’와 ‘삼성코리아단기채권’ 펀드가 단기 상품이라는 것이다. 유영재 삼성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장은 “올해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은 없지만,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 기관 자금도 함께 빠져나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펀드의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펀드의 속성상 원금 손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며 “채권가격이 내려가 손절매하거나 비우량 등급의 채권에 투자해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점도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 김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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