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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동네는 ‘아트워싱’으로부터 안전합니까?

당신의 동네는 ‘아트워싱’으로부터 안전합니까?

도시 개발에 따라 가난한 원주민 몰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이 계층 간의 불화를 조장한다. 미국에서는 그 주범이 예술계라고 비난한다. LA부터 자카르타까지 도심 재생 수법의 실체는 무엇일까
사진 : I22.COM
끝이 다가왔음을 그들도 안다. 그래서인지 보일하이츠(미국의 이스트 로스앤젤레스 지역)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청년들은 분노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두건을 두른 시위대는 협상의 여지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격한 문구의 플래카드를 손에 들고 있었다. 백인을 겨냥한 인종주의와 폭력을 부추긴다는 혐의로 기소됐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는 눈치다. 미국 LA 동부가 ‘제2의 실버레이크’ 혹은 ‘제2의 에코파크’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버레이크와 에코파크는 라틴계 거주지였으나 고층 아파트와 콘도 건물이 세워진 후 원주민이 베벌리힐스와 아칸소 언덕에서 살던 백인에게 밀려난 대표적 지역이다.

시위에 참가한 청년 다수는 다저 스타디움을 건설하기 위해 치카노(멕시코계 미국인)의 주거지를 강제 철거했던 차베스레빈(Chavez Ravine)의 쓰디쓴 기억을 갖고 있다. 50년 전에 있었던 일로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든 역사가 됐다. 아마 수년 뒤에는 보일하이츠도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 동네의 옛 모습을 설명하는 기념비만 마리아치 플라자에 세워질 것이고, 주민이 사랑해 마지 않던 엘 테페약 레스토랑은 채식주의자를 위한 훈제가게, 혹은 그저 빈 매장으로 덩그러니 남을 것이다.

주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동네 주민 9만2000명 중 94%는 라틴계다. 33%는 빈곤계층, 76%는 세입자, 95%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불법 이민자도 17%다.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보일하이츠 수호단(Defend Boyle Heights)에서 활동하는 앤젤 루나(24)는 그 답을 안다. “망할 빅터빌로 가겠죠.” 빅터빌은 LA 동부 외곽에서 빈곤층이 모여 사는 삭막하고 건조한 땅이다.

런던 외곽에는 빅터빌 같은 곳이 없지만 쇼어디치나 브릭스톤 같은 노동자 동네 또한 LA 동부로 밀려든 무서운 힘의 흐름 속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세련된 돈 냄새를 풍기는 세계적 문화 흐름에 위축된 저숙련 하층계급과 글로벌 기술 엘리트를 대립시켜 갈등을 조장하는 서구의 국수주의와 비슷한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2013년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션지구에서 버스를 세워 놓고 젠트리피케이션에 항의하는 시위대. / 사진 : NEWSIS
대립이 발생하는 곳은 뉴욕 브루클린이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언덕 동네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곳이다. 대립이 워낙 자주 발생해서 가디언 지에서는 이런 충돌 사건만 전담하는 ‘세계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ed World)’ 부문을 온라인에 따로 신설했다. 이곳에 가면 캐나다 몬트리올과 러시아 모스크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심지어 영국의 자동차 제조도시로 탈산업화 단계를 밟는 버밍엄에서의 갈등을 볼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경제 흐름’을 막는 것이 루나의 계획이다. 우리는 마리아치 플라자 옆 멕시코 레스토랑에서 만나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루나는 혁명가의 말투지만 앳된 모습이 있었다. 어머니와 형제자매 3명과 함께 아파트 월세를 살면서 힘든 삶을 살아온 소년의 모습이었다.

점심을 먹으며 루나는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 난민이 된 원주민, 자본주의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딱히 새로울 건 없는 내용이었다. 내 의견과 상관없는 그만의 의견이었지만 지나친 비약도 있었다. LA 동부와 런던 동부에서 거리로 나선 청년들은 값비싼 대학 등록금을 낼 수 없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맨몸으로 상황을 경험하며 뼛속 깊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베를린의 젠트리피케이션 반대 시위자가 손에 든 배너에는 ‘여피(대도시 고소득 전문직)를 위한 아파트는 필요 없다. 쥐가 있어도 우리는 행복하다’고 쓰여져 있었다. 네덜란드 펑크밴드 머쉬룸 어택의 노래 가사를 인용한 글귀다. 브루클린 부시윅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신(新) 식민주의’로 지칭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다만, 보일하이츠가 지목한 파괴범이 ‘여피를 위한 아파트’를 짓고 판매하는 건설사, 분양사, 번쩍거리는 고층 글래스타워 개발사, ‘바로 이 자리가 뜬다’고 외치는 부동산 중개인이 아니라는 점은 놀랍다. 투기를 조장하는 자본가들이 웨스트사이드의 안전한 곳에서 싸움을 지켜보는 동안 시위대는 엉뚱한 적을 목표로 삼아 공격했다. 바로 예술가들이다.

보일하이츠 수호대가 공격한 건 사우스 앤더슨 스트리트에 문을 연 10개의 아트 갤러리였다. 로스앤젤레스 강의 황량한 강둑을 따라 늘어선 이곳은 전에는 공업지대였다. 운동가들은 이들 갤러리와 미술관이 기업의 이익, 특히 고가 부동산을 취급하는 부동산 업체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갤러리가 생기면 커피숍과 바가 문을 열고 그 다음에는 칵테일에 베이컨을 내놓는 레스토랑이 문을 연다는 것이다. 그럼 수십 년간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공터에 갑자기 공사 합판이 세워지고, 저가 주택이라는 공허한 약속이 남발되다가 “망할 빅터빌”로 쫓겨날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미국 LA 동부는 50년 전 치카노(멕시코계 미국인)의 주거지를 강제 철거했던 차베스레빈의 쓰디쓴 기억을 갖고 있다. / 사진 : WIKIPEDIA.ORG
시위대는 이 과정을 ‘아트워싱(artwashing)’이라고 부른다. 아트워싱은 예술계가 조용히 공범으로 가담한 원주민 몰아내기 과정을 설명하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주류 언론에서는 2014년 ‘애틀랜’의 퍼거스 오설리반이 쓴 기사에서 최초로 사용했다. 한때 빈민가였던 이스트런던이 재개발된 후 임대료가 수직 상승하고 부유한 세입자로 물갈이되는 과정을 취재한 기사였다. 이들은 원주민을 몰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 선발대가 아니라 새롭게 형성된 예술계의 초기 멤버가 된다는 꼬임에 이끌려 이스트런던으로 밀려들었다. ‘예술가들이 잠깐 거주하면 이를 이용해 개발 이익을 취하는 전형적 도심 재생 수법’이라고 오설리반은 기사에 적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아트워싱’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아트워싱은 ‘뉴욕 하수구에 악어가 산다’는 도시 괴담만큼 실체가 없다는 인식도 많다. 아트 갤러리가 생긴다고 저소득 계층이 쫓겨나는 건 아니라고 결론 내린 연구 보고서들도 있다. 그러나 보일하이츠 수호대나 BHAAD[Boyle Heights Alliance Against Artwashing and Displacement: 보일하이츠 아트워싱 및 세입자 난민 현상에 반대하는 연대, ‘배드(bad)’로 발음]는 ‘도시 먹물’이 끼리끼리 검토한 보고서가 뭐라든 신경 쓰지 않는다. 루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민중의 적”인 갤러리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암세포다. “갤러리는 보일하이츠에서 꺼져버렸음 좋겠다.”

보일하이츠 수호대가 제안한 항암요법은 가차 없이 공격적이었다. 전시회 관람객에게 감자 총알을 쏘아대고, 갤러리를 둘러싼 벽에 ‘백인 예술은 꺼져라’라고 스프레이로 도배를 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사건처럼 블록 단위로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양측 모두 뼈아픈 손실을 겪었다. 나초로 사랑 받던 33년 역사의 맛집 카르니타스 미초아칸 #3이 폐업했고, 앤더스 스트리트에 있던 갤러리 PSSST도 문을 닫았다.

지난 2월, PSSST가 떠나겠다고 발표했을 때 보일하이츠 지킴이들은 환호했다. “모든 갤러리가 떠날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보일하이츠 수호대와 BHAAD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도움을 주겠다고 현혹하지만 결국은 우리를 집에서 쫓아낼 개발과 지역사회 개선이라는 거짓된 약속에 맞서 보일하이츠는 계속해서 싸워 나가겠다.”

점심을 다 먹을 무렵에 PSSST의 소유주는 기물 파손과 괴롭힘 때문에 밀려났다는 주장을 지지하냐고 루나에게 물었다. “지역사회의 정당한 분노를 외면할 입장에 있지 않다”고 루나는 답했다. 보일하이츠 수호대가 갤러리 소유주를 향한 폭력을 지지하는 지도 물었다.

보일하이츠 수호대의 이미지를 쉽게 지켜낼 수 있는 홍보 기회였지만 루나는 폭력 행위를 규탄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지역사회의 행동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예술가들이 두려워하길 원했다. 무엇보다도 두려움에 빠진 이들이 떠나길 원했다.
 갱단의 폭력 범죄 판치던 보일하이츠
보일 하이츠의 마리아치 플라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멕시코와 중남미 이민자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 사진 : NEWSIS
보일하이츠는 최근까지도 유행이나 세련됨과 거리가 먼 동네였다. ‘서부 해안의 엘리스 섬’으로 알려진 이곳은 LA로 들어왔지만 높은 임대료 때문에 다른 곳에 가지 못한 사람들을 맞아주는 피난처 같은 곳이었다. 1923년 문을 연 브리드 스트리트 유대교회 근처에는 유대인 정착지 흔적이 아직 남아 있고, 사우스 피켓 스트리트의 요양원은 원래 일본 병원이었다.

수년 전 갑자기 나타나 지금은 주민의 사랑을 받는 이웃이 된 ‘신비한 닭’ 무리는 세르비아 이주민 공동묘지로 가면 볼 수 있다. 전형적인 20세기 중반 스타일의 간판을 달고 타코와 파스트라미를 판매하는 ‘짐의 레스토랑’도 있다.

멕시코계 미국인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보일하이츠로 이주해 왔다. 교외 신도시의 부상으로 미국의 도시들이 쇠락할 무렵이었다. 1961년 동네 안쪽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이스트 LA 인터체인지가 들어섰다. 이 무렵 보일하이츠는 갱단이 맞붙는 전쟁터가 됐다.

실질적으로는 LA에서 태동된 이들 갱단의 폭력 범죄가 판을 치면서 1992년 LA 경찰청 지휘를 따라 보일하이츠를 담당하는 홀른벡 부서에만 97건의 살인사건이 배당됐다. “이스트 LA 인터체인지에서 배출되는 자동차 배기가스가 얇게 쌓인 관목처럼 갱단은 일상이 됐다.” 1980년대 보일하이츠에서 자라난 경험을 회고한 LA 타임스 기사에서 헥터 베세라가 한 말이다.

어쨌든 보일하이츠는 버텨냈다. 지난해 홀른벡 부서가 담당한 살인 사건은 14건을 기록했을 뿐이다. 도심과 산 가브리엘 밸리까지 연결된 경전철도 완공됐다. 2005년에는 보일하이츠 출신의 라틴계 후보가 최초로 LA 시장에 당선됐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새로운 레스토랑과 커피숍,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대부분 동네의 ‘치카노’ 분위기를 지켜내려는 토박이 주민이 주인이다. 치카노 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젠트리’를 스페인어 ‘헨트(gente)’로 바꾼 헨트피케이션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기업가들이 동네를 자체적으로 개선하는 운동이다. 프리메라 타사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치카노 커피라 부르는 것도 이런 노력 중 하나다.

아트 갤러리들이 로스앤젤레스 강을 건너 보일하이츠에 문을 연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LA 도심 끝자락에 있는 노후 지역에서 예술가의 구역으로 개발된 아트 디스트릭트의 임대료가 계속 올라갔기 때문이다. 애넨버그 미디어 조사에 따르면 2000년 이후 14년간 아트 디스트릭트의 임대료가 140% 인상된 지역도 있다. 그런데 이 중 2000~2012년 인상폭은 25%밖에 되지 않는다.
 ‘젠트리피게이션=인종차별’
젠트리피케이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갤러리와 미술관이 기업의 이익, 특히 고가 부동산을 취급하는 부동산 업체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 사진 : NEWSIS
조사가 시행된 후 다시 3년이 지났다. 그동안 보일하이츠에는 ‘원 산타페’라는 주상복합 단지가 들어서서 더 살기 좋은 곳이 됐다. 임대료가 상승했음은 물론이다. 흰색으로 빛나는 우아한 물결 모양의 원 산타페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마이클 말트잔이다. 로스앤젤레스 강을 가로지르는 식스 스트리트 고가교 설계도 말트잔이 맡았다. 동네에 꼭 필요했던 대규모 공원도 함께 들어서는 이 프로젝트에는 4억8000만 달러가 투자된다. 고가교가 들어서면 보일하이츠는 도심과 바로 연결된다. 2020년이 지나야 개장되겠지만 아트 디스트릭트 난민의 상당수는 이미 강을 건너 보일하이츠로 왔다.

환영 받지 못한 이들의 안식처였던 보일하이츠는 얄궂게도 외부인을 의심하는 배타적인 동네로 변했다. 2014년 라틴계 갱단 ‘빅 해저드’가 지역 북쪽 끝에 위치한 공공임대 주택단지를 소이탄으로 공격했다.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거주하는 단지였다.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다른 임대단지로 긴급 이사를 신청한 흑인 가정도 있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보도했다.

소이탄 공격이 있고 2주가 지나서 웨스트사이드를 담당하는 부동산 중개사 어댑티브 리얼티는 보일 하이츠 자전거 투어 광고 포스터를 아트 디스트릭트에 공고했다. ‘보일하이츠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도심에서 월세를 내고 사나요?’라는 문구가 쓰여진 광고였다. 세련된 여성이 똑같이 세련된 자전거를 탄 모습과 함께 ‘장인의 제품과 맛집’까지 즐길 수 있다는 글귀가 들어가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광고지’로 알려진 광고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거친 반응이 이어졌다. 투어를 조직한 중개업소로 “1992년 왓츠 폭동 때처럼 싹 다 불태워주마”라는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장인의 맛집 투어는 없던 일이 됐다.

2015년 뮤지컬 감독 유발 샤론이 오페라 ‘합스카치’를 선보였다. 관객을 리무진에 태워 LA 곳곳을 돌아다니는 복잡한 이동 경로를 가진 오페라였다. 리무진이 멈추는 곳에는 홀른벡 공원도 있었다. 보일하이츠 한가운데 있는 이 공원은 지역에서 결혼식이나 15세 성인식 파티가 자주 개최되는 곳이다.

주민들은 분노했다. 로스앤젤레스주민연대(Serve the People Los Angeles)에서 시위대를 공원으로 데려왔고, 근처 고등학교에서는 밴드부가 나와 합주를 하며 합스코치 공연 소리가 들리지 않게 했다.

‘합스코치 로스앤젤레스 공연과 예술, 공연수, 지지자, 자본 모두 보일하이츠에서 환영 받지 못한다’고 다음날 로스앤젤레스주민연대는 블로그에 적었다. 결국 합스코치는 그날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보일하이츠에 오지 않았다.

보일하이츠에 문을 연 갤러리 중 백인이 소유한 갤러리는 ‘356 미션’이 최초다. 소유주 에단 스완에 따르면 2012년 갤러리가 문을 연 곳은 매트리스처럼 무겁고 큰 쓰레기를 버리던 장소였다고 한다. 그는 버려져 있던 창고의 공간을 임차했다. 처음에는 아무 문제 없었다고 스완은 말했다. 그러나 3년 뒤 마카롱 갤러리가 문을 열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이곳은 뭔가 위험스런 분위기가 풍겨요. 그게 맘에 듭니다.” 마카롱 갤러리의 소유주가 2015년 가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보안에 엄청난 돈을 써야 했다는 점도 매력적이죠.”

기사를 읽고 분노한 주민들은 처음으로 갤러리 반대 시위를 조직했다. 주민들이 집에서 만들어 온 깃발에는 어쩌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등식 ‘젠트리피게이션=인종차별’이라고 적혀 있었다.

보일하이츠를 나름의 문화나 자부심도 없는 디스토피아적 풍경으로 바라본 갤러리는 마카롱 말고도 많다. 일례로 지난해 9월에는 베벌리힐스에서 영향력이 큰 유나이티드 탤런트 에이전시(UTA)에서 ‘UTA 예술가 공간’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에는 성장 영화 ‘키즈’의 감독 래리 클라크의 작품과 함께 마약 사용을 미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림과 사진이 걸렸다. 그날 밤, 20여 명의 시위대가 전시회장 앞에 나타났다. 이들의 손에는 ‘베벌리힐스를 보일하이츠에서 몰아내자’는 현수막이 들려 있었다.

에바 치멘토는 베벌리힐스 출신이 아니다. 브루클린에서 자란 그녀는 트럭운송업을 하던 부모님과 함께 조직범죄와 노조가 교차하는 인생을 살았다. 성인이 된 후 줄곧 LA에 살았던 치멘토는 2년 반 전 변호사 남편과 이혼했다. 졸지에 10대 딸을 둔 싱글맘이 된 것이다. 10대였을 때 아트갤러리에서 일했던 것 빼고는 어떤 직장 경력도 없었던 그녀는 자신만의 작은 전시공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도심 쪽에 있는 아트 디스트릭트는 임대료가 너무 비쌌다. 베벌리힐스보다 더 높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로스앤젤레스 강을 건너가던 치멘토는 라틴 계열로 보이는 노인이 아이스크림 카트를 다리 위에서 힘겹게 밀고 가는 걸 봤다. 밖은 43℃의 고온이었다. 차에서 내린 그녀는 노인을 도와 아이스크림 카트를 강의 건너편인 동쪽 제방으로 밀고 갔다.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앤더슨 스트리트를 봤다. “지저분하고 혐오스러웠다. 거리에는 매춘부와 마약상이 활보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인터뷰는 창고 뒤편에 자리한 작은 전시관 ‘치멘토 컨템포러리’에서 진행했다. 전시 작품 중에는 치카노 예술가 모니케 프리에토의 것도 있었다. 추상적 형체를 통해 멕시코의 전통 의식을 묘사한 프리엔토의 연작 ‘모자 춤(Hat Dance)’도 볼 수 있었다.

“무서운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황폐한 느낌”이라고 치멘토가 말을 이었다. 새로 생긴 갤러리를 제외하면 사우스 앤더슨 스트리트는 아직도 황량한 느낌이다. 근처에는 창고가 많고, 대형 트럭은 그나마 얼마 없는 행인을 위협하듯 먼지를 일으키며 쌩 하니 동네를 지나간다. 사우스 앤더스 스트리트에서 마주친 가게 중 갤러리나 공업 시설과 관련 없는 곳은 수제 맥주집이 유일했다. 상대적으로 최근에 문을 연 가게인데 다행히도 시위대의 분노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비난 대상은 가게 주인 아닌 건물주”
10대 청소년 시절 치멘토는 피코 가든 주택임대단지에 가서 미술 수업을 해주곤 했다. 그래서 보일하이츠가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앤더슨 스트리트는 보일하이츠와 또 달랐다. 원주민이 사는 곳도 아니었고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상업용 공간이 여기저기 버려진 무인지대로 보였다. 그래서 2015년 가진 돈 1500달러를 털어 이곳에 갤러리를 열었다. 지역 고등학생들이 주로 방문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그 학생들이 그녀가 이곳을 떠나길 바란다.

치멘토는 자신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범’이라는 비난에 발끈한다. “공격 대상이 틀렸다”고 그녀는 말했다. “가게 주인을 공격하지만 실제 비난해야 할 사람은 건물주다.” 갤러리는 적으로 간주하면서 이스트 올림픽 대로에 있는 스타벅스는 왜 주민의 친구로 생각하는지 의아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치멘토는 이곳이 점점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딸은 더 이상 근처로 놀러 오지 않는다. 그녀를 보일하이츠에서 쫓아내려는 시위대처럼, 그녀 또한 경제적 흐름의 공격을 받아 코너에 몰렸다고 생각한다. 시위대와 마찬가지로 갈 곳 없는 그녀도 이곳에서 꿈쩍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갤러리 반대 운동이 불타오른 논리를 이해하고 싶다면 보일하이츠를 벗어나 북쪽으로 가야 한다. 차를 타고 죽 가다 보면 야자수가 늘어선 엘리시움 파크 산등성이가 나온다. 언덕 안쪽에는 다저 스타디움이 자리한다.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야구장 중 하나다.

앤젤레노스는 다저 스타디움을 아예 차베스레빈이라 부른다. 한때 이곳에서 번영했던 치카노 동네의 운명을 표현한 것이다. 언덕에 들어선 동네들은 경기장 건설을 위해 철거됐다. 그나마 남은 동네는 경기장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 때문에 양분돼 남태평양에 뚝 떨어진 섬 같은 느낌을 준다. 이곳을 걷다 보면 LA에서는 흔한 당혹스런 경험을 하게 된다. 인도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속도로 진입로 위에 들어서는 경험이다.

거주지의 흔적은 거의 남지 않았다. 역사학자 제랄드 포데어가 최근 저술한 책 ‘꿈의 도시: 다저 스타디움, 그리고 현대 도시 LA의 탄생(City of Dreasm: Dodger Stadium and the Birth of Modern Los Angeles)’을 보면 ‘차베스레빈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멕시코계 미국인 노동장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수백 개 가구가 ‘LA 다른 지역과 상대적으로 고립돼 살아갔다.’ 시골 같은 느낌이 있었고 주민 중에는 ‘닭이나 기타 가축을 키우는 사람’도 있었다.

1949년 시의회에서 차베스레빈에 공공주택을 건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포데어에 따르면 사회주의주택반대 시민단체에서 이를 “전체주의가 들어오려는 틈”으로 묘사하면서 결정이 철회된다. 8년 뒤, 시민 지도자들은 에베츠 필드를 대신할 새로운 경기장을 브루클린에 세우려다가 실패한 브루클린 다저스 구단주 오말리에게 캘리포니아 남부에 야구장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차베스레빈 거주자들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자신의 토지를 팔도록 강요당한다고 느꼈다. “팔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신고 있는 신발을 팔라며 억지로 벗겨가는 꼴”이라고 한 주민이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대체 무슨 권리로 그들 맘대로 우리 땅을 팔아넘기는가?”

그렇게 해서 시작된 ‘차베스레빈의 전투’에서 누가 승리할 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치카노 주민들은 얌전히 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가장 맹렬하게 끝까지 버틴 사람 중 하나가 바로 1923년 차베스레빈으로 이주한 아레치가 가족이다. 아레치가 가족 중 한 명이 계단 아래로 경찰에게 질질 끌려 내려오는 사진은 당시의 싸움을 보여주는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보일하이츠 수호대가 보여주는 열정을 확실한 원칙과 신념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행동으로 보기도 한다. 하이랜드 파크의 부동산 중개업자 로즈 가르시아는 젠트리피케이션이 LA 동부 발전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그녀가 수십만 달러로 값을 올려 팔아준 집의 라틴계 주인들과 그녀 자신에게는 분명 좋은 일이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이민 온 가르시아의 가족은 1972년 하이랜드 파크로 이주했다. 당시만 해도 주민 대다수는 백인이었다. 그러나 라틴계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 백인들은 이곳을 떠났다. 그 후 치안은 불안해졌고 갱단이 활개를 쳤다.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1992년 폭동 두 번째 날 LA타임스 인터뷰에서 LA 경찰관이 한 말이다. “갱단의 기세가 너무 등등하다. 변화가 있다면 오히려 더욱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사태는 진정됐다. 물론 당장은 아니었다. LA 서부의 높은 땅값에 치인 사람들이 도시 북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버레이크와 에코파크로 갔다가 나중에는 하이랜드 파크로도 이동했다. 가르시아는 17년 전부터 부동산 매매에 뛰어들었고 2013년부터는 중개 사무소를 직접 열어 하이랜드 파크로 밀려드는 “동부 해안으로의 거대한 이주”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가르시아 같은 사람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긴다는 비난이 있지만 가르시아는 그런 비난도 감수할 용의가 있다. “이곳의 땅을 파는 사람이 누군가?” 그녀가 조소하듯 물었다. “1970년대 이곳으로 이주했던 히스패닉계 사람들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돈을 버는 건 바로 그들이다.” 정말 “재수가 없는 사람”은 다 낡아빠진 침실 2개 단층집을 80만 달러에 사들이며 신나 하는 백인이라는 것이다.

보일하이츠는 LA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알렉산더 애비뉴의 다락방과 어두운 공공임대주택에 자리 잡은 예술가들 덕에 뜬 뉴욕 사우스 브롱크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ICT 기술경제로 엄청난 돈을 번 젊은 부자들이 도시의 라틴계 이민자를 몰아내는 샌프란시스코 미션 디스트릭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카고와 워싱턴 D.C., 마이애미 등지에서도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두고 비슷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사우스 앤더슨 스트리트로 이사한 갤러리는 글로벌화되고 한층 다듬어진 21세기형 도시를 대변한다. 이곳을 찾아온 홍콩과 파리 관광객은 치멘토 컨템포러리에서 작품을 2만 달러에 사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싸움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현대의 글로벌 도시란 결국 어떤 영혼도 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럭셔리 아파트는 시애틀 럭셔리 아파트, 그리고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럭셔리 아파트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도시가 자기만의 개성과 영혼을 갖기 위해서는 복잡다단한 구성원을 포괄해야 한다. 그중에는 화려하지 않은 직업이라도 열심히 일하며, 하루 일과가 끝나면 국산 맥주캔 하나를 따고 현관 앞 계단에 앉아 야구 얘기로 이러쿵저러쿵 논쟁을 벌이다가 강아지들이 짖는 소리를 조용히 듣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보일하이츠 시위 참여자들의 생각도 바로 그거다. 이들 또한 자신들이 시간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걸 안다. 그래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곳은 그들의 LA이고 그들의 보일하이츠다.

- 알렉산더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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