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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쿠데타 불발 1년, 에르도안의 철권통치 언제까지] 2029년까지 권력 유지 길 열려

[터키 쿠데타 불발 1년, 에르도안의 철권통치 언제까지] 2029년까지 권력 유지 길 열려

2004년 집권해 14년째 총리·대통령 … 경제 성적에 따라 부침 겪을 수도
개헌으로 2029년까지 권력 유지의 길을 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7월15일로 터키에서 불발 쿠데타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모두 265명이 사망하고 1440명이 부상한 쿠데타 미수사건 이후 터키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쿠데타 저지 1년이 지난 지금도 강력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량 투옥과 해고, 그리고 법률 유보가 이어지면서 터키 국민 간 분열이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5일 쿠데타 불발 이후 5만 명이 구금됐으며 17만 명의 용의자가 쿠데타 배후의 그림자 세력과의 관련성을 조사받았다. 이 때문에 터키 국민은 친에르도안과 반에르도안으로 양분돼 대립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은 침묵을 강요받고 있으며 야당은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3) 대통령의 권력은 갈수록 강해져 급기야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국부로 추앙받는 케말 파샤에 맞먹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평가다.
 반대파에 대한 광범위한 숙청작업
에르도안은 쿠데타를 진압한 후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해 비상 대권을 확보한 뒤 반대파에 대한 광범위한 숙청작업을 벌여왔다. 숙청은 특히 군부와 헌법재판소에 집중됐다.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자로서 이슬람을 앞세워 정치를 벌여왔다. 하지만 군부와 헌법재판소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정신을 앞세워 정치활동을 벌이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와 세속주의 정치를 규정한 헌법 제2조에 위배된다고 판단해 해산을 명령하기로 결정했다. 에르도안이 군부와 법조계에 가혹한 이유다. 군인과 법관은 물론 공무원, 교사 등 6만 명을 현직에서 쫓아냈다.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와 법치, 시민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서구권의 시각에서는 명백한 인권탄압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일 수밖에 없다.

에르도안은 지난 4월16일엔 헌법을 고쳐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대통령 중심제를 출범시켰다. 이날 이뤄진 개헌 국민투표에서 에르도안의 개헌안은 85.32%의 투표율에 2515만7025명이 지지해 51.41%의 찬성으로 통과됐지만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반대에 투표한 국민이 투표자의 48.59%인 2377만7091표나 된다는 점도 정치적인 부담이다. 국민은 양쪽으로 갈라졌다. 에르도안은 터키 공화국 건국 이래의 오랜 전통인 의원내각제를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로 바꿨다. 이에 따라 2004년부터 총리를 거쳐 2014년부터 실권이 약한 대통령을 맡고 있던 에르도안은 무소불위의 철권을 휘두르는 막강한 권력자가 됐다. 새 헌법에 따라 그는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두 차례 대통령 임기를 더 맡을 수 있게 돼 2029년까지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을 텄다.

에르도안의 독재 강화는 터키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EU)국가들의 투자가 줄고 관광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압박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의 경제성장률을 이룬 터키는 지난해 4분기에 -1.8%의 낮은 성적을 거뒀다. 올해 들어 조금씩 회복되고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안한 상황이다.
 개헌으로 막강한 대통령 중심제 출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부인 에민 여사가 4월 16일 개헌안 국민투표가 통과된 후 이스탄불에서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회적 변화도 마찬가지다. 쿠데타 불발 이후 에르도안을 견제할 세력이 사라지면서 그가 더욱 독재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터키 사회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게 가디언의 분석이다. 국민은 정치적으로 친에르도안과 반에르도안으로 양분됐지만 이면에는 더욱 복잡한 분열이 도사리고 있다. 전통적인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대결 양상과 터키인과 쿠르드족의 대치에 더해 중산층과 노동자층 등 다양한 사회적 대립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터키는 갈수록 혼란에 빠져들 것이란 전망이다.

에르도안을 보는 시각도 분열됐다. 서구사회에서는 에르도안을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누르는 독재자로 보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물론 터키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주로 세속주의를 따르는 터키인들이다. 중산층과 쿠르드족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가디언은 “에르도안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국민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에르도안을 추종하는 세력은 그를 국내에서는 가난을 구제하고 국제 무대에서는 ‘스트롱맨’으로 등극한 터키인의 챔피언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들은 에르도안이 조만간 질서와 함께 민주주의도 회복하고 터키를 새롭게 재구성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터키에서는 쿠데타 불발 1주년을 앞두고 에르도안 지지자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자 야당과 반대파 수십만 명이 모여 맞불집회를 여는 등 분열양상이 만만치 않다. 다만, 터키 야당이 여전히 분열해 서로 싸우고 있어 2년 후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 에르도안에 제대로 맞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에르도안이 지금까지 야당 무력화, 언론 장악, 개헌을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에르도안은 지난해 쿠데타 불발 이후 발동했던 국가 비상사태를 지금까지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구 기준의 인권 유린이 계속되고 있다. EU도 이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이면서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에르도안의 정부는 이미 수만 명의 공공 부문 직원을 해고했음에도 이의신청을 처리할 청문위원회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혀 가동하지 않고 있다. 이 중 수천 명은 쿠데타 직후 수개월이 지나지 않아 아무런 공식 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해고당했다. 이 중에는 수백 명의 판사도 포함됐다. 이른바 반에르도안 또는 친귈렌계 법조인으로 분류된 판사들이다. 에르도안의 정적인 이슬람 사상가 펫훌라르 귈렌의 사주를 받는지 동조하면서 쿠데타를 뒤에서 지지했다는 의심을 받는 사람들이다 에르도안이 명확한 협의가 입증되지 않아도 판사들을 내쫓은 이유는 법조계가 군대와 함께 세속주의의 보루이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판사들을 해고하고 그 자리를 지지자들로 채우는 이른바 ‘사법 개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에게 ‘사법개혁’이란 사법부를 자신의 지지자로 채워 ‘법률적인 거수기’로 활용하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더구나 터키 당국은 7월 중순 국제사면기구 터키사무소의 고위 당국자 2명을 포함한 인권운동 관계자도 체포했다. 국제 사면기구는 에르도안이 권력을 쥐기 전 감옥에 있을 때 그를 대신해 석방운동을 펼쳤던 조직이다. 그런데도 권력자 에르도안은 과거의 은혜에도 아랑곳없이 탄압에 나선 것이다. 국제사면기구 터키사무소의 사무총장인 살릴 셰티는 “터키에는 현재 에르도안의 터키에 대한 비판도, 제어할 수 있는 세력도, 시민 사회도 없다”고 말했다.
 에르도안의 철권통치에 터키의 EU 가입 협상 중단
지난해 7월 쿠데타로 혼란에 휩싸였던 터키 이스탄불 탁심광장.
언론인에 대한 탄압도 확대하고 있다. 심지어 귈렌이 과거 에르도안과 손을 잡았을 당시 그에 대한 비판적 탐사보도로 고소를 당했던 언론인 2명까지 ‘퀼렌주의자’라는 황당한 이유를 들어 최근 구속했다. 정치인도 탄압을 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친쿠르드계 야당인 인민민주당의 당수인 국회의원까지 테러리스트 조직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씌워 투옥했을 정도다. 이 정당의 간부들은 터키 전역에 걸쳐 반복적으로 사찰당하고 투옥되고 있다. 이 정당 소속 국회의원인 히슈야르 외조이는 “에르도안의 국가 비상사태 선포는 터키를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무덤으로 만들고 있다”며 유럽의회에 터키의 EU 가입 협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터키에는 현재 법치도, 삼권분립도, 독립적인 재판 시스템도 없다”고 말했다.

사실 그가 촉구하지 않아도 터키의 EU 가입 협상은 에르도안이 권력을 강화하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지난해 쿠데타 불발 당시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을 쿠데타 세력이 엎으려고 한다고 비난했던 서구 국가들은 이후 벌어진 에르도안의 반인권적인 행보에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에르도안이 쿠데타 세력을 포함한 범죄자들에게 처형하기 위해 사형제를 부활하겠다고 거듭 다짐한 것도 EU 가입 협상을 중단한 핵심적인 이유다. EU는 에르도안의 이런 발언을 정치보복 위협으로 보고 있다.

이슬람주의자면서 터키 민족주의 옹호자인 에르도안은 쿠르드족에 대한 시각 차이로 미국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미국은 현재 시리아에서 쿠르드족 민병대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터키와 시리아 국경지대에 몰려 사는 시리아 쿠르드족을 지원하는 것은 자국 내 쿠르드족의 독립 요구에 불을 붙이는 일로 여긴다. 이에 따라 미국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시리아 쿠르드족과 반군을 앞세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수도인 락까를 함락할 군사작전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터키의 견제로 동력을 잃고 작전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르도안은 심지어 지난해 불발 쿠데타 직후인 8월 시리아 북부의 반군에 대한 군사작전을 전개하기도 했다. 에르도안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미국과의 연합 작전에 균열을 내면서 반인권·빈인륜적 무장세력인 IS 퇴치 작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불발 쿠데타는 터키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과거 터키 군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을 마음대로 제거해왔지만 이런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했다는 분석이다. 1960년 쿠데타를 일으킨 터키 군부는 총리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것은 물론 처형까지 했다. 그 뒤 40년 동안 쿠데타는 세 차례 더 발생했지만 지난해 쿠데타 실패 이후 더 이상 이런 일에 나설 세력이 남아있지 않다는 분석이다.

터키에는 ‘깊숙한 국가’로 번역할 수 있는 ‘데빈 데블레트’라는 정치 용어가 있다. ‘국가 속의 국가’라는 뜻에 가깝다. 터키에는 정계, 정보 분야, 군부, 보안당국, 법조계 등의 엘리트 인사들이 결탁한 반민주적인 그룹이 존재한다며 이들을 이렇게 부른다. 오스만 제국의 몰락 이후 생성된 이러한 비밀그룹은 현대 민주주의가 국익·민족주의에 방해가 된다며 이에 대한 은밀한 저항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강력한 민족주의자로서 자유주의와 노동운동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군부 쿠데타를 사주할 수도 있다고 한다.

데빈 데블레트의 하나로 에르게네콘이라는 그룹이 있다. 세속주의와 극단적인 터키민족주의를 신봉하는 비밀 결사조직으로 군부와 정보기관 내 인사가 주축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에르게네콘은 터키 건국신화에 나오는 알타이 산맥의 신비한 장소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그룹은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에르도안이 세웠던 정의와 개발당의 활동을 방해하는 일련의 활동을 벌인 것으로 의심 받는다. 이 조직은 에르도안의 후원자였다가 2013년 결별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로 망명한 이슬람 성직자 페툴라 귈렌이 주도한 이슬람주의 운동인 ‘히즈메트(봉사라는 뜻)’도 방해한 것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 그룹은 이슬람주의 정당을 지지하는 정치인·언론인·군인·학자를 의심만으로도 투옥시키는 데 앞장서 터키에선 미국의 매카시즘에 비유된다. 이렇게 투옥된 사람의 상당수가 나중에 증거 불충분이나 법의학적 증거를 통해 무죄가 입증되면서 풀려났기 때문이다. 사실 터키에서는 이슬람주의 정치인인 에르도안을 겨냥한 ‘국가 안의 국가’의 거부감이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이에 따라 에르도안에 반대하는 군부 쿠데타설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심지어 그가 창당했던 정의와 개발당이 처음 의식을 차지한 2003년에도 ‘철퇴 작전(터키어로 볼료즈 하레카티)’라는 작전명의 군부 투데타가 곧 발생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하지만 이젠 군부는 더 이상 터키 정치에서 변수가 아닌 상황이 됐다.
 야당은 지리멸렬
국회도 변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터키 국회에선 전체 550석의 의석 중 에르도안이 이끄는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이 과반인 317석을 차지하고 있다. 에르도안은 2001년 8월부터 2014년 8월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까지 정의개발당 대표를 지냈다. 그러면서 세 차례의 총선에서 승리해 정치력을 보여줬다. 3개의 야당이 있지만 세력이 약하다. 제1야당은 국부인 케말 파샤가 창당해 케말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운 중도좌파 정당인 공화인민당(CHP)인데 집권당의 절반도 안 되는 133석을 차지하고 있어 힘을 쓰기가 쉽지 않다. 터키 공화국이 건국된 1923년 인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했다가 이듬해 공화인민당으로 개명했다. 터키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오랜 기간 집권하며 터키공화국의 개혁과 성장을 이끌었다. 카말 파샤의 유지인 정교 분리의 세속주의와 사회제도적 자유화라는 개혁주의를 뒷받침해왔다. 1980년 쿠데타로 강제 해산되기도 했지만 1992년 재창당했다. 쿠르드계 민족주의 및 사회주의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은 59석을 차지하고 있다. 주로 쿠르드족 인구가 많은 동부와 동남부 국경지대를 근거지로 한다. 극우 민족주의 정당인 민족주의자 운동(MHP)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

에르도안은 1994년 3월부터 199년 11월까지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시장을 지내면서 주민 복지를 강조하는 정책으로 인기를 모았다. 2003년 3월부터 2014년 8월 대통령 취임 전까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04년부터는 총리를 지냈다. 총리 재임 중 그는 높은 경제성장을 뒷받침해 인기를 끌었다. 터키의 모든 내부 사정은 에르도안의 독재가 당분간 계속될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다만 터키의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따라 그의 인기도 부침을 겪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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