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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지 않게 은근히 유혹하라”

“요란하지 않게 은근히 유혹하라”

창업 40주년 맞은 영국 디자이너 마가렛 하웰, 미니멀리즘적 미학으로 일본까지 사로잡아
하웰은 요즘도 대학 시절과 똑같이 편안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을 즐긴다.
영국 디자이너 마가렛 하웰(70)은 40년 전 런던 사우스몰튼 거리에 동명의 부티크를 처음 열었다. 하웰의 남녀 기성복 라인이 글로벌 비즈니스로 성공하기까지 밑거름이 된 수백만 명의 고객은 이 브랜드의 창업 40주년 기념 행사가 매우 소박했다는 소식에 전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하웰은 그때나 지금이나 미니멀리즘적 미학을 추구한다. 요즘은 이런 스타일이 각광받지만 현란한 디스코 문화가 판치던 1970년대에는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웰은 언제나 단순성과 현대적인 세련미, 영국적인 것을 선호했다. 그 영국적인 특성은 전문적인 재단과 아일랜드 리넨, 천연 양모, 해리스 트위드 등 전통 직물을 중시하는 경향에서 드러난다.

하웰이 만든 옷은 마치 고급 컴포트 푸드(comfort food, 몸과 마음에 위안이 되는 음식) 같다. 어떤 제품인지 예측할 수 있고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에게 행복과 만족을 준다. 지난 10년 동안 하웰은 기능적 단순성의 철학을 찻주전자부터 직물, 의자까지 가정용품으로 확장시켰다. 앵글포이즈, 어콜 등 영국 디자이너들과의 한정판 콜라보레이션 제품에도 이런 철학을 적용했다. 이런 제품들은 영국 내 9개, 유럽 곳곳의 21개 ‘마가렛 하웰’ 매장에서 판매된다. 미국에서는 바니스 뉴욕 백화점과 브루클린의 부티크 ‘버드’에서 하웰의 의류를 판매한다.

또한 일본에서 하웰은 마사 스튜어트(미국의 라이프 스타일 전문가)를 능가하는 명성을 얻었다. 그녀는 일본 전역에 102개의 매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마가렛 하웰 카페’까지 운영한다. 최근 도쿄에서 만난 하웰은 디자인 철학이 40년 동안 흔들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 철학은 품질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진화됐다. 우리는 일부 원자재의 경우 40년 전과 똑같은 공급업체를 이용한다.”하웰은 그날 줄무늬 티셔츠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나이키 에어 트레이너를 신었다. 런던 골드스미스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시절과 똑같이 편안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을 즐긴다.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안 돼 벼룩시장에서 재단이 잘 된 남성용 핀스트라이프(가는 세로줄 무늬) 셔츠를 보고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좋은 원단과 편안한 디자인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그 셔츠에서 영감을 받은 그녀는 자기 집 주방 식탁에서 남성용 셔츠를 만들기 시작했다(하웰은 어려서부터 바느질을 좋아했다). 그리고 미래의 남편이 될 폴 렌쇼와 함께 회사를 차렸다(두 사람은 1987년 이혼했다).

하웰은 현대적인 단순미를 추구한다. 사진은 2017 S/S 컬렉션.
하웰의 셔츠는 곧 조셉 에테드기(패션 브랜드 ‘조셉’의 창업자)의 눈에 들었다. 에테드기는 하웰이 남성복 라인을 완성하는 대로 상점을 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웰은 정장과 액세서리까지 사업을 확장했고 에테드기는 약속대로 1977년 사우스몰튼 거리에 부티크를 열어줬다. 1980년엔 하웰의 첫 번째 여성복 라인이 출시돼 중성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이미지로 주목 받았다.

하웰이 처음부터 분명하게 내세웠던 한 가지 원칙은 유행이나 계절적 테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만드는 아이템 하나하나가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이었다. 불필요하거나 복잡한 장식을 배제하고 현대적인 단순미를 추구하는 디자인은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다. 하웰의 옷은 비싸지만(일례로 남성용 리넨 반바지가 325달러다.) 평생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옷의 느낌과 내구성에 고급스러움이 숨어 있다. 하웰은 “패션이 아니라 스타일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전통적이고 은근한 멋을 추구하는 영국 패션의 장인정신을 찬양하는 그 스타일은 일본에서 각광 받고 있다. 도쿄의 사업가 샘 세규어는 그런 가능성을 일찌감치 내다보고 1982년 하웰의 옷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1년 뒤엔 도쿄의 고급 패션 거리 아오야마에 ‘마가렛 하웰’ 일본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세규어는 우리 회사가 생산 규모가 작은 소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해 일본 내에 제조 공장을 세워 의류를 제작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하웰은 말했다. “그래서 그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규모가 서서히 커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반면 하웰이 일본에서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다. 그녀는 1980년대 초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 세규어가 교토에 데려가 불교사원을 구경시켜준 이야기를 들려줬다. “작은 절이었는데 건축물의 구도가 거의 완벽했고 마룻바닥은 반짝반짝 윤이 났다”고 그녀는 말했다. “대나무를 이용한 단순한 소품들과 리넨 소재로 된 짙은 색의 승려복 등 모든 게 인상적이었다. 오래되고 손으로 만든 아름다운 물건들을 좋아하는 내 취향 때문인 듯하다. 내가 영국에서 늘 추구해 오던 것이었다.”하웰은 일본에 가면 도쿄의 번화한 거리보다 조용한 동네를 선호한다. 오래 전 지어진 호텔 오쿠라에 머무르며 교토로 자주 여행을 간다. 그녀는 교토에서 수백 년 전통을 지닌 차 보관함(양철 재질) 회사와 협업한다. 하웰은 주거주지인 영국에 있을 때도 서포크 지방의 시골에서 단순한 생활을 즐긴다. 그녀는 1960년대에 지어진 바닷가 작은 별장에서 주말을 보낸다. 이 별장은 그녀가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이 만든 가구와 물건들로 소박하게 꾸며졌다. 영국 업체 덴비와 풀의 도자기, 핀란드 디자이너 알바르 알토의 의자, 그리고 독일 미니멀리즘 디자이너 디터 람스의 선반 등이다.

지난 10년 동안 하웰은 기능적 단순성의 철학을 찻주전자부터 직물, 의자까지 가정용품으로 확장시켰다.
6년 전 하웰은 기록관리 전문가에게 자신의 모든 디자인과 기념품의 기록과 보관을 의뢰했다. 그녀는 이것이 과거를 보존함과 동시에 미래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하웰은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을 추구하지만 종종 자신의 진화하는 취향을 반영한 예외적인 작품도 제작했다. 털실 방울이 달린 스케이터 모자와 길이가 짤막한 통바지 등이다. “전반적인 비전은 변함이 없지만 늘 똑같은 결과물을 기대할 순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웰은 자신의 큰 성공이 스스로도 놀랍다. “난 늘 수줍고 초조했다. 초창기엔 패션업계의 경향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지만 내겐 그런 방식이 맞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긴 듯하다.”

하웰은 예상대로 창업 40주년을 요란하지 않게 보내고 있다. “내 생활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없다”고 그녀가 말했다.

- 다니엘 디미트리우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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