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많은 숫자와 대규모 물질들로 만들어진 작품은 물론이지만 ‘작가의 창의적 상상력’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맥락과 전시적 표현이다. 많은 관객이 그의 초기작 박제 상어와 돼지 등을 보면서 매우 기이하다는 생각을 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작가의 생애 연구에 근간하여 살펴본다면 영국의 리즈(Leeds)라는 작은 도시에 살던 당시 14세 소년이던 허스트가 본 첫 현대미술전이 우연히도 자연사박물관과 함께 공간을 나눠 쓰는 미술관에서 열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늘 박제된 동식물들의 캐비닛을 보면서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에게는 매우 자연스럽게 그러한 오브제들이 그의 작품으로 연결될 수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10년 전 필자가 허스트를 만나 알게 된 사실은 고대 문명에 관심이 깊다는 것이다. 당시 그는 역사는 물론이고 페루에서 마야문명의 판초나 여러 가지 문명사와 관련된 오브제들을 모으는 콜렉터였다. 특별히 이번 전시를 보면서 그가 지난 10년간 공부한 많은 고대 예술품들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영감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도록 한다. 그는 마치 J.R.R. 톨킨스가 호빗이라는 종족을 만들어 대서사시 <반지의 제왕> 을 쓴 것과 같이 아모탄2세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문명사적 오브제와 새로운 역사, 미래의 역사유물 만들기를 시도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그는 상상의 세계가 가지는 새로운 서사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상상 세계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품으로 연출한 문명박물관을 통해 새로운 전설을 만든다. 데미안 허스트, 히드라와 칼리, 조각과 라이트박스 전시 전경 / damien hirst and scince ltd. 본 전시가 주목할 부분은 아무리 좋은 이상적 개념이라도 어떤 예술로 승화하지 못한다면 그저 좋은 아이디어에 그치지만 그를 넘어 아날로그적이며 매우 완성도 높은 장인정신이 미술품을 만들어내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세계 최고의 많은 장인이 그의 스튜디오에서 주문하는 작품들을 만드느라고 상당히 바쁘지 않았을까. 허스트가 만든 청동과 대리석 조각들에는 적어도 전시를 준비한 3년 이상 기막히게 색칠된 산호조각과 바닷속 퇴적물 등이 부착되었고, 이러한 일련의 부식 과정은 기존 조각을 또 다른 새로운 문명사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새로운 형과 색을 부여 받은 스핑크스와 크로노스, 비너스의 토르소, 라오콘을 오마주 한 듯한 동상들은 오랜 시간과 함께 남겨진 고대 유물로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경이를 지우고 하나씩 천천히 그 작품들을 들여다본다면 놀랍게도 우리는 산호가 감싸고 자란 작가의 초상조각이나 미키마우스를 들고 있는 이 전시의 후원자이자 미술관의 주인 피노씨의 모습도 찾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유희를 볼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모두 고대 문명과 문물에서 시작된, 우리 눈에 익숙한 그러한 작품들이지만 한 작품 한 작품이 작가의 새로운 해석에 의해서 또 다른 문맥을 창조하고 있다. 그리스시대와 로마시대의 조각같이 보이는 여인의 대리석 흉상의 몸매가 장난감 바비인형의 몸매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을지. 매우 섬뜩이는 재치와 유머가 각 작품에 녹아있다. 이번 전시는 데미안 허스트가 직접 기획한 1988년 골드스미스 졸업전이자 YBA신화를 만들어낸 프리즈(FRIEZE)전 만큼이나 중요한 제2의 신화를 시작하는 여정이 아닌가 한다. 그가 앞으로 자신이 만든 이 세계를 어떻게 진화시켜 나가고 풀어갈지가 매우 기대되는 바이다.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푼타 델라 도가나는1682년 주제페 베노니에 의해 완공된 대저택이다.
본 건물은 17세기부터 베니스 상권에서 가장 중요한 세관이 있었던 건물로 이 해상도시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지난 100년간 전혀 사용되지 않고 버려져 있는 공간이었다. 이를 프랑수와 피노가 새로운 미술재단으로 다시 탄생시켰다. 피노 파운데이션이 새단장한 이 공간은 팔라조 그라시와 더불어 베니스시와의 33년간 계약을 통해 본 건물의 보존·운영권을 얻었다. 그 이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에 걸쳐 일본 건축가 안도타다오의 지휘 아래 약 220억원(2000만 유로)을 들여 구겐하임 다음으로 큰 현대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33년 후에 본 공간은 베니스시로 기부체납된다. 데미안 허스트, 시클롭스의 두개골, 조각과 라이트박스 전시 전경 / damien hirst and scince ltd. ※ 이지윤은… 지난 20년간 런던에서 거주하며 미술사/미술경영을 수학하고, 국제현대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큐레이터이다. 2014년 귀국하여 DDP 개관전 <자하하디드360도> 를 기획하였고, 지난 3년간 경복궁 옆 새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초대 총괄운영부장(Managing Director)을 역임했다. 현재 2003년 런던에 설립한 현대미술기획사무소 숨 프로젝트 대표로서 기업 콜렉션 자문 및 아트 엔젤 커미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하하디드360도>반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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