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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의 art TALK(5)]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이지윤의 art TALK(5)]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은 지난번 중국의 근대 동양화의 대가인 치바이스(제백석) 전시에 이어 매우 중요한 전시를 개최했다. 한국의 모던 조각의 선구자인 김종영(1915~1981) 작품의 전시가 그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중 한 분의 전시를 서예박물관에서 한다는 것, ‘붓으로 조각하다’라는 전시 제목 또한 큐레이터의 해석을 엿볼 수 있는 멋진 제목이었다.
김종영, 작품 79-4, 1979 ⓒJiyoon Lee
최근 서울 서초동에 있는 예술의전당을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 좋은 전시회가 줄지어 열리며 전시 프로그램이 매우 좋아졌다는 평가도 많을 뿐더러 사람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높아지고 있다. 여러 모임 자리에서도 종종 어느 전시를 봤냐고 서로 담소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에서 시작한 젊은 영국작가 발굴상인 터너 상(Turner Prize)이 활발히 회자되던 런던의 1990년대 초가 생각난다. 특히 예술의전당은 더욱 일반관람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전시들을 유치하기에 국공립 현대미술관이 더욱 학제적 연구와 실험적 전시를 보이는 것과는 달리 일반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이번 2월호 아트톡은 예술의전당에 있는 숨어있는 멋진 한 장소를 소개하고 싶다. 바로 그것은 서예박물관이다. 예술의전당 가장 높은 층에 올라가면 있는 음악당 맞은편에 있는 곳이다. 물론 음악당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서예박물관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아직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아니 요즘 세대 젊은 사람들에게는 ‘서예’라는 말 자체가 나와는 거리 먼 당신처럼 들릴만큼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장르이기는 하다. 하지만 서예는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에게는 기본관념과 사고에 내재해 있는 중요한 DNA와도 같은 것이며, 동아시아 예술인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놓고 다시 한 번 멈춰 서서 생각해봐야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종영, 작품 73-1, 1973 ⓒ김종영미술관
‘붓으로 조각한다’는 말의 뜻이 무엇일까. 우선 김종영 작가는 한국의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초대학장이신 장발 선생님과 함께 만드시고, 평생 교육자로, 작가로 살아오신 분이다. 그리고 한국 현대미술을 입문하는 사람이면 그분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가장 먼저 모던 추상 조각을 시작한 매우 독보적인 분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분이 일찍이 도쿄유학 시절 서양 모던 조각의 언어를 공부하는 초기부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한국의 ‘서’ ‘화’ ‘시’를 연구한 최고의 선비적 태도를 가진 작가인 김종영을 볼 수 있는 전시인 것이다. 즉 동양과 서양의 정신문화를 섭렵하고, 절대세계에 대한 통찰을 추상적으로 조형화한 작가라 할까? 동양의 필묵공동체를 이어나갈 수 있는 서예에 대한 깊은 고찰과 연구자인 분이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그의 수많은 서예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다.
 서구현대를 녹여내 동서예술이 나아갈 방향 제시
김종영, 전설, 1958 ⓒJiyoon Lee
그러한 김종영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집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는 영남 사대부 가문인 김해 김씨 22대 손인 성재 김기호의 오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우리가 아는 ‘고향의 봄’에 나오는 ‘꽃대궐’이 바로 경남 창원 소답동에 있는 김종영의 생가다. 당시 그 어떤 작가들에 비해 그는 가풍을 통해서 조선 사대부의 학예 전통을 익힐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게 되었고,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다. 그 이후 서동진·윤희순·오지호 등의 미술가들을 배출한 민족사학 휘문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며, 1932년에 동아일보 주최 [제3회 전조선남녀학생 작품전람회]에서 안진경체로 일등상을 받으며 예술적 소질을 인정받았다. 이후 도쿄미술학부 조각부에서 공부하며 브루델, 마이욜, 브랑쿠지 같은 서구 조각가들의 작품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즉 서예적 훈련과 이해에 근간한 정서에 서구 조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는 작품 세계를 키워갔다.

사실 우리에게는 김종영의 조각은 공공 기념조각으로 알려져 있다. 1963년 국민성금을 모아 탑골 공원에 건립한 [3·1독립선언기념탑]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는 194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교수로 들어가서 평생 미술학도를 키워내는 중요한 미술 교육인이기도 하였다. 또한 작가로서도 가장 최초의 한국인 작가로 1963년에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열린 [무명정치수를 위한 모뉴멘트] 국제공모전에 출품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해외 공모전에 입선한 작가이기도 하다. 당시 테이트 전시에 참여한 작가리스트를 보면 한 세기 당대 최고 작가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김종영, 꿈, 1958 ⓒJiyoon Lee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작가인 김종영 전시이지만, 서예박물관에서 진행되면서 매우 새로운 디스플레이를 볼 수 있다. 즉 조각 이외에도 예술의전당과 김종영미술관이 서화, 서예, 드로잉, 사진과 유품 등 180여 점이 함께 있는 전시이다. 그리고, 가장 귀중하게 생각되고, 놀랍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김종영이 가장 애장했던 추사 김정희의 [완당집고첩阮堂執古帖]을 볼 수 있다는 것과 또한 ‘불각(不刻, 조각을 하지 않음)’의 미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조각가가 조각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매우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예술의전당 전경 사진 ⓒJiyoon Lee
특유의 숙달되고 정교한 기법이 자신의 예술 활동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조각 자체의 물질성과 기운, 에너지에 대한 이해와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특히 가장 존경한 추사 김정희 선생님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겸재 정선의 그림을 탁본하는 수련과 같은 훈련 과정을 거쳐 그가 추구하는 추상의 단계를 추구했다는 것이 그의 예술이 독창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시를 기획한 서예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인 이동국 부장이 도록에 쓴 글에서도 엿볼 수 있다. ‘김종영 작가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20세기 서화(書畵) 미술로의 대전환기에 사의(寫意)라는 동양전통으로 추상(抽象)이라는 서구현대를 녹여냄으로써 동서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실천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김종영 예술을 통해서 과연 한국 현대미술이 앞으로 더욱 고민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해준다. 그는 반세기 전부터 한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독창적 예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뇌 속에서 작업을 하며, 후학들을 키워왔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미술은 어떠한지. 글로벌화가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더불어 가속화되는 이 시점에 우리는 더욱 우리만이 다를 수 있는, 차별화 할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를 어디서 찾고 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김종영, 『장자(莊子)』「천하(天下)」편 판천지지미, 예술의전당 전경 사진 ⓒJiyoon Lee 1967 ⓒ김종영미술관
2019년 LA에 있는 미국 서부의 최고 미술관인 라크마 미술관은 현재 한국 ‘서예(Calligraphy)’ 대규모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책임을 맡은 미국 큐레이터들은 벌써 3년째 한국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한국 서예가들과 서화들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미술시장의 현장에서 중국은 자국 차바이스를 1000억원이 넘는 최고의 작가로 세계시장에 자국 작가의 가치를 올려놓았다. 우리는 그러한 면에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국가의 대표 미술을 컬렉션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예를 연구하는 책임 큐레이터를 가지고 있을까. 한국의 추상 모더니즘의 선구자인 김종영 선생님의 노력과 그의 비전은 더욱 연구돼야 하며, 우리 현대미술이 더욱 추구하고 찾아야 할 독창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이지윤은… 이지윤은 지난 20년간 런던에서 거주하며 미술사학박사/미술경영학석사를 취득하고, 국제 현대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큐레이터이다. 2014년 귀국하여 DDP 개관전 [자하 하디드360도]을 기획하였고, 지난 3년간 경복궁 옆에 새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첫 운영부장(Managing Director)을 역임했다. 현재 2003년 런던에서 설립한 현대미술기획사무소 숨 프로젝트 대표로서, 기업 컬렉션 자문 및 아트 엔젤 커미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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