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슈퍼히어로’
러시아의 ‘슈퍼히어로’
러시아 사회 전반에 빈곤과 부패, 불평등이 만연하지만 개인 숭배에 버금가는 선전 캠페인으로 푸틴 대통령의 인기는 매우 높아 어느 추운 겨울 밤 러시아 모스크바 도심의 아트 갤러리 안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이 붉은 망토를 걸치고 ‘푸틴 블래스터’로 불리는 거대한 무기를 발사한다. 그의 표적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차가운 눈길과 단호한 결의는 그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러시아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실제로 갤러리 안에 있는 게 아니라 그가 그림의 주제라는 뜻이다. 망토 걸친 수호자인 푸틴의 모습은 모스크바에서 전시 중인 눈길 끄는 30점의 초상화와 조각상 중 하나다. 그 작품들은 전부 KGB(옛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 장교 출신인 푸틴을 영웅으로 그린다. 기이한 포즈로 보이는 것도 있다. 아이스하키에서 우승 샷을 날리는 푸틴, 표범을 껴안은 푸틴, 중세 갑옷 차림에 러시아 국기를 들고 곰에 올라탄 푸틴, 인형 안에 인형이 계속 들어 있는 미트료시카 인형처럼 자신의 초상화를 들고 있는 푸틴의 그림 속에 또 자신의 초상화를 들고 있는 푸틴의 그림이 반복되는 작품도 있다.
‘슈퍼 푸틴’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율리아 듀제바(22)가 큐레이터를 맡았다. 그녀는 모델이자 사회운동가 겸 모스크바대학 저널리즘과 학생이다. 이 전시회는 지난해 12월 6일 시작됐다. 푸틴 대통령이 오는 3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에 다시 출마해 4선을 추진한다고 발표한 바로 그날이었다. 승리가 확실시 되는 이번 선거로 그는 대통령 임기를 또 다시 6년 연장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오래 러시아를 통치한 인물은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뿐이다. 듀제바는 “푸틴은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강인한 지도자”라고 말했다. “우린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실제로 많은 러시아인이 감사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2대 도시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자동네 주민들은 어느 때보다 살기 좋은 시절을 누린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백만장자 수가 가장 빨리 늘어나는 나라다. 또 경제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억만장자 73명이 모스크바에 거주한다. 러시아의 기대수명은 현재 71세다. 푸틴이 처음 대통령에 선출된 2000년 이래 6세가 늘었다. 또 푸틴은 군사지출을 크게 증액해 옛 소련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일부 되찾았다. 러시아인 다수가 자부심을 갖는 이유다.
그러나 상당수의 러시아인에겐 삶이 여전히 암울하다. 인구의 약 14%인 2000만 명 정도가 월 소득 170달러로 살아간다. 실질 소득은 4년째 감소하고 있다. 실내 화장실이 없는 초·중등학교가 시베리아 깊숙한 곳을 포함해 약 3000개에 이른다. 모스크바 소재 가이다르 경제정책 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는 부의 불균형이 세계에서 가장 심한 국가에 속하며 정부 하청사업과 관련된 부패로 인한 국고 손실액이 연간 약 350억 달러에 이른다. 2010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현 총리)는 그 손실액이 330억 달러라고 밝혔다. 러시아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3%에 해당한다.
한편 비판자들은 푸틴 대통령이 반대 의견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잠재적인 경쟁자들의 신임을 떨어뜨리는 정교한 국가 선전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는 동안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그중 다수는 비선출직 인사)은 부와 권력을 쌓아올렸다.그러나 듀제바는 그런 측면을 개의치 않는다. 그녀는 러시아의 젊은이가 푸틴 대통령을 현대판 슈퍼히어로로 본다고 말했다. “현재 러시아를 통치할 능력을 가진 인물은 푸틴밖에 없다.” 국영이든 독립적이든 러시아 여론조사기관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인 대다수가 그녀처럼 푸틴 대통령을 칭찬한다. 푸틴의 대통령 직무 수행 지지도는 80%가 넘는다. 크렘린이 2014년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이래 변치 않는 지지율이다. 러시아인 거의 모두는 크림반도 합병을 지지한다.
그럼에도 러시아인 상당수(약 50%)는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본다. 그 수치도 근년 들어 꾸준히 유지된다고 모스크바의 독립적인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가 밝혔다. 왜 이런 ‘인지 부조화’ 현상이 나타날까? 분석가들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국가 수반이지만 많은 러시아인은 국가의 실패를 그와 연관 짓지 않는다. 미국 워싱턴 D.C.의 우드로윌슨센터 산하 케난연구소가 운영하는 블로그 ‘러시아 파일’의 편집자 막심 트루돌류보프는 “푸틴은 모든 좋은 일과 추상적인 사안에만 책임을 진다”고 지적했다.
많은 러시아인이 자신이 처한 문제를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해 주기를 원한다는 사실이 그런 현상을 잘 보여준다. 그들의 온라인 동영상을 보면 청원자들은 ‘푸틴 - 도와주세요!’라고 외치거나 그렇게 쓴 표지판을 들고 있다. 특히 그들은 푸틴 대통령을 ‘티’라고 부른다. ‘당신’을 가리키는 비공식적인 러시아어로 주로 신이나 ‘차르’(황제)에게 간청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가장 최근의 동영상은 모스크바에서 약 1600㎞ 떨어진 쿠르간 지역의 교사들이 온라인에 올렸다. 그들은 체불 임금을 둘러싼 자신들의 투쟁에 개입해 달라고 푸틴 대통령에게 탄원했다. 그 동영상을 제작한 교사 블라디미르 코체울로프는 “이건 우리의 필사적인 행동”이라고 말했다. “바나나 공화국(부패 등으로 따른 정국 불안과 심한 대외 경제의존에 시달리는 국가)의 교사들도 우리보다 대우를 더 잘 받을 것이다.” 그러나 코체울로프는 그런 처우 불만을 두고 푸틴 대통령을 탓하려 하진 않는다. “러시아인은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제나 너그러운 바투슈카에 의존해왔다”고 그는 말했다. 바투슈카는 ‘아버지’ 또는 ‘성직자’를 뜻하는 러시아 단어다.푸틴 대통령이 매년 출연하는 시청자 전화 참가 프로그램이 러시아의 모든 문제를 신속히 해결해 주는 가부장적 인물이라는 그의 이미지를 더욱 굳힌다. ‘국민과의 대화’라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에서 푸틴 대통령은 민원을 해결해주라고 공무원을 훈계하며 주택 수리나 오지의 도시가스관 건설을 시행하라고 지시한다. 한번은 푸틴 대통령이 가난한 집안의 어린 소녀에게 드레스를 선물하고 그 아이를 크렘린의 새해 파티에 초청했다. 트루돌류보프는 “그게 바로 푸틴이 부리는 마술”이라고 말했다. “대중의 상상 속에서 그는 모든 일에 무한 책임을 진다.”
일부 러시아인은 푸틴 대통령이 모든 일에 무한 책임을 질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모든 일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 의장은 2014년 “푸틴이 없다면 오늘날의 러시아도 없다”고 말했다. 정치인이 대부분 일반인으로 인식되는 서방과 달리 대다수 러시아인에게 푸틴 대통령은 살아 숨쉬는 러시아 국가 그 자체다. ‘국가 지도자’(푸틴을 가리킨다)에 대한 비판이 조국 러시아에 대한 비판으로 쉽게 해석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러시아의 한 유명인사는 공개적으론 당국을 지지한다며 익명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특별히 푸틴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난 애국자이기 때문에 그들을 비판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태도는 러시아 전역의 가정에서 열띤 언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러시아 중부 도시 보로네즈에 사는 올가(75)는 딸 스베틀라나(40)가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자 그녀에게 “넌 조국을 배반하는 반역자야!”라고 소리쳤다. “네가 푸틴 대통령을 나쁘게 말하면 조국을 헐뜯는 것 같아 불쾌해.” 올가는 매월 정부에서 연금 8000루블(약 15만원)을 받으며 딸 스베틀라나에게 의지해 살아간다.
대중문화에서도 푸틴 대통령을 향한 이런 헌신이 잘 드러난다. 푸틴의 첫 대통령 임기 동안 여성 2인조 팝가수 싱싱 투게더는 전염성 강한 노래로 큰 인기를 끌었다. 후렴의 한 대목은 ‘난 푸틴처럼 정력 넘치는 남자가 좋아’다. 2015년엔 러시아의 최고 랩 가수 중 한 명인 티마티가 ‘내 친구는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나라 전체가 그의 친구지/ 그는 멋진 슈퍼히어로지’라는 가사가 특히 강조된다. 이제 러시아가 3월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가수 뱌체슬라프 안토노프가 나서서 록음악으로 애국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데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상대로 하는 ‘최후의 전투’에서 푸틴 대통령을 끝까지 따르겠노라고 다짐하는 노래다.노래만이 아니다. 벽화와 초상화, 심지어 푸틴 조각상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푸틴 대통령을 로마 황제로 묘사하는 흉상으로 상트페트르부르크 인근의 한 코사크족 마을에 세워졌다. 이 모든 것은 장기 집권하는 푸틴 대통령의 개인숭배를 시사한다고 비판자들은 지적한다. 그런 숭배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둘러싸고 서방과 대치하면서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옛 소련과 과거 중국에 존재했고, 현재의 북한에서 보이는 전통적인 개인 숭배와는 큰 차이가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산하 러시아연구소의 샘 그린 소장에 따르면 푸틴은 자신의 이미지대로 나라를 개조하진 않으며 푸틴의 개인 숭배는 그와 경쟁할 수 있는 권위적 존재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그린 소장은 “의회와 법원, 헌법, 심지어 교회도 단일 결정권자, 단일 보증인, 단일 상징인 푸틴 대통령 아래서 힘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푸틴의 개인 숭배는 스탈린 시절과 달리 정치적 탄압에 의한 현상이 아니다. 과거의 굴라그(옛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와 즉결처형 대신 크렘린은 공개적으로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를 정교하게 구축하고 유지한다. 크렘린의 핵심 참모를 지낸 글레브 파블로프스키(66)는 “우린 푸틴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며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허구적인 믿음을 그의 첫 두 임기 동안 끊임없이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과거 소련이 레닌의 나라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듯이 오늘날의 러시아인 대다수는 러시아가 푸틴의 나라라고 믿는다.”
파블로프스키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인기는 대부분 1990년대 러시아인의 암울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 아래서 급여와 연금이 몇 달 동안 체불됐다. 소련 붕괴 직후의 혼란으로 그 같은 큰 어려움이 따랐다. 러시아인 수백만 명에게 엄청난 박탈감을 안겨준 시기였다.
그에 비해 KGB 출신인 푸틴의 대통령 임기 초기는 운 좋게도 세계적인 유가 상승 시기와 일치했다. 석유는 러시아의 주요 수출 상품이었다. 그에 따라 러시아인의 생활수준이 크게 개선됐다. 파블로프스키는 “지금의 러시아는 어려움을 이겨낸 생존자의 나라”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그때를 기억한다. 현재 엄청난 부의 불평등이 있지만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옛 소련 시절 반체제 인사였던 파블로프스키는 옐친과 푸틴 두 대통령 아래 크렘린에서 일했다. 당시 러시아가 채택한 ‘관리 민주주의(managed democracy)’의 설계자 중 한 명이었던 그는 2011년 푸틴의 대통령 3선에 반대하다가 크렘린에서 쫓겨났다. 파블로프스키는 “우린 당국 내부에 자리 잡았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국민의 편에 선 KGB 스파이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크렘린의 문이 열리고 거기서 국민의 대통령이 나온 것처럼 말이다. 옐친이나 그전의 소련 지도자들과 달리 푸틴은 국민의 피부에 와닿게 말하는 사람으로 부각됐다. 마치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 같았다. 푸틴은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신속히 학습한 뒤 한층 더 진화하는 배우 같았다.”
파블로프스키는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지만 처음엔 그의 통치를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소련 붕괴 후의 혼돈 시기에 해체될 위험에 처한 러시아에 안정을 가져다줄 기회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취엔 대가가 따랐다. 파블로프스키는 “2000년대 들어 푸틴의 첫 대통령 임기 동안 우린 민주적 정치 과정을 의도적으로 짓밟았다”고 인정했다. “우린 ‘관리 민주주의’ 정치를 시행했다.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우리에게로, 크렘린으로, 푸틴에게로 가져오면 우리가 해결해 주겠다는 식이었다. 그 외엔 다른 누구에게도 탄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린 그런 정치를 응급처방이며 임시적인 조치라고 생각했다. 이전 시대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정상적으로 회복할 기회가 러시아 국민에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당국이 마음대로 국가를 끌고 가기에 아주 편리한 것으로 판명됐다. 수익성이 좋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불행한 일이지만 이것이 내가 책임을 느끼는 부분 중 하나다.”
크렘린의 또 다른 선전 전략은 푸틴을 어떤 실패와도 개인적으로 연관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파블로프스키는 2000년 침몰한 러시아 핵잠수함에 탑승했던 승조원 118명의 죽음을 가리키며 “쿠르스크 사건 현장을 푸틴 대통령이 방문하지 않도록 말린 것도 그런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그럼에도 파블로프스키는 러시아가 국가로서 끊임 없는 푸틴 개인 숭배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허상이라고 주장했다. “이건 선전일 뿐이다. 아주 강력한 선전이다. 러시아라는 국가의 틀은 아주 허약하다. 강인한 정부가 결코 아니다. 그런 약점을 우리가 1990~2000년대에 채택한 방법으로 보완했다. 정치적 조작과 미디어 선전을 병행하는 전략이다.”
푸틴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그런 헌신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 지는 불확실하다. 푸틴은 대선에서 경쟁 후보와의 토론에 참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의 지지도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지만 야권 인사들에 따르면 크렘린은 독립적인 경쟁 후보자들을 상대로 공개적인 선거전을 치름으로써 푸틴의 인기를 시험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경쟁력 있는 후보의 대표적인 예가 알렉세이 나발니다. 야권 지도자이자 부패 근절 운동가인 그는 이번 대선 출마를 금지당했다. 나발니는 전국적인 지지도가 2%에 불과하지만 러시아인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다. 고위 인사들의 부패를 추적하는 그의 온라인 수사 상황은 유튜브에서 수백만 건의 뷰를 기록한다.
단 한 번 공직 출마가 허용된 2013년 나발니는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서 국영 TV 출연이 금지된 상황에서도 거의 30%에 이르는 득표율을 올렸다. 나발니는 푸틴의 지지도를 로버트 무가베에 견준다. 무가베는 짐바브웨의 독재자로 지난해 쿠데타로 쫓겨난 인물이다. 나발니는 “무가베의 국민 지지도도 푸틴과 비슷하게 90%에 이르렀지만 쿠데타가 일어나자 그의 지지자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지지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독재자 대부분 다 그렇다. 높은 지지도는 동화 같은 허상에 불과하다.”
반정부 언론인들은 크렘린이 푸틴의 유세에 러시아 유권자를 자발적으로 참가시키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무원이나 학생들을 동원한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렇다면 당국이 푸틴의 유세에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하지 않을 경우 자발적인 참석자는 어느 정도일까? 반정부 운동가들은 시베리아 서부 지방의 석유 도시 튜멘(인구 약 50만 명)에서 바로 그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들은 지난해 12월 31일 크렘린 지지자들로 위장하고 ‘푸틴의 4선을 지지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그 집회는 현지 언론과 온라인으로 충분히 광고됐으며 사람들이 많이 참석할 수 있는 주말 오후 도심에서 열렸다. 그렇다면 과연 몇 명이나 자발적으로 그 집회에 참가했을까? 야권 성향의 신문 노바야 가제타에 따르면 단 7명이었다.이제 ‘슈퍼 푸틴’ 전시회로 돌아가 보자. 전시된 작품 속에서도 푸틴을 향한 열정은 보기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실제로 러시아에선 단순 명료한 것이 아주 드물다. 이 전시회를 구상하고 자금을 댄 야권 정치인 출신 알렉산드르 돈스코이는 “내겐 이 전시회가 푸틴이 영원히 대통령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 위한 하나의 의식”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북부 도시 아르한겔스크의 시장을 지낸 돈스코이는 9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는 2008년 대선 출마 계획을 발표한 뒤 날조된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에선 한 사람이 차르처럼 평생 권좌를 지키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들은 당국에 대해 철부지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 ‘슈퍼 푸틴’ 전시회는 바로 그런 점을 반영한다. 수소문해보니 진정으로 푸틴을 끔찍히 좋아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를 큐레이터로 선정해 이 전시회를 ‘검열’하도록 부탁했다.”
특이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오래 지속되는 통치에 대처하는 한 가지 방식임은 분명하다. 그 외 좀 더 실용적인 접근법을 취하는 방식도 있다. 지난 1월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푸틴의 선거대책본부가 문을 열었을 때 ‘강한 대통령 강한 러시아’라는 표지판 곁에 수십 명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대다수는 주택 등 개인적인 문제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올레그라는 한 고령자는 “푸틴이 나를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움을 못 준다고 해도 그에게 투표하겠다. 난 애국자다.”
나탈리아 셰브초바도 거기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중년인 그녀는 2006년 모스크바 남부에 짓는 아파트에 평생 모은 저축을 전부 털어 투자했다. 그러나 아파트는 아직 골조도 올라가지 않았다. 셰브초바는 정부 관리들이 자신의 투자금 회수에 도움을 줄 수도 없고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 남은 희망은 러시아의 오랜 지도자인 푸틴 대통령뿐이라고 그녀는 믿는다. “난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나? 러시아는 독재 국가다. 나에겐 달리 선택할 대안이 없다.”
- 마크 베네츠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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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이 실제로 갤러리 안에 있는 게 아니라 그가 그림의 주제라는 뜻이다. 망토 걸친 수호자인 푸틴의 모습은 모스크바에서 전시 중인 눈길 끄는 30점의 초상화와 조각상 중 하나다. 그 작품들은 전부 KGB(옛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 장교 출신인 푸틴을 영웅으로 그린다. 기이한 포즈로 보이는 것도 있다. 아이스하키에서 우승 샷을 날리는 푸틴, 표범을 껴안은 푸틴, 중세 갑옷 차림에 러시아 국기를 들고 곰에 올라탄 푸틴, 인형 안에 인형이 계속 들어 있는 미트료시카 인형처럼 자신의 초상화를 들고 있는 푸틴의 그림 속에 또 자신의 초상화를 들고 있는 푸틴의 그림이 반복되는 작품도 있다.
‘슈퍼 푸틴’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율리아 듀제바(22)가 큐레이터를 맡았다. 그녀는 모델이자 사회운동가 겸 모스크바대학 저널리즘과 학생이다. 이 전시회는 지난해 12월 6일 시작됐다. 푸틴 대통령이 오는 3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에 다시 출마해 4선을 추진한다고 발표한 바로 그날이었다. 승리가 확실시 되는 이번 선거로 그는 대통령 임기를 또 다시 6년 연장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오래 러시아를 통치한 인물은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뿐이다. 듀제바는 “푸틴은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강인한 지도자”라고 말했다. “우린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실제로 많은 러시아인이 감사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2대 도시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자동네 주민들은 어느 때보다 살기 좋은 시절을 누린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백만장자 수가 가장 빨리 늘어나는 나라다. 또 경제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억만장자 73명이 모스크바에 거주한다. 러시아의 기대수명은 현재 71세다. 푸틴이 처음 대통령에 선출된 2000년 이래 6세가 늘었다. 또 푸틴은 군사지출을 크게 증액해 옛 소련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일부 되찾았다. 러시아인 다수가 자부심을 갖는 이유다.
그러나 상당수의 러시아인에겐 삶이 여전히 암울하다. 인구의 약 14%인 2000만 명 정도가 월 소득 170달러로 살아간다. 실질 소득은 4년째 감소하고 있다. 실내 화장실이 없는 초·중등학교가 시베리아 깊숙한 곳을 포함해 약 3000개에 이른다. 모스크바 소재 가이다르 경제정책 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는 부의 불균형이 세계에서 가장 심한 국가에 속하며 정부 하청사업과 관련된 부패로 인한 국고 손실액이 연간 약 350억 달러에 이른다. 2010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현 총리)는 그 손실액이 330억 달러라고 밝혔다. 러시아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3%에 해당한다.
한편 비판자들은 푸틴 대통령이 반대 의견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잠재적인 경쟁자들의 신임을 떨어뜨리는 정교한 국가 선전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는 동안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그중 다수는 비선출직 인사)은 부와 권력을 쌓아올렸다.그러나 듀제바는 그런 측면을 개의치 않는다. 그녀는 러시아의 젊은이가 푸틴 대통령을 현대판 슈퍼히어로로 본다고 말했다. “현재 러시아를 통치할 능력을 가진 인물은 푸틴밖에 없다.” 국영이든 독립적이든 러시아 여론조사기관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인 대다수가 그녀처럼 푸틴 대통령을 칭찬한다. 푸틴의 대통령 직무 수행 지지도는 80%가 넘는다. 크렘린이 2014년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이래 변치 않는 지지율이다. 러시아인 거의 모두는 크림반도 합병을 지지한다.
그럼에도 러시아인 상당수(약 50%)는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본다. 그 수치도 근년 들어 꾸준히 유지된다고 모스크바의 독립적인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가 밝혔다. 왜 이런 ‘인지 부조화’ 현상이 나타날까? 분석가들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국가 수반이지만 많은 러시아인은 국가의 실패를 그와 연관 짓지 않는다. 미국 워싱턴 D.C.의 우드로윌슨센터 산하 케난연구소가 운영하는 블로그 ‘러시아 파일’의 편집자 막심 트루돌류보프는 “푸틴은 모든 좋은 일과 추상적인 사안에만 책임을 진다”고 지적했다.
많은 러시아인이 자신이 처한 문제를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해 주기를 원한다는 사실이 그런 현상을 잘 보여준다. 그들의 온라인 동영상을 보면 청원자들은 ‘푸틴 - 도와주세요!’라고 외치거나 그렇게 쓴 표지판을 들고 있다. 특히 그들은 푸틴 대통령을 ‘티’라고 부른다. ‘당신’을 가리키는 비공식적인 러시아어로 주로 신이나 ‘차르’(황제)에게 간청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가장 최근의 동영상은 모스크바에서 약 1600㎞ 떨어진 쿠르간 지역의 교사들이 온라인에 올렸다. 그들은 체불 임금을 둘러싼 자신들의 투쟁에 개입해 달라고 푸틴 대통령에게 탄원했다. 그 동영상을 제작한 교사 블라디미르 코체울로프는 “이건 우리의 필사적인 행동”이라고 말했다. “바나나 공화국(부패 등으로 따른 정국 불안과 심한 대외 경제의존에 시달리는 국가)의 교사들도 우리보다 대우를 더 잘 받을 것이다.” 그러나 코체울로프는 그런 처우 불만을 두고 푸틴 대통령을 탓하려 하진 않는다. “러시아인은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제나 너그러운 바투슈카에 의존해왔다”고 그는 말했다. 바투슈카는 ‘아버지’ 또는 ‘성직자’를 뜻하는 러시아 단어다.푸틴 대통령이 매년 출연하는 시청자 전화 참가 프로그램이 러시아의 모든 문제를 신속히 해결해 주는 가부장적 인물이라는 그의 이미지를 더욱 굳힌다. ‘국민과의 대화’라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에서 푸틴 대통령은 민원을 해결해주라고 공무원을 훈계하며 주택 수리나 오지의 도시가스관 건설을 시행하라고 지시한다. 한번은 푸틴 대통령이 가난한 집안의 어린 소녀에게 드레스를 선물하고 그 아이를 크렘린의 새해 파티에 초청했다. 트루돌류보프는 “그게 바로 푸틴이 부리는 마술”이라고 말했다. “대중의 상상 속에서 그는 모든 일에 무한 책임을 진다.”
일부 러시아인은 푸틴 대통령이 모든 일에 무한 책임을 질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모든 일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 의장은 2014년 “푸틴이 없다면 오늘날의 러시아도 없다”고 말했다. 정치인이 대부분 일반인으로 인식되는 서방과 달리 대다수 러시아인에게 푸틴 대통령은 살아 숨쉬는 러시아 국가 그 자체다. ‘국가 지도자’(푸틴을 가리킨다)에 대한 비판이 조국 러시아에 대한 비판으로 쉽게 해석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러시아의 한 유명인사는 공개적으론 당국을 지지한다며 익명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특별히 푸틴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난 애국자이기 때문에 그들을 비판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태도는 러시아 전역의 가정에서 열띤 언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러시아 중부 도시 보로네즈에 사는 올가(75)는 딸 스베틀라나(40)가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자 그녀에게 “넌 조국을 배반하는 반역자야!”라고 소리쳤다. “네가 푸틴 대통령을 나쁘게 말하면 조국을 헐뜯는 것 같아 불쾌해.” 올가는 매월 정부에서 연금 8000루블(약 15만원)을 받으며 딸 스베틀라나에게 의지해 살아간다.
대중문화에서도 푸틴 대통령을 향한 이런 헌신이 잘 드러난다. 푸틴의 첫 대통령 임기 동안 여성 2인조 팝가수 싱싱 투게더는 전염성 강한 노래로 큰 인기를 끌었다. 후렴의 한 대목은 ‘난 푸틴처럼 정력 넘치는 남자가 좋아’다. 2015년엔 러시아의 최고 랩 가수 중 한 명인 티마티가 ‘내 친구는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나라 전체가 그의 친구지/ 그는 멋진 슈퍼히어로지’라는 가사가 특히 강조된다. 이제 러시아가 3월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가수 뱌체슬라프 안토노프가 나서서 록음악으로 애국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데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상대로 하는 ‘최후의 전투’에서 푸틴 대통령을 끝까지 따르겠노라고 다짐하는 노래다.노래만이 아니다. 벽화와 초상화, 심지어 푸틴 조각상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푸틴 대통령을 로마 황제로 묘사하는 흉상으로 상트페트르부르크 인근의 한 코사크족 마을에 세워졌다. 이 모든 것은 장기 집권하는 푸틴 대통령의 개인숭배를 시사한다고 비판자들은 지적한다. 그런 숭배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둘러싸고 서방과 대치하면서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옛 소련과 과거 중국에 존재했고, 현재의 북한에서 보이는 전통적인 개인 숭배와는 큰 차이가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산하 러시아연구소의 샘 그린 소장에 따르면 푸틴은 자신의 이미지대로 나라를 개조하진 않으며 푸틴의 개인 숭배는 그와 경쟁할 수 있는 권위적 존재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그린 소장은 “의회와 법원, 헌법, 심지어 교회도 단일 결정권자, 단일 보증인, 단일 상징인 푸틴 대통령 아래서 힘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푸틴의 개인 숭배는 스탈린 시절과 달리 정치적 탄압에 의한 현상이 아니다. 과거의 굴라그(옛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와 즉결처형 대신 크렘린은 공개적으로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를 정교하게 구축하고 유지한다. 크렘린의 핵심 참모를 지낸 글레브 파블로프스키(66)는 “우린 푸틴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며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허구적인 믿음을 그의 첫 두 임기 동안 끊임없이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과거 소련이 레닌의 나라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듯이 오늘날의 러시아인 대다수는 러시아가 푸틴의 나라라고 믿는다.”
파블로프스키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인기는 대부분 1990년대 러시아인의 암울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 아래서 급여와 연금이 몇 달 동안 체불됐다. 소련 붕괴 직후의 혼란으로 그 같은 큰 어려움이 따랐다. 러시아인 수백만 명에게 엄청난 박탈감을 안겨준 시기였다.
그에 비해 KGB 출신인 푸틴의 대통령 임기 초기는 운 좋게도 세계적인 유가 상승 시기와 일치했다. 석유는 러시아의 주요 수출 상품이었다. 그에 따라 러시아인의 생활수준이 크게 개선됐다. 파블로프스키는 “지금의 러시아는 어려움을 이겨낸 생존자의 나라”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그때를 기억한다. 현재 엄청난 부의 불평등이 있지만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옛 소련 시절 반체제 인사였던 파블로프스키는 옐친과 푸틴 두 대통령 아래 크렘린에서 일했다. 당시 러시아가 채택한 ‘관리 민주주의(managed democracy)’의 설계자 중 한 명이었던 그는 2011년 푸틴의 대통령 3선에 반대하다가 크렘린에서 쫓겨났다. 파블로프스키는 “우린 당국 내부에 자리 잡았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국민의 편에 선 KGB 스파이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크렘린의 문이 열리고 거기서 국민의 대통령이 나온 것처럼 말이다. 옐친이나 그전의 소련 지도자들과 달리 푸틴은 국민의 피부에 와닿게 말하는 사람으로 부각됐다. 마치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 같았다. 푸틴은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신속히 학습한 뒤 한층 더 진화하는 배우 같았다.”
파블로프스키는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지만 처음엔 그의 통치를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소련 붕괴 후의 혼돈 시기에 해체될 위험에 처한 러시아에 안정을 가져다줄 기회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취엔 대가가 따랐다. 파블로프스키는 “2000년대 들어 푸틴의 첫 대통령 임기 동안 우린 민주적 정치 과정을 의도적으로 짓밟았다”고 인정했다. “우린 ‘관리 민주주의’ 정치를 시행했다.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우리에게로, 크렘린으로, 푸틴에게로 가져오면 우리가 해결해 주겠다는 식이었다. 그 외엔 다른 누구에게도 탄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린 그런 정치를 응급처방이며 임시적인 조치라고 생각했다. 이전 시대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정상적으로 회복할 기회가 러시아 국민에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당국이 마음대로 국가를 끌고 가기에 아주 편리한 것으로 판명됐다. 수익성이 좋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불행한 일이지만 이것이 내가 책임을 느끼는 부분 중 하나다.”
크렘린의 또 다른 선전 전략은 푸틴을 어떤 실패와도 개인적으로 연관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파블로프스키는 2000년 침몰한 러시아 핵잠수함에 탑승했던 승조원 118명의 죽음을 가리키며 “쿠르스크 사건 현장을 푸틴 대통령이 방문하지 않도록 말린 것도 그런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그럼에도 파블로프스키는 러시아가 국가로서 끊임 없는 푸틴 개인 숭배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허상이라고 주장했다. “이건 선전일 뿐이다. 아주 강력한 선전이다. 러시아라는 국가의 틀은 아주 허약하다. 강인한 정부가 결코 아니다. 그런 약점을 우리가 1990~2000년대에 채택한 방법으로 보완했다. 정치적 조작과 미디어 선전을 병행하는 전략이다.”
푸틴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그런 헌신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 지는 불확실하다. 푸틴은 대선에서 경쟁 후보와의 토론에 참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의 지지도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지만 야권 인사들에 따르면 크렘린은 독립적인 경쟁 후보자들을 상대로 공개적인 선거전을 치름으로써 푸틴의 인기를 시험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경쟁력 있는 후보의 대표적인 예가 알렉세이 나발니다. 야권 지도자이자 부패 근절 운동가인 그는 이번 대선 출마를 금지당했다. 나발니는 전국적인 지지도가 2%에 불과하지만 러시아인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다. 고위 인사들의 부패를 추적하는 그의 온라인 수사 상황은 유튜브에서 수백만 건의 뷰를 기록한다.
단 한 번 공직 출마가 허용된 2013년 나발니는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서 국영 TV 출연이 금지된 상황에서도 거의 30%에 이르는 득표율을 올렸다. 나발니는 푸틴의 지지도를 로버트 무가베에 견준다. 무가베는 짐바브웨의 독재자로 지난해 쿠데타로 쫓겨난 인물이다. 나발니는 “무가베의 국민 지지도도 푸틴과 비슷하게 90%에 이르렀지만 쿠데타가 일어나자 그의 지지자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지지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독재자 대부분 다 그렇다. 높은 지지도는 동화 같은 허상에 불과하다.”
반정부 언론인들은 크렘린이 푸틴의 유세에 러시아 유권자를 자발적으로 참가시키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무원이나 학생들을 동원한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렇다면 당국이 푸틴의 유세에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하지 않을 경우 자발적인 참석자는 어느 정도일까? 반정부 운동가들은 시베리아 서부 지방의 석유 도시 튜멘(인구 약 50만 명)에서 바로 그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들은 지난해 12월 31일 크렘린 지지자들로 위장하고 ‘푸틴의 4선을 지지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그 집회는 현지 언론과 온라인으로 충분히 광고됐으며 사람들이 많이 참석할 수 있는 주말 오후 도심에서 열렸다. 그렇다면 과연 몇 명이나 자발적으로 그 집회에 참가했을까? 야권 성향의 신문 노바야 가제타에 따르면 단 7명이었다.이제 ‘슈퍼 푸틴’ 전시회로 돌아가 보자. 전시된 작품 속에서도 푸틴을 향한 열정은 보기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실제로 러시아에선 단순 명료한 것이 아주 드물다. 이 전시회를 구상하고 자금을 댄 야권 정치인 출신 알렉산드르 돈스코이는 “내겐 이 전시회가 푸틴이 영원히 대통령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 위한 하나의 의식”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북부 도시 아르한겔스크의 시장을 지낸 돈스코이는 9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는 2008년 대선 출마 계획을 발표한 뒤 날조된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에선 한 사람이 차르처럼 평생 권좌를 지키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들은 당국에 대해 철부지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 ‘슈퍼 푸틴’ 전시회는 바로 그런 점을 반영한다. 수소문해보니 진정으로 푸틴을 끔찍히 좋아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를 큐레이터로 선정해 이 전시회를 ‘검열’하도록 부탁했다.”
특이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오래 지속되는 통치에 대처하는 한 가지 방식임은 분명하다. 그 외 좀 더 실용적인 접근법을 취하는 방식도 있다. 지난 1월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푸틴의 선거대책본부가 문을 열었을 때 ‘강한 대통령 강한 러시아’라는 표지판 곁에 수십 명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대다수는 주택 등 개인적인 문제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올레그라는 한 고령자는 “푸틴이 나를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움을 못 준다고 해도 그에게 투표하겠다. 난 애국자다.”
나탈리아 셰브초바도 거기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중년인 그녀는 2006년 모스크바 남부에 짓는 아파트에 평생 모은 저축을 전부 털어 투자했다. 그러나 아파트는 아직 골조도 올라가지 않았다. 셰브초바는 정부 관리들이 자신의 투자금 회수에 도움을 줄 수도 없고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 남은 희망은 러시아의 오랜 지도자인 푸틴 대통령뿐이라고 그녀는 믿는다. “난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나? 러시아는 독재 국가다. 나에겐 달리 선택할 대안이 없다.”
- 마크 베네츠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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