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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월드컵 야망

푸틴의 월드컵 야망

세계 최대 스포츠 행사 개최 성공으로 러시아 이미지 제고 노리지만 크렘린의 적들은 정권 치부 들춰내는 기회로 활용하려고 애써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팀이 우승했다(왼쪽). 크렘린에서 2017 FIFA 컨페더레이션 컵 경기에 사용될 축구공을 차보는 푸틴 대통령. / 사진:XINHUA-NEWSIS
널찍한 크렘린궁 사무실에서 축구공이 솟아오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을 노려보다가 적시에 멋진 헤딩을 날린다. 그의 반대쪽에 있는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되돌아오는 공을 무릎으로 살짝 튕겨 올린 뒤 이 발 저 발로 옮기며 드리블 묘기를 보인 뒤 푸틴 대통령에게로 다시 차 보낸다. 두 사람 모두 정장 차림이다. 러시아에서 처음 개최되는 월드컵의 홍보 동영상 중 일부다.

그 동영상을 찍은 지 몇 주 뒤인 지난 5월 푸틴 대통령과 인판티노 회장은 2014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러시아 흑해 연안의 도시 소치에서 다시 만났다. 그들은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을 둘러봤다. 4만8000석 규모의 이 스타디움은 오는 6월 14일부터 7월 15일까지 11개 도시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를 치를 목적으로 러시아가 새로 짓거나 개조한 12개 경기장 중 하나다. 러시아 정부는 월드컵 개최 준비에 약 190억 달러를 썼다. 지금까지 열린 월드컵 중 가장 많은 비용이 투입된 대회로 꼽힌다.

푸틴 대통령이 열성 축구팬이라서 그럴까? 아니다. 사실 그는 유도와 아이스하키를 좋아하지 축구는 별로다. 하지만 그는 월드컵 개최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싶어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크렘린은 시리아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뿐 아니다. 영국에서 러시아인 이중첩자를 독살했고 또 독살을 기도했다는 의혹도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에서 선거에 개입했다는 혐의도 짙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파할 플랫폼으로선 이보다 나은 게 없다. 월드컵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스포츠 대회이기 때문이다.
크렘린에서 2017 FIFA 컨페더레이션 컵 경기에 사용될 축구공을 차보는 푸틴 대통령. / 사진:AP-NEWSIS
러시아 소재 싱크탱크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의 정치분석가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는 “러시아가 강대국임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 푸틴 대통령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군사력 만이 아니라 국제행사를 세계적 수준으로 치를 수 있는 능력도 과시하고 싶어 한다. 아울러 월드컵은 그의 강철 같은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크렘린은 오랫동안 국제 스포츠 행사를 선전 목적으로 이용했다. 소련은 수십 년에 걸쳐 자국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딴 메달을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자랑했다. 그런 노력 중 일부는 사악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 개최되기 직전 소련 당국은 반체제 인사와 장애인 등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사람들을 시외로 쫓아내고 대회 기간 중 시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2014년 러시아가 소치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면서부터는 푸틴 대통령이 공산주의 시절의 선전을 현대판으로 업그레이드했다. 크렘린은 수십억 달러를 스타디움 건설 등 올림픽 준비에 쏟아부었다. 정확한 액수는 아무도 모르지만 역대 가장 비싼 올림픽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야권은 크렘린이 올림픽을 이용해 방대한 부패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소치 올림픽을 소련 붕괴 후 다시 태어난 ‘새로운’ 러시아의 상징으로 일컬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트로피 곁에 선 영국 윌리엄 왕자. / 사진:AP-NEWSIS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러시아 선수들은 메달 집계에서 1위를 차지했고, 세계 언론은 소치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 행사를 호평했다. 대회 직전 일부 부정적인 보도가 있었지만 러시아는 언론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과의 공조로 이슬람주의 테러단의 계획된 공격을 사전에 차단했다고 자랑했다. 그 후 크렘린의 주도로 러시아 선수의 조직적인 도핑이 이뤄졌다는 스캔들이 터졌지만 적어도 대다수 러시아인에겐 푸틴 정부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성과가 돋보였다.

이제 세계의 최고 축구 스타들과 약 60만 명의 외국 관광객이 2018 월드컵이 열리는 러시아로 향하면서 푸틴 대통령은 소치 올림픽의 성공을 재연하고자 한다. 러시아 월드컵 조직위원회를 이끄는 아르카디 드보르코비치 위원장(전 에너지 담당 부총리)은 지난 5월 30일 “수 세대에 걸친 러시아인의 꿈이 이뤄지고 있다”며 “소치 올림픽을 통해 우리가 손님을 잘 맞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월드컵은 세계적인 규모에서 동계올림픽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규모가 큰 만큼 위험도 크다. 이슬람주의 과격단체의 공격부터 인권 유린까지 숱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런 어려움을 잘 아는 크렘린은 월드컵 개최와 관련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만전을 기하려고 안간힘이다.
 ‘너희 피가 경기장을 채울 것’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 / 사진:XINHUA-NEWSIS
대표적인 위협으로 지난 4월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지지자들이 제작한 동영상을 보자. IS 전사가 자동소총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자 근처에서 폭탄이 터지면서 월드컵 경기장이 연기에 뒤덮인다. 그 배경에서 저격수 소총 조준경의 십자선에 연단 위의 러시아 대통령이 들어온다. ‘알라를 믿지 않는 푸틴은 무슬림을 살해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고야 말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자막으로 깔린다. 온라인으로 유포된 다른 동영상에선 IS 전사들이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포함한 세계 최고의 축구 스타들을 참수한다. ‘너희 피가 경기장을 가득 채울 것이다’라는 자막으로 뜬다.

지난 약 1년 동안 IS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패퇴하면서 거점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SNS와 암호화되는 메신저 서비스를 사용해 지지자들에게 월드컵 경기장의 관중을 공격하라고 촉구했다. 분석가들은 경기장 내부의 보안과 경계는 철저하겠지만 경기장 주변에 팬들이 몰리는 구역은 경비가 힘들어 IS의 사주를 받은 ‘외로운 늑대’의 공격에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복잡한 계획이 필요 없는 그런 테러 공격은 영국 런던과 맨체스터, 스페인 바르셀로나 외에 러시아에서도 발생해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IS가 월드컵 공격을 예고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러나 보안 분석가들은 IS로선 월드컵이 너무도 매력적인 표적이라 포기할 수 없을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특히 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거점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에 월드컵을 노릴 가능성이 더 크다. 영국 런던 소재 시장조사·정보분석 업체 IHS 마킷 산하 제인스 테러·저항 센터를 이끄는 매튜 헨만 소장은 “IS가 러시아 월드컵을 공격하면 그 전사들과 지지자들로선 엄청난 선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주된 위험 중 하나는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귀국한 노련한 러시아 출신 전사들이다. 그들은 실전을 경험했을 뿐 아니라 급조폭발물(IED)도 설치할 줄 안다. 러시아 보안 관리들에 따르면 러시아인 약 4000명(주로 체첸을 비롯한 북캅카스 지역 출신)이 중동에서 IS 대원으로 전투에 참가했다.

러시아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의 공격은 북캅카스 지역에 뿌리를 두지만 IS에 충성하는 전사들은 그 지역을 벗어나 공격할 능력을 갖췄다.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곳 중 공격 대상이 될 만한 도시가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약 400㎞ 떨어진 니즈니노브고로드다. 그곳 경기장에선 아르헨티나·잉글랜드·스웨덴 팀 등이 경기를 펼칠 예정이다. 지난 5월 4일 IS 전사 한 명과 경찰이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총격전을 벌여 경찰관 3명이 부상했다. 그 전사는 월드컵이 열릴 경기장으로부터 약 14㎞ 떨어진 아파트에서 대치하다가 보안군에 의해 사살됐다. 2월과 지난해 11월에도 러시아 보안군은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공격 음모를 꾸미던 IS 대원들을 사살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마리아 자하로바 대변인. / 사진:AP-NEWSIS
온라인 뉴스매체 캅카스 노트(주로 러시아 내부에서 이슬람주의 무장단체의 활동을 모니터한다)의 편집장 그리고리 슈베도프에 따르면 러시아 남부의 월드컵 경기 개최 도시도 위험에 노출됐다. 최근 북캅카스 지역의 러시아 정교회를 표적으로 한 최근의 공격은 IS가 ‘민감한’ 표적을 공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특히 북캅카스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도시 볼고그라드가 표적이 될 수 있다.

러시아·스페인·사우디아라비아·이란 팀이 경기를 할 예정인 그곳에서 지난해 11월 IS가 사주한 공격으로 경찰관 2명이 흉기에 찔려 입원했다. 2013년 12월엔 볼고그라드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의 자살폭탄 공격 2건이 동시에 발생해 34명이 숨졌다. 그 공격은 지금은 해체된 이슬람주의 무장단체 캅카스 에미레이트의 소행이었다. 그 단체의 대원들은 그 이래 IS에 충성을 맹세했다.

이런 잠재적 위협에 대비해 크렘린은 대테러 작전을 강화한다.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FSB 국장은 지난 1~4월 12개의 테러리스트 세포를 제거했고 테러 용의자 189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또 FSB는 월드컵이 열리는 한 달 동안 화학공장을 비롯한 고위험 공장에 임시 폐쇄를 지시했다.

그러나 러시아 보안 관리들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테러 공격 사전 차단에 성공했다며 이번 월드컵 경기도 안전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슈베도프 편집장은 “소치 올림픽은 IS가 러시아에서 거의 활동하지 않았을 때 열렸지만 지금은 그들이 특히 북캅카스 지역에서 매우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지적했다.

IS는 2015년이 돼서야 러시아에서 첫 공격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러시아 남부의 관광지를 표적으로 한 공격에서 1명이 숨졌다. 그 이래 IS는 잇따른 폭탄테러와 총격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캅카스 노트에 따르면 북캅카스에서만 그런 테러 공격이 20건에 이르렀다.

또 월드컵에선 소치 올림픽보다 잠재적 표적이 훨씬 많다. 체코 프라하 소재 국제관계연구소의 러시아 보안 전문가 마크 갈레오티는 “동계올림픽은 한 도시에서만 열려 안전을 확보하기가 용이했지만 월드컵은 사람도 너무 많이 몰리고 경기도 너무 많은 곳에서 열린다”고 말했다. “테러 공격을 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반드시 경기장이 아니라 경기장 부근의 버스 정류장 같은 표적을 공격하면 된다. 그런 공격이 곧바로 월드컵 공격이 된다.”
 ‘스탈린 시절의 전시 재판’
새로 지은 월드컵 스타디움인 사란스크의 모르도비아 아레나. / 사진:AP-NEWSIS
급진 이슬람주의 무장단체만이 자신의 명분을 알리는 기회로 월드컵을 이용하려는 것은 아니다.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푸틴 대통령의 비판자들은 “러시아에서 인권 유린이 만연한다”고 주장하며 그런 상황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한다. 그들이 지적하는 인권 탄압 중 하나가 정적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 주도의 폭력이다.

크렘린은 비판자들의 그런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러시아 당국은 앞으로 7월 25일까지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모든 도시에서 시위를 금지했다. 국제 언론 앞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막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분석가들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시위 금지법을 발효하기 전에도 공개석상의 정책 항의를 막으려고 애썼다.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야권 지도자이며 반부패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시위 관련 혐의로 지난 5월 15일 체포돼 1개월 징역형을 살고 있다. 그의 동료 세르게이 보이코와 루슬란 샤베디노프도 5월 말 체포돼 역시 1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나발니의 대변인 키라 야르미시는 25일 징역형을 살고 있다. 그들의 죄목은 시위 관련 소식을 트위터로 전한 것이다.

반(反)푸틴 펑크록 밴드로 유명한 푸시 라이엇의 멤버 마리아 알료키나는 “월드컵은 보안기관을 동원해 구축한 푸틴 대통령의 영원한 제국을 축하하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드컵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러시아의 실상을 바로 알아야 한다. 시위대가 구타당하고, 경찰서나 교도소에서 고문이 자행되며, 정치범이 아주 많은 나라라는 사실 말이다.”

그런 정치범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인물이 올레그 센초프다. 우크라이나 출신 영화감독인 그는 2015년 테러 혐의가 인정돼 러시아 군사법정으로부터 30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센초프 감독은 그 판결이 크렘린의 크림반도 합병에 자신이 반대한 데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그는 러시아군이 크림반도를 침공했을 때 기지 안에 포위당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식량을 제공했다). 검사 측은 그와 동료 알렉산드르 콜첸코가 러시아 집권여당 통합러시아당 크림반도 사무실과 공산당 사무실 입구에서 방화를 저질렀으며, 크림 공화국 수도인 세바스토폴에 있는 레닌 동상을 폭파하려는 음모도 꾸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야권 인사들은 검사 측이 제시한 증거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검사 측의 주요 증인도 증언을 철회하며 수사관들이 그들의 범행을 목격했다고 말하도록 자신을 고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정은 보안군에 구타당했다는 센초프의 말을 무시하고 그의 몸에 나타난 멍과 할퀸 자국이 변태 성행위 때문이라는 검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국제 앰네스티는 센초프의 재판을 ‘스탈린 시대의 전시(展示) 재판’과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켄 로치, 마이크 리, 빔 벤더스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유명한 영화감독들은 센초프의 석방을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푸틴 대통령에게 보냈다.

인권단체들은 우크라이나인 약 70명이 정치적인 혐의로 러시아와 크림반도에 억류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크렘린은 그런 우크라이나인이 한 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모스크바에서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기 한 달 전인 지난 5월 14일, 센초프는 “러시아 영토에 억류된 우크라이나 정치범 전원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다른 운동가들도 월드컵을 계기로 자신의 명분을 알리려고 애쓴다. 14개 인권단체는 지난 5월 FIFA에 공개 서한을 보내 러시아의 대표적 인권단체 메모리알의 체첸 지부 대표 오유브 티티예프를 석방하도록 러시아에 압력을 넣으라고 촉구했다. 체첸에선 월드컵 경기가 열리지 않지만 FIFA는 수도 그로즈니를 이집트 팀의 훈련 기지로 승인했다.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로 러시아 월드컵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난 비탈리 무트코 러시아 체육부 장관. / 사진:AP-NEWSIS
체첸 경찰은 지난 1월 티티예프를 대마초 170g 소지 혐의로 체포했다. 그는 10년 징역형을 선고 받을 수 있다. 지지자들은 그 혐의가 체첸 자치공화국의 독재자인 람잔 카디로프 수반에 충성하는 관리들의 지시에 의해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체첸의 내무차관 아프티 알라우디노프는 카디로프 수반의 ‘정적’들을 유사한 전술로 죄를 씌우도록 경찰에 독려한 적이 있다. 우연히 체첸 TV에 방송된 언급에서 그는 “그들의 호주머니에 증거를 심으라”고 말했다. 티티예프가 체포되기 직전 체첸의 이웃 자치공화국인 인구셰티아에선 복면 괴한들이 메모리알의 사무실에 불을 질렀다. 카디로프 수반의 대변인은 논평 요청에 회신하지 않았다.

메모리알은 1989년 소련 반체제 인사들이 설립한 인권단체로 소련 시절의 탄압과 현대의 인권 유린을 폭로함으로써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메모리알 측은 현재의 탄압이 시작된 것은 카디로프 수반이 지난해 12월 인스타그램 계정을 폐쇄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메모리알 설립자 중 한 명인 올레그 오를로프는 “그는 ‘인스타그램 계정 폐쇄로 내 이미지에 먹칠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번 기분이 상하면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자신에게 방해되는 사람은 무조건 파멸시켜야 한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12월 카디로프 수반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사법절차 없는 초법적 처형을 포함한 인권 유린이 그 이유였다. 인스타그램을 소유한 페이스북은 미국 재무부의 결정에 따라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300만 명이 넘었고, 그의 계정엔 크렘린 비판자들을 협박하는 내용의 글이 들어 있었다. 오를로프는 “메모리알이 체첸에서 자행되는 인권 유린을 밝힐 수 있는 극소수의 단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카디로프 수반과 그의 측근들이 우리를 보복의 표적으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가 돼서야 인권 정책을 도입한 FIFA는 티티예프의 체포에 우려를 표명했지만 이집트 팀의 훈련 기지를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라는 요구는 거부했다.

메모리알 회원들은 티티예프 사건에 국제적인 이목이 집중되면 푸틴 대통령이 어쩔 수 없이 체첸 당국에 그의 석방을 지시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분석가들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카디로프 수반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푸틴 대통령이다(카디로프 수반은 푸틴 대통령을 너무 좋아한다고 자주 말했다). 메모리알 체첸 지부의 전 대표 카티야 소키리안스카이아는 “크렘린으로선 월드컵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FIFA 같은 국제 기구가 티티예프 사건에 관심을 가지면 푸틴 대통령이 개입해 그를 석방시킬 것이라고 기대한다.”
 훌리건을 저지하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당시 세바스토폴 검찰청 입구 앞에 세워진 장갑차. / 사진:AP-NEWSIS
크렘린 비판자 중 일부는 월드컵을 이용해 자신들의 불만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지만 국제사회의 월드컵 보이콧을 촉구함으로써 푸틴 대통령이 중시하는 이 대회를 완전히 망치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개막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어느 국가도 참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러시아 정보장교 출신으로 영국 MI6의 이중첩자였던(크렘린은 부인한다) 세르게이 스크리팔을 독살하도록 푸틴 대통령이 명령을 내렸다고 믿는 영국도 세계 최대의 축구 대회인 월드컵에 불참할 생각은 없다. 영국 정부는 전면 보이콧 대신 월드컵에 공식 대표단 파견을 거부했다. 영국 왕실도 월드컵을 무시한다.

영국 외에 모스크바 월드컵 개막식에 정부 대표단 파견을 거부하는 나라는 아이슬란드뿐이다. 푸틴 대통령은 개의치 않을 듯하다.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의 콜레스니코프 분석가는 “푸틴 대통령은 서방과의 긴장 관계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대표단이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선수들이 오는 것이다.”
시리아에서 어린이를 구출하는 반군 속 방위대원. / 사진:AP-NEWSIS
그 외에도 중요한 점은 팬, 특히 러시아 열성 축구팬들이 스탠드에서 점잖게 구는 것이다. 근년 들어 극우 지지자들이 경기장에서 나치 깃발을 펼쳤다. 2010년엔 무슬림이 지배적인 북캅카스 지역의 주민이 축구팬 한 명을 살해한 뒤 축구 훌리건과 극우 국수주의자 수천 명이 붉은광장 부근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그 후 러시아 축구 관리들은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지난해 그들은 러시아 국가대표팀 주장 출신인 알렉세이 스메르틴을 인종차별 근절 대사로 임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 있다. 지난 3월 러시아 축구팬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하던 프랑스 팀의 우스만 뎀벨레, 은골로 칸테, 폴 포그바 선수에게 인종차별적인 야유를 퍼부었다. FIFA는 러시아 측에 벌금 3만 달러를 부과했다. 유럽 축구의 인종차별 행위를 감시하는 페어 네트워크의 파벨 클리멘코는 “최근 몇 달 간의 사건을 보면 러시아에서 인종차별이 여전히 축구팬 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틴 대통령 반대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 사진:AP-NEWSIS
프랑스에서 열린 유로 2016 대회에서 난동을 부린 축구 훌리건들은 러시아에서 악명 높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는 보안군이 그런 폭력사태의 재발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푸틴 대통령에게 월드컵이 너무나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축구 훌리건 내부의 소식통들에 따르면 경찰은 잘 알려진 말썽꾼들에게 국가 이미지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면 오랜 기간 옥살이를 각오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축구 열성팬들: 러시아 훌리거니즘의 과거와 현재(Football Fans: The Past and Present of Russian Hooliganism)’의 저자 블라디미르 코즐로프는 “법집행 기관들이 최근 경기장의 폭력 근절에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고 말했다. “월드컵에서도 그들이 폭력 사태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것으로 믿는다. 팬들이 모스크바 교외로 나가 난동을 부린다면 혼줄이 날 것이다.”
 홈그라운드의 이점
지난해 12월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슈퍼마켓. / 사진:AP-NEWSIS
월드컵을 둘러싸고 급진 이슬람주의 무장단체의 위협과 지정학 논쟁이 난무하면서 월드컵이 스포츠 행사라는 사실이 잊혀지기 쉽다. 러시아 팬들은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들이 러시아에 와서 경기한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그러나 러시아 국가대표팀이 우승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러시아는 월드컵에 참여하는 대표팀 중 하위에 속한다. 소련 해체 이래 러시아 팀은 월드컵 예선도 통과한 적이 없다. 모스크바의 축구팬들은 “러시아가 탈락하고 나면 누구를 응원하겠는가?”라며 자조적인 농담을 주고받는다.

크렘린이 월드컵 경기 자체에 영향력을 미칠 순 없다. 그러나 FIFA가 약간만 도와준다면 다른 모든 면에선 대회를 철저히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소한 일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푸틴 대통령과 인판티노 회장이 축구공을 서로 주고받는 홍보 동영상이 좋은 예다. 인판티노 회장은 축구를 잘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축구 실력은 교묘한 영상 편집으로 크게 과장됐다는 지적이 있다. FIFA는 이 동영상에 관한 논평 요청에 회신하지 않았다.

러시아 작가이자 축구팬인 빅토르 셴데로비치는 “크렘린으로선 러시아가 월드컵처럼 큰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는 능력을 세계에 입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축구는 두 번째다. 푸틴 대통령에겐 선전이 최우선이다.”

- 마크 베네츠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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