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치료의 미래 아프리카에 있다
암치료의 미래 아프리카에 있다
그동안 유전자 연구는 구미인의 DNA를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검은 대륙은 오랜 인류의 역사 가진 만큼 유전적 다양성도 훨씬 더 풍부해 찰스 로티미는 2005년께 미래의 물결에서 뒤로 밀려나고 있음을 처음 깨달았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최근 인간 DNA의 전체 염기서열 해독을 완료한 참이었다. 그와 같은 돌파구가 마련된 이후 전 세계 6개국의 과학자들은 혈액샘플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불치병을 포함해 각종 질환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찾으면 치료제 개발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그런 수집 노력을 이끌던 로티미는 과거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자신보다 조국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아프리카의 환자들은 과학 실험에서 조사 대상으로 이용되면서도 가난 때문에 최신 의학발전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로티미는 유전학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의 HIV·결핵·말라리아·암 치료제의 필요성을 외면하면서 현지 주민 10억 명을 착취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유전체 혁명이 아프리카를 건너뛰면서 미래의 의학이 인류 전체에 주효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분히 근거 있는 우려였다. 지난 수년간 과학자들은 인간 DNA에 관해 무수한 발견을 쏟아냈다. 당뇨·암·정신병과 기타 중증 질환의 새 치료제를 낳을 수 있는 발견이었다. 그러나 그런 발견은 세계의 작은 일부분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뤄졌다. 발표된 연구논문 거의 모두가 유럽 혈통의 모집단을 토대로 했다. 2009년까지 수백 건의 유전체 조사 중 아프리카인이 포함된 비율은 1%에도 못 미쳤다.
유전체학 혁명은 곧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각 환자의 정확한 유전적 구성을 알게 되면 개인별 맞춤 치료의 신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그것은 질병 발생이나 약물 반응과 상관관계를 가진 인간 DNA의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느냐에 달렸다. 이 같은 과업에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으로부터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유전체학 연구는 숲 전체로 뻗어나가기는커녕 킬러의 흔적을 찾아 똑같은 나무 몇 그루 주위를 뱅뱅 도는 수색작업과 같아진다.
풍부함을 자랑하는 아프리카 유전체는 인류 진화의 산물이다. 현생 인류 호모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 약 10만 년 뒤 (최소 2만 명을 훨씬 넘을 수 있는 모집단 중) 1600여 명의 남녀가 대륙을 떠나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기 시작해 궁극적으로 유럽 가장 최근에는 미대륙에 이르렀다. 워싱턴대학 유전학자 메리-클레어 킹 연구팀은 지난해 논평에서 ‘다시 말해 현생 인류로서 우리 진화의 체험 중 약 99%가 아프리카에서 이뤄졌다’고 썼다.
마찬가지로 그 시점까지 아프리카 대륙 전반에 걸쳐 존재했던 유전적 다양성은 무엇이 됐든 그 소그룹이 이주했을 때 거의 고스란히 그 자리에 남았다. 그리고 아직도 각 아프리카인의 유전자 안에 잠복해 있다. 이는 유전체 연구에서 아프리카가 배제된 것에 로티미가 그렇게 실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피부 속은 우리 모두 같은 아프리카인”이라고 말했다.
로티미의 견해에 동의하는 과학자가 갈수록 늘어난다. 암과의 싸움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아프리카에 있다는 생각이다. 바로 아프리카인의 DNA다. 유전학과 의료격차를 전공하는 나이지리아 태생 과학자인 로티미는 유전체 연구에서 아프리카인을 배제시킨 결과를 몇 년 전 다른 많은 과학자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조치를 취할 만한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나이지리아 4대 도시 베냉 시티에서 태어난 로티미는 미국에 도착했을 때 상당히 큰 의료격차를 목격했다. 그는 미시시피대학(일명 올 미스)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부유층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다. 이곳에서 빅맥을 처음 경험했다. 그는 “그냥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며 “빵·고기·이파리 같은 것을 함께 섞어 먹는 개념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주를 여행하며 맛본 불평등은 더 쓴맛을 남겼다. 그는 “자원이 풍부한 환경 속에서 자기 것은 없는 듯할 때 빈곤의 울림이 아주 크게 들린다”고 말했다.
그는 석사학위를 들고 나이지리아로 돌아갔지만 6개월 동안 일자리를 찾아다니고도 연구에 참여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공중보건과 역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기간 동안 유전자가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더 깊이 인식하게 됐다. 나이지리아에서의 성장과정에서 이미 경상적혈구병(sickle cell disease)은 선천적인 것이지 후천적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전 세계 아프리카인 사이의 고혈압에 관한 연구를 통해 라이프스타일과 환경이 건강에 좌우되지만 DNA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로티미 박사가 유전의 위력을 알아가는 동안 과학자들은 최초의 인간 유전체 염기서열 해독에 접근하고 있었다. 모든 인간 세포의 핵 안에 팽팽하게 감긴 유전체는 약 2만 개 유전자로 이뤄진다. 우리 체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다수의 생체 내 작용을 인도하는 단백질을 암호화한다. 나아가 유전자는 DNA로 이뤄진다. DNA는 염기라는 화학물질이 담긴 뉴클레오티드라는 나선형 화합물 가닥이다. 일반적으로 A CT G라는 이니셜로 알려진 이들 4가지 염기는 각 개인 특유의 청사진을 구성하는 유전정보의 언어다. 인간의 유전체 다시 말해 개인 유전자의 전체 세트는 30억 쌍의 염기로 이뤄진다.
2003년 종료된 인간게놈프로젝트는 한 개인의 유전체 염기 서열을 대부분 해독했다(당시 로티미 박사는 워싱턴 D.C.의 하워드대학에서 미생물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염기서열 분석 자체보다는 개인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기술이 혁신적인 발전이었다. 연구를 통해 질병이나 약물반응을 결함 유전자와 연결할 수 있다면 각 환자 특유의 유전체를 중심으로 맞춤 치료를 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 이르려면 개인에 따라 유전체가 어떤 식으로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DNA 중 차이가 생기는 그 몇 분의 1%가 다수의 유전 질병과 이상의 원인일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믿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서 하나가 아닌 다수의 유전자를 조사해야 했다.
그들이 찾는 변화는 인간 유전체 내 30억 쌍의 염기 중에서 단일 염기의 변화(A에서 C 또는 G에서 T로의 변이)였다. 아기가 생길 때 또는 우리 일생 동안 세포가 분화될 때 DNA 복제 중 그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단일염기다형성(SNP)으로 알려진 이들 변이는 종종 무해하지만 때때로 유전자의 기능에 영향을 미쳐 특정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잘못된 SNP는 대표적으로 알츠하이머, 특정 혈액질환, 남성불임, 암에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일단 유전체의 일부가 되면 다음 세대로 대물림될 수 있다.
정밀의학은 문제의 SNP를 찾아내면 그것이 위치한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과학자들은 그런 돌연변이를 찾기 위해 다른 많은 사람의 전체 유전체를 서로 비교하는 연관분석 조사를 실시한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되고 개별 유전체의 염기서열 분석 비용이 낮아진 뒤 이들 유전체 전체의 연관분석 조사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다양성 문제가 있었다. 거의 어떤 조사에도 아프리카인의 유전체가 포함되지 않았다. 10만년 전 처음 아프리카를 떠난 1600여 명은 SNP를 물려받은 상태로 이동했다. 그러나 실상 알고 보니 훨씬 더 많은 유전적 다양성을 뒤에 남겼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남은 사람이 더 많았으니 세대가 거듭되면서 더 많은 유전체가 더 많은 변이를 만들어낸 셈이다. 아프리카인의 가계도가 유럽인과 미주인보다 훨씬 더 오래 가지를 뻗어왔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변이를 갖고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주민은 지상 어느 대륙 주민보다 다양한 유전체를 보유한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유전학자 세라 티슈코프는 “유럽과 아시아 주민을 서로 비교했더니 우리가 살펴본 어떤 두 아프리카 인구집단보다 더 가까웠다”고 말했다.
문제를 일으키는 SNP의 모색과정에 아프리카를 포함시키는 데는 여러 가지 중대한 이점이 있다. 암 같은 질병과 관련된 SNP는 대체로 희귀하며 암 환자의 유전체에서 발견된 희귀 SNP를 이용해 양자 간의 연관성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유럽인의 유전체에선 특이한 돌연변이처럼 보이더라도 아프리카인을 포함시킬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남아공의 케이프타운대학에서 유전 데이터를 분석하는 니콜라 멀더 연구원은 말한다. 그런 실수로 인해 수년 간의 노력과 많은 돈이 허비될 수 있다.
일단의 과학자가 한때 5종의 유전적 변이가 심장을 위험할 정도로 두껍게 만들었다고 가정하고 그런 변이를 가진 사람의 DNA가 심장 이상 위험을 유발한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가정은 틀렸다. 그 5가지 변이는 전혀 희귀하지 않았으며 실제론 아무런 해가 없었다. 연구 대상에 아프리카 주민을 포함 시켰다면 그런 실수가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인의 유전체는 유럽인과 미주인에 비해 연구용으로 훨씬 더 적합하다. 역시 오랜 혈통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유전 물질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대물림되는 동안 SNP가 덩어리로 뭉치는 경향을 보여 과학자들이 찾아 내기가 더 쉬워진다. 결과적으로 오래된 유전체 다시 말해 아프리카인의 유전체에서 찾아내기가 더 용이하다. 티슈코프 교수는 “그것은 모든 인구집단에 유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이처럼 뭉치는 현상 덕분에 유전학자들이 나쁜 LDL 콜레스테롤 관련 유전자와 염증 관련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프리카인의 유전체는 다른 어떤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환경위협에 부대껴 왔기 때문에 병에 관한 결정적인 단서가 담긴 몇 가지 놀라운 특성을 나타내게 됐다. 어떤 위험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덜 해롭고 새로운 특성을 수반할 수도 있다. 경상적혈구빈혈(sickle cell anemia)을 예로 들어보자. 이 증상과 관련된 유전자는 말라리아를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또 다른 돌연변이는 아프리카 수면병(African sleeping sickness)과 관련된 기생충에 대한 면역력을 부여하지만 또한 신장병 위험을 키우기도 한다.
사람들이 일부 위협을 이겨내도록 하면서도 암에 쉬 걸리게 하는 돌연변이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고 티슈코프 교수는 설명한다. 그리고 그런 위협은 가령 동아프리카에서 북미로 이주하면서 사라졌지만 변이는 남았다. 이런 역사적 돌연변이는 암이 어떻게 또는 왜 진화하는지 이해하는 데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로티미 박사는 “아프리카인의 유전체에 존재하는 방대한 유전적 변이를 감안할 때 암에 중요하지만 다른 인구 집단에선 발견되지 않는 유전적 변이를 찾아낼 수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유전체가 인류 전체의 과거를 되찾을 수 있게 할 수 있듯이 위험한 미래로부터 우리를 구제할 수도 있다. 일부 유전적 기형은 우리 몸이 약물에 반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약물유전체학(pharmacogenomics)으로 알려진 분야다. 예컨대 한 가지 변이는 HIV 감염자의 항레트로바이러스 약에 대한 내성을 떨어뜨린다. 이 같은 발견으로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 전체의 치료제 처방이 바뀌고 있다. 또 다른 변이는 유방암 치료제 타목시펜의 작용을 방해한다. 유전체가 다양할수록 치료제의 선택을 좌우할 만한 돌연변이를 발견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티슈코프 교수는 “아프리카에서 유전체 연구의 확대는 아프리카 혈통인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로티미 박사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끝나기 전부터 아프리카가 배제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품었다. 2002년 그는 하워드대학 국가인간게놈센터에서 역학 연구를 이끌고 있었다. 그해부터 세계 각지에서 유전체를 수집해 인간 유전자 변이의 범위를 기록하는 노력의 아프리카 파트도 이끌었다. 그 초창기부터 프로젝트에서 아프리카 과학자들이 맡는 역할이 제한적인 데 로티미 박사는 낙담했다.
2004년 게놈센터를 이끄는 동안 그는 아프리카 인간유전학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그런 우려에 대처하려는 취지로 결성된 단체다. 2006년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학회의 첫 회 안건은 유전체 연구에서 아프리카의 낮은 참여도(DNA와 과학자 모두)로 채워졌다. 1년 뒤 카이로에서 열린 2차 회의에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이끌었고 현재 미국국립보건원(NIH) 원장인 유전학자 프랜시스 콜린스가 참석했다. 그런 우려가 아프리카를 기반으로 하는 게놈 프로젝트 아이디어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자리였다.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암 발병률 증가도 긴박감을 더해줬다. 근년 들어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지역 전반적으로 유방암·전립선암·자궁경부암 유병률이 증가했다. 감염병으로 인한 조기사망 탈피와 서구화된 라이프스타일 전환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이제 아프리카의 연간 암 발생률이 2030년에는 127만 건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아프리카계가 아닌 주민을 대상으로 테스트된 약품으로 아프리카인 환자를 치료하는 관행이 설상가상으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유전자 연구에 아프리카 DNA를 포함시키면 그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로티미 박사는 “이런 훌륭한 도구에서 아프리카가 배제되면 열악한 건강 상황이 더 악화되리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로티미 박사가 수년 전부터 울려온 경고음은 2009년 유전체 연구에서 아프리카 DNA의 결여를 폭로하는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NIH 산하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는 이런 조사에서 유럽혈통 집단의 지나치게 높은 비중을 모니터하기 시작했다. 에릭 그린 NHGRI 소장은 “우리가 실시한 연구 중 유럽계의 직계 혈통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연구의 비중이 너무 높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편견을 “커다란 전술적 오류”로 일컫는다. 그해 로티미 박사는 그런 오류를 바로잡을 뿐 아니라 과학자들의 대륙 아프리카 개혁 프로젝트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2010년 아프리카의 유전학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는 로티미 박사의 노력에 NIG가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서방의 연구에 아프리카를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그는 동료들과 함께 직접 연구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로티미 박사는 아프리카 중심의 연구에는 염기서열 수집과 SNP 목록 작성 이상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았다. 그런 연구에 대한 자금지원은 흔치 않았다. 아울러 아프리카 대륙 전반적으로 보건의료 서비스의 개선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 연구의 실제적인 응용이 우선과제였다. 그리고 아프리카인을 대상으로 신약과 기술을 테스트한 과거의 연구가 주민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던 쓰라린 기억도 남아 있었다. 로티미 박사는 “아프리카 주민에게 중요한 문제의 해결에 그 자금이 쓰이도록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고 말했다.
훗날 로티미 박사가 ‘아프리카의 인간 유전·건강(Human Heredity and Health in Africa)’ 즉 H3아프리카로 명명한 그 프로젝트는 그가 꿈꾼 대로 아프리카인의 유전체 연구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이룰 것이다. 아프리카의 과학자들이 아프리카의 연구기관 안에서 아프리카 주민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을 주는 대대적인 연구 노력을 벌이게 된다. H3아프리카는 아프리카와 유럽·북미 과학자들을 동등한 위치에 서게 만들 것이다. 나이지리아의 유전학자가 하버드대학의 유전학자와 연구 지원금을 놓고 경쟁을 벌여 돈을 따낼 수 있다. 그런 접근방식은 과거의 실망스러운 패턴을 피하고 대신 아프리카 지역사회에 직접적인 혜택을 주게 된다. 쉽게 말해 H3아프리카의 등장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유전체학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뿐 아니라 초창기처럼 아프리카가 소외당하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영국에 본부를 둔 민간 자선단체 웰컴 트러스트와 NIH는 5년 주기로 2회에 걸쳐 H3아프리카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2012년 1차 펀딩에서 총 76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H3아프리카는 그 돈으로 지금까지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던 수단·시에라리온·가나를 포함해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29개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자궁경부암 프로젝트에선 여러 나라에서 여성 1만 명의 유전체를 수집한다. 그 악성 종양을 유발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의 위험을 키우는 돌연변이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는 취지다. 남아공 비트워터스랜드대학의 유전학자 크리스토퍼 매튜는 아프리카에선 흔하지만 북미에선 드물게 발생해 연구에서 뒷전으로 밀려는 식도암을 연구한다. 그는 “과거에는 우리 지역 통화 가치가 낮아 연구가 대단히 어려웠다”고 말했다. 10년에 걸친 지원금 총액은 1억9000만 달러에 육박한다.
그러나 윤리적 딜레마에서 자유로운 유전학 프로젝트의 비전은 그동안 실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비아프리카계 국가들의 자금지원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H3아프리카가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비아프리카계 협력자들의 참가를 허용하는 데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된다. 케이프타운대학의 생명윤리학자 잰티나 드브리스는 “아프리카의 일부 윤리 위원회에선 국제협력이 항상 착취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수십 년 동안 구미의 전문가들이 아프리카를 찾아와 필요한 것만 손에 넣은 뒤 떠나갔다. 이른바 헬리콥터 과학으로 불리는 관행이다.
예컨대 약 10년 전 여러 북미 연구기관의 유전학자들이 4개 산족 커뮤니티 원로들의 DNA 샘플을 채취해갔다. 산족은 지구상에 알려진 가장 오랜 혈통을 지닌 아프리카 남부의 수렵·채집 생활자들이다. 드브리스 교수는 “그들은 말 그대로 찾아와서 샘플을 수거한 뒤 떠났다”고 말했다. 산족 지도자들은 허가도 없이 그런 일을 벌인 데 격노했다. 그 유전체 조사를 발표한 학술지 네이처에 보낸 서한에서 무례하고 모욕적인 행동이라고 규탄했다.
아프리카의 과학자들은 DNA 샘플이나 기타 생체 자료를 확보하는 데 기여하고도 정작 연구에는 거의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의 환자는 자신들의 혈액·타액·조직을 이용해 개발된 약품을 구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전력으로 인해 많은 과학자와 연구 참가 희망자들이 유전학 연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아프리카 출신 흑인 자궁경부암 환자 헨리에타 랙스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과학자들이 그녀의 세포를 이용하고 의학에 널리 사용됐는데 그녀의 가족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하지만 협력자들은 우월한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항상 그렇게 쉽게 양보하려 하지는 않는다. 수년간 H3아프리카의 윤리 문제 실무그룹을 이끌었던 드브리스 교수가 일부 국제적 과학자들로부터 들은 말이 단적인 증거다. 그들은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은 자체적으로 고도의 유전학 연구를 수행할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겼지만 현재 상황을 유지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 그녀는 “힘센 사람과 기관은 그런 논리가 정설로 받아들여질 때 혜택을 본다”며 “그런 사람들은 아프리카 연구 역량의 실질적인 발전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로티미 박사는 그런 사고를 바꾸려 하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 과학자들에게 자립 능력을 부여하고자 한다. H3아프리카가 추구하는 핵심적 목표는 유럽과 북미의 일류 대학에서 나오는 것만큼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연구를 지원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의 구축이다. 그를 위해 모든 H3아프리카 프로젝트의 연구 책임자는 아프리카인이어야 하며 협력자도 그렇게 되면 이상적이다.
그러려면 아프리카 대륙 전반적으로 리서치 역량의 신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단에서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 리서치를 할 만큼 강력한 수단의 컴퓨터, 우간다에서 수면병을 예방하는 SNP에 관한 다량의 데이터를 창출하고 DNA를 저장하는 보관소, 말리에서 유전성 신경질환의 실지조사 기록을 위한 장비, 그와 함께 위험을 키우는 유전적 돌연변이를 규명하는 연구소 그리고 유전학과 질병에 관해 말리 주민에게 교육할 현지 의사 대상 교육훈련 등이다. 보조금 지원이 끝나도 미래의 과학자들이 이용할 설비는 남는다. 그는 “나이지리아에 남기를 원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나 같은 일을 어느 누구도 당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혁신적 발전으로 윤리적 딜레마가 모두 개선되지는 않는다. 헬리콥터 과학에 대한 우려는 그리 쉽게 씻겨나가지 않는다. H3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내 국가간 협력을 장려하지만 리서치 역량이 떨어지는 나라들은 더 앞서가는 나라들을 지원하는 데 소극적이다. 가나의 경우 가난한 연구기관의 일부 과학자는 더 부유한 기관의 과학자들이 공유 샘플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자신들의 공헌을 인정하지 않는 데 불만을 표시한다. 때로는 남아공보다 뉴욕의 과학자들과 공유하는 샘플에 더 많이 기여한다는 과학자들도 있다. 노스캐롤리이나대학의 생명윤리학자 에릭 주엥스트는 “똑같은 문제”라고 말했다. 국제적인 협력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경 너머로 조직 샘플을 보내는 방식이 경제적 경쟁자를 돕는 데 대한 착취 우려와 반감을 초래한다.
H3아프리카는 과학자들이 자신의 표본을 더 오래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그런 우려를 가라앉히려 했다. 유전자 연구의 국제 기준에서는 과학자들이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한다. 그러나 H3아프리카는 23개월 동안 독점하면서 경쟁 없이 자신의 데이터에 관한 리서치를 발표할 수 있도록 인정해 주면서 과학자들을 후원한다. 논문을 발표하면 과학자들의 인지도가 높아져 자금후원이 더 많이 몰리고 나아가 국가 수입도 늘어난다. 생체 샘플의 공유 금지 기간은 더 길다. 드브리스 팀은 2015년 그 프로그램의 정책을 설명하는 논문에서 ‘표본은 3년 동안 아프리카의 리서치 역량을 강화하는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고 썼다.
하지만 개별적인 과학자를 경쟁으로부터 보호한다고 반드시 환자까지 보호를 받는 건 아니다. 환자는 과거 착취의 최대 피해자들이었다. 자신의 조직을 제공하고 더 나은 치료를 기다리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유전학 연구와 관련된 윤리 지침(나라마다 다르며 H3아프리카 자체적으로 엄격한 규정이 있다)에 따르면 환자들이 연구 목적으로 생체 샘플을 기증할 때는 그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준 뒤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각지에서 사용되는 대다수 언어에는 유전자나 생체검사 같은 전문용어를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
그리고 언어장벽을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항상 매끄럽게 이뤄진 건 아니었다. 한 과학자는 좋은 의도에서 눈의 색깔을 예로 들어 유전을 설명하는 교육재료를 개발했지만 갈색 눈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인 아프리카 대륙에선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정보가 너무 전문적일 경우 환자들은 귀를 닫는다고 나이지리아의 아부자대학에서 H3아프리카 후원 유방암 연구를 실시하는 오게추쿠 이쿠웨메 간호사는 말했다. “유전학에 관해 자세하게 말할 때는 사실상 소 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다.”
부족 원로의 허가를 요하는 지역사회의 위계구조와 남녀 역학도 개인의 동의 능력에 제약을 준다. 이런 문제가 각지의 과학 연구에 만연할 뿐 아니라 빈곤, 낮은 교육수준, 열악한 건강의료 서비스, 언어장벽, 문화적 제약 등 아프리카의 전체적 환경이 그런 우려를 증폭시킨다. 로미티 박사는 종종 자신의 조사에 등록하는 여성들에 관한 의문과 씨름한다. “남편이 시켜서 참가하는 건가, 아니면 자발적인 건가?”
그 문제의 해결이 아프리카 대륙뿐 아니라 과학 전체를 위해 H3아프리카의 본질적인 존재가치와 직결된다. 드브리스 교수의 시각으로는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과학적 우월성의 땅으로 바꾸는 것은 “과학적 우월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좌우된다.” 아프리카의 연구소에선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을 24시간 만에 이뤄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월성이 반드시 기술적 역량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드브리스 교수는 “아프리카의 과학자들은 환자와 지역사회의 요구를 훨씬 더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쿠웨메 간호사가 자신의 유방암 환자들에게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이다. 그들은 그녀에게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녀가 자신들에 관심을 갖는지 느끼고자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연구에 마음 편히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아프리카의 전통 지역사회는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한다. 가령 연구에 혈액을 기부할 때 종종 환자 커뮤니티와 상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쿠웨메 간호사는 “이들 환자에게서 정말로 최선을 원한다면 직접 그들과 교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티미 박사가 추구하는 변화를 실현하는 데 성공할지는 불확실하다. 프로그램은 현재 2차이자 마지막 펀딩 단계에 있다. 과학자들은 외부 세계와 보조금 유치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부족했던 정부의 지원 또한 필요하다. 로티미 박사는 세계은행에 지원을 요청했으며 보조금 지원 신청을 받아 아프리카인 과학자들이 심사하는 과정을 관리하는 새 사무국이 현재 케냐 나이로비에서 운영 중이다.
어디서나 과학자들의 운명은 정부의 손에 달렸지만 아프리카의 상황은 특히 더 심각하다. 지금까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대 전역의 국가 정책입안자들은 연구의 가치를 인정해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현재 61세로 H3아프리카를 일생일대의 업적으로 간주하는 로티미 박사는 정치로 인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한다. 그는 “필시 나쁜 정부가 아프리카의 공중보건에 첫 번째 위험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더 큰 위험도 제기한다. 유전체 연구가 2009년 이후 아프리카 DNA에 더 포용적이 됐는지를 검토한 2016년 연구에서 3%의 증가에 그쳤다. 당시 완성된 전 유전체 연관분석 조사 2511건 중 소수인종이 포함된 비율은 19%에 불과했다. 논문 작성자인 워싱턴대학 생명윤리학자 S. 말리아 풀러튼 교수는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역사의 개혁에 의학의 미래가 달렸다.
- 제시카 웨프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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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보다 조국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아프리카의 환자들은 과학 실험에서 조사 대상으로 이용되면서도 가난 때문에 최신 의학발전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로티미는 유전학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의 HIV·결핵·말라리아·암 치료제의 필요성을 외면하면서 현지 주민 10억 명을 착취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유전체 혁명이 아프리카를 건너뛰면서 미래의 의학이 인류 전체에 주효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분히 근거 있는 우려였다. 지난 수년간 과학자들은 인간 DNA에 관해 무수한 발견을 쏟아냈다. 당뇨·암·정신병과 기타 중증 질환의 새 치료제를 낳을 수 있는 발견이었다. 그러나 그런 발견은 세계의 작은 일부분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뤄졌다. 발표된 연구논문 거의 모두가 유럽 혈통의 모집단을 토대로 했다. 2009년까지 수백 건의 유전체 조사 중 아프리카인이 포함된 비율은 1%에도 못 미쳤다.
유전체학 혁명은 곧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각 환자의 정확한 유전적 구성을 알게 되면 개인별 맞춤 치료의 신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그것은 질병 발생이나 약물 반응과 상관관계를 가진 인간 DNA의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느냐에 달렸다. 이 같은 과업에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으로부터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유전체학 연구는 숲 전체로 뻗어나가기는커녕 킬러의 흔적을 찾아 똑같은 나무 몇 그루 주위를 뱅뱅 도는 수색작업과 같아진다.
풍부함을 자랑하는 아프리카 유전체는 인류 진화의 산물이다. 현생 인류 호모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 약 10만 년 뒤 (최소 2만 명을 훨씬 넘을 수 있는 모집단 중) 1600여 명의 남녀가 대륙을 떠나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기 시작해 궁극적으로 유럽 가장 최근에는 미대륙에 이르렀다. 워싱턴대학 유전학자 메리-클레어 킹 연구팀은 지난해 논평에서 ‘다시 말해 현생 인류로서 우리 진화의 체험 중 약 99%가 아프리카에서 이뤄졌다’고 썼다.
마찬가지로 그 시점까지 아프리카 대륙 전반에 걸쳐 존재했던 유전적 다양성은 무엇이 됐든 그 소그룹이 이주했을 때 거의 고스란히 그 자리에 남았다. 그리고 아직도 각 아프리카인의 유전자 안에 잠복해 있다. 이는 유전체 연구에서 아프리카가 배제된 것에 로티미가 그렇게 실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피부 속은 우리 모두 같은 아프리카인”이라고 말했다.
로티미의 견해에 동의하는 과학자가 갈수록 늘어난다. 암과의 싸움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아프리카에 있다는 생각이다. 바로 아프리카인의 DNA다.
아프리카가 10만 년 앞서간다
나이지리아 4대 도시 베냉 시티에서 태어난 로티미는 미국에 도착했을 때 상당히 큰 의료격차를 목격했다. 그는 미시시피대학(일명 올 미스)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부유층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다. 이곳에서 빅맥을 처음 경험했다. 그는 “그냥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며 “빵·고기·이파리 같은 것을 함께 섞어 먹는 개념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주를 여행하며 맛본 불평등은 더 쓴맛을 남겼다. 그는 “자원이 풍부한 환경 속에서 자기 것은 없는 듯할 때 빈곤의 울림이 아주 크게 들린다”고 말했다.
그는 석사학위를 들고 나이지리아로 돌아갔지만 6개월 동안 일자리를 찾아다니고도 연구에 참여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공중보건과 역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기간 동안 유전자가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더 깊이 인식하게 됐다. 나이지리아에서의 성장과정에서 이미 경상적혈구병(sickle cell disease)은 선천적인 것이지 후천적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전 세계 아프리카인 사이의 고혈압에 관한 연구를 통해 라이프스타일과 환경이 건강에 좌우되지만 DNA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로티미 박사가 유전의 위력을 알아가는 동안 과학자들은 최초의 인간 유전체 염기서열 해독에 접근하고 있었다. 모든 인간 세포의 핵 안에 팽팽하게 감긴 유전체는 약 2만 개 유전자로 이뤄진다. 우리 체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다수의 생체 내 작용을 인도하는 단백질을 암호화한다. 나아가 유전자는 DNA로 이뤄진다. DNA는 염기라는 화학물질이 담긴 뉴클레오티드라는 나선형 화합물 가닥이다. 일반적으로 A CT G라는 이니셜로 알려진 이들 4가지 염기는 각 개인 특유의 청사진을 구성하는 유전정보의 언어다. 인간의 유전체 다시 말해 개인 유전자의 전체 세트는 30억 쌍의 염기로 이뤄진다.
2003년 종료된 인간게놈프로젝트는 한 개인의 유전체 염기 서열을 대부분 해독했다(당시 로티미 박사는 워싱턴 D.C.의 하워드대학에서 미생물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염기서열 분석 자체보다는 개인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기술이 혁신적인 발전이었다. 연구를 통해 질병이나 약물반응을 결함 유전자와 연결할 수 있다면 각 환자 특유의 유전체를 중심으로 맞춤 치료를 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 이르려면 개인에 따라 유전체가 어떤 식으로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DNA 중 차이가 생기는 그 몇 분의 1%가 다수의 유전 질병과 이상의 원인일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믿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서 하나가 아닌 다수의 유전자를 조사해야 했다.
그들이 찾는 변화는 인간 유전체 내 30억 쌍의 염기 중에서 단일 염기의 변화(A에서 C 또는 G에서 T로의 변이)였다. 아기가 생길 때 또는 우리 일생 동안 세포가 분화될 때 DNA 복제 중 그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단일염기다형성(SNP)으로 알려진 이들 변이는 종종 무해하지만 때때로 유전자의 기능에 영향을 미쳐 특정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잘못된 SNP는 대표적으로 알츠하이머, 특정 혈액질환, 남성불임, 암에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일단 유전체의 일부가 되면 다음 세대로 대물림될 수 있다.
정밀의학은 문제의 SNP를 찾아내면 그것이 위치한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과학자들은 그런 돌연변이를 찾기 위해 다른 많은 사람의 전체 유전체를 서로 비교하는 연관분석 조사를 실시한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되고 개별 유전체의 염기서열 분석 비용이 낮아진 뒤 이들 유전체 전체의 연관분석 조사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다양성 문제가 있었다. 거의 어떤 조사에도 아프리카인의 유전체가 포함되지 않았다.
배제의 위험
문제를 일으키는 SNP의 모색과정에 아프리카를 포함시키는 데는 여러 가지 중대한 이점이 있다. 암 같은 질병과 관련된 SNP는 대체로 희귀하며 암 환자의 유전체에서 발견된 희귀 SNP를 이용해 양자 간의 연관성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유럽인의 유전체에선 특이한 돌연변이처럼 보이더라도 아프리카인을 포함시킬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남아공의 케이프타운대학에서 유전 데이터를 분석하는 니콜라 멀더 연구원은 말한다. 그런 실수로 인해 수년 간의 노력과 많은 돈이 허비될 수 있다.
일단의 과학자가 한때 5종의 유전적 변이가 심장을 위험할 정도로 두껍게 만들었다고 가정하고 그런 변이를 가진 사람의 DNA가 심장 이상 위험을 유발한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가정은 틀렸다. 그 5가지 변이는 전혀 희귀하지 않았으며 실제론 아무런 해가 없었다. 연구 대상에 아프리카 주민을 포함 시켰다면 그런 실수가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인의 유전체는 유럽인과 미주인에 비해 연구용으로 훨씬 더 적합하다. 역시 오랜 혈통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유전 물질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대물림되는 동안 SNP가 덩어리로 뭉치는 경향을 보여 과학자들이 찾아 내기가 더 쉬워진다. 결과적으로 오래된 유전체 다시 말해 아프리카인의 유전체에서 찾아내기가 더 용이하다. 티슈코프 교수는 “그것은 모든 인구집단에 유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이처럼 뭉치는 현상 덕분에 유전학자들이 나쁜 LDL 콜레스테롤 관련 유전자와 염증 관련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프리카인의 유전체는 다른 어떤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환경위협에 부대껴 왔기 때문에 병에 관한 결정적인 단서가 담긴 몇 가지 놀라운 특성을 나타내게 됐다. 어떤 위험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덜 해롭고 새로운 특성을 수반할 수도 있다. 경상적혈구빈혈(sickle cell anemia)을 예로 들어보자. 이 증상과 관련된 유전자는 말라리아를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또 다른 돌연변이는 아프리카 수면병(African sleeping sickness)과 관련된 기생충에 대한 면역력을 부여하지만 또한 신장병 위험을 키우기도 한다.
사람들이 일부 위협을 이겨내도록 하면서도 암에 쉬 걸리게 하는 돌연변이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고 티슈코프 교수는 설명한다. 그리고 그런 위협은 가령 동아프리카에서 북미로 이주하면서 사라졌지만 변이는 남았다. 이런 역사적 돌연변이는 암이 어떻게 또는 왜 진화하는지 이해하는 데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로티미 박사는 “아프리카인의 유전체에 존재하는 방대한 유전적 변이를 감안할 때 암에 중요하지만 다른 인구 집단에선 발견되지 않는 유전적 변이를 찾아낼 수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유전체가 인류 전체의 과거를 되찾을 수 있게 할 수 있듯이 위험한 미래로부터 우리를 구제할 수도 있다. 일부 유전적 기형은 우리 몸이 약물에 반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약물유전체학(pharmacogenomics)으로 알려진 분야다. 예컨대 한 가지 변이는 HIV 감염자의 항레트로바이러스 약에 대한 내성을 떨어뜨린다. 이 같은 발견으로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 전체의 치료제 처방이 바뀌고 있다. 또 다른 변이는 유방암 치료제 타목시펜의 작용을 방해한다. 유전체가 다양할수록 치료제의 선택을 좌우할 만한 돌연변이를 발견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티슈코프 교수는 “아프리카에서 유전체 연구의 확대는 아프리카 혈통인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커다란 전술적 오류의 시정
2004년 게놈센터를 이끄는 동안 그는 아프리카 인간유전학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그런 우려에 대처하려는 취지로 결성된 단체다. 2006년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학회의 첫 회 안건은 유전체 연구에서 아프리카의 낮은 참여도(DNA와 과학자 모두)로 채워졌다. 1년 뒤 카이로에서 열린 2차 회의에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이끌었고 현재 미국국립보건원(NIH) 원장인 유전학자 프랜시스 콜린스가 참석했다. 그런 우려가 아프리카를 기반으로 하는 게놈 프로젝트 아이디어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자리였다.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암 발병률 증가도 긴박감을 더해줬다. 근년 들어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지역 전반적으로 유방암·전립선암·자궁경부암 유병률이 증가했다. 감염병으로 인한 조기사망 탈피와 서구화된 라이프스타일 전환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이제 아프리카의 연간 암 발생률이 2030년에는 127만 건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아프리카계가 아닌 주민을 대상으로 테스트된 약품으로 아프리카인 환자를 치료하는 관행이 설상가상으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유전자 연구에 아프리카 DNA를 포함시키면 그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로티미 박사는 “이런 훌륭한 도구에서 아프리카가 배제되면 열악한 건강 상황이 더 악화되리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로티미 박사가 수년 전부터 울려온 경고음은 2009년 유전체 연구에서 아프리카 DNA의 결여를 폭로하는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NIH 산하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는 이런 조사에서 유럽혈통 집단의 지나치게 높은 비중을 모니터하기 시작했다. 에릭 그린 NHGRI 소장은 “우리가 실시한 연구 중 유럽계의 직계 혈통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연구의 비중이 너무 높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편견을 “커다란 전술적 오류”로 일컫는다. 그해 로티미 박사는 그런 오류를 바로잡을 뿐 아니라 과학자들의 대륙 아프리카 개혁 프로젝트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2010년 아프리카의 유전학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는 로티미 박사의 노력에 NIG가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서방의 연구에 아프리카를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그는 동료들과 함께 직접 연구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로티미 박사는 아프리카 중심의 연구에는 염기서열 수집과 SNP 목록 작성 이상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았다. 그런 연구에 대한 자금지원은 흔치 않았다. 아울러 아프리카 대륙 전반적으로 보건의료 서비스의 개선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 연구의 실제적인 응용이 우선과제였다. 그리고 아프리카인을 대상으로 신약과 기술을 테스트한 과거의 연구가 주민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던 쓰라린 기억도 남아 있었다. 로티미 박사는 “아프리카 주민에게 중요한 문제의 해결에 그 자금이 쓰이도록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고 말했다.
훗날 로티미 박사가 ‘아프리카의 인간 유전·건강(Human Heredity and Health in Africa)’ 즉 H3아프리카로 명명한 그 프로젝트는 그가 꿈꾼 대로 아프리카인의 유전체 연구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이룰 것이다. 아프리카의 과학자들이 아프리카의 연구기관 안에서 아프리카 주민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을 주는 대대적인 연구 노력을 벌이게 된다. H3아프리카는 아프리카와 유럽·북미 과학자들을 동등한 위치에 서게 만들 것이다. 나이지리아의 유전학자가 하버드대학의 유전학자와 연구 지원금을 놓고 경쟁을 벌여 돈을 따낼 수 있다. 그런 접근방식은 과거의 실망스러운 패턴을 피하고 대신 아프리카 지역사회에 직접적인 혜택을 주게 된다. 쉽게 말해 H3아프리카의 등장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유전체학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뿐 아니라 초창기처럼 아프리카가 소외당하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영국에 본부를 둔 민간 자선단체 웰컴 트러스트와 NIH는 5년 주기로 2회에 걸쳐 H3아프리카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2012년 1차 펀딩에서 총 76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H3아프리카는 그 돈으로 지금까지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던 수단·시에라리온·가나를 포함해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29개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자궁경부암 프로젝트에선 여러 나라에서 여성 1만 명의 유전체를 수집한다. 그 악성 종양을 유발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의 위험을 키우는 돌연변이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는 취지다. 남아공 비트워터스랜드대학의 유전학자 크리스토퍼 매튜는 아프리카에선 흔하지만 북미에선 드물게 발생해 연구에서 뒷전으로 밀려는 식도암을 연구한다. 그는 “과거에는 우리 지역 통화 가치가 낮아 연구가 대단히 어려웠다”고 말했다. 10년에 걸친 지원금 총액은 1억9000만 달러에 육박한다.
그러나 윤리적 딜레마에서 자유로운 유전학 프로젝트의 비전은 그동안 실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비아프리카계 국가들의 자금지원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H3아프리카가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비아프리카계 협력자들의 참가를 허용하는 데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된다. 케이프타운대학의 생명윤리학자 잰티나 드브리스는 “아프리카의 일부 윤리 위원회에선 국제협력이 항상 착취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수십 년 동안 구미의 전문가들이 아프리카를 찾아와 필요한 것만 손에 넣은 뒤 떠나갔다. 이른바 헬리콥터 과학으로 불리는 관행이다.
예컨대 약 10년 전 여러 북미 연구기관의 유전학자들이 4개 산족 커뮤니티 원로들의 DNA 샘플을 채취해갔다. 산족은 지구상에 알려진 가장 오랜 혈통을 지닌 아프리카 남부의 수렵·채집 생활자들이다. 드브리스 교수는 “그들은 말 그대로 찾아와서 샘플을 수거한 뒤 떠났다”고 말했다. 산족 지도자들은 허가도 없이 그런 일을 벌인 데 격노했다. 그 유전체 조사를 발표한 학술지 네이처에 보낸 서한에서 무례하고 모욕적인 행동이라고 규탄했다.
아프리카의 과학자들은 DNA 샘플이나 기타 생체 자료를 확보하는 데 기여하고도 정작 연구에는 거의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의 환자는 자신들의 혈액·타액·조직을 이용해 개발된 약품을 구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전력으로 인해 많은 과학자와 연구 참가 희망자들이 유전학 연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아프리카 출신 흑인 자궁경부암 환자 헨리에타 랙스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과학자들이 그녀의 세포를 이용하고 의학에 널리 사용됐는데 그녀의 가족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하지만 협력자들은 우월한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항상 그렇게 쉽게 양보하려 하지는 않는다. 수년간 H3아프리카의 윤리 문제 실무그룹을 이끌었던 드브리스 교수가 일부 국제적 과학자들로부터 들은 말이 단적인 증거다. 그들은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은 자체적으로 고도의 유전학 연구를 수행할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겼지만 현재 상황을 유지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 그녀는 “힘센 사람과 기관은 그런 논리가 정설로 받아들여질 때 혜택을 본다”며 “그런 사람들은 아프리카 연구 역량의 실질적인 발전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로티미 박사는 그런 사고를 바꾸려 하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 과학자들에게 자립 능력을 부여하고자 한다. H3아프리카가 추구하는 핵심적 목표는 유럽과 북미의 일류 대학에서 나오는 것만큼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연구를 지원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의 구축이다. 그를 위해 모든 H3아프리카 프로젝트의 연구 책임자는 아프리카인이어야 하며 협력자도 그렇게 되면 이상적이다.
그러려면 아프리카 대륙 전반적으로 리서치 역량의 신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단에서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 리서치를 할 만큼 강력한 수단의 컴퓨터, 우간다에서 수면병을 예방하는 SNP에 관한 다량의 데이터를 창출하고 DNA를 저장하는 보관소, 말리에서 유전성 신경질환의 실지조사 기록을 위한 장비, 그와 함께 위험을 키우는 유전적 돌연변이를 규명하는 연구소 그리고 유전학과 질병에 관해 말리 주민에게 교육할 현지 의사 대상 교육훈련 등이다. 보조금 지원이 끝나도 미래의 과학자들이 이용할 설비는 남는다. 그는 “나이지리아에 남기를 원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나 같은 일을 어느 누구도 당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혁신적 발전으로 윤리적 딜레마가 모두 개선되지는 않는다. 헬리콥터 과학에 대한 우려는 그리 쉽게 씻겨나가지 않는다. H3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내 국가간 협력을 장려하지만 리서치 역량이 떨어지는 나라들은 더 앞서가는 나라들을 지원하는 데 소극적이다. 가나의 경우 가난한 연구기관의 일부 과학자는 더 부유한 기관의 과학자들이 공유 샘플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자신들의 공헌을 인정하지 않는 데 불만을 표시한다. 때로는 남아공보다 뉴욕의 과학자들과 공유하는 샘플에 더 많이 기여한다는 과학자들도 있다. 노스캐롤리이나대학의 생명윤리학자 에릭 주엥스트는 “똑같은 문제”라고 말했다. 국제적인 협력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경 너머로 조직 샘플을 보내는 방식이 경제적 경쟁자를 돕는 데 대한 착취 우려와 반감을 초래한다.
H3아프리카는 과학자들이 자신의 표본을 더 오래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 그런 우려를 가라앉히려 했다. 유전자 연구의 국제 기준에서는 과학자들이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한다. 그러나 H3아프리카는 23개월 동안 독점하면서 경쟁 없이 자신의 데이터에 관한 리서치를 발표할 수 있도록 인정해 주면서 과학자들을 후원한다. 논문을 발표하면 과학자들의 인지도가 높아져 자금후원이 더 많이 몰리고 나아가 국가 수입도 늘어난다. 생체 샘플의 공유 금지 기간은 더 길다. 드브리스 팀은 2015년 그 프로그램의 정책을 설명하는 논문에서 ‘표본은 3년 동안 아프리카의 리서치 역량을 강화하는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고 썼다.
하지만 개별적인 과학자를 경쟁으로부터 보호한다고 반드시 환자까지 보호를 받는 건 아니다. 환자는 과거 착취의 최대 피해자들이었다. 자신의 조직을 제공하고 더 나은 치료를 기다리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유전학 연구와 관련된 윤리 지침(나라마다 다르며 H3아프리카 자체적으로 엄격한 규정이 있다)에 따르면 환자들이 연구 목적으로 생체 샘플을 기증할 때는 그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준 뒤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각지에서 사용되는 대다수 언어에는 유전자나 생체검사 같은 전문용어를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
그리고 언어장벽을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항상 매끄럽게 이뤄진 건 아니었다. 한 과학자는 좋은 의도에서 눈의 색깔을 예로 들어 유전을 설명하는 교육재료를 개발했지만 갈색 눈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인 아프리카 대륙에선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정보가 너무 전문적일 경우 환자들은 귀를 닫는다고 나이지리아의 아부자대학에서 H3아프리카 후원 유방암 연구를 실시하는 오게추쿠 이쿠웨메 간호사는 말했다. “유전학에 관해 자세하게 말할 때는 사실상 소 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다.”
부족 원로의 허가를 요하는 지역사회의 위계구조와 남녀 역학도 개인의 동의 능력에 제약을 준다. 이런 문제가 각지의 과학 연구에 만연할 뿐 아니라 빈곤, 낮은 교육수준, 열악한 건강의료 서비스, 언어장벽, 문화적 제약 등 아프리카의 전체적 환경이 그런 우려를 증폭시킨다. 로미티 박사는 종종 자신의 조사에 등록하는 여성들에 관한 의문과 씨름한다. “남편이 시켜서 참가하는 건가, 아니면 자발적인 건가?”
그 문제의 해결이 아프리카 대륙뿐 아니라 과학 전체를 위해 H3아프리카의 본질적인 존재가치와 직결된다. 드브리스 교수의 시각으로는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과학적 우월성의 땅으로 바꾸는 것은 “과학적 우월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좌우된다.” 아프리카의 연구소에선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을 24시간 만에 이뤄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월성이 반드시 기술적 역량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드브리스 교수는 “아프리카의 과학자들은 환자와 지역사회의 요구를 훨씬 더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쿠웨메 간호사가 자신의 유방암 환자들에게서 직접 경험하는 현상이다. 그들은 그녀에게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녀가 자신들에 관심을 갖는지 느끼고자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연구에 마음 편히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아프리카의 전통 지역사회는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한다. 가령 연구에 혈액을 기부할 때 종종 환자 커뮤니티와 상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쿠웨메 간호사는 “이들 환자에게서 정말로 최선을 원한다면 직접 그들과 교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티미 박사가 추구하는 변화를 실현하는 데 성공할지는 불확실하다. 프로그램은 현재 2차이자 마지막 펀딩 단계에 있다. 과학자들은 외부 세계와 보조금 유치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부족했던 정부의 지원 또한 필요하다. 로티미 박사는 세계은행에 지원을 요청했으며 보조금 지원 신청을 받아 아프리카인 과학자들이 심사하는 과정을 관리하는 새 사무국이 현재 케냐 나이로비에서 운영 중이다.
어디서나 과학자들의 운명은 정부의 손에 달렸지만 아프리카의 상황은 특히 더 심각하다. 지금까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대 전역의 국가 정책입안자들은 연구의 가치를 인정해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현재 61세로 H3아프리카를 일생일대의 업적으로 간주하는 로티미 박사는 정치로 인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한다. 그는 “필시 나쁜 정부가 아프리카의 공중보건에 첫 번째 위험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더 큰 위험도 제기한다. 유전체 연구가 2009년 이후 아프리카 DNA에 더 포용적이 됐는지를 검토한 2016년 연구에서 3%의 증가에 그쳤다. 당시 완성된 전 유전체 연관분석 조사 2511건 중 소수인종이 포함된 비율은 19%에 불과했다. 논문 작성자인 워싱턴대학 생명윤리학자 S. 말리아 풀러튼 교수는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역사의 개혁에 의학의 미래가 달렸다.
- 제시카 웨프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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