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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의 테크&라이프] 트럼프 지지자들, 페북 떠나 옮긴 곳은?

[한세희의 테크&라이프] 트럼프 지지자들, 페북 떠나 옮긴 곳은?

미 대선 이후 보수적인 소셜 미디어 ‘팔러’ 이용자 1000만명으로 급증
사진:AFP=연합뉴스
선거가 더 이상 민주주의의 축제가 아닌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선거는 대립하는 정치 세력들이 총집결해 죽기 살기로 벌이는 전쟁이 되어버렸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는 우리에게 안락한 ‘에코 챔버(Echo Chamber, 메아리방이라는 뜻으로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편향된 사고를 갖는 현상을 이르는 미디어 용어다)’를 만들어 주며 이 같은 양극화를 부추겼다. 세계화와 글로벌 분업의 고도화, 자유 무역 확산, 테크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디지털 경제의 급성장으로 발생한 세대와 지역, 사회경제적 격차, 문화에 따라 갈라져 있던 사람들 사이의 틈은 소셜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급격히 벌어졌다.

현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공론장이 된 소셜 미디어에서도 양측은 치열하게 대립했다. 특히 이번 미국 대선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심판이라 할 소셜 미디어와 선수라 할 트럼프 측이 끊임없이 대립했다는 것이다.

트위터는 대선 기간 중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에 잇달아 ‘잘못된 정보’라는 경고 문구를 붙이거나 리트윗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페이스북 역시 선거나 코로나19에 대한 게시물의 공유를 제한하는 등 논란이 되는 정보의 유통을 억누르려 했다. 공화당과 보수 세력은 이를 소셜미디어의 검열로 받아들였다. 심판은 선수에게 규칙을 잘 지키라고, 선수는 심판이 정한 규칙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한 셈이다.
 표현의 자유 내세운 ‘팔러’로 사이버 이민 떠나
사진:구글 플레이
대선 같은 국가 단위 선거의 곤란한 점은 마음에 안 드는 결과가 나와도 다른 곳으로 가버릴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점이다. 2016년 트럼프 당선 후 캐나다 이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지만 실제 이민 간 사람은 거의 없다.

현대인에게 나라만큼 옮기기 어려운 것이 소셜 미디어다. 페이스북이 아무리 싫어도 월간 사용자가 26억명에 이른다. 모든 가족 친구가 이미 모여 있는 페이스북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트위터를 대신할 플랫폼은 없다. 한번 사용자가 몰리면 점점 효용이 커지고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네트워크 효과가 가장 강력한 분야가 소셜 미디어다.

그런데 이번 선거 후 소셜 미디어에서 이민이 일어나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사이버 이민의 불편을 감수할 정도로 기존 소셜 미디어에 대한 불만이 커진 듯하다. 검열 없는 중립적 플랫폼을 표방하는 ‘팔러’가 대표적이다.

11월 초 선거가 끝나고 불과 1~2주 사이 팔러 사용자는 두 배 늘어 1000만명이 되었다. 이 기간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앱이기도 하다. 2018년 설립된 팔러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소셜 미디어의 갈등이 커질 때마다 사용자가 폭증했다. 지난 7월 공화당과 보수파 인플루언서들이 트위터를 비판하며 팔러로 이동하는 움직임이 일면서 사용자가 150만명으로 50% 증가했다. 대선 즈음에는 450만명으로 늘었고 11월 들어 다시 2배가 늘어난 것이다.

트럼프 선거 캠프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떠나 팔러로 소셜 미디어 본거지를 옮기는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 헤지펀드를 운영하며 공화당과 보수 운동에 거액을 기부하는 머서 가문이 창업 초기부터 팔러에 투자하는 등 지원해 왔다는 사실도 최근 알려졌다. 물론 1000만명이라는 숫자는 수억, 수십억의 사용자를 가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비하면 미미하다.

하지만 순전히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며칠 사이에 무명의 신규 서비스에 모인다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사람들을 팔러로 모이게 한 힘은 아마 트럼프 지지자 혹은 보수층이 느끼는 좌절감일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러스트 벨트에 사는 노동자 계층이나 복음주의 기독교도, 전통 색채가 남아 있는 지역 거주자 등이다.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가 세계화의 과실을 따 먹을 때 중국 공장 노동자와 힘겨운 경쟁을 벌이며 낮아지는 삶의 질을 감내하는 사람들이다. 대대로 믿어오던 신앙이 공격당하고, 크리스마스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것도 눈치 보는 사람들이다.
 기술 규제한다고 사회 분열 감추진 못 해
이들은 소박한 신념을 갖고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난데없이 백인 기득권 가부장이 되었다. 2016년 트럼프 당선 이후에는 페이스북에 나도는 가짜 뉴스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널리 퍼뜨리는 사용자로 지목됐다. 이들은 분명 권위 있는 매체보다 의심스러운 정보에 더 기운 사람들인지 모른다.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과 작동 방식이 이들의 행동을 증폭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 계층이나 특성의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들만의 정보와 소문이 대규모로 퍼져 나간다면, 그건 단지 당대의 기술이나 개인적 무지의 결과는 아닐 수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채널이 없다는 것이 문제의 또 다른 뿌리는 아닐까?

미국의 주류 언론계는 대학 교육을 받은 리버럴 성향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논조 역시 비슷한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져 있다.

동부와 서부 해안가 부유한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이 지역은 대표적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현대의 또 다른 주요 언로인 소셜 미디어를 포함, 실리콘밸리 기업의 창업자와 직원 중엔 민주당 지지자가 많고 기부금 역시 민주당에 압도적으로 많이 간다.

2016년 대선은 미국의 담론을 주도하던 주류 언론의 판단을 소셜 미디어에 터 잡은 ‘무지렁이’들이 눌러 버린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후 4년 내내 지속된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 소셜 미디어에 대해 갑작스럽게 커진 비판을 통제를 벗어난 민초들에 대한 주류 언론의 히스테리로 해석하는 것은 분명 정도를 지나친 일일 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믿음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만들어내곤 한다는 점이다. 외부에서 그걸 아무리 가짜 뉴스, 유언비어, 불온 통신이라 불러도 말이다. 기술이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지 않도록 세심하게 ‘영향 평가’를 하더라도, 사회의 근본적 분열을 감출 수는 없다. 트럼프가 보수 성향의 영상 스트리밍 채널을 만들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수파들의 소셜 미디어가 생기는 것처럼 결국 기술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데 활용되곤 한다. 편향을 부추기는 소셜 미디어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만큼, 편향을 즐거워하는 우리 마음을 되돌아볼 필요도 있겠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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