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북한 핵무력 강화의 경제학] 김정은 선군정치(군을 우선하는 통치) 얼마나 버틸까?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북한 핵무력 강화의 경제학] 김정은 선군정치(군을 우선하는 통치) 얼마나 버틸까?
北 경제난에도 고가 첨단 무기 개발 주력… 소련 붕괴 전철 밟을까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김 위원장은 1월 5~12일 열린 조선조동당 8차대회 초반인 5~7일 진행한 사업총화(결산) 보고에서 핵 무력 강화를 천명하고 나섰다. 다탄두 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물론 핵 잠수함까지 거론했다. 이에 따라 실현 가능성과 발언 의도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북한 매체들이 전한 김정은 위원장의 보고 내용 중 군사력 관련 사항을 부문별로 나눠 전하면서 발언을 분석해본다.
“당 중앙의 직접적 지도 밑에 화성포 계열의 중거리·대륙간 탄도로켓들과 북극성 계열의 수중 및 지상 발사 탄도로켓들이 특유한 작전적 사명에 맞게 우리 식으로 탄생한 것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 국가의 지위에 대한 보다 명확한 표상을 주었으며 완전무결한 핵 방패를 구축하고 그 어떤 위협에도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략적 억제력을 굳혀나갈 수 있게 했다.”
화성포는 북한이 2017년 11월 29일 발사한 화성 15호나 같은해 7월 4일(미국 독립기념일이다) 발사한 화성 14호 등 화성 계열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즉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가리킨다. 두 미사일 모두 미국이 주시한다. 미국 본토를 노릴 수 있는 사거리를 보이기 때문이다.
화성 15호는 11월 29일 평안남도 평성(평양 북쪽 평남의 도청 소재지이자 과학기술 연구도시 및 유통도시) 부근에서 발사했다. 최고 고도 4475㎞, 수평 발사거리 950㎞를 비행해 동해의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졌다.
장거리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넘지 않고 동해에 착탄하도록 하기 위해 고각도 발사를 한 것으로 짐작한다. 각도와 고도, 비행 거리를 계산하면 정상 각도로 발사했을 경우 사거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화성 15호가 지름 2~2.4m, 길이 21~22.5m 크기에 2단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ICBM으로 사거리는 8500~1만3000㎞로 추정했다. 추정대로라면 북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 최초의 탄도미사일이다. 평양에서 미국 수도인 동부의 워싱턴DC까지는 1만1035㎞, 서부 해안의 로스앤젤레스까지는 9550㎞, 태평양 한가운데의 하와이까지는 7670㎞, 서태평양의 하와이까지는 3400㎞이다. 북한이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가능성이 있는 사거리를 가진 탄도미사일의 시험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김정은의 보고 내용을 더 들어보자.
“이미 축적된 핵기술이 더욱 고도화해 핵무기를 소형경량화, 규격화, 전술무기화하고 초대형 수소탄 개발이 완성됐으며 2017년 11월 29일 당중앙위원회는 대륙간탄도로켓 ‘화성포-15’형 시험발사의 대성공으로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 위업의 실현을 온 세상에 긍지 높이 선포했다. 당 창건 75돌 경축 열병식장에서 11축 자행 발사대 차에 장착돼 공개된 신형의 거대한 로켓은 우리 핵무력이 도달한 최고의 현대성과 타격 능력을 남김없이 과시했다.”
북한은 화성 15호 시험 발사 다음날 이 미사일에 초대형 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며 ‘국가 핵무력의 완성’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북한이 이동식수직발사대(TEL·Transporter-Erector-Launcher)로 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두고 미국에 더욱 위협적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또는 준중거리 탄도미사일(MRBM)인 대포동 미사일은 고정식 발사대에 수직으로 세운 뒤 일정 시간 동안 액체연료를 주입한 뒤 발사하는 준비 과정이 필요해 이를 사전에 포착하고 요격을 준비하는 등 대응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하지만 화성 15호는 TEL에서 발사하기 때문에 은밀하게 이동이 가능한 데다 발사 준비 시간이 짧아 그만큼 더 위협적이라는 이야기다.
북한은 2017년 7월 4일 화성 14호 첫 발사에선 최고 고도가 2802㎞였으나 7월 28일 2차 발사에선 3725㎞를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 이 탄도미사일은 사거리가 1만㎞로 미국 서부 해안까지 도달할 수 있다. 화성 14호는 무게 40t, 길이 18m, 지름 1.7m로 파악됐다.
북한은 여러 곳으로 분산된 공장에서 미사일 부품을 생산해 평양특별시 산음동에 위치한 산음동 병기연구소에서 최종 조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역에 최소 5곳의 지하 탄도미사일 발사시설이 포착됐다.
김정은이 언급한 북극성 계열 미사일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이다. 북한은 2015년 븍극성 1호의 첫 발사 시험을 했으며 2016년에는 당시 고각으로 500㎞를 비행했다. 2017년 2월 12일에는 북한 평안북도 구성군 방현비행장 근처에서 북극성 2호를 시험 발사했다. 미사일이 강한 압출 가스로 공중으로 던져진 다음에 점화해 자체 비행에 들어가는 콜드 런치 방식으로 발사됐다. 당시 북한은 이를 “지상대지 중장거리 전략탄도탄 북극성-2형”이라고 발표했다.
북극성 2호는 길이 9~12m, 지름 1.6m에 정상 각도로 발사시 사거리가 200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발사 방식 등을 고려하면 SLBM으로 전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잠수함 발사 미사일은 은밀성과 신속성 때문에 사전 제거가 힘들고 요격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의 보고 내용 중 눈길이 가는 것이 ‘소형경량화, 규격화, 전술무기화’라는 대목이다. 북한이 장거리 ICBM을 개발하는 것은 멀리 있는 미국에 대한 위협을 증대하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술무기화라면 야기가 다르다. 전술핵은 전쟁 중인 적의 재래식 부대를 섬멸하거나 특정 지역을 초토화하기 위해 쓰기 위한 무기체계이기 때문이다. 전략핵이나 ICBM 개발 이야기를 과거형으로 한 것은 우리가 이 정도 전력이 있으니 미국이 나와 협상을 하자는 신호로 보일 수 있다. 1월 10일 취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협상을 위한 카드를 보인 셈이다.
하지만 개발한 핵을 전술무기화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한국에 대한 위협이다. 핵 카드를 미국에 대한 위협이 아닌 한국 위협용으로 휘두르겠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혹은 미국의 동맹인 한국을 협박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국면을 열어보겠다는 의지로도 볼 수 있다.
김정은의 보고를 더 들어보자.
“국방과학연구 부문에서 다탄두 개별유도기술을 더욱 완성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마감 단계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신형탄도로켓들에 적용할 극초음속 활공비행 전투부를 비롯한 각종 전투적 사명의 탄두 개발연구를 끝내고 시험 제작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중형잠수함 무장현대화목표의 기준을 정확히 설정하고 시범 개조해 해군의 현존 수중작전 능력을 현저히 제고할 확고한 전망을 열어놓고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심사단계에 있으며 각종 전자무기들, 무인 타격장비들과 정찰탐지 수단들, 군사 정찰위성 설계를 완성했다.”
다양한 첨단 무기를 개발해 이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다. 특히 핵잠수함을 언급한 것은 흥미롭다. 핵잠수함은 핵추진 잠수함과 핵무기 탑재 잠수함을 모두 가리킨다. 북한이 핵추진 잠수함을 개발 중이라는 건지, 재래식 잠수함에 핵무기를 탑재해 전력화하겠다는 건지, 핵 추진 잠수함을 개발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핵무기를 탑재해 전력화하겠다는 건지는 불분명하다. 맨 마지막의 경우를 추구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흥미로운 건 김 위원장이 재래식 무기 강화도 언급했다는 사실이다.
“국방과학자들과 군수노동계급은 세계적 발전 추이를 따라잡는 우리 식의 주력 탱크 개발 방향을 바로 정하고 생산 공정을 일신하며 자기의 새로운 발전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반항공로켓종합체, 자행평곡사포, 반장갑무기들도 세계적 수준에서 개발하는 성과를 이룩했다.”
여기서 말하는 반항공로켓종합체는 항공기를 요격하는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가리킨다. 마시일은 물론 레이더와 요격시스템 전체를 이르는 말이다. 그동안 개발한 미사일 개술을 바탕으로 북한의 방공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이야기다.
자행평곡사포는 자주포를 말한다. 반장갑무기는 대전차 무기다. 이런 무기체계들을 언급한 것은 재래식 군사력 분야에서도 무기 현대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철저하게 남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전차는 기습 남침에서 핵심 무기체계다. 북한은 무기체계가 노후화했다. 한국전쟁 당시에 쓰던 T-34를 비롯해 T-54, T-55, T-62 등 옛 소련제 전차에 중국이 소련제 T-54A를 개량한 59식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 북한은 T-62를 역설계해 천마 계열의 전차를 생산하고 있다. 천마계열의 최신 전차는 천마 6호다. 2010년 10월 10일 군사 퍼레이드에서 처음 공개한 선군호라는 성능 미상의 전차도 있다. 북한은 2010년 폭풍호라는 전차도 공개했다. M-2000으로도 불린다. 북한은 2005년부터 선군호와 천마 5호 등 900대의 전차를 새로 전력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소련의 군사전략가인 미하일 투하체프스키 장군이 1936년 개발한 ‘종심공격 전술’을 바탕으로 하는 공격 전술을 채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심공격 전술은 최전선의 군사력을 둘로 나눠 주공격을 맡은 제1 그룹이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면 제2 그룹은 이 돌파구가 막히지 않도록 유지하거나 넓힌다. 적의 전선을 뚫어 돌파구를 만들어 진군한 제1그룹은 적 후방 깊숙이 진출한 뒤 최전방의 적을 포위해 섬멸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런 군대와 무기체계를 유지하는 데 엄청난 자금이 든다는 것이다. 튼튼한 경제력의 뒷받침이 없이 군사력을 강화하려면 이는 항상 풍선 효과를 유발한다.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의 사례다. 군사경제학 문제를 다룬 [성, 전쟁, 그리고 핵폭탄]이라는 책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등장한다. 1991년 걸프전쟁의 연합군 총사령관을 맡았던 미국의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은 다국적군의 전력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다.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프랑스군이 예상보다 훨씬 취약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프랑스가 자랑하던 첨단 재규어 전투기에 야간 공격 기능조차 없었다.
다른 폭격기도 조준 성능이 떨어져 작전에 제대로 투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공격 능력은 물론 방어 능력도 충분하지 않아 자칫 적과 맞붙다 상당한 손실을 볼 가능성도 무시 못 할 상황이었다. 슈워츠코프는 프랑스군을 이라크군 정예부대와 맞닥뜨리지 않도록 외곽에 배치했다. 프랑스군은 모욕을 느꼈다. 하지만 전방에 배치됐다면 더 큰 봉변을 당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프랑스군의 허약한 체력은 이미 1970년대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1918~2015년, 재임 1974~1982년) 총리에게 간파당했다. 이 책에 따르면 슈미트는 프랑스의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1926~2020년, 재임 1974~1981년) 대통령에게 “냉전시대 프랑스의 상황 중에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재래식 군사력이 취약하다는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강대국 프랑스의 군대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문제는 돈이었다. 당시 프랑스 육군은 4000대의 현대적 장갑차를 원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500대만 확보하는 데 그쳤다. 헬리콥터가 현대전에서 중요해지자 900대 확보를 계획했으나 190대로 만족해야 했다.
문제는 돈이었고, 그 배경은 사실 핵무기 때문이었다. 프랑스는 1956년 수에즈 전쟁 때 소련의 압력과 미국의 방관 속에서 핵무기 없는 서러움을 톡톡히 맛봤다. 그런 가운데 독자노선과 ‘프랑스의 영광’을 부르짖었던 샤를 드골 대통령(1890~1970년, 재임 1959~1969년)이 집권하자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1960년 2월 식민지였던 알제리(1962년 독립)에서 첫 핵실험을 했다.
사실 핵무기는 위력에 비해서는 비용이 싼 편이다. 이는 핵개발의 경제적 명분이기도 하다. 한 도시를 초토화하려면 재래식 폭탄을 적재한 폭격기로는 엄청난 규모의 항공 전력과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핵무기를 적재한 폭격기라면 소수로도 가능하다. 방공망에 대부분 격추돼도 살아남은 한 대만 있으면 된다. 문제는 이런 것만 믿고 핵무기 개발·유지와 업그레이드 비용은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실제 기본 핵무기 확보에 전체 국방예산의 절반 이상이나 들어갔다. 폭격기 등 전체 핵 전력 확보에 투입된 비용은 훨씬 더 많았다. 65~71년 중무기 획득 예산의 절반 이상을 핵무기가 잡아먹었다. 다른 분야의 군 현대화는 미뤄지거나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핵폭탄·미사일·전략폭격기·첨단전투기·항공모함 등 비용이 한없이 들어가는 무기체계를 운용하며 강대국의 일원으로 행세했다. 하지만 속까지 알차지는 못했다. 핵을 비롯한 엄청난 전력을 유지하려 했던 소련은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경제난을 겪다 무너졌다. 이젠 미국도 경제적 압박에 과도한 군사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군대를 유지하고 목에 힘을 주려면 경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돈 없이 버티는 군대는 역사에서 찾을 수 없다. 북한식 선택과 집중, 비대칭 전력 강화 전략이 역사가 가르쳐주는 경제 원리와 군사 원칙을 넘을 수 있을까. 북한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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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매체들이 전한 김정은 위원장의 보고 내용 중 군사력 관련 사항을 부문별로 나눠 전하면서 발언을 분석해본다.
“당 중앙의 직접적 지도 밑에 화성포 계열의 중거리·대륙간 탄도로켓들과 북극성 계열의 수중 및 지상 발사 탄도로켓들이 특유한 작전적 사명에 맞게 우리 식으로 탄생한 것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 국가의 지위에 대한 보다 명확한 표상을 주었으며 완전무결한 핵 방패를 구축하고 그 어떤 위협에도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략적 억제력을 굳혀나갈 수 있게 했다.”
화성포는 북한이 2017년 11월 29일 발사한 화성 15호나 같은해 7월 4일(미국 독립기념일이다) 발사한 화성 14호 등 화성 계열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즉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가리킨다. 두 미사일 모두 미국이 주시한다. 미국 본토를 노릴 수 있는 사거리를 보이기 때문이다.
화성 15호는 11월 29일 평안남도 평성(평양 북쪽 평남의 도청 소재지이자 과학기술 연구도시 및 유통도시) 부근에서 발사했다. 최고 고도 4475㎞, 수평 발사거리 950㎞를 비행해 동해의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졌다.
장거리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넘지 않고 동해에 착탄하도록 하기 위해 고각도 발사를 한 것으로 짐작한다. 각도와 고도, 비행 거리를 계산하면 정상 각도로 발사했을 경우 사거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화성 15호가 지름 2~2.4m, 길이 21~22.5m 크기에 2단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ICBM으로 사거리는 8500~1만3000㎞로 추정했다. 추정대로라면 북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 최초의 탄도미사일이다. 평양에서 미국 수도인 동부의 워싱턴DC까지는 1만1035㎞, 서부 해안의 로스앤젤레스까지는 9550㎞, 태평양 한가운데의 하와이까지는 7670㎞, 서태평양의 하와이까지는 3400㎞이다. 북한이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가능성이 있는 사거리를 가진 탄도미사일의 시험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핵무력 완성” 천명
“이미 축적된 핵기술이 더욱 고도화해 핵무기를 소형경량화, 규격화, 전술무기화하고 초대형 수소탄 개발이 완성됐으며 2017년 11월 29일 당중앙위원회는 대륙간탄도로켓 ‘화성포-15’형 시험발사의 대성공으로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 위업의 실현을 온 세상에 긍지 높이 선포했다. 당 창건 75돌 경축 열병식장에서 11축 자행 발사대 차에 장착돼 공개된 신형의 거대한 로켓은 우리 핵무력이 도달한 최고의 현대성과 타격 능력을 남김없이 과시했다.”
북한은 화성 15호 시험 발사 다음날 이 미사일에 초대형 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며 ‘국가 핵무력의 완성’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북한이 이동식수직발사대(TEL·Transporter-Erector-Launcher)로 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두고 미국에 더욱 위협적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또는 준중거리 탄도미사일(MRBM)인 대포동 미사일은 고정식 발사대에 수직으로 세운 뒤 일정 시간 동안 액체연료를 주입한 뒤 발사하는 준비 과정이 필요해 이를 사전에 포착하고 요격을 준비하는 등 대응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하지만 화성 15호는 TEL에서 발사하기 때문에 은밀하게 이동이 가능한 데다 발사 준비 시간이 짧아 그만큼 더 위협적이라는 이야기다.
북한은 2017년 7월 4일 화성 14호 첫 발사에선 최고 고도가 2802㎞였으나 7월 28일 2차 발사에선 3725㎞를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 이 탄도미사일은 사거리가 1만㎞로 미국 서부 해안까지 도달할 수 있다. 화성 14호는 무게 40t, 길이 18m, 지름 1.7m로 파악됐다.
북한은 여러 곳으로 분산된 공장에서 미사일 부품을 생산해 평양특별시 산음동에 위치한 산음동 병기연구소에서 최종 조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역에 최소 5곳의 지하 탄도미사일 발사시설이 포착됐다.
김정은이 언급한 북극성 계열 미사일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이다. 북한은 2015년 븍극성 1호의 첫 발사 시험을 했으며 2016년에는 당시 고각으로 500㎞를 비행했다. 2017년 2월 12일에는 북한 평안북도 구성군 방현비행장 근처에서 북극성 2호를 시험 발사했다. 미사일이 강한 압출 가스로 공중으로 던져진 다음에 점화해 자체 비행에 들어가는 콜드 런치 방식으로 발사됐다. 당시 북한은 이를 “지상대지 중장거리 전략탄도탄 북극성-2형”이라고 발표했다.
북극성 2호는 길이 9~12m, 지름 1.6m에 정상 각도로 발사시 사거리가 200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발사 방식 등을 고려하면 SLBM으로 전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잠수함 발사 미사일은 은밀성과 신속성 때문에 사전 제거가 힘들고 요격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김정은 “핵의 전술무기화” 강조, 한국 위협 의도
하지만 개발한 핵을 전술무기화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한국에 대한 위협이다. 핵 카드를 미국에 대한 위협이 아닌 한국 위협용으로 휘두르겠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혹은 미국의 동맹인 한국을 협박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국면을 열어보겠다는 의지로도 볼 수 있다.
김정은의 보고를 더 들어보자.
“국방과학연구 부문에서 다탄두 개별유도기술을 더욱 완성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마감 단계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신형탄도로켓들에 적용할 극초음속 활공비행 전투부를 비롯한 각종 전투적 사명의 탄두 개발연구를 끝내고 시험 제작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중형잠수함 무장현대화목표의 기준을 정확히 설정하고 시범 개조해 해군의 현존 수중작전 능력을 현저히 제고할 확고한 전망을 열어놓고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심사단계에 있으며 각종 전자무기들, 무인 타격장비들과 정찰탐지 수단들, 군사 정찰위성 설계를 완성했다.”
다양한 첨단 무기를 개발해 이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다. 특히 핵잠수함을 언급한 것은 흥미롭다. 핵잠수함은 핵추진 잠수함과 핵무기 탑재 잠수함을 모두 가리킨다. 북한이 핵추진 잠수함을 개발 중이라는 건지, 재래식 잠수함에 핵무기를 탑재해 전력화하겠다는 건지, 핵 추진 잠수함을 개발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핵무기를 탑재해 전력화하겠다는 건지는 불분명하다. 맨 마지막의 경우를 추구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흥미로운 건 김 위원장이 재래식 무기 강화도 언급했다는 사실이다.
“국방과학자들과 군수노동계급은 세계적 발전 추이를 따라잡는 우리 식의 주력 탱크 개발 방향을 바로 정하고 생산 공정을 일신하며 자기의 새로운 발전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반항공로켓종합체, 자행평곡사포, 반장갑무기들도 세계적 수준에서 개발하는 성과를 이룩했다.”
여기서 말하는 반항공로켓종합체는 항공기를 요격하는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가리킨다. 마시일은 물론 레이더와 요격시스템 전체를 이르는 말이다. 그동안 개발한 미사일 개술을 바탕으로 북한의 방공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이야기다.
자행평곡사포는 자주포를 말한다. 반장갑무기는 대전차 무기다. 이런 무기체계들을 언급한 것은 재래식 군사력 분야에서도 무기 현대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철저하게 남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전차는 기습 남침에서 핵심 무기체계다.
김 위원장 지시로 北 핵잠수함·재래식무기 강화
북한은 기본적으로 소련의 군사전략가인 미하일 투하체프스키 장군이 1936년 개발한 ‘종심공격 전술’을 바탕으로 하는 공격 전술을 채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심공격 전술은 최전선의 군사력을 둘로 나눠 주공격을 맡은 제1 그룹이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면 제2 그룹은 이 돌파구가 막히지 않도록 유지하거나 넓힌다. 적의 전선을 뚫어 돌파구를 만들어 진군한 제1그룹은 적 후방 깊숙이 진출한 뒤 최전방의 적을 포위해 섬멸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런 군대와 무기체계를 유지하는 데 엄청난 자금이 든다는 것이다. 튼튼한 경제력의 뒷받침이 없이 군사력을 강화하려면 이는 항상 풍선 효과를 유발한다.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의 사례다. 군사경제학 문제를 다룬 [성, 전쟁, 그리고 핵폭탄]이라는 책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등장한다.
강대국들도 경제적 부담 커져 군비 감축 고민
다른 폭격기도 조준 성능이 떨어져 작전에 제대로 투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공격 능력은 물론 방어 능력도 충분하지 않아 자칫 적과 맞붙다 상당한 손실을 볼 가능성도 무시 못 할 상황이었다. 슈워츠코프는 프랑스군을 이라크군 정예부대와 맞닥뜨리지 않도록 외곽에 배치했다. 프랑스군은 모욕을 느꼈다. 하지만 전방에 배치됐다면 더 큰 봉변을 당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프랑스군의 허약한 체력은 이미 1970년대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1918~2015년, 재임 1974~1982년) 총리에게 간파당했다. 이 책에 따르면 슈미트는 프랑스의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1926~2020년, 재임 1974~1981년) 대통령에게 “냉전시대 프랑스의 상황 중에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재래식 군사력이 취약하다는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강대국 프랑스의 군대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문제는 돈이었다. 당시 프랑스 육군은 4000대의 현대적 장갑차를 원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500대만 확보하는 데 그쳤다. 헬리콥터가 현대전에서 중요해지자 900대 확보를 계획했으나 190대로 만족해야 했다.
문제는 돈이었고, 그 배경은 사실 핵무기 때문이었다. 프랑스는 1956년 수에즈 전쟁 때 소련의 압력과 미국의 방관 속에서 핵무기 없는 서러움을 톡톡히 맛봤다. 그런 가운데 독자노선과 ‘프랑스의 영광’을 부르짖었던 샤를 드골 대통령(1890~1970년, 재임 1959~1969년)이 집권하자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1960년 2월 식민지였던 알제리(1962년 독립)에서 첫 핵실험을 했다.
사실 핵무기는 위력에 비해서는 비용이 싼 편이다. 이는 핵개발의 경제적 명분이기도 하다. 한 도시를 초토화하려면 재래식 폭탄을 적재한 폭격기로는 엄청난 규모의 항공 전력과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핵무기를 적재한 폭격기라면 소수로도 가능하다. 방공망에 대부분 격추돼도 살아남은 한 대만 있으면 된다. 문제는 이런 것만 믿고 핵무기 개발·유지와 업그레이드 비용은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실제 기본 핵무기 확보에 전체 국방예산의 절반 이상이나 들어갔다. 폭격기 등 전체 핵 전력 확보에 투입된 비용은 훨씬 더 많았다. 65~71년 중무기 획득 예산의 절반 이상을 핵무기가 잡아먹었다. 다른 분야의 군 현대화는 미뤄지거나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핵폭탄·미사일·전략폭격기·첨단전투기·항공모함 등 비용이 한없이 들어가는 무기체계를 운용하며 강대국의 일원으로 행세했다. 하지만 속까지 알차지는 못했다. 핵을 비롯한 엄청난 전력을 유지하려 했던 소련은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경제난을 겪다 무너졌다. 이젠 미국도 경제적 압박에 과도한 군사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군대를 유지하고 목에 힘을 주려면 경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돈 없이 버티는 군대는 역사에서 찾을 수 없다. 북한식 선택과 집중, 비대칭 전력 강화 전략이 역사가 가르쳐주는 경제 원리와 군사 원칙을 넘을 수 있을까. 북한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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