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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 증시 맥짚기] 주가 급등하는 실적장세 올까

[이종우 증시 맥짚기] 주가 급등하는 실적장세 올까

반도체‧자동차‧2차 전지, 주도주 자리매김이 관건
1990년대에 주가 분석의 틀로 일본인 우라가미 구니오가 얘기한 ‘사계론(四季論)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주가는 해당 기업의 이익과 금리에 의해 결정된다. 이 변수들이 순환하기 때문에 주가도 거기에 맞춰 등락을 거듭한다. 이익과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 걸 조합해 보면 네 가지 경우가 생기는데, 각 국면마다 주가가 다르게 움직인다.

첫번째는 금융 장세다. 경기 침체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나 회복 초기에 주로 관찰되는데, 경기가 좋지 않지만 정부의 금융완화 정책으로 주가가 상승할 때 나타난다. 돈의 힘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국면으로 볼 수 있다. 이 상황이 마무리되면 실적장세가 시작된다. 이전에 시행했던 금융완화 정책의 영향으로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는데, 자금 수요 증가로 금리가 오르기는 하지만 경기 회복에 의한 실적 증가의 영향이 더 커 주가가 상승한다. 네 국면 중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를 때다. 이 국면이 지나면 역금융장세가 펼쳐진다. 실적이 좋지만 긴축이 강화돼 주가가 하락한다. 마지막은 역실적장세로 긴축에 실적 둔화가 겹쳐 주가가 크게 하락한다.

4계절이 최근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작년 3월 이후 계속됐던 금융장세가 미국의 금리 상승으로 마무리돼 앞으로 실적의 힘이 강해질 걸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지금이 금융장세에서 실적장세로 넘어오는 기로점이라는 얘기인데, 1분기 이익이 실적장세로 전환을 완성하는 계기가 될 거라 보고 있다.
 금융장세는 명확하게 나타나지만 실적장세는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
그 동안 우리시장은 사계론에 맞춰 움직였을까? 과거 몇 번의 경우를 보면 금융장세는 원래 성격에 맞게 나타나지만 다른 국면은 서로 뒤엉켜 뚜렷하지 않았다. 실적장세로 넘어왔을 때 실적만 좋은 주식은 코스피 상승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실적 증가에 주도주 편입이 더해진 주식만이 높은 수익을 올리는 특징도 관찰됐다.

먼저 1992~1994년이다. 20%에 육박하던 금리가 12%까지 떨어진데다 정부의 경기부양대책이 더해져 코스피가 450에서 750까지 상승하는 금융장세가 나타났다. 이때 오른 주식은 특징을 하나로 묶기 어려울 정도로 중구난방이었다. 직전에 주가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상승하는가 하면, 단순히 가격이 낮기 때문에 상승한 주식까지 다양했는데 주가가 일정 수준이 되지 않는 주식은 모두 올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1993년 2분기부터 실적이 좋아졌지만 주가가 별달리 반응하지 않았다. 직전 금융장세 때 주가가 올라 실적의 상당 부분이 주가에 반영돼 버렸기 때문이다. 실적에 의한 주가 상승은 이익이 늘어난 기업 중 주도주가 만들어지고 난 후에 시작됐다. 이 때 주도주로 부상한 종목이 삼성전자, SK텔레콤, 현대차, 포스코 등 우리가 업종 대표주라고 얘기하는 회사들이다. SK텔레콤의 경우 1993년 10월부터 주가가 오르기 시작해 1년만에 5.5배 상승했다. 삼성전자도 3배 넘게 상승했는데, 외국인에게 우리 주식시장이 개방된 후 이들이 업종 대표주를 집중 매수한 게 해당 종목들의 가치를 다시 보게 만든 계기였다. 2004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04년 7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8개월간 금융장세가 진행돼 700이었던 코스피가 950이 됐다. 당시 금융장세는 2003년 카드채 사태로 급등했던 금리가 하락하고, 911테러 이후 연준이 기준금리를 1.0%까지 내려 전세계에 유동성을 공급한 덕분이었다. 이 때 역시 상승 종목은 특징을 찾기 힘들었다. 경기 회복 기대로 화학과 철강이 오르는가 하면 중소형주까지 가세해 많은 종목이 조금씩 오르는 형태였다.

2005년부터 실적이 좋아졌지만 이익 증가가 주가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금융장세 때 이익 증가의 상당부분이 주가에 먼저 반영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가가 올라간 종목은 실적 개선에 다른 재료가 더해져 주도주군이 형성된 종목들이었다. 2005년 3월 1차 실적장세는 증권주가 주도했는데 9개월 사이에 3배 넘게 올랐다. 주식시장 호황으로 이익 증가가 기대되는 데다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으로 증권업의 구조가 새로 짜여질 거란 기대가 더해진 결과였다. 또 한번의 실적 장세는 2007년 중국 관련주를 통해 이루어졌다. 대표주였던 두산중공업의 주가를 보면 2007년초 3만5000원에서 8개월 후에 15만원까지 올라왔다. 2007년이 중국 특수가 최고를 향해 올라가는 기간이어서 실적이 좋고 미래에 대한 기대도 큰 종목이 시장을 주도한 것이다.
 주도주가 형성되는지 지켜봐야
1분기 실적 발표를 계기로 실적장세가 펼쳐질 거란 기대가 크지만 현실화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앞의 경우들처럼 이번에도 금융장세 때 이익 증가의 많은 부분이 주가에 선반영된 상태다. 이 상황에서 실적이 작동하려면 시장의 기대보다 이익이 월등히 좋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작년 하반기 이후 영업이익 증가율이 50%를 넘는다. 이는 50~60% 정도 이익 증가는 이미 가격에 반영돼 있다는 의미가 된다. 주가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더 큰 이익 증가가 있어야 한다.

실적이 역할을 하려면 이익 증가와 함께 종목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주도주가 만들어져야 한다. 지난 석 달간 시장은 그런 형태가 아니었다. 업종 대표주, 경기 민감주, 기타 재료를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돌아가면서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주도주가 만들어지지 않은 건데 이런 모습이 바뀌어야 한다.

주도주 후보로 시장이 꼽고 있는 업종이 반도체, 자동차, 2차 전지 등이다. 자격을 갖춘 게 맞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반도체는 이익이 더 증가해야 한다. 자기자본 대비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자기자본이익률(ROE; Return On Equity)이 있다. 수치가 높을수록 많은 이익을 낸다고 보면 맞다. 반도체 경기가 좋았던 2013년과 2018년에 삼성전자의 ROE 평균이 48%였다. 올해 예상치는 32.8% 이다. 이익률이 과거보다 낮은 데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이미 2018년 호황 때의 1.7배까지 올라왔다. 예상보다 이익이 더 늘어야만 반도체가 주도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2차 전지는 자동차 회사들이 자체 생산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넘어야 한다. 현재 리튬전지를 뛰어넘는 차세대 전지가 나올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주가가 낮다면 이런 우려가 문제되지 않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태가 아니다.

현재 시장이 생각하고 있는 주도주 후보들이 모두 탈락한다면 코스피는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금융장세 다음은 실적장세라는 도식적 형태를 적용하기에는 작년 주가 상승이 너무 컸다. 시장의 힘이 어떤 주식군으로 모이는지 잘 지켜봐야 한다.

※필자는 경제 및 주식시장 전문 칼럼니스트로, 오랜 기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해당 분석 업무를 담당했다. 자본시장이 모두에게 유익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한 주식투자의 원칙] 등 주식분석 기본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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