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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급발진 논란에도 인정 ‘0건’...힘없는 소비자 ‘피눈물’[백카(CAR)사전]

급발진 피해 신고 최근 6년 간 201건
결함 의심되면 운전자가 직접 밝혀야
급발진연구회 내달 실태 조사 결과 발표

자동차 산업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쉴 새 없이 신차가 쏟아지고, 하루가 다르게 기술 수준이 발전합니다. 이 과정에서 각종 사건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자동차 관련 정보는 정말 방대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식을 모아서 정리한 책인 백과사전처럼 ‘백카(CAR)사전’ 코너를 통해 자동차와 연관된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국내에서 급발진 추정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가로수를 들이받은 자동차.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게티이미지]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굉음을 내며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로 내달린다. 감속페달을 밟아보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통제불능 상태의 자동차는 운전자와 동승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 같은 사고로 운전자, 동승자 등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급발진’ 얘기다.

‘급발진’은 운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동차가 스스로 급가속하는 현상을 말한다. 짧게는 수십초, 길게는 수십분 간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된다. 엔진회전수(RPM)가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에 굉음이 발생하며 감속페달을 밟아도 제어가 되지 않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급발진의 주요 원인으로는 전자제어장치(Electronic Control Unit, ECU) 오류가 꼽힌다. ‘자동차의 뇌’로 불리는 ECU는 자동차 엔진 기능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장치에 오류가 발생하면 RPM이 치솟고 급발진이 진행된다는 얘기다.

급발진 피해를 호소하는 소비자들은 다수 존재한다. 지난해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홍기원 의원이 국토교통부 산하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리콜센터에 접수된 급발진 피해 신고건수는 최근 6년(2017년부터 2022년 7월) 간 201건에 달한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급발진 피해 신고건수가 가장 많은 제조사는 총 95건의 현대자동차다. 이어 기아 29건, 르노코리아자동차 18건, BMW 15건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모두 급발진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급발진이라고 인정을 받은 사례가 없다. 급발진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은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서지만 금세 좌절한다. 현행법상 소비자가 직접 결함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함이 아님을 제조사가 입증해야 하는 미국과 상반된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급발진 관련 소송에서 소비자들이 연이어 패소하고 있지만 한 줄기 희망은 보인다. 2018년 5월 호남고속도로 인근에서 발생한 BMW 급발진 사건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해당 사고로 60대 부부가 목숨을 잃었고, 유가족들은 BMW코리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유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제조사가 결함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향후 급발진 관련 소송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어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제조사들이 급발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현대차는 최근 성능이 개선된 빌트인 캠 2를 개발해 상용화했다. 방향지시등, 위치 등의 정보가 모두 빌트인 캠 2 촬영 영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가·감속페달 조작 여부는 표시되지 않는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제조사들도 급발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며 “운전자의 제어 정보를 블랙박스 등에 포함시키는 것이 제조사 입장에서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제조사들이 급발진 추정 사고 발생 시 내세우는 사고기록장치(EDR)도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EDR에는 운전자의 가·감속 페달 조작 여부가 기록된다. 급발진 추정 사고 발생 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EDR 자료를 분석하는 이유다.

김 교수는 “사고기록장치로 불리는 EDR은 ECU를 거쳐 나오는 정보라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EDR의 원래 용도는 사고 시 에어백 전개 과정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발을 찍는 블랙박스가 나오면 급발진 관련 사고가 운전 미숙인지, 제품의 결함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는 매년 발생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없다. 오히려 운전자가 안전운전 의무를 위반했다며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 게 현실이다. 힘없는 소비자는 이렇게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일부 단체들은 비공식적으로 급발진 관련 연구를 지속하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다음 달 말에는 서울시의회와 자동차급발진연구회가 함께 하는 급발진 관련 세미나가 개최될 예정이다. 자동차급발진연구회는 이날 세미나에서 급발진 실태 조사 결과와 대응 과제를 발표하고, 발을 찍는 블랙박스도 공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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