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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미술시장’ 좋은 날 다 갔다?…수억 든 ‘빅 컬렉터’ 잡으려면

[격변의 미술경매시장]① 1조 호황에도 경매는 ‘삐걱’
메가 컬렉션 경매 부재…이우환 등 블루칩 작가군 한정
세계 시장과 대비…거물 소장품·희소성 작품 시장 활발

지난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아트페어‘프리즈 서울’전경. [사진 김서현 기자]

[이코노미스트 김서현 기자] “경기침체가 아트마켓에 영향 줄 것…‘안정’에 방점 찍어야 한다”

국내 미술시장 규모가 지난해 사상 최초로 1조원을 넘기는 등 꾸준히 상승가도를 달려가고 있다. ‘서울이 미래의 문화 수도’라는 말이 더 이상 단순한 우스갯소리만으론 들리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지난해 미술시장 상승세는 경매사 대신 아트페어가 견인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열린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 덕분에 아트페어 매출은 지난 2021년 1889억원에서 지난해 3020억원으로 59.8% 급증했다. 반면 경매사를 통한 판매액은 오히려 감소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최근 펴낸 ‘2022년 미술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경매업체 10곳의 지난해 낙찰 총액은 전년에 비해 28.4% 줄었다. 2021년의 호황을 지켜내지 못하고 침체 조짐을 보인 것이다. 미술품 경매시장은 지난 24년간 1830배에 달할 정도의 급성장세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1분기 낙찰총액 785.3억원을 기록한 이후 2분기 665억3000만원, 3분기 443억6000만원, 4분기 440억8000만원으로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렸다. 

경매시장이 주춤하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긴축정책·금리 인상·전쟁 등 한국 경제를 덮친 악조건이 지목된다. 실타래처럼 꼬인 경기 불황 탓에 소비자의 투자 의지가 꺾여, 미술시장이 강제 조정기에 들어간 셈이다. 일명 ‘아트테크’ 대열에 합류해 고가의 미술작품을 향유하고, 그 가치에 투자하던 이들이 잠시 숨죽이는 모양새다. 또 최근 연이은 가상화폐 폭락과 주가 하락도 시장이 피해갈 수 없었던 악재 중에 하나다. 

이우환, 김환기로는 빈약한 ‘버팀목’…‘블루칩 작가군’ 넓혀야

국내 미술경매시장에서는 블루칩 작가로 이우환, 김환기, 윤형근, 박서보 등의 단색화 작가가 꼽힌다. 사진은 순서대로 지난해 경매에 나온 이우환 ‘점으로부터’, 박서보 ‘묘법 No. 051025’, 김환기 ‘무제(1970)’. [사진 서울옥션, 케이옥션]


업계에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미술시장이 건전성을 높여, ‘안정적인 시장’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선 내부에서부터 극복해야 할 숙원 과제가 있다. 국내 시장에 불황을 버텨낼 버팀목이 매우 빈약하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미술품 수요는 이우환, 김환기, 윤형근, 박서보 등 단색화 작가 중심의 국내 블루칩과, 글로벌 마켓에서 통용돼 환금성이 좋은 외국작가에 쏠려 있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는 이러한 국내 미술경매 업황을 두고 “불황에도 버텨낼 수 있는 메가 컬렉션 경매(미술사에 등재된 작가와 작품 컬렉션)가 없고, 불안한 시장을 버텨낼 안전자산인 블루칩 작가군이 한정돼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특히 단기적으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초현대작가군(1975년 이후 출생), 즉 신진작가의 입지가 불안정한 상황도 이에 가세한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작가군 빅3로 불리던 문형태, 우국원, 김선우는 최근 그 기세가 꺾였다.

지난해 낙찰률은 3명 모두 100%를 기록했으나, 낙찰 총액은 전년에 비해 하락하거나 정체했다. 문형태는 2억원으로 66.7%, 우국원은 15억8000만원으로 57.8%가 떨어졌다. 김선우는 10억2000만원으로 전년 수준을 겨우 유지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크리스티 뉴욕의 폴 G 앨런 컬렉션 경매에서 조르주 쇠라의 ‘모델들, 군상(작은버전)’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해당 작품은 컬렉션 중 최고가인 1억 4920만 달러(한화 약 2000억원)에 낙찰됐다. [사진 크리스티]

이는 해외 경매시장의 상황과 명확히 대비된다. 불안한 경제상황 속에서도 해외 메이저 경매사 소더비(Sotheby's), 크리스티(Christie's), 필립스(Phillips)는 지난해 나란히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3사가 기록한 매출액은 각각 크리스티 84억 달러(약 11조원), 소더비 80억 달러(10조4000억원), 필립스 13억 달러(1조7000억원)에 달한다.

해외 경매시장은 메가 컬렉션 경매의 매출 수익만으로 불황을 버텨낼 수 있을 만큼 다양하고 안정적인 포트폴리오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크리스티는 지난 2018년 세상을 떠난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 ‘폴 앨런 컬렉션’ 경매만으로 지난해 16억2000만 달러(2조11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장에서는 블루칩 작가군의 다양화로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신진작가에게 일회성 투자가 아닌 다각적인 검증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시장 구조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서민희 필립스 옥션 한국 대표는 “이우환 정도의 작업 능력과 커리어를 가진 이가 외국 작가였다면 몇십억 수준이 아닌 훨씬 더 높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질 것”이라며 “이는 단순히 하나의 문제라기 보다는 신규 컬렉터나 스타 작가층을 두텁게 하고 해외 갤러리나 미술관 노출 횟수를 늘리는 등 전반적인 요소들이 함께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케이옥션 관계자도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컬렉터 층이 두터워지는 것”이라며 “2021년 하반기부터 유입된 신규 컬렉터들이 지속적으로 컬렉팅을 할 수 있도록 시장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다양하고 좋은 작품과 정보를 끊임없이 선보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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