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현 “예대마진 축소보다 만기연장이 금융소비자에겐 더욱 절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 인터뷰
“대출금리 강제로 내리도록 압박하면 은행은 대출 축소한다”
“은행 경쟁력강화…사외이사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 필요”
[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 “예대마진 축소보다 더 중요한 건 롤 오버(만기대출연장)를 원활히 해주는 일이에요. 은행에서 롤오버를 잘 안 해주니 더 높은 금리부담에도 불구하고 2금융권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서울대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은행의 예대마진 논란과 관련해 “고금리는 필연적으로 신용위험을 높이는 만큼 은행에 임시방편으로 예대마진을 줄이라고 강제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금리상승기엔 예대마진 축소를 유도하고 대신 금리하락기엔 확대를 용인하는 예대마진 평활화가 필요하다”며 “이를 제도화하면 은행에 대한 관치논란도 불식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은행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사외이사들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이사회에서의 발언 내용을 녹취록으로 보관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시형태로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안 교수는 고려대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 자본시장연구원장을 역임했고 금융위기 시절 영국 대표 은행인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의 퀀트전략본부장에서 투자전략을 담당하는 등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최고의 금융석학중 한 명으로 꼽힌다. 지난 2월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으로 위촉돼 금융정책을 자문하고 있다.
은행산업의 과점 폐해 논란, 국내 금융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안 교수의 진단과 처방을 들었다.
Q. 은행들이 돈잔치를 벌이면서 때아닌 과점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A. 은행을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건 쉬워요. 물론 은행이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매도되는 경우가 있어요. 금리에 따른 예대마진 확대로 은행들이 역대 최고 수익을 거두면서 성과급을 크게 풀고 그들만의 잔치를 벌였으니 비난을 피할 수 없겠죠.
그렇다고 예대마진을 통한 은행의 수익이 과점에 따른 수혜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예대마진은 금리가 올라가면 당연히 확대되는 거예요.
또한 지금 은행 과점체제는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의 산물이에요. 외환위기 때 다 무너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몇개 은행이 남은 것이지 의도적으로 과점을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잖아요. 전 세계 은행 대부분은 과점체제로 이뤄져 있어요.
Q. 은행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해야겠군요.
A. 금융산업, 특히 은행산업은 강력한 규제와 감시가 적용되는 산업이에요. 상법상 주식회사지만 파산할 경우 경제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시스템 리스크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건전성이 생명입니다. 그래서 은산분리, 자본비율, 유동성 규제 등 촘촘한 사전규제와 사후 모니터링이 필수적이죠.
또 은행과 고객 사이엔 정보의 비대칭이 불가피하므로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해서도 영업 규제와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 은행이 위험이 수반되지 않는 비이자 수수료 수익을 늘리기 위해 금융상품판매에 주력할 경우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서 보듯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높아져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해칠 수 있어요.
즉 은행은 주주가치를 제고하면서도 건전성 유지와 금융소비자의 권익 보호라는 3가지 축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들 목표는 상호보완적일 수 있지만 때로는 상충하기도 합니다.
과점해소를 위해선 규제완화를 통해 진입장벽을 낮춰 경쟁을 촉진해야 하는데 자칫 건전성이나 소비자보호에 역행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은행의 과점해소는 은행의 건전성과 소비자보호라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Q. 금융상품의 구조가 유사하다면서 이게 과점의 결과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어요.
A. 라면값이 회사별로 차이가 얼마나 날까요. 인터넷치면 가격이 다 나오니 가격차가 거의 없죠. 금감원이 정보 제공 차원에서 금융상품 비교사이트를 만들어놨어요. 금리, 수익률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니 비슷한 가격, 비슷한 상품구조가 나오는 겁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마케팅 방식도 유사하구요. 자연스런 경쟁의 결과입니다.
물론 묵시적 담합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정밀한 분석이 요구됩니다. 단순히 예대금리차가 비슷하다는 결과만으로 담합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무리입니다.
Q. 예대마진은 은행으로선 일종의 보험료인데요.
A. 사실 금리가 올라가면 은행 예대 마진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해요. 고금리는 필연적으로 신용위험을 높이는 만큼, 부실대출 그리고 디폴트에 대비한 손실보전 차원에서 예대마진을 높일 수밖에 없어요. 은행으로선 보상 보험료를 미리 받는 겁니다.
다만 예대마진 확대로 당장에 대출이자 부담은 크게 보이지만 부실에 따른 손실은 미래에 발생하니 시점에 간극이 발생하는 거예요.
예컨대 지난해 금리가 크게 올라 은행으로선 보험료를 여유있게 챙기는 차원에서 예대마진을 크게 확대했습니다. 지금 연체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비용 청구서가 날아오는 셈이죠.
Q. 그런 면에서 예대마진을 축소하는 게 능사는 아니군요.
A. 예대마진도 (외환시장 개입처럼) 미세조정, 이른바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이 필요해요. 금리가 오를 땐 예대마진 축소를 유도하고 대신 금리가 내릴때 확대를 용인하는거죠. 일종의 예대마진 평활화라고 할까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면 돼요.
예전에 정부가 물가를 관리할 때 품목을 정해 동결을 유도하고 나중에 물가수준이 안정되면 인상을 용인해주는 방식과 같은 거죠. 시간적으로 평활화시켜 차입자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겁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시장친화적인 방식으로 예대마진 축소를 권고하면 되는데 과점 해소를 통해 예대마진을 줄이려고 하니 시간도 엄청나게 걸리고 해결도 난망해졌죠.
예대금리보다 더 중요한 건 롤오버, 즉 만기대출을 차환해주는 문제입니다. 당국이 예대마진 축소를 위해 대출금리를 강제적으로 끌어내리도록 압박하면 은행은 대출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죠. 그러면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은 은행에서 롤오버가 안 되니 더 높은 금리부담에도 불구하고 2금융권으로 넘어가게 되죠.
지금 그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대마진을 축소하라고 압박하면 역설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대출자들의 부담은 더 늘어나게 됩니다.
Q. 은행도 이익이 나면 성과급을 풀 게 아니라 자본 확충을 더 해야 할텐데요.
A. 은행은 대손충당금을 더 많이 쌓으려는 유인이 있어요. 그런데 수익이 많이 날 때 충당금을 좀 더 쌓으면 국세청에서 분식회계라며 문제를 삼아요. 세금 덜 내려고 이익을 줄이는 게 아니냐는 거죠.
그러니 제도적으로 충당금을 더 쌓도록 해야 해요. 은행으로선 규제범위 내에서 충당금을 쌓아야 하니 남는 이익을 세금으로 내느니 차라리 직원들에게 뿌리는 거죠.
은행들은 작년에 이미 충당금을 다 적립해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 쌓을 여력이 없습니다. 만약 충당금을 더 쌓게 해두었으면 지금처럼 연체율이 높아질 때 상각하면 되니 문제가 없죠. 충당금이 줄기 시작하면 대출을 해주려고 해도 해줄 수 없어요.
그러니 ‘비 올때 우산 뺏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경기가 나쁠때 대출을 더 해줄 수 있어야 신용이 창출되면서 민생과 경기에 도움이 되잖아요. 충당금규제는 세무당국과 정책협조의 방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Q. 은행의 과점 논란을 계기로 한국 금융의 현주소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 우리가 금융산업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부터 던질 필요가 있어요. 쉽지 않을 겁니다. 스위스가 금융을 키워 먹고 살겠다고 UBS와 크레디트스위스(CS)를 키웠고 이들 회사들이 공격적으로 나갔지만 결국 CS가 최근 무너졌잖아요.
그런 면에서 너무 수익에 매달리는 건 생각해볼 문제에요. 이자장사만 하지 말고 비이자수수료 비중을 늘리라고 하면 불완전판매의 유인이 커져요. 특히 투자은행(IB) 업무 같은 위험한 투자에 나설 공산이 큽니다. 과연 은행이 과도한 리스크를 감내하면서 IB 업무를 확대해 나아가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에요.
우리도 골드만삭스나 JP모건 같은 선진 금융회사를 키워보겠다고 했는데 지금 어떻게 됐나요. 과거 KB은행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카자흐스탄 은행을 인수했다가 1조원을 날렸잖아요. 카자흐스탄 한 곳도 장악 못하면서 무슨 글로벌 은행인가요.
Q. 기본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거군요.
A. 금융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산업과 가계에 유동성을 너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히 공급해 경제 전체에 돈이 잘 돌도록 하는 거예요. 유동성 변환(liquidity transformation)을 통해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능을 하고 그 과정에서 적정 수익을 얻는 것, 이것이 기본으로 은행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여기에 플러스알파로 돈을 더 벌 수 있으면 좋은거죠. 그런데 너무 돈 버는데만 급급하다보면 기본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리스크관리에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사실 우리나라 은행만큼 리테일쪽에서 서비스가 좋은 곳은 없어요. 씨티뱅크, HSBC 다 한국을 떠났잖아요. 핀테크가 우리나라에서 발 붙이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에요. 다른 나라는 워낙 리테일 서비스가 후진적이잖아요. 그만큼 우리나라 은행이 서비스 면에선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기본을 계속 잘 살려야 해요.
Q. 금융허브, 메가뱅크론 등 다양한 금융산업 발전방안이 제시돼 왔습니다.
A. 시대적 유행에 따라 금융허브, 메가뱅크 운운하지만 결과는 어떤가요. 금융허브의 경우 일단 우리 사회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고 법인세와 근로소득세가 낮은 나라도 아니예요. 우리가 아무리 금융허브 만든다고 떠들어도 기본적으로 해외 금융기관들을 유인할 수 있는 인프라가 경쟁국들에 비해 열악한 편입니다.
해외로 나가더라도 현지화 토착화가 말처럼 쉽지 않아요. 국내 은행들 간에도 주거래 고객 한 명 끌어오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해외에선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런 면에서 은행들은 일단 지역 대표은행을 목표로 하는 게 어떨까요. 아시아에서 리딩뱅크가 되겠다는 겁니다.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세계적인 IB들과 겨룬다는 건 꿈은 좋지만 도달하는 여정이 너무 위험하죠. 기껏 5개 은행밖에 없는데 한 은행만 무너져도 우리 금융시스템 전체가 무너집니다.
Q. 제도적 뒷받침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국내 금융회사들의 경쟁력을 위해선 정치논리부터 배제해야 해요. ‘감놔라 배놔라’는 식의 쓸데없는 개입이나 그림자금융부터 자제해야 해요.
최근 1000만원 기본대출 논란 보세요. 기본 소득 시리즈를 브랜드화 하겠다는 일종의 정치적 구호인데 정치인들의 금융에 대한 인식수준을 보여주는 단면이에요.
금융당국도 보다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해요. 라임사태 때 보듯 소형 자산운용사가 메자닌과 같은 특정 상품을 통해 운용자산규모가 몇 년새 수십배로 늘어났다면 반드시 체크를 했어야 합니다. 대규모 권력형 금융사건의 경우 감독당국의 책임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Q. 금융권 내부에서도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 같아요.
A. 관치도 문제지만 금융권도 그들만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되죠. 무엇보다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이사회에서 은행 경영진이 잘 하면 연임시켜주고 못하면 단칼에 날려야 하는데 경영진과 밀착된 사외이사들로선 한계가 있죠.
그래서 사외이사에 대한 모니터링을 제대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특정 사외이사가 속한 대학에 은행이 사내 교육과정을 개설하거나 법무법인, 세무법인 등과 거래가 있는지 감시해야 합니다. 인사에 개입하면서 그 답례로 현 경영진과 유착관계가 형성되는지도 철저히 살펴야하구요. 또한 결정적으로 이사회 녹취록을 보관만 할 게 아니라 공시형태로 공개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헤드헌팅 회사가 추천하는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대부분 경영진 입장에서 편하게 거수기 역할만 할 사람들이 추천됩니다. 이러한 후보들을 걸러내고 제대로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을 감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이사회 녹취록 뿐 아니라 안건 사전설명때의 녹취록까지, 영업비밀과 관계된 내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달라질 거예요.
송길호(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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