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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과 방패? 우악스러운 규제와 꼼수?…유럽 플랫폼 규제 맞선 ‘애플의 선택’ [한세희 테크&라이프]

앱 마켓 장악한 애플·구글…EU ‘디지털마켓법’ 직격탄
애플 ‘핵심기술료’ 신규 정책…EU ‘규제 우회’ 꼼수 비판

애플 앱스토어. [사진 AP/연합뉴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현재 세계 모바일 시장의 지배자는 애플과 구글이다. 모바일 기기의 운용체계(OS)와 스마트폰에서 쓰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유통하는 채널인 ‘앱 마켓플레이스’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OS를 통해 앱 개발 조건을 결정하고, 앱 개발사가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을 통제한다. 이 과정에서 이뤄지는 결제에 대해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얻는다. 이를 통해 앱과 사용자에 대한 총체적인 데이터도 얻을 수 있으니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광고 효율을 높이는 데도 유리하다. 자신들의 앱 마켓에서 유통되는 앱과 경쟁하는 제품도 쉽게 만들 수 있다.

애플과 구글의 앱 유통 정책은 사용자가 보안 위협 없이 안전하게 다양한 앱을 쓸 수 있게 했으며, 개발사에도 세계의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유통 경로를 열어줬다. 스마트폰 시장 초기, 1인 개발자나 중소 개발사의 폭발적 성공 스토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 플랫폼의 시장 장악력은 계속 커졌고, 이제는 시장 경쟁을 저해하고 앱 개발사들을 착취한다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애플이 개별 앱이 아이폰 사용자에게 광고를 위해 사용자 추적을 해도 되겠냐고 동의를 구하도록 정책을 바꿈에 따라 디지털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메타가 직격탄을 맞은 것이 대표적이다. 앱 내 디지털 콘텐츠 구매에 대해 꼬박꼬박 수수료를 내야 하는 넷플릭스나 스포티파이 같은 기업도 불만이 많다. 이모티콘을 파는 카카오나 부분 유료화로 돈을 버는 네이버 웹툰도 외부 결제를 유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포트나이트’로 유명한 에픽게임스는 이 문제로 애플·구글과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유럽, DMA로 거대 플랫폼 규제 나서

앱 유통 외에도 검색·전자상거래·메시징 등 여러 시장에서 소수 플랫폼 기업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사용자 데이터를 독점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디지털 기술은 국경의 제약을 받지 않는 데다, 네트워크 효과로 1-2개 선도 기업에 사용자가 몰린다. 이렇게 성장한 거대 플랫폼은 방대한 사용자 기반과 빅데이터를 앞세워 경쟁사와 격차를 더 벌리고, 플랫폼 참여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한다. 반면, 국가가 이들의 행태에 개입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여러 나라에서 거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마켓법(DMA)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매출이나 사용자, 시장점유율을 가진 핵심 플랫폼 서비스 기업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불공정행위를 못 하도록 사전 규제하고자 한다. 애플과 구글, 아마존과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틱톡 운영사 바이트댄스 등 6개 기업이 지난해 이 법에 따른 게이트키퍼로 지정됐다. 삼성전자는 마지막 순간에 제외됐다. 이들 6개 기업은 검색 결과에 자사 제품을 우대하거나, 자사 앱 마켓이나 결제 수단만 이용하게 하는 행위 등이 금지된다.

5월 DMA 시행을 앞두고, 애플이 최근 자사 앱 마켓 앱스토어 등에 대한 변경된 정책을 발표했다. EU 역내 국가에만 적용되기는 하지만, 앱스토어가 아닌 제3자 앱 마켓에서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했다. 애플 자체 결제 수단이 아닌 외부 결제 수단을 쓸 수 있게 변했다. 외부 결제 수단을 쓰면 수수료도 내려간다. 애플 플랫폼에 대한 비판을 수용한 듯한 모양새다.

이 때문에 애플이 유럽에선 꼬리를 내리고, 한국에선 배짱 영업을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은 2021년 앱 마켓에서 자체 결제 수단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이른바 ‘구글 갑질 방지법’을 세계 최초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구글은 외부 결제 수수료를 4%만 내려 결제 수단 변경에 따른 유익이 없게 만들었고, 애플은 자사 정책이 위법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어 아직 실질적 제재는 없는 상태다.
유럽연합(EU) 깃발.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DMA 회피하려는 애플의 꼼수

하지만 애플의 새 정책을 살펴보면, 애플이 과연 DMA를 지킬 마음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EU에서 활동하는 개발사들은 기존 애플 앱스토어 정책에 따라 사업하거나, 이번에 새롭게 제시된 규정을 따를 수 있다. 기존 정책대로 사업하면 변하는 것은 없다. 새 EU 규정을 택한 상태에서 앱스토어에서 앱을 유통하면 앱 구매 및 앱 내 구매 수수료가 기존 30%와 15%에서 20%-13%(애플 결제 수단 이용), 17%-10%(외부 결제 수단 이용)로 줄어든다. 외부 앱 마켓에 입점하면 애플 결제 수단을 쓸 필요가 없고, 수수료도 없다. 다만, 애플 앱스토어와 외부 앱 마켓을 함께 이용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새 규정을 택한 사업자는 모두 ‘핵심기술료’(CTF)를 새로 내야 한다. 연간 앱 다운로드 100만 건까지는 면제되지만, 그 이상 설치될 경우 건당 0.5유로(약 720원)을 매년 내야 한다. 100만 다운로드는 적은 수치가 아니다. 애플은 전체 개발사의 1% 정도만 CTF를 내게 되리라 추정한다. 하지만 이는 부분 유료화 방식 앱 개발사에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수익 모델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앱이 뜬다면 CTF를 감당할 수 없다. 앱 시장의 역동성과 신규 도전 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다. 스포티파이같이 대규모 고객군을 상대로 낮은 수익률의 광고 및 구독 모델을 돌리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스포티파이·에픽게임스·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애플의 이번 조치가 DMA를 우회하고 지배력을 도리어 강화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애플의 새 정책이 EU의 승인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그렇더라도 거대 디지털 플랫폼의 행동을 규제하기란 쉽지 않음을 이번 일은 또 한 번 보여준다. 게다가 디지털 시장은 변화가 빨라 법이 적용될 즈음엔 별다른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이를테면, 지금 규제 우선순위를 검색·앱 유통·인공지능(AI) 중 어디에 둬야 할까? DMA가 소비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미국 빅테크 기업을 옥죄기 위한 법이란 점도 이 법이 소비자 불편을 늘일 뿐 실질적 규제 효과는 거두기 어려우리란 우려를 보탠다.

한국의 공정위 역시 DMA와 비슷한 사전 규제 방식의 플랫폼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은 유럽과 달리 네이버·카카오·쿠팡 같은 토종 ‘작은 빅테크’들이 있어 문제의 복잡성을 더한다. 디지털 시장의 공정 경쟁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관철할 것인지 알아내기 위한 시도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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