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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 혐의 모두 무죄’ 이재용과 힘겨루기 지속?…검찰 벌써 ‘항소 카드’ 만지작

이재용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 모두 1심서 무죄
검찰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 검토해 항소 여부 결정”
외신 “놀랍다”…재계 “환영”…시민단체 “괴이한 선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부당 합병’ 의혹에 대한 무죄 선고가 나왔음에도 검찰은 힘겨루기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 회장을 기소한 19개 혐의 모두 1심에서 무죄로 나왔다. 검찰은 그런데도 벌써 ‘항소 카드’를 들여다보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재계 일각에선 검찰이 판을 뒤집기 어렵다고 판단했음에도 ‘발목잡기’에 나선 것이란 지적을 내놓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지귀연·박정길)는 5일 ‘부당 합병·회계 부정’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과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은 이에 대해 “이날 선고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이재용 회장 등 사건 1심 판결에 대해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검토·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크게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상 거짓 공시 및 분식회계 등 3가지 협의를 받는다. 세부적으론 19개 달한다. 검찰은 이 회장이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부당한 방법을 썼다고 봤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17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 사안을 삼성식 ‘반칙의 초격차’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규정,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한 바 있다.
[그래픽 연합뉴스]

재판부는 이 회장에게 적용된 이런 혐의 모두가 무죄라고 판단했다. ▲두 회사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닌 점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점 등이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승계작업 자체는 인정했지만, 이 과정에서 불법성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또 검찰이 진행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압수수색에 위법성이 있어 이 과정에 획득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전실이 계획한 이른바 ‘프로젝트-G(거버넌스)’ 역시 경영권 승계 문건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검사가 주장하는 손해는 ‘추상적 가능성’에 불과해 그 자체로 업무상 배임죄 손해가 될 수 없다”며 “달리 ‘객관적·개연적으로 기대되는 이익 상실’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짚었다.

이 회장의 1심 무죄 선고는 검찰 기소 후 약 3년 5개월 만에 이뤄졌다. 이 기간 106회 공판이 열렸다. 이 회장은 이 중 95회를 직접 출석했다. 대통령 해외순방 등 주요 일정을 제외하곤 사실상 모든 재판에 참석한 셈이다. 재계에선 이를 두고 “글로벌 경영 최전선에 있는 이 회장이 서초구에 발이 묶인 것”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1심 선고에서 19개 세부 혐의 모두 무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 선고 결과가 이 회장이 향후 재판정에 설 가능성이 없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검찰이 일주일 내 항소할 경우, 이 회장은 다시 법정으로 불려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2심 공판이 매주 열리는 만큼 경영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2심이 진행되더라도 주요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가 정리된 상태라 전개 속도는 빠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 연합뉴스]

‘이재용 무죄’에 대한 세간 평가는?

1심 무죄 선고가 나오면서 오랜 시간 이 회장 경영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사법 리스크’가 완화될 조짐을 보이자, 외신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나섰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 회장이 중요한 승리를 거뒀다”며 “10년 이상 이 억만장자를 괴롭혔던 징역형의 위협을 마침내 제거했다”고 썼다. 미국 CNN 방송은 법원의 이번 결정을 ‘깜짝 판결’이라고 보도하며 “수년간 법적 문제에 휘말려 온 이 회장에게 큰 안도감을 줬다”고 했다.

이 회장의 1심 무죄 선고에 대해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반기는 논평을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측은 “경영계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금번 판결을 통해 지금까지 제기됐던 의혹과 오해들이 해소되어 다행”이라며 “삼성이 그동안 사법리스크로 인한 경영상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 국가경제 발전에 더욱 매진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국무역협회 역시 “최근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고 첨단산업 투자에 대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현재의 여건을 감안하면 판결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반면 참여연대는 “재벌들은 지배력을 승계하기 위해 함부로 그룹 회사를 합병해도 된다는 괴이한 선례를 남긴 판결”이라며 “사법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대한민국의 경제사법 정의가 무너졌다”며 “일련의 과정을 보면 법원과 검찰은 이재용 회장의 소유지배 확립을 위한 30년 대서사시의 충실한 조연이었던 건 아닌지 참담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회장의 행위는 공정한 자본시장의 근간을 위협하는 매우 엄중한 경제범죄 행위”라며 재판부를 규탄하고 검찰의 즉각 항소를 촉구했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이날 무죄 선고 직후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찰의 항소 여부에 대해선 “지금으로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2021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관련해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복역하다 그해 8월 가석방된 뒤 이듬해 8월 사면됐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정치권에 86억원 규모의 뇌물을 주며 부정한 거래를 했다는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반면 이날 무죄 선고를 받은 사건은 ‘승계 작업’ 자체에 불법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다뤘다. 경영권 승계 절차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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