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계 공중보건 증진 부문서 큰 역할 기대”[이코노 인터뷰]
국경없는의사회 스테인 드보르그라브 진단 부문 책임 인터뷰
한국, 개발 기금 체계·진단 분야 기술력 탄탄
치명적인 소외열대질환 포트폴리오 추가 기대
우수 기술 보유한 K-진단기업…“중·저소득에 도움될 것”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최근 아프리카 지역의 풍토병인 엠폭스(MPOX·원숭이두창) 감염환자가 동남아시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보고되는 등 크게 확산되고 있다. 실제 엠폭스의 확산 추이는 거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8월 14일 엠폭스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하기도 했다. PHEIC는 WHO의 보건 경계 태세 중 최고 단계다.
엠폭스가 갑작스레 창궐한 감염병은 아니다. 엠폭스는 1958년 실험실에서 사육된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됐고, 1970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사람에게 감염된 첫 사례가 보고됐다. 중앙과 서부 아프리카의 열대우림지역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질환이기도 하다. 발견의 역사만 따지자면, 60년 이상 된 감염병이다.
문제는 엠폭스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유행하는 엠폭스는 2년 전 북미와 유럽 등으로 한차례 퍼진 바이러스의 변이다. 특정 감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일부 지역에서만 퍼진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감염병에 국한한 문제는 아니다. 감염병은 물론 다른 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의료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의 ‘액세스 캠페인’(Access Campaign)을 이끄는 스테인 드보르그라브 진단 부문 책임은 질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진단기업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서초구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소에서 만난 드보르그라브 책임은 “한국의 진단기업이 세계 보건의료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며 국내 기업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질환 세계화…공중 보건 관리 필요”
액세스 캠페인은 국경없는의사회가 필수의약품의 공급과 사용을 확대하기 위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필수의약품은 질환 관리를 위해 특정 국가가 확보해야 하는 의약품이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가 예시다. 이 치료제는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으로 발생하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에이즈) 환자에게 쓰인다. 선진국에서는 이 치료제로 에이즈 환자를 관리하지만, 아프리카 등에서는 가격과 유통 문제로 치료제를 제때 공급하기 어려웠다.
드보르그라브 책임은 세계 시민이 필수의약품을 사용하려면 의약품의 가격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질환이 점차 세계적으로 퍼지는 양상을 보여, 치료제와 백신, 진단기기 기업이 적정 가격에 제품을 공급해야 세계 공중 보건 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드보르그라브 책임은 “액세스 캠페인은 기업에 자선 활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일부 질환은 세계화돼, 더 이상 중·저소득 국가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저소득 국가에 필수의약품을 공급하는 일을 인도주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안 된다는 뜻이다.
시장성 이유로 진단기기 없어
질환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진단이 필요하다. 80여 개 국가에서 질환 예방 관리 활동을 하는 국경없는의사회는 한국에서 진단기기를 포함한 많은 의료기기를 조달하고 있다. 국내 조달 물품의 85%가 의료기기이기도 하다. 국내 기업의 의료기기가 세계 공중 보건 증진에 힘을 싣고 있다는 뜻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을 거치며 빠르게 성장한 국내 진단기업의 역량이 빼어나다는 증거기도 하다.
문제는 시장성을 이유로 진단기기가 없는 질환이 있다는 점이다. 진단기기가 없다 보니 환자도 치료받을 기회를 잃는다. 샤가스병(아메리카트리파노소마증), 흑열병(내장리슈마니아증), 수면병(인간아프리카트리파노소마증) 등 소외열대질환이 예시다.
드보르그라브 책임은 “소외열대질환은 시장이 파편화돼 있고, 규모도 작아 정치 의제, 기금 조성 등에서 순위가 밀려 사실상 ‘잊힌’ 질환”이라며 “아예 질환을 진단할 수 없거나, 기기를 의료현장에서 사용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실제 흑열병 진단기기는 미국의 유일한 현장진단기기 공급 기업이 제품을 출시하지 않겠다고 밝혀 국제사회에 충격을 줬다.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주로 발생하는 흑열병은 모래파리를 통해 감염되는 질환으로,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매년 50만명이 이 질환으로 사망한다. 흑열병을 진단하려면 비장, 골수에서 샘플을 얻어 현미경으로 살펴봐야 한다. 검사가 까다롭기 때문에 중·저소득 국가에서는 현장진단기기의 공급 중단이 사실상 사망 선고라고 드보르그라브 책임은 설명했다.
드로브그라브 책임은 “이런 질환은 진단과 치료가 원활하지 못해 증상이 가벼워도 환자를 사망으로 이끈다”며 “한국의 진단기업은 물론, 여러 기업이 소외열대질환을 비롯한 치명적인 질환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추가하는 등 관심을 쏟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한국은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라이트재단)이 조성돼 있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을 통해 연구개발(R&D) 등을 지원하는 체계가 있다”며 “의약품 접근성 개선에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활용하는 방식으로도 기업의 개발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원국→공여국…한국 역할 기대”
국경없는의사회는 중·저소득 국가에 선진국과 비등한 수준의 필수의약품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제품이 없어 진단이 어려운 질환의 경우 인공지능(AI) 장치를 활용한 영상진단 장비로 환자를 진단하고 있다. 드보르그라브 책임은 특히 한국 기업의 진단 분야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한국은 진단과 백신, AI 부문에서 기술력을 입증하고 있어 세계 공중 보건 증진에 기여할 점이 많다”며 “후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유일한 국가인 만큼, 자금 지원 외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경험을 갖췄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선진국이지만, 결핵 환자가 많은 국가”라며 “결핵은 중·저소득 국가에서 고통받는 환자가 많은 질환이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실제 국내 신규 결핵 환자는 2022년 기준 1만626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발생률이 가장 높다. 드보르그라브 책임은 “한국의 결핵 진단기기가 중·저소득 국가는 물론 세계의 결핵 진단 이해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유일하게 전환된 한국의 역사와 잘 구축된 공공기금이 세계 공중 보건 증진에 대한 한국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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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폭스가 갑작스레 창궐한 감염병은 아니다. 엠폭스는 1958년 실험실에서 사육된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됐고, 1970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사람에게 감염된 첫 사례가 보고됐다. 중앙과 서부 아프리카의 열대우림지역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질환이기도 하다. 발견의 역사만 따지자면, 60년 이상 된 감염병이다.
문제는 엠폭스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유행하는 엠폭스는 2년 전 북미와 유럽 등으로 한차례 퍼진 바이러스의 변이다. 특정 감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일부 지역에서만 퍼진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감염병에 국한한 문제는 아니다. 감염병은 물론 다른 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의료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의 ‘액세스 캠페인’(Access Campaign)을 이끄는 스테인 드보르그라브 진단 부문 책임은 질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진단기업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서초구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소에서 만난 드보르그라브 책임은 “한국의 진단기업이 세계 보건의료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며 국내 기업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질환 세계화…공중 보건 관리 필요”
액세스 캠페인은 국경없는의사회가 필수의약품의 공급과 사용을 확대하기 위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필수의약품은 질환 관리를 위해 특정 국가가 확보해야 하는 의약품이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가 예시다. 이 치료제는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으로 발생하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에이즈) 환자에게 쓰인다. 선진국에서는 이 치료제로 에이즈 환자를 관리하지만, 아프리카 등에서는 가격과 유통 문제로 치료제를 제때 공급하기 어려웠다.
드보르그라브 책임은 세계 시민이 필수의약품을 사용하려면 의약품의 가격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질환이 점차 세계적으로 퍼지는 양상을 보여, 치료제와 백신, 진단기기 기업이 적정 가격에 제품을 공급해야 세계 공중 보건 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드보르그라브 책임은 “액세스 캠페인은 기업에 자선 활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일부 질환은 세계화돼, 더 이상 중·저소득 국가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저소득 국가에 필수의약품을 공급하는 일을 인도주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안 된다는 뜻이다.
시장성 이유로 진단기기 없어
질환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진단이 필요하다. 80여 개 국가에서 질환 예방 관리 활동을 하는 국경없는의사회는 한국에서 진단기기를 포함한 많은 의료기기를 조달하고 있다. 국내 조달 물품의 85%가 의료기기이기도 하다. 국내 기업의 의료기기가 세계 공중 보건 증진에 힘을 싣고 있다는 뜻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을 거치며 빠르게 성장한 국내 진단기업의 역량이 빼어나다는 증거기도 하다.
문제는 시장성을 이유로 진단기기가 없는 질환이 있다는 점이다. 진단기기가 없다 보니 환자도 치료받을 기회를 잃는다. 샤가스병(아메리카트리파노소마증), 흑열병(내장리슈마니아증), 수면병(인간아프리카트리파노소마증) 등 소외열대질환이 예시다.
드보르그라브 책임은 “소외열대질환은 시장이 파편화돼 있고, 규모도 작아 정치 의제, 기금 조성 등에서 순위가 밀려 사실상 ‘잊힌’ 질환”이라며 “아예 질환을 진단할 수 없거나, 기기를 의료현장에서 사용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실제 흑열병 진단기기는 미국의 유일한 현장진단기기 공급 기업이 제품을 출시하지 않겠다고 밝혀 국제사회에 충격을 줬다.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주로 발생하는 흑열병은 모래파리를 통해 감염되는 질환으로,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매년 50만명이 이 질환으로 사망한다. 흑열병을 진단하려면 비장, 골수에서 샘플을 얻어 현미경으로 살펴봐야 한다. 검사가 까다롭기 때문에 중·저소득 국가에서는 현장진단기기의 공급 중단이 사실상 사망 선고라고 드보르그라브 책임은 설명했다.
드로브그라브 책임은 “이런 질환은 진단과 치료가 원활하지 못해 증상이 가벼워도 환자를 사망으로 이끈다”며 “한국의 진단기업은 물론, 여러 기업이 소외열대질환을 비롯한 치명적인 질환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추가하는 등 관심을 쏟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한국은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라이트재단)이 조성돼 있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을 통해 연구개발(R&D) 등을 지원하는 체계가 있다”며 “의약품 접근성 개선에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활용하는 방식으로도 기업의 개발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원국→공여국…한국 역할 기대”
국경없는의사회는 중·저소득 국가에 선진국과 비등한 수준의 필수의약품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제품이 없어 진단이 어려운 질환의 경우 인공지능(AI) 장치를 활용한 영상진단 장비로 환자를 진단하고 있다. 드보르그라브 책임은 특히 한국 기업의 진단 분야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한국은 진단과 백신, AI 부문에서 기술력을 입증하고 있어 세계 공중 보건 증진에 기여할 점이 많다”며 “후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유일한 국가인 만큼, 자금 지원 외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경험을 갖췄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선진국이지만, 결핵 환자가 많은 국가”라며 “결핵은 중·저소득 국가에서 고통받는 환자가 많은 질환이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실제 국내 신규 결핵 환자는 2022년 기준 1만626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발생률이 가장 높다. 드보르그라브 책임은 “한국의 결핵 진단기기가 중·저소득 국가는 물론 세계의 결핵 진단 이해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유일하게 전환된 한국의 역사와 잘 구축된 공공기금이 세계 공중 보건 증진에 대한 한국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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