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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 두려워 않았다…김성호 토목 명장의 개발기 [대한민국 명장]

김성호 토목 분야 철도 시설 유지·보수 명장
AI 기술로 전차선 까치집 검출 체계 구축
‘현장 중심’ 기술 개발로 작업 현장 효율↑

그들은 남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묵묵히 한 자리에서 15년 이상 일했다. 분야도 다양하다. 한복생산부터 제빵·금형·석공예·용접 등 한국 사회가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흔히 말하는 3D 업종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일이 어려워도 편법 대신 원칙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맡은 바를 끝까지 해낸 장인들이다. 그들에게 한국 사회는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기꺼이 부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창간 40주년을 맞이해 꽃보다 아름다운 명장의 인생사를 담은 '대한민국 명장' 시리즈를 시작한다. 대한민국 명장은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38개 분야 92개 직종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이들 중에서 대통령 명의로 선정된 기능인을 말한다. 지금까지 699명이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 <편집자주>

김성호 한국철도공사(KORAIL) 철도연구원 연구계획처 부장이 해빙 및 착설 방지 체계 모형을 보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까치는 산란기에 전차선 트러스에 집을 짓는 유일한 조류다. 산이 사라진 도심에서 까치가 집을 지을 곳이 마땅하지 않고, 전차선 트러스는 격자 형태라 까치가 집을 짓기도 좋아서다. 트러스란 삼각형 모양의 뼈대 구조를 말한다. 철도교량이나 전차선로의 지지물에서도 트러스 구조를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까치가 종종 철사로 집을 짓는다는 점이다. 집을 더 튼튼하게 짓기 위해 철사를 물고 전차선 트러스 근처로 오다, 철사를 떨어뜨리는 일도 빈번하다. 전차선 트러스가 전기선 바로 옆에 설치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철도공사(KORAIL) 철도연구원의 김성호 책임연구원(대한민국 명장)은 “까치가 나무 위에 집을 지으면 뱀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알을 먹어버린다”며 “전차선 트러스는 영문 ‘H’ 형태라 뱀이 타고 올라갈 수 없는 구조라 까치로서는 천적을 피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까치가 전기선에 철사를 떨어뜨리면 차량 운행이 중단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2만5000V의 전기가 흐르는 선에 철사를 떨어뜨리면 스파크가 일어 전기가 끊어져 차량을 운행하기 어려워진다”라고 했다.

까치가 집을 짓고서 제대로 ‘철거’하지 않는다는 점도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철도공사가 매년 2월부터 5월까지 전국의 전차선 트러스를 들여다보고 까치집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이유다. 작업자가 그동안 까치집을 제거하는 과정은 단순했다. 작업자가 전차선 트러스가 설치된 구역을 하루 두 번 찾아가, 까치집이 있는지를 확인해 제거했다. 이는 작업자의 눈썰미에 의존해야 하는 데다, 까치가 다시 집을 짓는 사례도 빈번했다.

김성호 한국철도공사(KORAIL) 철도연구원 연구계획처 부장이 전차선 트러스의 까치집 제거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를 개선하기 위해 까치집을 발견, 제거하는 작업에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한 사람이 김 명장이다. 김 명장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 사람이 눈으로 확인해야 하고, 작업자가 헛걸음해야 하는 작업 방식은 말이 안 된다고 봤다”며 “카메라가 사람 대신 전차선 트러스 근처로 가 까치집을 촬영하고, AI 기술을 활용해 이미지 비교 방식으로 까치집의 유무를 판별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런 결심으로 탄생한 것이 AI를 활용한 까치집 검출 체계다. AI 까치집 검출 체계는 전차선 트러스에 까치집이 놓인 이미지(데이터)를 AI가 학습해, 실제 까치집을 발견했을 때 이를 촬영, 작업자에게 해당 이미지를 전송하는 방식의 기술이다. 김 명장은 2019년 이 기술을 구축했고, 현재 전국 철도를 관리할 때 이 기술이 쓰인다. 김 명장은 이 기술로 국토교통부 철도안전혁신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김 명장이 2017년 한국철도공사 철도연구원 AI팀 팀장으로 일한 지 2년 만에 이룬 성과다.

김 명장은 “당시 산업계에서 AI 붐이 일었고, 한국철도공사에서도 100여 년간 쌓아온 데이터에 AI 기술을 적용하자는 수요가 있었다”라고 했다.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철도가 언제 고장 날지 예측해 차량 지연을 비롯한 고객 불편을 줄이려던 것이 AI 까치집 검출 체계의 개발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김 명장은 “여러 업체와 만나보니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이후 한국철도공사, AI 전문업체와 공동 펀딩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라고 했다.

‘명장’ 칭호에 쏟은 7년의 봄

김 명장은 1999년 철도청에 입사해 25년을 철도 시설 유지·보수 분야에서 일했다. 현장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철도 기술로 발전시켰고, AI 까치집 검출 체계 외 50여건의 기술을 개발했다. 김 명장은 2003년 철도 시설 유지·보수 부문 공무원창안대전 금상(훈장)을 수상했고, 이외 최고철도인, 철도10대 기술상을 받았다. 이런 발자취는 2019년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되는 결실을 낳았다. 대한민국 명장은 해당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 기술을 보유한 기능인에게 수여된다.

김성호 한국철도공사(KORAIL) 철도연구원 연구계획처 부장 [사진 신인섭 기자]
‘명장’이라는 칭호는 김 명장에게도 각별하다. 김 명장이 토목 분야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대한민국 명장이기 때문이다. 김 명장이 대한민국 명장 칭호를 얻기 위해 쏟은 노력도 많았다. 대한민국 명장 선발 심사에 서류를 넣은 것만 8년. ‘7전 8기’의 정신으로 설명하기에 꼭 맞는 시간이었다. 김 명장은 “명장 선발에 도전하고 7년 동안 봄에 꽃놀이를 못 갔다”며 웃었다. 명장 선발을 위한 서류 제출 기한이 매년 4월인 터라, 서류를 준비하고 심사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기에 봄을 다 썼다.

김 명장은 “4월 말에 명장 선발 심사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려면 1월부터는 자료를 써야 한다”라며 “서류 심사 결과가 6월쯤 나오는데, 서류 심사에서 탈락할 때마다 ‘내년 1월에 다시 시작하자’라며 마음을 잡았다”라고 했다. 서류 심사에 통과한다 해도 여러 차례의 검증 작업이 이어진다. 김 명장은 “서류 심사가 끝나면 현장 실사를 준비해야 하고, 현장 실사가 끝나면 면접 대상이 된다”라고 했다. 대한민국 명장의 칭호를 얻기 위한 선발 과정에만 한 해가 꼬박 필요한 셈이다.

김성호 한국철도공사(KORAIL) 철도연구원 연구계획처 부장의 연구 노트 [사진 신인섭 기자]
자료를 잘 준비하기도 만만치않다. 김 명장은 “자료는 300쪽에 모두 담으면 되는데, 15~20년의 실적을 300쪽에 담으려니 평생 기술을 연마한 기능인이 이를 잘 쓰기가 참 어렵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명장은 한 분야에서 한 명만 선발한다는 점도 난관이다. 김 명장은 “지난해보다 올해 점수가 높아도, 더 높은 점수를 받은 지원자가 있다면 떨어진다”라며 “이를 확인할 수 없다 보니 최종 관문인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는 ‘포기할까’도 싶었다”라고 했다.

김성호 한국철도공사(KORAIL) 철도연구원 연구계획처 부장의 연구 노트 [사진 신인섭 기자]
김 명장이 연속한 실패에도 도전을 이어간 이유는 즐거움 때문이다. 그는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대도 대단히 처우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상을 받고, 개발 기술로 현장에서 다양한 피드백을 얻으니 이 일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는 김 명장이 철도청에 입사한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 명장은 “직원들이 ‘부장님은 맨날 웃고 다닌다’라고 하면 ‘이렇게 즐거운 일이 어디 있냐’라고 답한다”고 말했다. 

기계 바탕 삼아 토목 명장으로

즐거움의 원천은 김 명장의 ‘잡식성’ 경향이기도 하다. 김 명장은 대학에서 기계를 전공했지만, 토목 분야에서 대한민국 명장이 됐다. 올해 2월 박사 학위를 마치면서는 전기 분야의 주제로 논문을 완성했다. 그는 “처음부터 토목을 전공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하지만 “철도 시설은 모두 기계 형태”라고 했다. 기계를 전공하며 배운 지식이 철도 시설 유지·보수 분야의 기술을 개발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뜻이다.

실제 철도 시설은 여러 기계 장치의 결합으로 완성된다. 김 명장은 “철도 시설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레일을 깔고, 레일과 침목을 체결하는 장치로 구성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침목은 레일을 잡아 충격을 분산하고, 궤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장치다. 레일로 전달되는 차량의 무게를 넓게 퍼뜨리는 역할도 한다. 선로의 뼈대와도 같다. 김 명장은 “이런 장치들은 기계라, 토목과는 또 다르다”며 “그동안 이런 장치를 자동화·무인화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라고 했다.

또 “철도 시설은 하나의 장치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 장치가 함께 돌아가는 체계(시스템)”라며 “한 분야에서 높은 전문성을 획득하기보다, 넓은 범주의 역량을 갖추는 일이 맞다고 생각한다”라고도 했다. 가령 주행하던 차량이 진동했다면, 차량과 선로, 전차선 등이 작동하는 방식을 융합적으로 이해하고, 여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파악해야만 차량 진동의 원인이 된 요인을 제대로 제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성호 한국철도공사(KORAIL) 철도연구원 연구계획처 부장[사진 신인섭 기자]
김 명장은 잡식성 경향을 밑거름 삼아 다양한 연구개발(R&D)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AI 까치집 검출 체계 외에도 자율주행 단락 장치와 레일 절손 감지기 등도 개발했다. 정부 부처의 포상을 받은 개발도 있지만, 상당수는 현장 직원의 요구에 맞춰 김 명장이 직접 개발한 것들이다. 김 명장은 “현업에서 필요한 것들을 해결해 나가다 보니 수상도 늘었다”며 “기술 개발이라기보다 당장 현장에 적용해 직원의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점도 김 명장의 다양한 배경 덕분이다. 김 명장은 철도청에 입사하기 전 작은 기업을 돌며 기계 장치를 제작하는 일을 했다. “작은 기업에서는 현장에서 바로 해결해야 할 사항이 많다”며 “문제는 요구사항대로 만들어도 정작 현업에서 쓰기 적절하지 못한 장치가 많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현업이 빠르게 돌아가려면 결과물이 정확하게 나와야 한다"며 "그렇게 현장에서 직접 소통하며 문제 요소를 개량했던 일들이 개발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25년 철도 인생…작업자 안전 중요해

김 명장이 개발한 기술은 상당수가 철도를 안전하고 빠르게 운행하기 위한 것들이다. 이런 기술 개발 못지않게, 작업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도 힘을 쏟았다. 20년 전과 현재, 철도 시설 유지·보수 분야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 명장은 “기술 수준은 똑같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작업 환경은 달라졌다. 김 명장은 “기계와 장치가 자동화·무인화되니 인력이 필요한 작업은 많이 줄었고,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기술의 방향이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김성호 한국철도공사(KORAIL) 철도연구원 연구계획처 부장 [사진 신인섭 기자]
실제 수십 년 전에는 작업자가 레일의 침목을 교환하려면 270kg의 침목을 하나하나 들어올려야 했다. 철로를 덮은 자갈을 걷어내고, 콘크리트 침목을 빼내야 하는 작업은 덤이다. 점검 차량의 속도도 빨라졌다. 점검 차량은 선로를 달리는 차량의 승차감을 측정하는 차량이다. 김 명장은 “달리는 차량 안에서 탑승자가 흔들리는 정도를 잘 측정하려면 실제 차량과 점검 차량의 속도가 같아야 한다”라며 “점검 차량의 속도도 차량 속도에 맞춰 30여 년 동안 150km/h에서 300km/h로 바뀌었다”라고 했다.

그런데도 선로에는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작업자의 사망 사고도 그 중 하나다. 김 명장이 개발하려는 다음 목표도 이런 방향을 향한다. 김 명장은 “시설 점검 분야는 어느 정도 자동화됐지만, 유지·보수 분야는 자동화할 수 있는 요소가 부족하다”라며 “자동화했다고 해도 아직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작업도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침목 교환 작업도 기계를 쓰고 있지만 짧은 시간에 짧은 구간이 대상”이라며 “대형 장비가 들어가 한꺼번에 장치를 교체할 수 있는 유지·보수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덧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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