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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워크 강한 마케팅 대가의 산실

팀워크 강한 마케팅 대가의 산실

켈로그 스쿨은 ‘타인에 대한 배려’의 정신을 바탕으로 일약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으로 도약했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켈로그 MBA들은 친화력과 조직 적응력이 탁월하다는 평이다.
"살려줘요.” 한국에서 온 A양이 물에 빠진 채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 순간 수영 선수였던 B군이 물 속으로 뛰어든다. 발군의 수영 실력을 발휘, 무사히 물에 빠진 A를 구했다. 그 순간 커누를 타고 있던 학생들 사이에서 갈채가 터져 나오며 박수가 쏟아진다. 이날은 켈로그 스쿨 신입생을 환영하는 캠프 이틀째. 신입생들이 커누를 타던 중 암초에 충돌하는 바람에 학생 하나가 물에 빠졌던 것이다.

신입생 캠프가 무사히 끝나고 켈로그 신입생들은 부푼 마음으로 첫 학기를 시작했다. 1학년 필수과목인 ‘경영통계’의 첫 번째 시간. B는 고민에 빠졌다. 통계와는 아예 담 쌓은 실력이기 때문이다. 이 과목을 통과하려면 같이 공부할 팀을 만들어야 하는데 누가 팀원이 되어 줄까. 이때 A가 함께 공부하자며 악수를 건네고 학기말 B는 이 과목을 무사히 마쳤다. 그후 그들은 평생 갈 우정도 쌓았다. 가상의 상황이지만 팀워크를 중시하는 켈로그라면 있을 법한 이야기다.

켈로그 스쿨은 이코노미스트와 비즈니스위크가 2002년 발표한 전 세계 경영대학원 랭킹 1위를 거머쥔 학교. 또, 지난 20년 간의 경영대학원 평가에서 늘 5위 안에 들었다. 켈로그 경영대학원이 1위임을 인정하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들조차 마케팅 분야만큼은 켈로그가 최고임을 인정한다.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필립 코틀러 교수와 채널 마케팅의(Channel Marketing)의 대두인 루이스 스턴 교수가 재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30년 전 만해도 노스웨스턴대의 켈로그 스쿨은 미국내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학교였다. 지금도 한국인들에겐 하버드나 와튼 스쿨에 비해 낯설다.

이 학교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이유는 도널드 제이콥스 전 학장의 리더십과 혁신적인 교육제도 도입에 있다. 켈로그의 경영 자문을 맡고 있는 라자 굽타는 “경영대학원 역사상 제이콥스 학장이 이룩한 업적에 견줄 만한 인물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제이콥스는 25년 간 켈로그 경영대학원 학장으로 일해오면서 경영대학원의 고객은 학생이라는 관점에 입각해 기존 교육 방식을 철저히 뜯어고쳤다. 우선 학생 위주의 혁신적 교육을 위해 켈로그 지원자들은 예외 없이 인터뷰를 거치도록 했다.

다른 대학에선 인터뷰가 선택사항이거나 아예 없는 데 반해 켈로그는 인터뷰를 통해 지원자의 인성을 파악하고 팀워크를 발휘하는 데 적합한 인물인지 평가했다. 또 교수의 강의 내용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를 공개하는 일도 먼저 시작했다. 한 술 더 떠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원하는 커리큘럼을 제안하도록 허용했다. 학생들을 소비자로 간주하는 ‘시장경제적 교육방침’에 입각해 경영대학원이라는 ‘상품’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공개하고 이 상품을 원하는 학생만을 선발하고 교육한 것이다. 또 학생들의 피드백을 통해 주기적으로 교육 과정을 개선하는 방식도 병행했다.

지금이야 이런 방식이 미국 비즈니스 스쿨에서 보편화되었지만 당시의 권위적인 대학 학풍에서는 파격을 넘어 이단으로 받아들여졌고 제이콥스 학장에게 교단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의 신념과 노력의 결과 별 볼일 없던 학교가 20년 만에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으로 발전했다. 그는 또 기업이 신규 시장을 개척하듯 학교의 새 고객을 발굴해나갔다. 20년 전에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든 ‘경영 간부 교육센터’가 대표적인 사례. 요즘의 최고경영자 경영학석사(MBA)과정의 효시다.

‘팀워크’ 정신은 더 중요한 성장 동력이다. 벤처기업 넥스트웹의 김현석 사장은 “켈로그에서 내가 배운 것은 인간에 대한 배려”라고 말한다. 켈로그에서 입버릇처럼 되뇌이게 되는 슬로건이 ‘타인을 배려하라(Care for others)’다. 직업 세계에서 남을 배려한다는 것이 켈로그가 말하는 팀워크의 핵심이다. 켈로그의 제일 목표는 팀워크가 뛰어난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입학 전부터 졸업 후까지 모든 과정이 팀워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켈로그 졸업생이자 한국계 지원학생에 대한 인터뷰를 담당하고 있는 임형준씨는 “인터뷰는 보이지 않는 후보자의 내면을 볼 수 있게 한다”며 “지원자가 팀워크와 리더십을 갖추었는지 최우선적으로 파악한다”고 말한다. 입학 허가를 받은 학생은 재학생과 신입생 간에 또 신입생 서로 간에 팀워크를 키워주는 켈로그 아웃도어 어드벤처(Kellogg Outdoor Adventure)부터 참가한다. 모니터 그룹의 이준호 팀장은 “팀을 나누어 보이스카우트 캠프처럼 학생들끼리 협력해서 1주일을 꾸려나간다”고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팀워크가 자연스럽게 몸에 밸 수밖에 없다.

켈로그 학생들은 잘 놀기로도 유명하다. 인근의 다른 경영대학원은 켈로그 사람들이 너무 즐겁게 사는 것 같다며 부러워한다. 켈로그의 별명이 파티 스쿨일 정도. 학생들이 운영하는 수많은 클럽이 이를 가능케 한다. 각 국가나 지역별 연구 모임, 투자은행 클럽 같은 직업상의 모임부터 골프나 댄스 모임까지 켈로그인들은 적어도 3, 4개의 클럽에 가입한다. 클럽 문화를 체험하며 켈로그인들은 일과 여가 모두를 즐기며 사교성 있는 인재가 되어간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MBA 채용담당자들은 분석 능력보다는 대인 관계, 전문성보다는 경영전반을 이해하는 안목, 업무능력보다 사회 적응력이 뛰어난 인재를 선호한다. 켈로그는 채용담당자들이 선호하는 MBA 학교 순위에서 매번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켈로그 학생들은 팀워크와 잘 노는 법을 2년 간 배우며 자연스럽게 이런 인재로 자라나는 셈이다. 켈로그를 체험한 한국 동문들은 대략 100명 정도이다. 최근 입학생들이 한 해에 10명 가까이 늘어나고 있어 한국 동문 수도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켈로그 출신의 주요 동문들은 재계에 조동만 한솔 아이글로브 회장,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 나스닥 상장기업인 리퀴드메탈의 제임스 강 사장 등이 있다. 금융계에는 하영구 한미은행장, 남종원 메릴린치 한국지사장, 최수종 ING생명 부사장 등이 활약 중이다. 한국 동문들은 켈로그 리유니언(Kellogg Reunion) 모임을 통해 미국 본교와의 관계를 유지한다. 동문들은 매년 가을 학교에서 개최하는 바비큐 파티 등에 참가, 전 세계로 흩어진 옛 친구들을 만나며 추억을 되살린다.

또 교수들이 동문을 대상으로 최근의 비즈니스나 경영계의 주요 흐름에 대한 세미나를 열기도 한다. 지난해 열린 행사에선 필립 코틀러 교수와 데이비드 베상코 교수 등이 ‘비즈니스의 미래(The Future of Business)’를 주제로 엔론 사태에 대해 분석하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한 행사에 동문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학교 발전 기금의 기부도 한다. 또 한국 동문들은 국내의 켈로그 지원자 인터뷰도 대행한다. 더 많은 한국인 동문을 만들기 위해 학장이나 켈로그 교수들을 초청하고 언론에 홍보하는 등의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지난 5월말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입학생 환영회 겸 동문회에 모인 선배들은 새로 맞이한 후배들에게 ‘켈로그 생활 핸드북’을 선물했다. 동문 선배들이 하나둘씩 자신들의 노하우를 모아 손수 만들고 제본한 책이었다. 선배들은 “책 한 권에 200달러는 받아야 한다”는 농담을 건네면서 후배들의 성공적인 적응을 기원했다. 켈로그 동문들을 두 달에 한 번씩 정례적으로 만나는데 5월의 입학생 환영회가 가장 중요한 모임이다. 이외에도 골프 모임 등의 야외 활동이나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정기적으로 친목을 다지고 있다.



“햄버거로 때우며 미래에 투자했던 시절”



하영구 한미은행장

작지만 강한 은행을 지향하는 한미은행의 하영구(50)행장은 서울대 상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잠시 군 복무를 했다. 제대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1981년에 켈로그 스쿨을 마쳤다. 당시 켈로그 스쿨이 직장 경력을 요구하지 않은 몇 안 되는 학교였기에 주저 없이 택했다. 하 행장은 “대학 졸업 후엔 상사맨이 꿈이었다”며 “마케팅분야가 강하다는 말에 반했다”고 말했다.

켈로그 스쿨은 미국 중부지역인 시카고 북쪽 에번스턴에 위치한다. 하 행장은 켈로그에 다니던 시절 홈스테이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는 “공부하랴 영어 배우랴 현지 문화에 적응하랴 정신없이 바빴다”며 “역시나 음식이 제일 큰 문제였다”고 회상했다. 주중에는 학교의 간이식당에서 파는 햄버거나 샌드위치로 때우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그 당시 시카고는 한인 타운이 형성되어 있었고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들도 있었다. 그가 자주가던 식당은 진고개였다.

하 행장은 “주말에 진고개로 몰려가 한국인 친구들과 밥과 김치를 실컷 먹으며 향수를 달랬다”고 그 당시를 떠올렸다. “음식 문제만 빼면, 지나치게 도시적이지도 시골스럽지도 않은 에번스턴 만한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등산과 스노 보드 타기가 취미지만 그 시절은 너무 바빠 즐길 시간이 없었다. 하 행장은 “켈로그 후배들이 여행과 현장 체험을 많이 하기를 바란다”며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반드시 그런 활동을 즐겨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켈로그 졸업 후 바로 시티 은행에 입사했다. 미국에서 직장을 잡고 싶지는 않았는데 MBA에 걸맞은 급여와 한국 근무의 기회가 있는 직장이 시티 은행뿐이었다고 한다. 시티 은행에 입사한 이래 20년 간을 한 직장에서 줄곧 근무하며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고 마침내 2001년 한미은행장에까지 올랐다. ‘일을 즐기라’는 켈로그의 모토를 실천한 덕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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