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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뚫고 인천문학경기장 땅 다진 ‘발파왕’...광산에서 도심 발파까지 [대한민국 명장]

화약 취급 분야 국내 유일 명장 배상훈
취득 자격증만 10개, 연주하는 발파법으로 박사 학위도
광활한 광산 발파부터 도심 속 정밀 발파까지

그들은 남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묵묵히 한 자리에서 15년 이상 일했다. 분야도 다양하다. 한복생산부터 제빵·금형·석공예·용접 등 한국 사회가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흔히 말하는 3D 업종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일이 어려워도 편법 대신 원칙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맡은 바를 끝까지 해낸 장인들이다. 그들에게 한국 사회는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기꺼이 부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창간 40주년을 맞이해 꽃보다 아름다운 명장의 인생사를 담은 ‘대한민국 명장’ 시리즈를 시작한다. 대한민국 명장은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38개 분야 92개 직종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이들 중에서 대통령 명의로 선정된 기능인을 말한다. 지금까지 712명이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 [편집자주]

지난달 경기도 부천에서 만난 배상훈 대한민국 명장.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라예진 기자] “단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어요. 명장이 된 지금도 매일 안전만 생각할 뿐이에요. 마음 편한 순간은 있죠. 직원들 한 명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가는 길이지요. 하지만 그다음 날 현장에 오면 또다시 긴장을 늦출 수 없죠. 이게 제 지나온 삶이자 현재의 삶의 모습입니다.(웃음)”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명장을 만나기 전, 기술적 노련함과 대한민국 최고라는 자부심 넘치는 다소 거만하면서도 자신만만한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가 지난달 경기도 부천에서 만난 배상훈 대한민국 명장은 모든 예상을 뒤엎는 인물이었다. 인터뷰 내내 겸손함과 자신의 맡은 일에 대한 신중함, 그리고 단단한 책임감을 보여줬다. 전국 암반을 꿰뚫고 있다는 그는 마치 그가 평생을 다뤄온 커다랗고 듬직한 모습의 바위처럼 보였다. 

국내 최고 화약 전문가인 배상훈 명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한 유일한 화약 취급 분야의 명장이다. 40여 년간 발파 공사를 해온 그는 현재 발파와 토목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에스에이치엠엔씨’를 운영하고 있다.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강원도 현장을 직접 찾아 공사를 진행한다는 배 명장을 어렵게 만났다.

광산에서 지하철, 월드컵경기장까지 발파  

배 명장의 별명은 ‘자격증 부자’. 기술사 자격증부터 기사 자격증까지 그가 보유하고 있는 자격증만 총 10개가 넘는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있게 한 힘이 바로 실력을 입증하는 자격증이라고 자부한다. 

대중적이지 않은 이 일을 처음 접하게 된 것도 그가 1976년에 처음 획득한 광산보안기능사 자격증 덕분이었다.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의 아버지는 광부셨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며, 탄광에서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증 공부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 대학에 들어가 공부한 그는 20대 초반에 광산보안기능사의 화약 분야, 발파 분야, 갱내 분야, 갱외 분야 등 총 네 가지 자격증을 모두 획득하고 이 자격증으로 병역특례를 적용받아 탄광에서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됐다. 자격증을 갖춰야만 할 수 있는 발파 작업을 이때부터 시작했다. 

지난달 경기도 부천에서 만난 배상훈 대한민국 명장. [사진 신인섭 기자]

5년 만에 갱장으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했지만 1993년 석탄산업합리화 조치로 그가 일하던 탄광이 문을 닫고, 일자리까지 잃게 됐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상경을 결정한 그는 버스 기사부터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가 지닌 자격증이 그의 새로운 일자리를 찾게 했다. 그는 지하철 공사 전문인 표준개발에 발파 작업을 담당하는 화약주임으로 취직하게 됐다. 지금의 지하철 남성역, 강남역 등 서울의 주요 지하철역을 건설할 때 그가 함께했다. 이때 그가 익힌 기술은 도심지에서 발파하는 ‘정밀발파’이다. 광범위한 지역을 발파하는 광산과 달리, 지하철역 건설을 위한 발파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뤄지는 발파로 세밀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 특히 건물이 세워지고 사람 그리고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아래 길을 뚫어야 하기 때문에 한 치의 실수가 있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는 “발파 지역의 암반특징을 공부하고 발파 안전 지역을 아주 촘촘하게 계산하며 공사를 진행했지요”며 “도심발파는 광활한 광산에서 진행하는 발파 보다 고도화된 기술이 필요했기에 더욱 긴장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이 때문에 우리나라 발파 기술이 세계 1등이라고 자신했다. “세계적으로 발파 기술이 높은 나라는 호주, 중국 등을 꼽는데 이들은 모두 거대한 규모의 발파를 주로 하는 국가들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도심발파 즉 정밀발파 기술까지 뛰어난 경우예요. 이 때문에 저는 우리나라 화약 취급 능력이 세계 1등이라고 자부합니다.(웃음)” 

인천월드컵경기장 설립 현장의 발파 총 책임자  
발파 현장에서 발파 지역을 설명하는 배상훈 명장. [사진 본인 제공]

이후 그는 발파 기술 실력을 인정받아 극동건설에 입사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극한의 발파 공사 현장’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바로 과거에는 인천월드컵경기장이었던 지금의 인천문학경기장 설립 현장이다. 2002년 대한민국 월드컵 개최에 앞서 계획된 당시 인천월드컵경기장은 문학산 기슭을 폭파하고 경기장을 지어야 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설립 반대 여론이 컸다. 이때부터 공사 현장은 곧 시민들의 시위, 민원들로 늘 시끄러웠다. 

배 명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말했다. “당시 화약 분야 총 책임자였는데 매일이 민원과의 전쟁이었습니다. 특히 월드컵이라는 커다란 기한이 있었기 때문에 공사를 지체하면 안되는 상황이라 더 힘들었어요. 또 한 번에 발파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법적 규제도 있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발파를 진행하고 바로 옆에서는 시멘트를 바르는 등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많았던 만큼 기억도 가장 크고 가장 애정이 가는 공사 현장으로 기억됩니다. 지금까지도 인천문학경기장을 볼 때마다 뿌듯합니다.”

또 그는 당시 공사 현장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 해줬다. 인천월드컵경기장 설립 당시 발파하며 생긴 돌들이 바로 옆에 위치한 송도의 피복석으로 전달됐다는 것. 송도는 매립지 특성상 조류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피복석이 필요했고, 이때 배 명장이 발파한 돌들이 사용된 것이다. 또 피복석 활용을 위해 발파에도 추가적인 기술이 들어갔다. 피복석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크기가 1m 이상인 커다란 돌이 나와야 했다. 이때 배 명장은 발파 후 자잘한 크기의 돌이 아닌, 피복석과 같은 커다란 돌들이 나올 수 있는 암발파공법을 개발하고 특허까지 냈다. 

극동건설에서 토목부장까지 일한 그는 퇴사를 결심하고 2001년에 발파, 토목공사 전문기업 에스에이치엠엔씨를 설립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기에 일에 대한 책임감과 신중함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저는 아직까지 직접 현장을 가는 기술자입니다. 다른 발파기업 대표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점일 것이에요. 현재 주중에는 강원도에서 지내는 이유가 이 때문이에요. 저는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제가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또 현장이 있어야 제가 일을 할 수 있기에, 저는 현장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발파키를 직접 누르고 발파 현장에서 직원들과 안전을 챙긴다는 그는 관련 기술에 대한 공부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최근 그는 인하대 토목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박사 논문 주제는 ‘노래하는 발파공법’. 현장에서 발파할 때마다 ‘발파 소음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다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배 명장은 설명했다. “전자뇌관으로 리듬감을 주는 것을 고안했습니다. 발파를 하면 펑~하고 큰 소음이 나지만, 전자뇌관을 도입하면 발파하는 순간부터 소음이 마치 노래 소리처럼 나오게 됩니다. 발파하는 현장에서 굉음이 아니라 친숙한 학교종이 땡땡땡~과 같은 동요가 나오니 모두가 웃음 짓게 되지요.(웃음) 이 같은 기술을 개발해 박사 학위도 받고 특허도 냈답니다.” 이 외에도 그가 지닌 특허는 다양하다. 그는 도심지 근접 발파를 위한 ‘정밀 진동제어 발파공법’, 대형 선박이 항만에 들어올 수 있도록 섬이나 암초 등을 쉽고 경제적으로 발파하는 ‘해수면 암버럭 매립 및 암성토구간에서의 천공발파공법’ 등을 개발했다.

지난달 경기도 부천에서 만난 배상훈 대한민국 명장. [사진 신인섭 기자]
또 자신만의 사업을 진행하며 그가 놓치지 않는 것은 ‘후배 전문가 양성’이다. 그는 한 기업이 대표이사이자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단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대한민국의 화약 취급 분야의 유일한 명장이지만, 그는 앞으로 그와 같은 발파 분야의 후배 전문가가 양성되길 바란다. 

특히 그가 강조하는 것은 자격증. 그가 운영하는 기업의 직원이 자격증을 취득하면 상금으로 30만원씩을 지급하는 것도 자격증을 지닌 인재를 키우기 위함이다. 배 명장은 말했다. “저는 발파와 관련해서는 가장 아랫 단계의 자격증부터 가장 윗 단계의 자격증까지 층층이 모두 취득했다. 꾸준히 공부하면 가능한 일이다. 자격증을 갖추고 자신만의 능력을 키운다면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가 사랑하는 건설 제1공정, 발파  
마지막으로 그는 그가 발파 작업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건설 현장에서 암(돌)이 있다면 발파는 가장 처음 진행되는 즉 제1공정입니다. 공사의 시작인 것이죠. 발파키를 누르고 펑~터지면 단 몇 초만에 작업이 모두 끝나는 것 같지만, 발파 공사는 적게는 2년 많게는 4~5년씩 걸리는 세밀한 작업이지요. 특히 암석의 종류에 따른 각 특성과 지역별 암반에 대해서도 꿰뚫고 있어야 해요. 암석의 종류에 따라 화약 양과 매립 각도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발파 전문인이 있어야 하는 이유지요. 그만큼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가의 영역이기에 책임감이 큰 일입니다. 발파는 저를 지금까지 움직이게 하고, 공부하게 하고, 현장에서는 긴장하게 하는 제 삶의 원동력입니다.”

40여 년 동안 발파를 해온 그는 앞으로의 꿈에 대해 이렇게 웃으며 말했다.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인정받은 기분이었어요.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더 바라는 게 있다면 거창한 꿈이 아닌,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안전하게 공사가 끝나는 것입니다. 명색에 대한민국 명장인데 사고 나면 안되겠지요? 더 책임감을 갖고 현장에서 뛰고 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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