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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텔의 이라크 복구 ‘첩첩산중’

벡텔의 이라크 복구 ‘첩첩산중’

미국 벡텔 그룹이 이라크 재건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 결과가 가시화하는 데 왜 이리 더딘 걸까.
아침 9시, 기온이 이미 섭씨 38도를 넘어선 이라크 사막에서 흰색 시보레 타호 한 대가 시속 113㎞로 질주하고 있었다. 영국 공수특전단(SAS) 출신인 한 남자가 미국 건설업체 벡텔 그룹(Bechtel Group)의 세 엔지니어를 데리고 북쪽 바스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는 불에 타버린 이라크군 탱크들, 흙집들, 영국군 무장 순찰대 옆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바스라 인근 도로는 많은 차량으로 북적였고 한 주유소 앞에는 차들이 1.6㎞나 길게 늘어서 있었다.

시보레 타호는 목적지 슈아이바(Shuaiba)로 향했다. 슈아이바는 이라크 남부의 5개 발전소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지만 파괴된 400㎸급 두 송전망에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 핵심 발전소다. 두 송전망이 다시 가동되면 바그다드에 전기를 공급하고 정유공장들의 재개에 한몫할 것이다. 80번 간선도로는 걸프전 당시 ‘죽음의 길’로 불렸다. 최근 80번 간선도로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군용 헬기로 저공 비행하며 송전망 상태를 살펴보던 벡텔 직원들이 저격수의 공격을 받았다. 이날 문제는 확실치 않은 군용 지도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시보레 타호는 30분 정도 지나 철조망에 둘러싸인 한 복합단지에서 다시 낙하복 차림의 몇몇 이라크인이 경비를 서고 있는 작고 낮은 건물로 향했다. 이라크에서 근무 중인 벡텔의 엔지니어 로버트 자보가 깔끔한 와이셔츠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는 한 중년 남자에게 다가갔다. 자보는 아랍어로 쓰인 명함을 내밀며 “여기가 슈아이바냐”고 물었고 명함을 건네받은 남자는 웃으며 “맞다”고 답했다. 그 남자는 발전소장 하셈 마오울라였다.

이라크 기업의 많은 고위 관리와 마찬가지로 마오울라도 서툴지만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 바스라는 오랫동안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억압받은 지역이다. 바스라에서 살아온 시아파 무슬림 마오울라는 독재자 후세인의 몰락으로 한시름 덜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 그가 받고 있는 고통은 전보다 더하다. 국유 발전소 슈아이바에서 수년 간 근무한 끝에 겨우 소장으로 승진하는가 싶더니 공교롭게도 미국이 침공해온 것이다. 마오울라는 물론 직원 60명은 한 달 넘게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회사 차를 도둑맞기까지 했다. 마오울라는 벡텔 엔지니어들을 전화도 안 되는 초라한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마오울라와 자보는 지은 지 30년이나 된 슈아이바의 현황에 대해 논의했다. 슈아이바는 이번 전쟁의 포화를 비켜갔지만 보수공사가 절실한 실정이다. 냉각 시스템 고장으로 두 발전기 모두 생산용량 24㎿의 절반 밖에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오울라는 상황이 과연 나아질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마오울라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라크 재건사업이 예상보다 늦어지는 데다 생각만큼 쉬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소재 벡텔은 일찌감치 미국 정부로부터 이라크 재건사업 추진 허가를 받았다. 벡텔은 현재 이라크에 100명의 고위 관리자를 파견했고 이들은 1주일 내내 하루 14시간씩 일한다. 현재 많은 도시들은 상수도 공급 중단으로 고통받고 있다.

세계 제2의 석유매장량을 자랑했던 이라크는 되레 가솔린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력시설이 복구되기 전까지 물과 석유 부족 사태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문제는 약탈과 파괴로 전력시설 복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다는 점이다. 벡텔의 이라크 복구 프로젝트 담당 클리프 G. 멈(Cliff G. Mumm)은 “물과 전기 같은 기본 인프라가 복구될 경우 모두들 약탈이 나쁜 짓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전역에서 문명의 기본 요소 복구작업은 난관에 봉착해 있다. 벡텔과 6억8,000만 달러 상당의 이라크 재건 계약을 체결한 미 국제개발처(AID) 이라크 주재 인프라 팀장 토머스 휠로크(Thomas Wheelock)는 “이라크가 필요로 하는 것과 흔히들 AID로부터 기대하는 것 사이에 큰 간극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6억8,000만 달러는 총 300억~1,000억 달러로 예상되는 이라크 복구비에 비춰 볼 때 그야말로 푼돈이다. 이런 대규모 계약을 처리해본 경험이 없는 AID는 전체 비용 가운데 5%만 내놓은 상태다.



[공사 수주엔 ‘연줄이 최고’]

벡텔 그룹은 6억8,000만 달러 상당의 이라크 복구사업을 어떻게 따낼 수 있었을까. 이라크 침공 수주 전 미국 국제개발처(AID)는 벡텔의 관급 공사 담당 사업부인 벡텔 내셔널에 전후 재건을 둘러싸고 곧 민감한 정보가 전달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플루오르, 루이스 버거, 워싱턴 그룹 인터내셔널도 입찰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벡텔 직원 20명은 2주 동안 도로, 공항, 병원, 발전소, 쓰레기 처리시설 복구비를 산정하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공습 이후의 결과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벡텔은 복구사업에 필요한 전문지식과 현지 언어 구사력까지 갖춘 엔지니어들을 물색하고 중동은 물론 세계 전역에서 공사에 필요한 중장비를 찾아나섰다. 4월 중순 계약이 성사됐을 때 벡텔은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벡텔 내셔널의 마케팅·사업개발 담당 수석 부사장 크레이그 D. 위버(Craig D. Weaver)는 “벡텔만한 역량을 갖춘 기업도 없다”고 태연히 말했다.
미 의회의 생각은 달랐다.

미 의회는 텍사스주 휴스턴 소재 에너지 서비스업체 핼리버튼(Halliburton)과 핼리버튼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딕 체니 부통령의 유착관계에 대해 비난해 왔다. 벡텔 역시 의회의 표적이 될 수 있었다. 4월 하순 재계의 눈엣가시인 헨리 왁스먼 하원의원(캘리포니아주 ·민주)은 AID ·국방부 ·회계감사원(GAO)에 보낸 서면에서 통상적인 공개 입찰 절차가 생략된 이유를 물었다. 5월 상원 외교위원회가 GAO에 조사를 공식 요청했다.GAO의 조사에서 노골적인 대가성 금품 제공 같은 추태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벡텔은 세 차례에 걸친 의회 선거에서 모두 100만 달러를 정치헌금으로 기부했다.

그 가운데 반 이상이 공화당으로 들어갔다. 이는 필립 모리스가 지난해 선거 당시 기부한 300만 달러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벡텔이 워싱턴 정가에 든든한 줄을 대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든든한 연줄이다. 벡텔의 라일리 벡텔(Riley Bechtel) 회장은 최근 백악관 수출자문위원회 위원에 선임됐다. 수출자문위원회는 기업 임원들의 원탁회의로 통상문제에 대해 자문한다.

벡텔의 수석 부사장 잭 J. 시한(Jack J. Sheehan)은 퇴역 장성으로 군사문제에 대해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에게 자문하는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국방자문위원회에는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과 댄 퀘일 전 부통령도 몸담고 있다. 국무장관을 역임한 조지 슐츠는 벡텔의 이사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내고 현재 포브스지 회장인 캐스퍼 와인버거는 1970년대 벡텔의 법률 고문이었다. 게다가 벡텔은 자체 로비스트들까지 고용하고 있다. 로비스트 외에 유력 인사들을 고용하는 데 연간 30만 달러나 지출하고 있다.

AID는 계약과정에서 어떤 입찰자와도 접촉한 사실이 없으며 낙찰자 선정에 영향을 미친 게 있다면 특혜가 아니라 보통 6개월보다 짧은 6주의 시한이었다고 주장했다. 수주에 실패한 일부 기업은 벡텔이 워싱턴의 연줄을 동원했다고 투덜댔다. 일각에서는 벡텔이 정가의 든든한 뒷배를 동원하지 않았다면 다른 기업에 낙찰됐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입찰에 실패한 어느 기업의 임원은 “입찰업체 모두 수주능력을 갖고 있었다”며 “정부가 어느 업체와 계약하든 사업에 차질이 생길 리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벡텔은 이번 수주사업 가운데 최고 90%를 하청업체에 맡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어느 업체든 파이를 나눠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Rob Wherry


이라크의 주요 항구인 움카스르(Umm Qasr)를 복구하기에도 빡빡한 금액이다.
게다가 AID의 승인 없이는 어떤 작업도 할 수 없다. 벡텔이 바그다드나 쿠웨이트시티에서 요청해온 사업을 AID가 워싱턴에 재문의하는 경우도 있다. 향후 복구비 지출에는 미 행정관리예산국(OMB)의 승인이 필요하고 의회에는 따로 통고해야 한다. 벡텔의 움스카르 복구 담당 로버트 시놋은 “사사건건 승인을 요청해야 하는 일이 번거롭다”고 털어놓았다.

그렇다고 벡텔을 딱하게 여길 필요까지는 없다. 중동에 1,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벡텔은 지난 194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카이수마에서 레바논 시돈까지 이어지는 송유관 건설 이래 기념비적인 중동사업들을 전개해 왔다. 이번 이라크 재건사업으로 더 많은 일을 수주하게 될 벡텔은 미국 내 비상장 기업으론 6위로 지난해에 매출 116억 달러에 순이익 1억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한 소식통은 벡텔이 6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주해 자신과 하청업체들에 간접비용과 수익으로 8,000만 달러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벡텔은 간접비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원가가산 고정수수료 방식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경우 종종 회계상 고정비용을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남게 된다.

벡텔은 지금까지 모험으로 일관해야 했다. 가장 두드러진 예가 움카스르 공사다. 움카스르 복구사업의 경우 AID가 지급한 3,460만 달러 가운데 대부분이 식량 ·건설자제 하역을 위한 항만 정비에 들어가고 있다. 항만 준설과 비상용 이동식 발전기 구입에 많은 자금이 지출되고 있는 것이다. 멈은 AID로부터 하도급 계약 승인도 받기 전 일리노이주 오크브룩 소재 준설 전문업체인 그레이트 레이크 드레지 앤 도크와 접촉했다.

바레인에서 준설선 드레지 캐롤라이나를 끌고 오기 위해서였다. 벡텔은 승인도 받기 전 바스라 소재 건설업체 알 아바디 그룹으로부터 인력 ·트럭 ·지게차를 지원받아 항구 정비 작업에 들어갔다. 멈은 순발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사우스다코타주에서 태어난 엔지니어 멈은 공기(工期)가 2년이나 지연된 런던 지하철 주빌리 노선 확장공사를 맡아 1년 만에 완공시켰다. 그 결과 새 천년 축하 행사에 한몫할 수 있었다.
요즘 움카스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따가운 햇볕을 마분지 상자로 가린 이라크 현지인들은 날마다 떼지어 항만 입구 밖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어슬렁거린다. 사탕을 입에 문 영국 군인들은 간이매점 앞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움카스르에서 일자리를 얻은 이라크인들에게 한 차례 급료 20달러가 지급됐다. 하지만 이후 추가 자금 승인이 지연되면서 급료를 받지 못한 현지인들은 12층 높이의 원탑 곡물 저장 창고인 사일로 청소를 거부했다. 사일로 청소는 인도적 차원의 대규모 구호품을 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사일로 같은 저장시설 청소에는 장비와 인건비로 800만 달러가 소요된다. 벡텔은 이라크에서 처음으로 알 부니아 트레이딩에 이번 전쟁으로 파손된 이라크 서부 알마트교(橋) 인근 우회로 건설을 하도급으로 줬다.

참을성이 부족해 약탈을 일삼는 이라크인들은 임시 담장으로 세워놓은 컨테이너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군에서 설치한 문을 가스용접기로 절단하기도 한다. 사일로 주변 창고들이 송두리째 털린 적도 있다. 배전함에서 전선 몇 가닥만 남겨둔 채 회로차단기를 모두 뽑아가 버린 경우도 있다. 가구는 하나도 남아나지 않았다. 심지어 화장실 환풍기까지 없어졌다.전력 시스템도 이와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다. 특히 무인 변전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 케이블 스위치와 변압기 부품부터 문틀 ·너트 ·볼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약탈당했다.

벡텔 엔지니어들은 일요일마다 바스라 소재 전력업체 이라크 남부전기와 회의를 한다. 변전소 한 곳이 정상 가동에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한 뒤 회의를 마치고 1주 뒤 다시 돌아와보면 완전히 약탈당해 있기 일쑤였다. 멈은 “수리가 끝난 시설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런던 소재 보안업체 올리브 시큐리티가 전(前) SAS 대원들을 투입, 벡텔 직원 너댓 명이 외근 나갈 때마다 반드시 비무장 경비원 한 명은 운전과 경호를 맡는다.

벡텔은 바그다드처럼 더 위험한 지역의 경우 군에 경호를 요청할 수 있다. 벡텔은 텅 빈 사일로에서 1.6㎞ 정도 떨어진 움카스르 주변에 캠프를 설치했다. 캠프 안에는 이동식 소형 가옥이 갖춰져 있고 캠프 바로 밖에는 몇몇 창고가 있다. 인근에는 이라크군의 T-55 탱크 한 대가 장식품처럼 자리잡고 있다. 큰 관심사는 80년대 이란 ·이라크전 당시 설치된 기뢰 등 수로에 아직 남아 있는 폭발물들이다. 폭발물 탐지 ·제거작업은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소재 해난구조 ·잔해제거 전문업체인 타이탄 매리타임이 맡고 있다.

이 회사 소속 잠수부들은 많은 침몰 선박 가운데 한 척에서 113㎏이나 되는 폭발물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형 곡물 창고로 이어진 폭 160m의 수로 준설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드레지 캐롤라이나가 수로에서 3,000마력의 절단기로 진흙을 두부처럼 잘라 퍼내고 성기게 쌓인 침니(沈泥)를 흡입한다. 기뢰를 완전히 제거해 7만5,000t급 선박이 드나들 수 있도록 정비하는 데 8개월 정도 걸릴 전망이다. 드레지 캐롤라이나의 흡입기 끝에는 대형 폭발물이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막기 위해 쇠그물이 설치돼 있다.

그러다 보니 쇠그물에 온갖 쓰레기가 걸리게 마련이다. 따라서 3시간마다 쇠그물에 걸린 쓰레기를 수작업으로 제거해야 한다. 진흙 밑에 묻혀 있을지도 모를 폭발물 탐지에 자기계(磁氣計)까지 동원하고 있다.
12m 깊이로 준설하면 5만t급 식량 운반선의 접안이 가능해진다. 벡텔은 8월 말까지 모든 작업 주문이 완료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벡텔은 현재 직원 대다수를 쿠웨이트시티 소재 고급 셰라톤 호텔에서 우다이 후세인(후세인의 장남)의 궁전 등 이라크 내 5개 캠프로 이동시키고 있다.

전력 ·상수도 시스템 실태파악은 거의 끝났다. 이들 시스템 관리를 맡고 있는 이라크 현지인들과 협력관계도 수립했다. 바그다드에서는 지금도 전력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그 밖의 지역은 미 육군 공병단과 근면한 이라크인들 덕에 전쟁전보다 상황이 오히려 나은 편이다. 벡텔은 바그다드의 전력 시스템이 언제 완전히 복구될지 아직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멈은 “예상치 못한 건 아니지만 너무 혼란스럽다”면서도 “하지만 벡텔이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원가가산 고정수수료 계약이란… ]

이라크 재건사업에 최종적으로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런 불확실성 탓에 미 국제개발처(AID)는 ‘원가가산 고정수수료 계약(cost-plus, fixed-fee deal)’ 방식을 택했다. 이 방식은 정부가 비용을 어느 정도 통제하면서 공사 변경에 따라 조정하는 것이다. 미 국방부는 무기 개발사업에 이런 방식을 적용한다. 호텔과 카지노 개발업체도 마찬가지다. 이 방식을 따르는 데는 시한도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업비가 일단 확정되면 이윤 가산 방식에 따라 협상시간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업체가 비용을 부풀릴 가능성은 있다. 원가가산 계약에서는 대개 장비, 인건비, 수송비, 법률비용, 행정 지원비 등 업무에 필요한 일정 금액을 ‘간접비’라는 매우 포괄적인 항목으로 기재한다. 그러나 수익을 늘리기 위해 간접비가 부풀려질 가능성도 있다. 일례로 불도저 10대와 PC 1,000대가 필요할 경우 비용을 제1고객에게 전가할 것인가 아니면 감가상각할 것인가. 컬럼비아대학 토목공학과의 마이클 가빈 교수는 원가가산 고정수수료 계약에서 회계상 이런 논란이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벡텔과 AID는 계약조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6억8,000만 달러 가운데 무려 6억 달러가 발전소 복구나 교량 보수 같은 특정 사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벡텔은 7%의 고정이익에 작업 중 발생한 간접비를 환급받게 된다. 이런 간접비가 8,000만 달러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 계약에서 업체는 비용을 낮출 이유가 전혀 없고 오히려 부풀릴 가능성이 더 높다. 벡텔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공사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진행 중인 빅 딕(Big Dig) 프로젝트를 한 번 살펴보자. 벡텔과 뉴욕 소재 컨설팅업체 파슨스 브링커호프(PB)는 원가가산 고정수수료 계약 아래 146억 달러 규모의 터널겣돈?건설공사 관리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예산은 이미 16억 달러를 초과한 상태다. 벡텔과 PB가 20년간 프로젝트를 관리해 주고 받는 수수료는 1억2,200만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매사추세츠주 감사원장 그레고리 설리번에 따르면 수익으로 볼 수 있는 간접비 수백만 달러와 관리 수수료는 별개다. 벡텔과 PB는 간접비 외에 한 푼도 더 받지 않겠다고 장담했다.

벡텔의 대변인 조너선 마셜은 “빅 딕 간접비 배분에서 국방계약감리본부(DCAA)로부터 엄격한 감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설리번은 빅 딕 프로젝트에서 고정이익 가산원가 계약을 택함으로써 벡텔과 PB 스스로 비용이 초과하지 않도록 애쓰게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월 보고서에서 벡텔이 한 지하철역 아래 토양의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점조차 예견하지 못해 6,500만 달러를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벡텔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추가 비용 발생이 불가피했지만 그나마 340만 달러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매사추세츠주 도로관리공단은 전직 판사를 고용해 비용회수가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다. 벡텔은 빅 딕 프로젝트에서 비용이 초과된 것은 “적법 절차 아래 원계약을 수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벡텔은 빅 딕 프로젝트가 미국에서 가장 복잡한 도시 건설공사라고 지적한 뒤 자사의 관리 역량 덕에 비용을 오히려 17억 달러나 줄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빅 딕 프로젝트 완공 시점은 오는 2005년으로 잡혀 있다. -Nathan Var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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