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비리 몸통 ‘호남군맥’ 살생부 떴다
무기 비리 몸통 ‘호남군맥’ 살생부 떴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냈던 임복진 전 의원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지난해 말부터 터지기 시작한 무기 도입 비리 사건을 보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이 사건은 국방품질관리소장을 지낸 이원형 예비역 소장(육사 26기)이 구속되면서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소장은 30여년 동안 무기 도입 분야에 종사한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통한다.
임 전 의원은 1998년 DJ 정부 초기에 무기 도입 관련 8대 의혹사업을 집요하게 파헤치다가 안팎의 거센 저항에 부닥쳐 제대로 일을 끝내지 못했다. 구속된 이소장은 이 의혹사업에 연루된 핵심 인물로 꼽힌다. 임 전 의원은 “이원형 소장은 무기사업의 실무자급에 불과하고 몸통은 따로 있다”며 “이번 수사가 DJ 정부 시절 군 내부의 비리 전반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30여년 동안 군림했던 한국군 내 최대 사조직 하나회를 숙청했던 YS처럼 군조직 전반에 대해 대수술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요즘 국방부의 분위기는 영 썰렁하다. 노무현 정부 들어 비리에 연루돼 사법 처리를 당하거나 군복을 벗은 ‘별’들이 벌써 20명이 넘는다. DJ 집권 5년 동안 비리에 연루돼 군복을 벗은 장성이 2명밖에 안 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다. 이번 사건의 수사가 종결되면 아마 30여명 이상의 별들이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수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진두지휘하고, 청와대 하명수사를 맡는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전담하고 있다.
무기중개상과 국방부의 핵심 요직에 있던 인물만이 아니라 국방과학연구소(ADD)·한국국방연구원(KIDA)·군인공제회 등 산하기관의 고위층까지도 수사선상에 오르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수사로 국방 전반에 개혁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마련됐다”며 “군 기무사와 검찰이 참여하는 군·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출범해 비리척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YS 정부 시절의 하나회 숙청은 청와대 ‘기획’으로 일정한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됐다. 노무현 정부 들어 시작된 군부 개혁이 나름의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수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현재 경찰 수사는 걸리는 대로 잡아들이는 저인망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DJ 시절 한때 국방장관과 차관·합참의장을 모두 호남 출신이 차지할 정도로 호남 인맥은 군 핵심 요직에 포진돼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수사가 군부 내 호남 인맥의 거세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파다하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가 특정 지역의 인맥을 제거해 군부를 장악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건의 시작은 어찌 보면 ‘사소한 우연’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11월 초 국방품질관리소(품관소) 소장을 맡고 있던 이원형 소장이 아내와 함께 갑작스럽게 잠적했다. 품관소는 도입된 무기의 품질이 당초 계획에 맞는지를 검증하는 기구다. 품관소의 보증을 받아야 무기를 납품할 수 있는 무기중개상들로서는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될 부서다. 그런데 이런 직책을 맡고 있는 예비역 장성이 느닷없이 사표를 내고 도망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를 국방부 획득실장으로 사실상 내정하고 중앙인사위원회에 인사자료를 넘기기 직전 청와대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소장의 개인 재산을 추적해보니 공직자 재산신고 때 신고된 금액보다 무려 수십억원이 더 많았던 것이다. 마침 국방부 내 모부서 등에서 이소장의 비리에 대한 투서가 청와대로 날아들었다. 잠적 한달여 만에 이소장은 경찰에 의해 구속됐다.
현재까지 수사는 이원형 소장과 그 주변 인물들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그의 계좌에서 발견된 27억여원 가운데 2억원 가량이 무기상이 건넨 뇌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소장과 함께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군 인사들은 박용득 ADD 소장(예비역 중장)과 황동준 KIDA 원장(예비역 대령), 천용택 의원(전 국방장관) 등 다섯명이다. 정호영 한림ST 대표와 이영우 에이엠코퍼레이션 대표, 김인술 연합정밀 대표, 최창선 엠텍 대표 등 5명의 무기상들이 구속되거나 입건됐다.
수사에 오른 인물들은 이원형 소장과 직·간접적으로 얽힌 인사들이다. 현재까지의 결과만 두고 보면 이 개인 비리 수사에서 더 이상 확대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번 사건을 두고 “몸통을 뺀 깃털 수사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임복진 전 의원도 “무기 도입 비리는 일개 소장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군 수뇌부와 정권의 핵심 인물까지도 관련된다”며 “청와대가 과연 군 비리 전반의 개혁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사업도 비교적 소규모인데다 아파치 헬기 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영우 에이엠코퍼레이션 대표를 제외하곤 거물급은 드물다. 수사의 발단이 된 정호영 한림ST 대표의 뇌물건은 오리콘 대공포 개량사업에서 비롯됐다. 이 대공포는 1975년 도입된 것으로 20년 이상이나 지난 것을 개량한다는 것도 무리지만, 5백60억원을 들여 개량한 대공포의 성능이 이전보다 오히려 떨어지는 게 더 문제였다. 청와대와 수도권 일대를 방어한다는 대공포가 목표물 포착에서 사격에 이르기까지 수동으로 발사해야만 하는 ‘고물 대공포’가 돼 버렸던 것이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대공포를 만들어본 적도 없는 회사에 개량을 맡긴 데다 업자가 로비를 통해 사업을 따내고 하자가 있는 제품을 군 관계자에게 뇌물을 주고 납품했다”고 지적했다.
무기상과 군부 내 ‘커넥션’에 따른 부실 무기의 양산은 이뿐만이 아니다. 12월 16일 구속된 최창선 엠텍 대표가 납품한 견인수중음향탐지 장비도 마찬가지다. 해군의 구축함에 탑재되는 이 장비는 배 후미에 연결된 케이블에 매달려 적 잠수함 등을 탐지하는 첨단 장비다. 해군은 케이블이 끊어지거나 장비가 고장나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무기상의 로비와 뇌물수수는 곧바로 도입 무기의 부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원형 소장은 YS 정부 시절부터 국방부 내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쓰는 획득 분야에서 일해왔다. DJ 정부 시절에는 국방부 획득개발관·획득정책국장·획득정책관 등 무기 획득과 예산 편성 업무를 총괄하는 요직에 줄곧 몸담고 있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국방부 핵심 요직인 획득실장에 1순위로 올라있던 인물이자 군내 호남 인맥의 핵심 주자로 꼽혀왔다. 그가 무기상의 주요 타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요직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군내 호남 인맥의 실세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군내 사정기구인 기무사나 헌병대 등이 모두 호남 인맥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제동장치가 없었다. 한 군 관계자는 “DJ 정부 시절 이씨는 김동신 국방장관도 통제를 못할 만큼 위세가 상당했다”고 전한다. 군 안팎에서는 DJ 정부 시절의 군부 내 호남 실세들인 천용택 전 국방장관, 문일섭 전 국방차관, 이원형 획득정책관 등을 비리의 핵심 고리로 꼽고 있다. 여기에 국방부 수뇌부에 포진한 H·C씨 등과 김동신 전 국방장관도 거명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군내 인적 지배질서가 무기 도입 비리로 나타난 결과”라는 게 사정당국의 판단이다.
문제는 사건의 확대 여부다. 노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가차없이 수사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사건들을 두고 수사를 확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청와대 내부의 판단이다. 대대적인 군 개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DJ 정부 시절 의혹사업 전반에 대한 재검토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998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문제가 됐던 이른바 ‘8대 의혹사업’이다. 백두·금강사업, 인도네시아산 CN-235 수송기 도입사업, BO-105 스카우트 헬기 도입사업, 다련장로켓·ATACMS 지대지 미사일 도입사업, 동부지역 전자전 장비 도입사업, CAT-10B 훈련기 도입사업, 미스트랄 휴대용 대공유도탄 도입사업, 이스라엘제 무인항공기 도입사업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사업의 총 사업비는 2조2천억원 가량이다. 군 관계자들은 무기 도입 비리의 ‘몸통’은 바로 이들 사업과 연관돼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 사업들은 계속 시행이 보류되다 YS 정권 말기인 1997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요청 직전에 착수된 사업이다. 외환 위기를 앞두고 무더기로 외자 지출이 이뤄졌던 것이다. 1998년 정권인수위에서 이들 사업의 보류를 결정했지만, 언론과 국회의 끝없는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1998년 천용택 당시 국방장관에 의해 그대로 추진됐다. 물밑에서 이 사업을 주도한 것은 당시 문일섭 획득실장과 이원형 획득정책관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권인수위원으로 이 사업들의 시행을 보류하고, 국회 내에서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했던 임복진 전 의원은 “당시 인수위 결정대로 이 사업들을 재검토했어야 했다”며 “당시 이원형씨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그가 입을 열면 대형 무기 도입 로비의 내막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형 사업들의 비리를 밝혀내지 못한다면 이번 무기 비리 수사는 변죽만 울리고 말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12월 29일 경찰에 의해 두 번째로 소환을 받은 천용택 전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공직에 있거나 의원 신분으로서 비리에 한건이라도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 모든 책임을 지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문제가 됐던 사업들의 실상은 어이가 없을 정도다. 참여연대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던 동부지역 전자전 장비사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사업으로 도입된 프랑스제 장비의 방탐률은 2%에 불과하다. 한 군 관계자는 “1993년 전자전 부대를 2개 대대나 창설했는데, 이 부대가 10여년 간이나 할 일 없이 놀게 됐다. 미군 구형 장비를 빌려다 훈련하는 게 고작이었다. 전자전 장비는 완전히 실패한 장비”라고 털어놨다. 미스트랄 지대공 미사일도 마찬가지다. 지상에서 저고도로 침투하는 적기를 격추하는 이 미사일은 엉뚱하게 해군에 배치됐다.
2백억원 어치를 해군에 배치했는데, 배가 흔들려 조준이 안되는 심각한 결함이 발생했다. 당초 지상 무기를 해군 함정에 배치한 게 문제였던 것이다. 현재 해군은 궁여지책으로 받침대를 세워 그 위에 미사일을 장착해 놨는데, 그조차도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말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수송기를 도입하고 대신 군용 차량과 맞교환한 CN-235 수송기 도입사업은 양국 정부간의 검은 거래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인도네시아 정부에 차량을 실제 가격의 3∼4배 비싸게 팔았던 이 사업은 당시 인도네시아의 부패 정권인 수하르토 정권의 비자금 조성으로 활용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군의 무기 도입 과정은 꽤나 복잡한 절차를 필요로 한다. 육·해·공군에서 먼저 도입 무기의 소요를 제기하고, 합동참모본부에서 무기개발·구매를 국방부에 건의한다. ADD와 KIDA는 도입 무기의 비용 대 효과를 분석한다. 그 후 교육사령부에서 작전요구 성능을 제시하고, 각 사업단의 계획 수립을 거쳐 무기의 성능시험 평가를 하게 된다. 그 후 국방부 획득본부를 거쳐 도입이 결정되면, 품질관리소에서 도입 무기의 성능을 검증해 소요군에 배치하게 된다(25쪽 표 참조). 여기서 핵심 부서는 국방부 획득실이다. 국방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청와대에서는 국방부 획득실의 해체를 거론하고 있다. 1998년 만들어진 획득실은 당시 7개 국이 통합돼 거대 조직으로 출범했다. 초대 획득실장이었던 문일섭씨는 2001년 군납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무기 도입은 각 군에서 필요에 따라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국방부가 획득실 주도로 무기 도입을 결정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요컨대 국방부에 의해 무기 도입이 결정되면서 국방부 수뇌부와 KIDA 등 연구기관, 획득실, 품관소 등 일련의 무기 도입 관련 기구에서 연쇄적인 비리 사슬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리의 고리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배타적인 군내 인맥이 형성된다. 비리와 인맥이 서로 얽히는 것도 바로 이런 메커니즘 때문이다. 인사청탁 비리도 여기서 나타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최근 경찰이 압수한 군인공제회 관련 서류를 넘겨받아 내사를 벌이고 있다. 군 고위 장성들이 아파트를 특혜분양받았고, 여기에 국방부 내 전·현직 수뇌부가 연루돼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조영길 현 국방장관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이원형 소장의 개인 비리에서 군 공사 비리 등으로 수사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군 안팎에서는 이런 수사 확대를 오히려 반기는 눈치다. 특히 영관급 장교들이 그렇다. 군 장성의 약 10%가 군복을 벗게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군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인사적체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여기에는 요직을 사실상 독점해온 호남 인맥에 대한 반감도 작용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한 유권해석을 선관위에 요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는 4월 총선에서 ‘제한된 범위’ 안에서 선거 개입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이번 무기 도입 비리 수사가 ‘정치적으로’ 끝나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수사는 불가피하게 DJ 정권의 비리와 호남 인맥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과연 4월 총선을 앞두고 그럴 수 있겠느냐는 우려에서다. 비리 사슬이 존재하는 한 아무리 많은 국방예산을 투입해도 군의 실제 전력은 향상되지 않는다. 임복진 전 의원은 “무기사업에 비리가 발생하면 무기가 부실해지고, 군 인사도 파행으로 간다. 이번 수사는 노무현 정부의 국방 개혁 의지를 시험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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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전 의원은 1998년 DJ 정부 초기에 무기 도입 관련 8대 의혹사업을 집요하게 파헤치다가 안팎의 거센 저항에 부닥쳐 제대로 일을 끝내지 못했다. 구속된 이소장은 이 의혹사업에 연루된 핵심 인물로 꼽힌다. 임 전 의원은 “이원형 소장은 무기사업의 실무자급에 불과하고 몸통은 따로 있다”며 “이번 수사가 DJ 정부 시절 군 내부의 비리 전반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30여년 동안 군림했던 한국군 내 최대 사조직 하나회를 숙청했던 YS처럼 군조직 전반에 대해 대수술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요즘 국방부의 분위기는 영 썰렁하다. 노무현 정부 들어 비리에 연루돼 사법 처리를 당하거나 군복을 벗은 ‘별’들이 벌써 20명이 넘는다. DJ 집권 5년 동안 비리에 연루돼 군복을 벗은 장성이 2명밖에 안 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다. 이번 사건의 수사가 종결되면 아마 30여명 이상의 별들이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수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진두지휘하고, 청와대 하명수사를 맡는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전담하고 있다.
무기중개상과 국방부의 핵심 요직에 있던 인물만이 아니라 국방과학연구소(ADD)·한국국방연구원(KIDA)·군인공제회 등 산하기관의 고위층까지도 수사선상에 오르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수사로 국방 전반에 개혁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마련됐다”며 “군 기무사와 검찰이 참여하는 군·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출범해 비리척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YS 정부 시절의 하나회 숙청은 청와대 ‘기획’으로 일정한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됐다. 노무현 정부 들어 시작된 군부 개혁이 나름의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수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현재 경찰 수사는 걸리는 대로 잡아들이는 저인망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DJ 시절 한때 국방장관과 차관·합참의장을 모두 호남 출신이 차지할 정도로 호남 인맥은 군 핵심 요직에 포진돼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수사가 군부 내 호남 인맥의 거세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파다하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가 특정 지역의 인맥을 제거해 군부를 장악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건의 시작은 어찌 보면 ‘사소한 우연’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11월 초 국방품질관리소(품관소) 소장을 맡고 있던 이원형 소장이 아내와 함께 갑작스럽게 잠적했다. 품관소는 도입된 무기의 품질이 당초 계획에 맞는지를 검증하는 기구다. 품관소의 보증을 받아야 무기를 납품할 수 있는 무기중개상들로서는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될 부서다. 그런데 이런 직책을 맡고 있는 예비역 장성이 느닷없이 사표를 내고 도망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를 국방부 획득실장으로 사실상 내정하고 중앙인사위원회에 인사자료를 넘기기 직전 청와대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소장의 개인 재산을 추적해보니 공직자 재산신고 때 신고된 금액보다 무려 수십억원이 더 많았던 것이다. 마침 국방부 내 모부서 등에서 이소장의 비리에 대한 투서가 청와대로 날아들었다. 잠적 한달여 만에 이소장은 경찰에 의해 구속됐다.
현재까지 수사는 이원형 소장과 그 주변 인물들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그의 계좌에서 발견된 27억여원 가운데 2억원 가량이 무기상이 건넨 뇌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소장과 함께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군 인사들은 박용득 ADD 소장(예비역 중장)과 황동준 KIDA 원장(예비역 대령), 천용택 의원(전 국방장관) 등 다섯명이다. 정호영 한림ST 대표와 이영우 에이엠코퍼레이션 대표, 김인술 연합정밀 대표, 최창선 엠텍 대표 등 5명의 무기상들이 구속되거나 입건됐다.
수사에 오른 인물들은 이원형 소장과 직·간접적으로 얽힌 인사들이다. 현재까지의 결과만 두고 보면 이 개인 비리 수사에서 더 이상 확대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번 사건을 두고 “몸통을 뺀 깃털 수사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임복진 전 의원도 “무기 도입 비리는 일개 소장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군 수뇌부와 정권의 핵심 인물까지도 관련된다”며 “청와대가 과연 군 비리 전반의 개혁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사업도 비교적 소규모인데다 아파치 헬기 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영우 에이엠코퍼레이션 대표를 제외하곤 거물급은 드물다. 수사의 발단이 된 정호영 한림ST 대표의 뇌물건은 오리콘 대공포 개량사업에서 비롯됐다. 이 대공포는 1975년 도입된 것으로 20년 이상이나 지난 것을 개량한다는 것도 무리지만, 5백60억원을 들여 개량한 대공포의 성능이 이전보다 오히려 떨어지는 게 더 문제였다. 청와대와 수도권 일대를 방어한다는 대공포가 목표물 포착에서 사격에 이르기까지 수동으로 발사해야만 하는 ‘고물 대공포’가 돼 버렸던 것이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대공포를 만들어본 적도 없는 회사에 개량을 맡긴 데다 업자가 로비를 통해 사업을 따내고 하자가 있는 제품을 군 관계자에게 뇌물을 주고 납품했다”고 지적했다.
무기상과 군부 내 ‘커넥션’에 따른 부실 무기의 양산은 이뿐만이 아니다. 12월 16일 구속된 최창선 엠텍 대표가 납품한 견인수중음향탐지 장비도 마찬가지다. 해군의 구축함에 탑재되는 이 장비는 배 후미에 연결된 케이블에 매달려 적 잠수함 등을 탐지하는 첨단 장비다. 해군은 케이블이 끊어지거나 장비가 고장나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무기상의 로비와 뇌물수수는 곧바로 도입 무기의 부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원형 소장은 YS 정부 시절부터 국방부 내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쓰는 획득 분야에서 일해왔다. DJ 정부 시절에는 국방부 획득개발관·획득정책국장·획득정책관 등 무기 획득과 예산 편성 업무를 총괄하는 요직에 줄곧 몸담고 있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국방부 핵심 요직인 획득실장에 1순위로 올라있던 인물이자 군내 호남 인맥의 핵심 주자로 꼽혀왔다. 그가 무기상의 주요 타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요직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군내 호남 인맥의 실세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군내 사정기구인 기무사나 헌병대 등이 모두 호남 인맥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제동장치가 없었다. 한 군 관계자는 “DJ 정부 시절 이씨는 김동신 국방장관도 통제를 못할 만큼 위세가 상당했다”고 전한다. 군 안팎에서는 DJ 정부 시절의 군부 내 호남 실세들인 천용택 전 국방장관, 문일섭 전 국방차관, 이원형 획득정책관 등을 비리의 핵심 고리로 꼽고 있다. 여기에 국방부 수뇌부에 포진한 H·C씨 등과 김동신 전 국방장관도 거명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군내 인적 지배질서가 무기 도입 비리로 나타난 결과”라는 게 사정당국의 판단이다.
문제는 사건의 확대 여부다. 노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가차없이 수사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사건들을 두고 수사를 확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청와대 내부의 판단이다. 대대적인 군 개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DJ 정부 시절 의혹사업 전반에 대한 재검토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998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문제가 됐던 이른바 ‘8대 의혹사업’이다. 백두·금강사업, 인도네시아산 CN-235 수송기 도입사업, BO-105 스카우트 헬기 도입사업, 다련장로켓·ATACMS 지대지 미사일 도입사업, 동부지역 전자전 장비 도입사업, CAT-10B 훈련기 도입사업, 미스트랄 휴대용 대공유도탄 도입사업, 이스라엘제 무인항공기 도입사업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사업의 총 사업비는 2조2천억원 가량이다. 군 관계자들은 무기 도입 비리의 ‘몸통’은 바로 이들 사업과 연관돼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 사업들은 계속 시행이 보류되다 YS 정권 말기인 1997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요청 직전에 착수된 사업이다. 외환 위기를 앞두고 무더기로 외자 지출이 이뤄졌던 것이다. 1998년 정권인수위에서 이들 사업의 보류를 결정했지만, 언론과 국회의 끝없는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1998년 천용택 당시 국방장관에 의해 그대로 추진됐다. 물밑에서 이 사업을 주도한 것은 당시 문일섭 획득실장과 이원형 획득정책관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권인수위원으로 이 사업들의 시행을 보류하고, 국회 내에서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했던 임복진 전 의원은 “당시 인수위 결정대로 이 사업들을 재검토했어야 했다”며 “당시 이원형씨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그가 입을 열면 대형 무기 도입 로비의 내막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형 사업들의 비리를 밝혀내지 못한다면 이번 무기 비리 수사는 변죽만 울리고 말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12월 29일 경찰에 의해 두 번째로 소환을 받은 천용택 전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공직에 있거나 의원 신분으로서 비리에 한건이라도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 모든 책임을 지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문제가 됐던 사업들의 실상은 어이가 없을 정도다. 참여연대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던 동부지역 전자전 장비사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사업으로 도입된 프랑스제 장비의 방탐률은 2%에 불과하다. 한 군 관계자는 “1993년 전자전 부대를 2개 대대나 창설했는데, 이 부대가 10여년 간이나 할 일 없이 놀게 됐다. 미군 구형 장비를 빌려다 훈련하는 게 고작이었다. 전자전 장비는 완전히 실패한 장비”라고 털어놨다. 미스트랄 지대공 미사일도 마찬가지다. 지상에서 저고도로 침투하는 적기를 격추하는 이 미사일은 엉뚱하게 해군에 배치됐다.
2백억원 어치를 해군에 배치했는데, 배가 흔들려 조준이 안되는 심각한 결함이 발생했다. 당초 지상 무기를 해군 함정에 배치한 게 문제였던 것이다. 현재 해군은 궁여지책으로 받침대를 세워 그 위에 미사일을 장착해 놨는데, 그조차도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말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수송기를 도입하고 대신 군용 차량과 맞교환한 CN-235 수송기 도입사업은 양국 정부간의 검은 거래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인도네시아 정부에 차량을 실제 가격의 3∼4배 비싸게 팔았던 이 사업은 당시 인도네시아의 부패 정권인 수하르토 정권의 비자금 조성으로 활용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군의 무기 도입 과정은 꽤나 복잡한 절차를 필요로 한다. 육·해·공군에서 먼저 도입 무기의 소요를 제기하고, 합동참모본부에서 무기개발·구매를 국방부에 건의한다. ADD와 KIDA는 도입 무기의 비용 대 효과를 분석한다. 그 후 교육사령부에서 작전요구 성능을 제시하고, 각 사업단의 계획 수립을 거쳐 무기의 성능시험 평가를 하게 된다. 그 후 국방부 획득본부를 거쳐 도입이 결정되면, 품질관리소에서 도입 무기의 성능을 검증해 소요군에 배치하게 된다(25쪽 표 참조). 여기서 핵심 부서는 국방부 획득실이다. 국방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청와대에서는 국방부 획득실의 해체를 거론하고 있다. 1998년 만들어진 획득실은 당시 7개 국이 통합돼 거대 조직으로 출범했다. 초대 획득실장이었던 문일섭씨는 2001년 군납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무기 도입은 각 군에서 필요에 따라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국방부가 획득실 주도로 무기 도입을 결정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요컨대 국방부에 의해 무기 도입이 결정되면서 국방부 수뇌부와 KIDA 등 연구기관, 획득실, 품관소 등 일련의 무기 도입 관련 기구에서 연쇄적인 비리 사슬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리의 고리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배타적인 군내 인맥이 형성된다. 비리와 인맥이 서로 얽히는 것도 바로 이런 메커니즘 때문이다. 인사청탁 비리도 여기서 나타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최근 경찰이 압수한 군인공제회 관련 서류를 넘겨받아 내사를 벌이고 있다. 군 고위 장성들이 아파트를 특혜분양받았고, 여기에 국방부 내 전·현직 수뇌부가 연루돼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조영길 현 국방장관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이원형 소장의 개인 비리에서 군 공사 비리 등으로 수사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군 안팎에서는 이런 수사 확대를 오히려 반기는 눈치다. 특히 영관급 장교들이 그렇다. 군 장성의 약 10%가 군복을 벗게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군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인사적체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여기에는 요직을 사실상 독점해온 호남 인맥에 대한 반감도 작용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한 유권해석을 선관위에 요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는 4월 총선에서 ‘제한된 범위’ 안에서 선거 개입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이번 무기 도입 비리 수사가 ‘정치적으로’ 끝나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수사는 불가피하게 DJ 정권의 비리와 호남 인맥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과연 4월 총선을 앞두고 그럴 수 있겠느냐는 우려에서다. 비리 사슬이 존재하는 한 아무리 많은 국방예산을 투입해도 군의 실제 전력은 향상되지 않는다. 임복진 전 의원은 “무기사업에 비리가 발생하면 무기가 부실해지고, 군 인사도 파행으로 간다. 이번 수사는 노무현 정부의 국방 개혁 의지를 시험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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