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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가 ‘유령 인플레이션’ 불렀다

유로화가 ‘유령 인플레이션’ 불렀다


The Price Is Wrong

이탈리아는 곤경에 처해 있고, 그 원인은 유로화에 있다. 이탈리아는 이제 유럽에서 경기회복이 가장 느리다는 점에서 독일과 막상막하를 이루고 있다. 지난 1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유로존 창설이 너무 성급했었다면서 유통업체들이 리라화를 유로화로 바꿀 때 물가를 무려 1백%나 올려놓았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저명한 로마의 싱크탱크 에우리스페스는 유로화 도입(2002년 1월 1일) 이후의 물가상승과 임금동결 때문에 2백50만 중산층 가구가 가난해지고 있다고 주장해 논쟁을 가열시켰다.

이탈리아인들은 그 책임이 대체로 유로화(혹은 유로화 도입에 대한 이탈리아의 잘못된 대응)에 있다는 데 공감하는 듯하다. 다만 한가지 문제는, 이탈리아나 유로존의 어느 지역에서도 인플레이션은 ‘공식적으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베를루스코니 정부에 따르면 인플레는 유로화 도입 이래 유럽 평균보다 약간 높은 연간 2.5% 수준이다. 그러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인들은 물가가 20%나 올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베를루스코니는 그런 국민적 인식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경제 문제에 대한 비난을 유럽연합(EU)쪽으로 돌리고, 그럼으로써 다음번 총선의 강력한 경쟁자인 로마노 프로디 EU 집행위원장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극단적인 경우다. 그러나 소위 ‘유령 인플레’(phantom inflation)는 여타 유럽 지역에서도 정치적 논란거리가 되어 있다. 애당초 대다수 유럽인들은 통화 통합이 자신들의 돈을 도둑질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기회가 있었다면 그것에 반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같은 예상은 오늘날 자기실현적인 환상이 됐다. 모건 스탠리에 따르면 평균적인 소비자들은 물가 수준이 실제보다 3% 높은 것으로 믿고 있다.

유럽 지도자들이 오는 5월 1일 10개국을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고 최근 브뤼셀에서 유럽 헌법(통화와 무역 통합체인 EU를 정치 통합체로 변화시킬 것이다) 제정에 관한 논의 재개에 합의한 상황에서, 유로화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신뢰 결여는 ‘유럽 프로젝트’에 대한 의구심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준다. 파리에 있는 국제예측연구센터(CIPS)의 경제전문가 파올로 장기에리는 유로화가 일종의 ‘희생양’이라고 말한다.

유로화가 인플레를 확산시킬 것이라는 믿음은 도시지역에서는 유로화 도입 전부터 이미 ‘전설’이 돼 있었다. 실제로 일부 사업체들은 특히 요식업·이발·영화티켓 같은 서비스 분야에서 유로화 도입을 가격 인상의 기회로 이용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소비자들은 유로화 도입으로 폭리를 취하는 사업체들에 대해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EU의 월별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플레에 대한 소비자들의 체감은 유로화 도입 직전까지만 해도 실제에 근접했지만 도입 이후에는 체감 물가가 실제 물가보다 높아졌다. 27개월이 지난 지금 그 간격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독일에서는 약간 좁혀지고 있고 이탈리아에서는 계속 넓어지고 있다.

사실 유럽중앙은행에 따르면 유로화 도입 초기의 물가 인상은 작고 일시적인 것으로 2002년 유럽 전역에서 0.2% 올랐을 뿐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그 충격이 대다수 다른 나라들보다 컸지만 기껏해야 1% 올랐을 뿐이라고 모건 스탠리의 분석가 빈센초 구초는 지적한다. 체감 물가는 여전히 실제보다 높은데 이는 부분적으론 물가 인상이 생필품에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유로화 도입 후 첫 20개월 동안 가지값은 14%, 신문값은 17%, 카푸치노 값은 9% 올랐다고 소비자그룹 알토콘수모는 밝혔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들은 자동차 가격보다는 맥주값에 더 관심을 두는 반면 경제전문가들은 자동차·컴퓨터(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같은 고가품을 포함한 소비재 전체의 동향을 추적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그같은 통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의 지난해 12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인 4명 중 3명은 당국의 인플레 수치를 믿지 않는다. 소비자 연합체인 인테사 데이 콘수마토리의 엘리오 라누티는 “그런 거짓 통계를 수없이 들었다”며 분개했다. 이 단체가 산정한 인플레 수치는 당국의 2배다. 싱크탱크 에우리스페스에 따르면 2001~2003년 화이트칼라 근로자의 구매력은 19.7% 감소한 데 비해 블루칼라 근로자의 구매력은 16% 감소했다. 소비자단체 페데르콘수마토리의 간부인 로사리오 트레필레티는 “중산층의 구매력이 감소한 것은 유로화 도입 후의 물가 상승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당국의 공식 통계가 틀릴 수도 있을까? 벨기에의 경제전문가 파울 드 그라우베는 물가 정보는 비교적 수집하기가 쉽고 왜곡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인플레 측정은 경제성장의 기본 측정치인 국내총생산(GDP)처럼 정교한 계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조사원들은 매달 유럽 전역의 상점들에 파견돼 평균치를 계산하기 위해 각 품목의 다양한 가격들을 조사하면서 무려 1백만개 이상의 가격들을 기록한다. 그 결과 나오는 인플레 수치는 매우 믿을 만하다고 유럽개혁센터(런던 소재)의 수석 연구원 카틴카 베어리슈는 지적한다. 그는 정부 당국자들이 국민들에게 “유로화 때문에 가난해지는 게 아니다”는 점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탈리아인들이 유령 인플레에 가장 시달릴 것이란 점은 이해가 된다. 1유로에 2마르크를 곱하기는 쉽다. 그러나 1유로에 6.6프랑을 곱하기는 어렵고, 1유로에 1천9백36리라를 곱하기는 훨씬 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상품값을 유로화로 환산하는데 수반되는 혼동, 그리고 그런 혼동을 악용해 폭리를 취하는 행태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심했다. 또 리라화 주화는 거의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2유로짜리 주화를 거스름돈인양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는 대형 할인점이나 유통업체들의 수는 적고 소규모 가게들이 많은 나라다. 이는 유로화 도입 이후의 물가 통제를 어렵게 만들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대형 유통업체들로부터 유로화 도입 전후 몇달간 제품값을 올리지 않으며 소비자 편의를 위해 제품 가격을 유로와 프랑화 두가지로 표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 역시 이탈리아인들처럼 의구심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중앙은행은 유로존 전역에서 실제 인플레와 인식상의 인플레 사이에 위험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이같은 차이는 소비자 지출을 위축시키고 임금 상승 요구를 강화시켜 실제로 인플레를 촉진시킬 수도 있다. 점점 더 많은 프랑스 가계들은 유로화 환전에 따른 혼란과 일시적인 충격 사태들(지난해 농산물 가격 상승을 초래한 봄·여름의 이상 기후) 때문에 물가가 급상승하고 있다고 믿는다.

유럽의 문제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인플레가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낮은 성장이다. 유로존의 평균 인플레는 매우 건전한 수준인 2%인 반면 지난해 평균 성장률은 겨우 0.4% 수준이었다. 프랑스 정치연구소의 필립 모로 드파르제 교수는 “사람들에게 인플레율이 높게 느껴지는 것은 프랑스가 더 부유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독일에서만 현실 감각이 되돌아오고 있다. 마침내 독일 소비자들은 경기침체로 경쟁이 촉진되면서 일부 품목들의 가격이 내려가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인들은 진짜 문제는 경쟁과 성장을 억제하는 각종 규제인 데도 공식 인플레 수치를 믿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유럽 담당 수석 경제전문가 로렌초 코도그노는 “논쟁의 주제 자체가 잘못 선정됐다. 이탈리아는 사소한 차이의 인플레율보다는 가격 신축성을 허용하는 개혁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잘못된 현실 인식의 위험은 경제 영역을 넘어선다. 동구 국가들은 EU 가입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폴란드·슬로바키아·체코의 경우는 과반수)이 EU 가입 후 자신들의 생활 수준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 회원국들은 신규 회원국들에 완전한 복지와 이민권을 부여하는데 더욱 소극적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동구 국가들의 최대 걱정거리가 아니다. 지난 2월 한 헝가리 싱크탱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동구인의 약 80%는 유로존의 물가 상승을 최대 근심거리로 지목했다. 이같은 상황은 대국과 소국 사이의 권력 배분을 결정하는 헌법 제정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예비 회원국들로 하여금 강대국들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만들고 있다. 유럽의 미래를 따라다닐 새로운 유령이 생겨난 것이다.

With CRISTIANA FABIANI in Rome,
ERIC PAPE and ANDREW EHRENKRANZ in Paris and STEFAN THEIL in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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