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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의 ‘의식’속으로 들어간다

북한 주민의 ‘의식’속으로 들어간다

통일이 된 뒤 독일에 ‘전환질병’이라는 신종 질병이 생겨났다. 스트레스에 의한 적응 장애를 뜻하는 이 질병은 주로 옛 동독 주민들에게서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바뀐 체제에 적응하지 못해 술로 스트레스를 해결하려는 ‘전환음주’(Wende-Trinker) 장애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 질병은 업무 능력이 떨어지거나 사회활동이 위축되고 예민·불안·초조·우울증 등의 증후를 보인다. 서로 다른 체제 아래 오랫동안 살아온 이들에게 ‘통일’이란 정신적 질병을 동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인 연세대 의대 민성길 교수는 남북한의 통일 과정에서도 이런 질병이 나타날 우려가 높다고 진단한다. 그는 통일이란 체제나 정치의 통일이 아니라 ‘사람의 통일’이라고 본다. 두 체제 주민들의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것이자 서로 다른 두 의식간에 충돌과 긴장, 방어와 타협, 문제 해결과 적응의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란 얘기다. 그는 동료 정신과 전문의들과 함께 최근 몇년 동안 탈북자를 대상으로 남한 사회 적응 문제를 조사해왔다. 최근 출간된 ‘통일이 되면 우리는 함께 어울려 살 수 있을까’(연세대 출판부 펴냄)는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통일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독특한 저서다.

물론 탈북자들이 북한 주민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성장 과정과 교육 환경, 가치관에 대한 조사를 통해 북한 주민에 대한 정신분석은 가능할 것이다. 민교수는 “이런 조사를 통해 남북한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비교하고 통일 과정에서 나타나는 충돌과 화해의 과정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신과 의사인 그가 보기에 통일은 “민족의 병을 고치는 치유의 과정”이자 “분단에 의해 발생한 남북한 사람들의 병적인 성격과 행동·감정·생각들을 고쳐나가는 것”이다.

“1990년대 들어 남한에 탈북자가 대거 유입됐지만 이들은 남한 사회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정착금을 날리거나 사기를 당하고 범죄에 연루되는 일이 자주 나타났어요. 이것은 북한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습성화된 성격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남한 사회와 문화 충돌을 빚은 결과죠. 자본주의 인간형과 사회주의 인간형이 만나는데엔 자연스레 충돌이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북한 사회는 외부 사회와 단절돼 있기 때문에 자신들과 ‘다른 인간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는 게 민교수의 판단. 현재로서는 탈북자가 그리 많지 않아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독일 통일의 경우처럼 매우 짧은 시간에 통일이 이뤄질 경우 한국 사회가 치러야 할 정신적 대가는 엄청나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동독인들이 통독 후 좀더 잘 살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서독인들과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급기야 신나치 성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처럼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마찬가지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사람들의 정신 상태나 의식구조가 사소한 문화 충격에도 크게 동요받을 수 있는 취약한 상태라고 진단한다. 다른 문화, 다른 국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단순하고 순응적이며, 흑백논리적 사고와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인 그가 보기에 북한은 거대한 ‘편집증적 양상’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가 진단하는 북한 주민의 의식 상태는 이렇다.

■인격 발달: 청소년기의 인격 발달이 지연된 상태로 노년기에 이르는 ‘고착과 퇴행’ 양상을 보인다. 자기에게는 남들이 이해 못하는 순수함과 정의가 있다는 태도가 나타난다.

■결핍 상태와 정체: 식량난과 물자 부족 등의 결핍 상태가 지속되면서 ‘순응과 체념’의 의식을 갖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과 먹고 사는 일에만 신경을 쓰는 이기적 태도로 인해 직장이나 국가 재산을 훔쳐오는 식의 ‘대체보상노력’ 행태가 나타난다.

■순응과 의존: 힘을 가진 자에게 복종하고 의지하는 성향. 아이는 부모에게, 학생은 교사에게, 여자들은 남자에게, 일반 주민은 지도자나 당에 순종해야만 한다는 의식을 공유한다. 그 결과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다는 ‘학습화된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북한식 집단주의: 개인의 신념보다는 집단의 신념을 우선시하는데 북한 특유의 이타주의 정신도 이와 관련이 깊다. 동시에 집단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강한 배타주의 성향을 보인다.

■편집증적 성향: 북한 주민의 편집증적 성향은 사상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과잉 사상성’,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주장하는 ‘경직성’, 흑백논리적 사고, 결핍·열등감·외부의 적 등으로 인해 손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피해자의 논리’에 젖어 있다. 북한이 보이는 ‘요구만 하는 태도’도 이런 편집증적 피해의식의 소산이다.

■이중성: 북한 주민들은 당 간부들을 모두 도둑놈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당 간부가 되길 바란다. 당과 국가에 대해서는 충성을 하지만 실제로는 요령 부리기·태만 등 소극적 저항이 심해지고 있다. 이중적 사고·이중적 도덕률을 가진 셈이다. 탈북자들 역시 돈의 노예로 살기는 싫다면서도 동시에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정서적 반응: 북한 주민의 정서는 단순화된 정서가 반복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갈등과 낙천주의·자존심·분노·불안·공포·공격성·우울·반동형성(자신의 공격성을 상대가 눈치채지 않도록 행동을 통제해 과잉 친절을 보이는 등의 성향)의 정서를 나타낸다.

■정신건강 문제: 탈북자들에겐 위장병과 고혈압이 가장 많은데 이는 불안·우울·갈등·분노 등의 정신 장애와 관련이 깊다. 최근 북한에서는 알콜 남용을 뜻하는 ‘술풍’도 확대일로에 있다. 북한의 정신병 전문 치료기관인 49호 병원에는 환자가 넘쳐난다.

민교수는 북한 주민들의 이같은 정신 상태는 북한의 외교 행태에도 스며들어 있다고 본다. 이른바 북한의 ‘벼랑끝 협상’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태도라는 것이다. 문제는 남한과 남한 주민들이 이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남한 주민들에게는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본다. 그동안 남한 주민들이 보여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조선족에 대한 태도를 보면 말이다.

6월 30일 준공된 개성공단을 바라보는 민교수의 시선도 기대반, 우려반이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된 개성공단의 성공 여부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북한 주민들의 성향이나 의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한의 기업주들이 과연 어떤 행태를 보일지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북한 사회를 서서히 개방과 개혁으로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일에 대비한 교육이 가장 절실하다”고 말한다. 교육을 통해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정신과 의사인 민교수가 제안하는 통일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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