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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신화의 일등 공신 입을 열다

부시 신화의 일등 공신 입을 열다

Rove Unleashed

1973년 11월 추수감사절 전날. 워싱턴의 공화당전국위원회(RNC) 건물엔 조용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위원장으로서도 자식의 편의를 봐줄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있었다. 때마침 맏아들이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기차로 내려오는 중이었고 그에겐 주말을 보낼 자동차가 필요했다.

위원장의 젊은 보좌관은 유니언역으로 그를 마중나가 자동차와 키를 전해줬을까. 수십년 후 그 보좌관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때 나는 자동차 키를 들고 역에 서 있었는데 청바지와 카우보이 부츠, 가죽점퍼 차림의 청년 한명이 내게로 터벅터벅 걸어 왔다. 그의 뒤에는 후광이 비쳤다.” 스물두살의 칼 크리스천 로브와 스물일곱살의 조지 W. 부시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그로부터 정확히 31년 후 추수감사절 주간. 대통령과 백악관 스태프들의 업무용 공간인 웨스트윙의 복도는 텅비어 있었다.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담 참석차 재선 후 첫 해외순방을 마친 부시는 고향인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서 쉬고 있었고, 한바탕 치열한 선거전을 치른 고위 참모들도 워싱턴 교외 등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가족·친지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백악관 2층의 한 좁은 방에선 한 남자가 자기 책상에서 편지를 개봉하고 이곳저곳 전화를 걸며 자신이 부시와 공화당,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써내려간 엄청난 드라마의 다음 장을 구상하고 있었다. 선거 다음날 대통령은 승리를 선언하며 로브를 승리의 ‘설계자’라고 불렀었다. 당시 로브는 “매우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유니언역에서 시작해 재선 성공에까지 이어진 그들의 긴 여정을 고려할 때 미국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젠 로브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있으며 이번에도 그가 목표 달성에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30년 이상 동안 그에겐 한가지 임무만 주어져 있었다. 바로 부시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또 (부시 가문 최초로) 재선시키라는 것이었다. 이제 그는 부시를 승리한 대통령만이 아닌, 역사에 남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

근래 들어 칼 로브처럼 오랫동안 대통령과 함께 일하면서 대통령에게 그토록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없었다. 정치 전략가이자 작가인 마셜 위트먼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로브와 견줄 수 있는 인물을 찾아보려 했다. 가장 근접한 인물은 친형의 행정부에서 일한 로버트 케네디 정도다. 그러나 그도 로브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로브도 충성스럽긴 마찬가지지만 정치적 야심은 한 가문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다.”

실로 그렇다. 그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자신의 임무 중 하나는 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전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거 며칠 후 기자들과 만났을 때는 마치 자신의 역할은 이제 끝난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2008년 대선은 나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관심을 가진 인물에게 맡겨질 것이다. 이번이 내가 참여하는 마지막 대선 운동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지난주 그는 그 말을 번복했다. 그는 “내가 너무 성급하게 대답했다”며 “백악관의 많은 사람들은 내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어리석었다고 말했다. 이번처럼 앞으로 2년간을 또 다시 아내와 아들로부터 떨어져 지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만 말해두겠다. 그러나 사람의 앞일을 누가 알겠는가”라고 덧붙였다.

다른 말로 하면 로브가 공화당의 차기 대선 후보 결정을 위한 예비 심사에 이미 착수했다는 뜻이다. 아니면 그와 부시는 적어도 세계가 그렇게 믿기를 바라고 있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들과 권력 브로커들에게 로브가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긴장감을 조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공화당 전략가는 “대통령은 곧 레임덕에 빠질 것이다.

그는 로브도 같은 신세가 되게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칼 로브와 가까운 인물’로 비치는 것은 대권 도전을 노리는 공화당원들에겐 거의 신에게서 선택받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 때문에 로브도 쉽사리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없다. 그 전략가는 “로브는 앞으로 얼마 동안은 지지 후보를 표명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로브는 또 문화적으로 온건파에 속하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및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와도 원만하게 일해 왔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조차도 2000년 대선 운동 당시 심각하게 악화된 로브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2004년 선거운동 막바지에 유세 비행기와 버스 안에서 로브 및 대통령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로브는 “버스에서 3일 동안 함께 지내다보면 끈끈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로브는 현재 더 시급하고 더 고매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이 그랬던 것처럼 공화당에 이익을 가져오고 더 나아가 향후 수십년간 공화당의 정치적 지배를 보장할 입법 및 철학적 아젠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부시의 유세 연설을 들은 사람들이라면 그 핵심 원칙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전통적 도덕 가치를 존중하는 자유시장경제·민주주의만이 테러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줄 수 있다는 보수적 신념에 기초해 있다.

사실 로브는 시장과 도덕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선 큰 정부를 지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부시의 최대 업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로브는 재빨리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명쾌하게 설명한 점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결정적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로브는 외교정책 수립에도 완전히 개입할 생각이며 지금은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주도세력으로 꼽히지 않고 있지만 그의 사상은 분명 네오콘에 속해 있다.

국내 정책에서도 로브는 분명한 주제가 준비돼 있다. 그는 대통령이 ‘주인의식 사회’의 건설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결코 현상 유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일례로 그는 소득세 제도를 폐지하고, 누진세를 일률적 세율의 세금이나 심지어 연방판매세 또는 부가가치세로 대체할 것을 고려 중이다. 또 사회보장제도를 위해 막대한 세금을 거둘 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건강과 노후를 대비하게 하거나 세금 대신 자신의 의료저축계좌에 의무적으로 납부케 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 중이다. 부시와 로브가 텍사스 시절부터 추진해온 또 하나의 제안은 소비자가 소송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금의 한도액을 연방 차원에서 정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로브는 민주당측이 연방 정부의 세금 인상을 적극 옹호하고 나서도록 유도하려 한다. 특정 집단을 겨냥한 직접적인 우편물 발송에 익숙한 그로선 미국민 전체를 유혹하기보다는 이미 확보된 지지 집단의 확대를 꾀한다. 그의 공략 지역은 바로 행정부의 뉴딜식 패러다임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는, X세대가 다수인 소기업가들이 거주하는 팽창일로의 준교외 지역이다. 로브는 “우리는 그처럼 역동적인 소기업적 분위기에 한층 주목하려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화당의 보수적 입장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안정과 편안함을 갈구하는 젊은층 가족들에게조차도 환영받는 지역이 바로 준교외다. 로브는 부시가 2차 임기엔 결혼을 남녀 간의 결합으로 정의하기 위한 헌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한다(보수적인 대법관 임명도 함께 점쳐진다). 로브는 “유권자들이 대통령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단호한 입장을 보이기 때문”이라며 “그가 생명을 중시한다고 말하면 결단코 진심에서 한 말”이라고 덧붙였다. 거기엔 민주당측으로 하여금 동성애자 권리 및 무제한적인 낙태를 옹호하도록 몰아붙인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물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은 힘들다. 일단 행정부 안에선 별 어려움이 없다. 텍사스주 시절부터 관계를 맺어온 로브의 친구들이 행정부 곳곳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거기엔 알베르토 곤살레스 법무, 마거릿 스펠링스 교육,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내정자 외에 해리엇 마이어스 백악관 법률고문, 켄 멜먼 RNC 위원장 내정자도 포함된다. 로브 자신이 신뢰하는 홍보 보좌관 댄 바틀릿을 중심으로 한 다른 핵심 보좌관들도 아직 건재하다. 이들은 오랫동안 함께 손발을 맞춰 왔다(부시의 대선본부장을 맡았던 케어런 휴스는 텍사스 자택에서 원거리 지원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공화당 진영 내 나머지 세력들에 대한 통제권 확보는 쉽지 않을 것이다. 로브는 “어느 누구도 대통령과 1백% 뜻을 같이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보수파 권력 브로커들은 지금은 그를 신뢰한다고 말한다. 리처드 비게리는 “그는 우리에게 동료 의식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일 행정부가 비게리가 표현한 “기독교를 지지하는” 아젠더를 실행에 옮기는 데 충분한 열정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로브를(또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설 것이다.

통제가 더욱 힘든 문제도 있다. 현실은 우크라이나·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라크 등지의 선거에서 등장하는 희망적인 수사를 따라가지 못할지 모른다. 추락하는 달러화와 급증하는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부시에게서 전면적인 세제 개편 기회를 빼앗아갈지도 모른다. 로브는 대통령 임기 중반인 2006년에 실시될 의회선거를 낙관적으로 바라보지만 재선과 집권당의 의회내 과반수 의석 늘리기에 동시에 성공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조차도 2차 임기에 실시된 중간선거(1936)에선 민주당의 참패를 목도했다.

개인적 차원의 도전도 도사리고 있다. 로브에겐 선거전 도중 뉴욕타임스 기자들에게 쏘아붙였던 것처럼 이따금씩 발끈하는 보복적 기질이 있다. 그는 “나는 그같은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들에겐 아직도 원한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시 팀이 오만이나 편협에 빠지진 않을 것이라며 “우린 늘 서로에게 가차없는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뉴햄프셔주에서 사는 톰 래스는 “그는 자신이 힘들 때도 우리에게 의리를 지킨다. 우리가 그를 신뢰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로브나, 부시도 민주당 친구는 별로 없다. 그리고 워싱턴에선 비선출직으로 권력을 키워온 사람은 누구나(특히 잔혹한 책략을 쓴다는 평판이 있는 사람은) 쉽사리 공격 대상이 된다. 하지만 로브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해리 트루먼이 한 말 알아요? 그는 ‘워싱턴에서 친구를 원한다면 차라리 개를 키우라’고 했죠. 근데, 나는 두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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