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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힘든 ‘베컴 따라잡기’

너무나도 힘든 ‘베컴 따라잡기’

Beyond Beckham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간의 유로 2004 준준결승전. 잉글랜드의 공격수 웨인 루니(19·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전반 27분쯤 입은 발목 부상으로 전세계 수백만 TV 시청자들의 갈채 속에 절룩거리며 경기장을 나왔다. 대회는 끝났지만 그가 보인 기량은 놀라웠다. 루니는 포르투갈전까지 모두 4골을 기록해 데이비드 베컴 같은 출중한 선수조차도 불어넣지 못한 활력을 잉글랜드에 불어넣었다. 전세계 축구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당시 약관 18세의 루니가 베컴의 뒤를 이을 새로운 축구 스타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의 ‘상품 가치’가 도마에 오르면서 그 같은 호평도 곧 수그러들었다. 한 해설가의 지적대로 루니는 분명 탁월한 선수지만 과연 그가 무엇을 팔 수 있을 것인가.

‘베컴의 시대’에 세계적 축구 스타가 되려면 능숙한 축구 솜씨 이상의 것들이 필요하다. 구단을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려는 클럽 입장에선 티셔츠·셰이빙 크림 등 모든 것을 팔 수 있는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그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베컴이 있다. 멋진 외모와 가정적 이미지까지 겹쳐 유명인사 반열에 오른 그는 미국의 질레트 면도기에서 일본의 메이지 세이카 초콜릿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모든 제품 광고에 등장한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 ‘베컴의 시대’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29세의 베컴은 이미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다. 축구계도 그가 기량이 떨어져 결국 은퇴하게 될 때 초래될 공백을 메울 방법을 고심 중이다. 그 문제는 얼마 전 두바이에서 열린 연례 축구용품박람회에 참석한 많은 구단주와 마케팅 간부들에게도 고민거리였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프레디 셰퍼드 회장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003년 베컴을 레알 마드리드로 팔아넘긴 후 팀의 인기가 다소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젠 축구계 전체가 기존의 영광을 놓치지 않을까 우려한다.

시장성에서 베컴의 뒤를 이을 후보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루니는 축구장만 벗어나면 인기가 없다. 리버풀 출신으로 앳된 얼굴을 한 그는 현지에서만 먹혀들 뿐 유명인사다운 광채가 부족하다. 이것은 레알 마드리드의 마이클 오언도 마찬가지다(대신 그는 여성팬들의 인기를 끌 만큼 귀엽긴 하다). 그 외 포르투갈 출신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수려한 용모의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19), AS 로마 소속의 프란체스코 토티, 모나코에서 뛰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하비에르 사비올라, 그리고 아스날 최고의 프랑스 출신 선수 티에리 앙리 등이 후보감이다. 그러나 이들이 세계적 인기를 누리기엔 한가지 중요한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다.

영국 레스터대의 스포츠 경제학 강사이자 ‘축구의 미래’ 저자인 도미니크 맬컴은 “그들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영어 구사 능력은 이제 전세계 팬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데 필수적이다. 대중문화계의 세계적 스타들이 흔히 그렇듯 2의 베컴은 영국이나 미국에서 나와야 할지 모른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그런 선수들의 부족으로 유럽 주요 클럽의 대표와 후원사들은 특정 지역을 겨냥한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케팅의 금맥으로 여겨지는 아시아 지역은 경영이 악화된 유럽 구단들을 적자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도움을 줄지 모른다.

크리스털 팰리스 구단은 1998년 중국의 스타 선수 판즈이 및 순지하이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그 클럽이 내놓은 상품들이 중국 전역으로 퍼지면서 즉각 브랜드 인지 효과를 가져왔다. 토튼햄 구단도 지난해 일본 출신 스트라이커 도다 가주유키를 입단시키면서 비슷한 효과를 거뒀고, 나카타 히데토시를 끌어들인 파르마 구단도 마찬가지였다(나카타는 현재 피오렌티나 소속). 맬컴은 “이들 선수는 그들이 가진 상업적 가치 때문에 입단 계약이 체결됐다”며 “유럽 클럽들은 이를 통해 하나의 브랜드로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중국 선수 례톄가 소속된 에버턴 구단이 순지하이가 소속된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를 가질 때면 3억명의 중국인이 시청한다(루퍼트 머독의 B스카이B 방송사가 경기 중계에 나서도 영국인 시청자는 1백만명에 못미친다).
일부 비판자들은 구단측이 세계적 브랜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질’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에서 활동 중인 많은 아시아 선수들이 필드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도다는 불과 4게임을 뛰다 일본 클럽으로 복귀했다. 모하메드 빈 함맘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은 2004년 초 유럽 클럽들이 아시아 출신 선수들을 상업적 목적 하에 “노예”로 이용하고 있다며 이들을 실력만으로 선발할 것을 요구했다. 잉글랜드 구단의 한 전직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선수 선발은 순전히 실력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특정 선수가 마케팅 차원에서 도움이 되더라도 그것이 일종의 보너스여야지 선발 이유가 돼선 안 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스포츠 정신의 훼손을 초래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같은 원칙도 최근 위성 TV가 축구를 수십억달러짜리 비즈니스로 변질시키면서 거의 사라졌다. 이제 축구계는 선수의 실력보다 브랜드 가치를 중시한다. 축구계가 새로운 수익원을 필사적으로 찾아 나서게 되면서 기존 논리에 귀기울이는 클럽이나 후원사는 거의 없다. 일부 클럽과 후원사는 아직도 베컴 같은 선수가 나와주길 고대한다.

어쩌면 미국 DC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가나 태생의 축구 신동 프레디 아두(15)와 같은 미국 선수가 그 후보가 될지 모른다. 아두는 나이키·캠벨 등 수많은 후원사와 광고 계약을 맺었고, 그가 출장한 2004년 시즌 경기의 입장권 판매율은 평균치를 50% 웃돌았다. 맬컴은 “마침내 미국 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한다면 베컴에 필적할 만한 선수가 미국 팀에서 나올지 모른다”고 예상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절대 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마침내 베컴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 “‘이제 왕이 죽었다. 왕이여, 영원하라!’는 식이 될 것”이라는 게 영국 리즈대 경영대학원 스포츠 매니지먼트 대학원의 빌 제라드 교수의 말이다. 그 때가 되면 새로운 왕도 종전과는 전혀 다른 왕국을 맞게 될지 모른다.

With GINANNE BROWNELL in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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