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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운동가들 침묵시킨
原電 ‘부활의 노래’

반핵운동가들 침묵시킨
原電 ‘부활의 노래’

원자력이 돌아오고 있다. 반핵운동가들의 드센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원전업계는 원자력 발전소의 규제를 완화하고 더 나아가 세제 등까지 지원해달라는 로비를 벌여 왔다. 업계는 우선 2015년까지 5기의 원자로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 웨슬리안대학의 연극학과 교수 샌드라 린드버그와 남편인 밀리킨대학의 생물학과 교수 새뮤얼 갤루스키는 2003년 4월 어느 날 밤 베스퍼시안 워너 공공 도서관으로 들어섰다. 부부는 일리노이주 클린턴의 기존 핵 발전소에 신형 원자로 1기(基)를 증설 중인 전력회사 엑셀론(Exelon) 측과 논쟁을 벌일 참이었다.
린드버그가 이끄는 반핵단체 ‘노 뉴 뉴크스(No New Nukes)’는 분노한 대중이 원전 신설안을 무산시킨 다른 도시들처럼 클린턴에서도 엑셀론의 계획을 꺾을 것으로 기대했다.

30여 년 동안 지속돼 온 반핵운동이 그러지 않았던가. 미국의 경우 1979년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래 원자로 신설안은 한 번도 제기된 적이 없다. 네바다주 유카산(山)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나왔을 때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핵발전소에 대한 미 국민의 반감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적어도 린드버그는 그렇게 믿었다.

클린턴에서는 원자로 신설안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반반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차 회의가 열렸을 때 원자로 신설안은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환경이 아닌 경제 논리가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듯하다. 실업률이 8%에 이르는 디위트카운티에서 가장 많은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엑셀론은 원자로만 신설되면 건설 부문 일자리 3,200개, 원전 가동 일자리 600개가 새로 생기는 데다 카운티의 세수도 급증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갤루스키가 자리에서 일어나 원자로 신설 계획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히려 할 즈음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돼버렸다. 대부분의 주민이 회의실을 빠져나간 뒤였다. 갤루스키로서는 당혹스러웠겠지만 사실 예견된 결과였다. 미국 원전업계의 강력한 로비단체인 원자력협회(NEI)가 밀어주는 가운데 엑셀론은 회의 전 수주 동안 주민 리더와 만나 건강 ·안전 ·환경 등의 우려를 불식시켰기 때문이다.

원자력이 돌아왔다. 원전업계는 그동안 미 국민의 분노를 야기할 정면대결을 피해 왔다. 미국인들은 여전히 원자로의 안전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원전이 테러 표적으로 떠오를지 모른다며 겁먹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 지지 세력은 지난 5년 동안 소리 소문 없이 연방 ·시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고 제너럴 일렉트릭(GE)과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Westinghouse Electric ·현재 영국 핵연료공사가 보유)의 환심도 샀다.

오는 2015년까지 5기, 2020년까지 12기, 2050년까지 50기를 증설한다는 야심 찬 계획에 따른 것이다.
한때 미국의 원전 건설은 끝난 것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유가의 고공행진,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에 대한 우려, 그리고 중동 정세의 불안이 지속되면서 원자력은 미국에서 당당히 재기하고 있는 것이다.

“원자로 2050년까지 50기 증설하자”

베스퍼시안 워너 공공 도서관에서 마지막 회의가 열리기 6주 전 엑셀론의 마릴린 크레이(Marilyn Kray) 부사장이 주요 원자력발전회사와 원자로 제조업체 임원 11명을 워싱턴DC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레스토랑은 백악관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미국의 상용(商用) 원자로 103기 가운데 17기를 가동하고 있는 일리노이주 시카고 소재 엑셀론이 향후 원전산업에 대한 토의를 주도했다.

엑셀론은 최근 270억 달러를 들여 전기 가스 업체 PSE&G를 인수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PSE&G 인수에 성공할 경우 일리노이 ·펜싧니아 ·뉴저지주의 원자로 3기와 고객들을 더 확보하게 된다. 크레이의 옆에 자리한 댄 큐터(Dan Keuter)는 미국 제2의 원자력발전회사인 엔터지(Entergy)에서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크레이와 큐터가 23쪽의 보고서를 설명했다. 크레이는 업체들이 뭉쳐 원전 신설을 도와 원자력의 르네상스를 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들은 그 뒤에도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 회의실에서 두 차례 더 모임을 가졌다. 그 결과 발족한 것이 뉴스타트 에너지(NuStart Energy) 컨소시엄이다.

뉴스타트는 주민 3,050만 명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연간 매출이 970억 달러에 이르는 전력회사들과 GE ·웨스팅하우스 등으로 구성됐다. 목표는 올해 9월까지 원자로 건설 부지 5개 가운데 2개를 선정해 당국의 허가를 받는 것이다.
뉴스타트는 오는 2007년까지 GE가 새로 개발한 원자로를 승인받고 원자로 1기당 15억 달러를 조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럴 경우 이듬해인 2008년엔 원전 건설을 입찰에 부칠 수 있다. 일정대로라면 2010년 착공이 가능하다. 건설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2015년 신형 원자로가 가동될 것이다. 신형 원자로가 일단 가동되면 12기를 증설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원자력발전소 규제 완화 로비

15년 전만 해도 원자로 증설은 꿈도 꾸지 못했다. 스리마일섬 원전 참사와 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로 인한 충격이 일반인들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전의 경제성도 논란이 많았다. 50여 년 전 원자력은 ‘엄청나게 저렴한’ 에너지로 선전됐다. 그러나 싸기는커녕 석탄 ·천연가스 비용 부담이 훨씬 컸다. 대부분의 소규모 원자력발전회사는 낡은 원자로로 수익조차 낼 수 없었다.

종잡을 수 없고 굼뜨기로 유명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도 큰 문제였다. 97년 NRC의 ‘감시 대상 목록’에 14개 원전이 올라 있었다. NRC는 원전 유지 기록 양식이 잘못됐다며 안전과 아무 상관없는 자잘한 위반사항에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웨스팅하우스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역임한 하워드 브러시는 NRC가 남자 탈의실의 환기 팬 사양 자료까지 추가로 요청한 적도 있다고 들려줬다.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실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원자력 업계는 이젠 잃을 게 별로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원자력발전회사들은 피트 도메니치(Pete Domenici) 상원의원(공화 ·뉴멕시코)에게 항의했다. 98년 도메니치는 NRC의 셜리 잭슨 위원장에게 최후 통첩을 전달했다. NRC의 문제점을 고치지 않으면 연간 예산 중 5,000만 달러가 삭감될 것이라는 노골적인 으름장이었다. 렌슬러 공대(RPI) 총장으로 재직 중인 잭슨은 많은 원전을 폐쇄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도메니치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개혁안은 2년 전 이미 진행되던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안전에 역점을 둔 새로운 규정들이 자신의 ‘자식’이나 다름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누가 낳은 자식이든 아이는 훨씬 순해졌다. NRC는 지난 6년 사이 기존 원전 30곳의 전력생산 허가를 갱신했다. 지난해 9월 600메가와트(MW)급인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한 웨스팅하우스의 신형 원자로 AP1000도 신청 30개월 만에 승인했다. 과거 같았으면 7년이 걸렸을 것이다.
규제 완화로 실적이 부진한 원전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에 청신호가 켜졌다. 99년 7월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소재 엔터지(Entergy)의 도널드 힌츠(Donald Hintz) 사장은 8,100만 달러에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필그림(Philgrim) 원자로를 인수했다.

엔터지는 필그림 원자로 인수로 670MW급 발전소, 6,700만 달러 상당의 우라늄 연료, 폐로(廢爐) 기금 4억7,100만 달러, 킬로와트시(kWh)당 4센트씩 5년 동안 전력을 공급하는 계약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미국 사상 최초의 원자로 공개매각이었다. 엑셀론의 전신 페코(Peco)에서 CEO였던 코빈 맥닐(Corbin McNeil)은 99년 12월 영국 협력업체와 손잡고 1억 달러에 스리마일 아일랜드 유닛1(TMI Unit 1)을 인수했다. TMI 유닛1은 운전이 중지된 악명 높은 TMI 유닛2의 자매업체지만 재무상태가 건전했다. 페코는 발전소를 2,300만 달러, 기존 연료를 7,700만 달러로 평가했다. 이 거래를 계기로 업계에 합병 열풍이 불었다. 현재 미국의 원자력발전회사 수는 90년의 절반 수준인 27개다.

원전 가동률 ·안정성 향상

전력회사들이 대규모 원전을 합병하면서 원자로 제작업체와의 관계가 긴밀해졌다. 효과는 기존 원전의 효율성과 안전 개선, 차세대 원자로 개발을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 제공 등 두 가지로 나타났다.
웨스팅하우스와 GE가 대형 전력업체들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뜻밖의 이득을 거둔 것은 물론이다. 원전 유지 ·보수,인력 훈련, 설계 ·공정 변경을 담당하는 웨스팅하우스와 GE 원자력 사업부의 연간 매출은 각각 20억·10달러다. 두 업체는 원전 신설과 관련해 미국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동안 한국·핀란드 ·아프리카공화국 등지에서 경쟁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원자로의 효율성도 크게 개선됐다. 필그림 원전은 엔터지로 넘어갈 당시 적자를 내고 있었고 가동률도 70%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1~2003년 가동률은 91%로 올라섰다. 미국 전역의 다른 원전들도 마찬가지였다. 규제 완화와 운영 개선, 모니터링 소프트웨어 변경을 통해 원전의 전력 생산량이 70년대에 비해 4% 증가했다.
효율성이 높아지자 실수는 줄었다.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원전에 ‘절대 안전’이란 없다.

하지만 원자력 업계는 미국의 원전 103기가 사고나 테러로부터 어느 때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엔지니어들이 고안한 많은 센서 가운데 하나라도 좀더 일찍 선보였다면 스리마일섬이나 체르노빌의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엔터지의 리버 벤드(River Bend) 원전엔 컴퓨터화한 터빈 제어 시스템이 설치될 예정이다. GE가 구닥다리 아날로그 기술을 대체하기 위해 제작한 300만 달러 상당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훨씬 빠르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전력회사가 발 빠르게 대처하고 인재(人災)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웨스팅하우스는 원자로의 증기 발생기로 기어 들어가 방사선 누출 여부를 확인하는 로봇 거미도 제작했다.

원자력 업계는 다음 세대가 지금보다 훨씬 안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타트가 처음 선보일 신형 원자로에는 웨스팅하우스와 GE에서 지난 30년 동안 고안한 모든 개선점이 반영될 예정이다. 신형 원자로는 기존 제품보다 작고 단순하며 저렴하다. 원자로 냉각에 전기 대신 중력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아직 설계 단계에 있는 제품 중에는 웨스팅하우스의 모듈형 흑연 감속 헬륨 냉각 원자로(PBMR)도 있다.

PBMR의 우라늄 연료는 테니스공 크기의 흑연 피복구에 들어 있다. 흑연은 제어봉처럼 핵분열 반응을 조절한다. 그러나 섭씨 1,540도의 열에도 견딜 수 있어 노심 용해는 거의 불가능하다.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비상장 기업 제너럴 어토믹스(General Atomics)가 개발한 원자로는 냉각재로 물 대신 헬륨을 사용하고 테러 공격을 피해 지하에 건설된다.

"원자로 건설지원·세제혜택" 요구

1기당 14억~16억 달러인 차세대 원자로의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뉴스타트는 민관 공동 출자를 구상하고 있다. 135년 전 철도회사 센트럴 퍼시픽(Central Pacific)과 유니언 퍼시픽(Union Pacific)이 미 대륙 횡단 철로를 가설하기 위해 활용한 방법이다. 다시 말해 회사채 발행을 돕기 위해 정부가 보증을 서는 것이다.
원자력 업계는 정계에 든든한 후원세력을 두고 있다. 지난해 전력업체들은 4,260만 달러를 갹출해 로비활동과 정치 후원금으로 썼다. 그 가운데 75%가 공화당 의원들에게 건네졌다.

부시 정부는 원자력에 대해 호의적이다. 2002년 미 에너지부는 ‘뉴클리어 파워 2010(Nuclear Power 2010)’을 발족했다. 2010년까지 새로운 원자로 한 기를 건설하는 게 목표다. 뉴클리어 파워 2010은 단순한 여론 탐색용이 아니다. 세금으로 공사비 지원 기금을 조성한다는 계획도 들어 있다. 원전업계는 연방 당국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이나 대출보증 및 정부의 전력구매를 요구하고 있다.

해가 바뀌어도 악명 높은 에너지 법안은 미 의회에서 여전히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전력회사들은 연방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꼬박꼬박 받았다. 의회는 알래스카 국립 야생생물 보호구역(ANWR)의 석유 시추에 온갖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 부지 선정, 원전 가동 인가에 필요한 예산을 여기에 3,500만 달러, 저기에 2,900만 달러 식으로 책정해 왔다. 곧 최종 에너지 법안이 등장하면 연료 재활용 방법을 둘러싼 깊이 있는 연구가 시작되고 원자로 건설비로 18억 달러가 책정될 전망이다.

에너지 법안은 뉴스타트가 무엇보다 절실히 원하는 것을 아직 내주지 않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신형 원자로 건설에 대한 정부의 보증이 그것이다. 정부의 지원만 있으면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정부의 보증이 있을 경우 채권 등급은 다른 채권보다 약간 높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원전업계가 원하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두 항목의 대폭적인 세제 지원도 희망하고 있다. 하나는 원전 신설비의 20%를 공제해 달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새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력 kWh당 세금 1.8센트를 깎아달라는 것이다. 2003년 의회가 풍력 발전 터빈 제조업체들에 부여한 것과 같은 지원을 원하는 셈이다.

세금 삭감 요구가 몇몇 의원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특히 민주당의 상원 원내총무 해리 레이드(Harry Reid ·네바다)가 몹시 분개했다. 세금 삭감안을 1,000MW급 원전에 적용할 경우 연간 감면액만 1억5,000만 달러이기 때문이다. 이는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에서 반핵 입법을 책임지고 있는 미첼 보이드가 보기에도 엄청난 특혜다. 퍼블릭 시티즌은 랠프 네이더(Ralf Nader)가 설립한 시민운동 단체이다.
보이드는 “원자력발전회사들이 원자력의 경쟁력 제고라는 명목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조금을 챙기려 든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엔터지의 원자력 발전 책임자 개리 테일러(Gary Taylor)는 “미국이 수입 석유의 중독에서 벗어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경제까지 보호할 수 있는 대가 치고는 그리 많지 않다”고 반박했다.



오랜 맞수
1880년대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과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는 직류 ·교류 송전 방식을 둘러싸고 ‘전류전쟁’을 치렀다. GE와 웨스팅하우스가 자체 개발한 신형 원자로를 놓고 세계 전역에서 경합을 벌이는 지금 이들의 싸움은 옛날처럼 꼴사납지는 않지만 여전히 치열하다. 두 업체가 노리는 것은 민영 ·공영 원자로 120기의 수주 및 서비스 계약이다. 향후 20년에 걸쳐 진행될 2,000억 달러 상당의 사업이다.

현재 웨스팅하우스가 약간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하다. 1999년 웨스팅하우스의 CBS가 비아콤(Viacom)과 합병한 뒤 방치되다시피한 웨스팅하우스 원자력 사업부는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외곽에 버려진 탄광이나 제강공장 같은 운명을 맞을 것 같았다. 웨스팅하우스의 CEO 스티븐 트리치(Stephen Tritch)는 “원자력 사업이 전면 중단되는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원자력발전회사들이 기존의 낡은 원자로를 인수하면서 웨스팅하우스는 인력 훈련, 연료 재보급, 원자로 유지 ·보수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앤드루 화이트(Andrew White)가 이끄는 GE 에너지의 원자력 사업부는 웨스팅하우스와 비교해 몸집은 절반에 불과하지만 활기를 띠고 있다. 화이트는 앞으로 3년 동안 연간 매출 증가율이 두 자리에 이를 것이라는 생각이다. GE 에너지의 원자력 사업부는 여전히 규모가 작지만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매출 180억 달러 규모의 GE 에너지는 최근 터빈 매출 급감으로 휘청거리기도 했다. 화이트는 ‘원자력의 르네상스’를 예견하고 있다.

경쟁은 후끈 달아오를 것이다. 맞수 웨스팅하우스와 GE의 원자로 수주경쟁이 치열하다. 지난해 가을 NRC는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을 승인했다. GE의 ESBWR는 2년 안에 승인받을 듯싶다. AP1000의 경우 물은 노심에 의해 가열되지만 고압에서 액체상태를 유지하다 증기발생기로 전해져 기화한다. 터빈을 돌리는 증기가 방사능에 노출되는 일은 결코 없다. 세계 전역의 원자로 중 60%가 이런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ESBWR의 열용량은 AP1000보다 40% 높지만 물이 노심에서 직접 가열된다. 그 결과 증기가 터빈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킨다.

다른 차이들은 미묘하다. 두 설계방식에서 모두 사라진 것이 수km의 많은 파이프, 펌프, 밸브, 고가의 몇몇 예비 증기발생기, 수만 평의 내진(耐震) 구조다. 이들 신형 원자로는 과열된 노심에 중력으로 수만 ℓ의 물을 채운다. 물은 기화?응축을 거치며 시스템 내에서 계속 순환한다. 신형 원자로들은 기존 모델보다 안전하고 작으며 가격은 15억 달러 정도다. 프랑스의 아레바(Areva)도 AP1000과 비슷한 가압수형 원자로를 제작하고 있다.

GE는 판매와 관련해 막강한 브랜드 인지도를 활용할 수 있는 데다 이전 모델, 다시 말해 97년 NRC로부터 승인받은 ABWR가 일본에서 이미 가동 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등수형(沸騰水型) 원자로 판매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세계의 원전 439곳 가운데 92곳이 비등수형을 사용한다. 가압수형의 경우 263곳이다. 나머지 84곳은 가스냉각형 ·중수형 ·경수형 등이다.

GE가 가장 고전하고 있는 곳이 중국이다. 중국은 석탄 때문에 고질적인 환경문제를 안고 있다. 중국은 향후 20여 년에 걸쳐 원자로 30기를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모두 AP1000과 같은 가압수형이다. 공급은 한 업체가 맡는다. 중국에는 이미 15기의 가압수형이 있다. 중국이 바라는 것은 이른바 ‘규모의 경제’다.
GE가 중국에서 밀린 것은 그 때문이다. 웨스팅하우스와 아레바가 수주를 둘러싸고 경쟁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리처드 닉슨 정부 당시 중국에 진출해 원자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해 오고 있다.

트리치 등 웨스팅하우스 임원진은 중국에 자주 건너가 6명이 근무하는 현지 지사를 감독한다. 웨스팅하우스는 에너지부 장관이었던 스펜서 에이브러햄의 지원 사격을 받았을지 모른다. 에이브러햄은 지난해 중국에 미국산 원자로 구매를 촉구한 바 있다. 입찰은 올해 봄 진행될 예정이며 1년 안에 낙찰업체가 발표될 것이다.
웨스팅하우스가 중국에 주력하는 사이 GE는 다른 지역에서 프로젝트를 따내고 있다. GE는 대만에서 비등수형 2기를 건설하고 있다. 일본도 GE에게 일을 더 맡길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ESBWR는 AP1000보다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미국 업체들로서는 이래저래 유리한 상황이다.


폐기물 처리가 마지막 난제

원자력 업계 스스로 풀 수 없는 난제는 핵폐기물 처리이다. 미국의 상용 원자로에서 지금까지 인출된 유독성 폐기물은 5만t에 달한다. 대개 사용 후 핵연료봉이다. 사용 전 핵연료는 비교적 해가 없는 농축 우라늄 235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핵분열을 일으키면 소량의 우라늄이 플루토늄 등 고준위 방사성 동위원소로 변한다. 사용 후 핵연료가 있는 공간에 들어서면 방사능 노출로 몇 분 안에 사망하고 만다. 사용 후 핵연료를 저장할 공간이 바닥나고 있다. 사용 후 핵연료를 영구 폐기해야 할 에너지부로서는 폐기물 처분장이 없어 난감한 실정이다. 네바다주 유카산에 폐기장을 건설하는 계획은 부지 조사와 설계에 70억 달러를 들이고 26년이라는 세월을 투입했으나 아직도 온갖 소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145km 떨어진 곳에 유독성 폐기물을 쌓아둘 수 없다고 버티는 네바다주 주민들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레이드는 폐기장 신설안을 저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백악관과 정치적 흥정을 벌여 유카산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과학자가 NRC 위원으로 선정되는 데 한몫했다. 대신 부시가 임명한 100명을 판사 등 공직자로 인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상곀?양원의 다수당은 공화당이다. 유카산 프로젝트의 최종 승인이 2008년 이전 이뤄져 이르면 2012년 개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방 당국이 네바다 주민들을 달래는 데 수십억 달러가 필요할지 모른다.

유카산 프로젝트의 진행이 부진한 지금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공간만 있다면 사용 후 핵연료를 원자로 건물 안의 냉각 수조에서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리버 벤드 원전은 원자로 건물 밖 콘크리트 패드 위의 차폐용기에 눈을 돌리고 있다. 두께가 1.8m나 되는 방사능 차단 물질로 감싼 50t의 차폐용기는 매우 단단해 테러리스트들이 거의 침투할 수 없다. 제트기가 정면으로 충돌해도 폐기물이 누출될 가능성은 없다. 달걀로 바위를 깨는 것만큼이나 가능성이 희박하다. 테러리스트들은 걸어서 무장 경비원을 거쳐 철조망을 지나 특수 제작한 기중기를 탈취한 뒤 10t이나 나가는 뚜껑을 들어올려야 한다. 더욱이 방사능 노출로 두꺼운 방호복도 입어야 한다.

신형 원자로가 방사성 폐기물을 크게 줄인다지만 인출량은 여전히 많을 것이다. 매사추세츠주 셸번폴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반핵 시민단체 시티즌스 어웨어니스 네트워크(CAN)의 데보라 캐츠 사무총장은 “유독성 폐기물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원자력발전회사들은 핵을 청정 기술이라고 떠벌린다”고 꼬집었다. CAN은 몇 년 전 매사추세츠주와 코네티컷주에서 원자로 3기를 폐쇄하는 데 한몫했다.
반핵운동가들은 잠에서 막 깨어나기 시작했다. 퍼블릭 시티즌의 에너지 담당 간사 브렌던 호프먼은 “일이 빨리 진행돼 진상도 알려지기 전에 많은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전했다.

반핵운동의 취지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대량 e메일을 발송하고 언론사에 서한을 보내며 회의를 열어봐야 별 효과가 없다. 특히 일리노이주 클린턴과 버지니아주 루이자카운티 같은 곳은 일자리가 핵폐기물 우려보다 중시되는 마당에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루이자카운티는 도미니언 리소시스(Dominion Resources)가 이끄는 소규모 컨소시엄이 원자로 신설 부지로 점 찍은 곳이다.
워싱턴에서 대중집회가 열릴지도 모른다. 성난 군중이 뜻을 관철하지 못할 경우 항상 써먹는 표현방법이 있다. 바로 소송이다. 퍼블릭 시티즌은 다른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NRC 행정법원에 소송 세 건을 제기했다.

조기에 부지를 허가하는 것(ESP)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ESP란 신규 원전 건설이나 미래의 용지에 대한 예비 승인을 말한다. 원고 측은 원전 신설안이 줄무늬농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데다 재생가능한 에너지원 사용을 신중히 생각지 않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미시시피주에서 제기된 소송은 기각됐다. 일리노이주와 버지니아주에서는 현재 계류 중이다. 반핵운동가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전과 달리 그리 크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원전은 테러로부터 안전하다”
9 ·11테러 이래 원전의 보안을 개선하는 데 10억 달러가 들었다. 8,000명의 무장 경비 요원을 확충하는 데 사용됐다. 루이지애나주 세인트프랜시스빌에 있는 엔터지의 리버 벤드 원전은 과거 방문객이 원자로에서 60m 떨어진 사무실 건물까지 차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장 보안요원들이 원전에서 800m 떨어진 지점부터 차를 세워 검문하고 휴대용 센서로 폭발물 소지 여부도 점검한다.

자동차가 원전 구내로 일단 진입하면 우회로를 따라가야 한다. 우회로에는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강철 차단판들이 설치돼 있다. 감시탑에도 많은 무장 요원이 배치돼 있다. 엔터지는 최근 원자로 건물 안에 감시 카메라 수십 대를 증설하고 방탄 유리와 폭발 방호벽도 설치했다. 이것으로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시나리오별 테러 가능성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1. 원자로로 난입해 폭탄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탈취하려 든다.
원자로 5기를 가동 중인 컨스털레이션 에너지(Constellation Energy) 산하 발전 사업부의 마이클 월래스(Michael Wallace) 사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능성은 거의 없다. 테러리스트들이 총격전을 벌이며 증강된 무장 병력, 강철 차단판, 원전 주변의 감시탑까지 뚫었다 치자. 사용 후 핵연료가 저장돼 있는 수조까지 가려면 리모컨으로 개폐되는 방폭문을 여러 차례 지나 원자로 건물 안에 진입해야 한다. 게다가 방폭문을 열려면 열쇠 카드가 필요하고 장문(掌紋)까지 찍어야 한다.

고준위 사용 후 핵연료는 수심 12m에서 냉각 중인 전장 4.3m의 스테인리스강 용기 안에 저장돼 있다. 테러리스트들은 핵연료를 손에 쥐어보지도 못할 것이다. 차폐되지 않은 상태에서 핵연료는 1분도 안 돼 치명적인 양의 방사능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테러리스트들은 방사능 노출을 피하기 위해 원전 직원들을 윽박지를지 모른다. 원자로의 대형 기중기로 수조 속 용기를 운반용 대형 차폐용기에 옮겨 넣으라고 위협하는 것이다. 이어 원자로 건물의 초대형 문을 연다. 그리고 다른 기중기로 차폐용기를 들어올려 대기 중인 트럭에 싣는다. 그러나 그 사이 주방위군에 의해 사살될 것이다.

2. 원자로의 과열 용해를 노려 비행기를 원자로에 충돌시킨다.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테러리스트들이 공항의 보안검색을 일단 통과했다고 치자. 승객과 몸싸움까지 벌이며 보안이 한층 강화된 신형 조종실 문을 열고 비행기 장악에 성공한다. 테러리스트들은 어떻게든 비행기를 원자로에 직접 충돌시켜야 한다. 2002년 미국 전력연구소(EPRI)는 이런 위험을 평가해보기 위해 100만 달러를 들여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그 결과 무게 200t의 보잉 767기가 시속 560km로 저공 비행해 원자로에 직접 충돌해도 원자로 차폐 콘크리트는 부술 수 없었다. 원자로는 국방부 청사나 세계무역센터보다 측면이 작아 비행기가 부딪히는 충격을 덜 흡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루미늄 ·니타늄으로 제작된 비행기는 아무리 가속도가 붙어도 원자로를 둘러싼 두께 6m의 철강 ·납으로 벽보다 중량이 훨씬 적다. 30m 높이에서 소화전에 수박을 떨어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3. 처리장으로 향하는 핵폐기물 운송 열차나 트럭을 공격한다.
역시 성공하기 어렵다. 71년에 핵폐기물을 싣고 가던 트럭이 간선도로에서 미끄러지며 이탈하는 사고가 있었지만 안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사용 후 핵연료봉 19t을 운송하는 열차에는 철강 ·납으로 제작한 100t의 차폐물이 마련돼 있다. 5t짜리 ‘완충장치’가 충격을 흡수한다. 핵연료봉이 든 차폐용기는 시속 130km로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도, 질주하는 100t짜리 기관차와 충돌해도, 섭씨 760도의 불길 한가운데 놓여도 끄떡없다. 탱크 차체를 뚫는다는 대전차 미사일에 정통으로 맞으면 포도알만한 구멍이 생기면서 소량의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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