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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정책 달라졌나…] “어, 외환당국이 느긋하네…”

[환율정책 달라졌나…] “어, 외환당국이 느긋하네…”

외환시장의 수급구조가 단기적으로 환율상승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은행 직원이 달러 묶음을 옮기고 있는 장면.
한국은행의 수장으로 환율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박승 총재.
지난 4월 말 원-달러 환율이 한때 세 자릿수에 진입했지만 외환 당국은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3월 초 원-달러 환율이 989원까지 하락하자 부랴부랴 시장개입에 나서 환율을 1000원 선까지 끌어올렸던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지난 3월 외환보유액이 32억9000만 달러 증가한 사실로 미뤄 외환 당국이 당시 환율을 네 자릿수로 끌어올리기 위해 2조∼3조원의 ‘실탄’을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4월 말에는 환율이 또다시 1000원 밑으로 내려섰어도 시장개입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외환 당국의 태도가 이처럼 느긋해진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서울환시(換市)의 주변여건이 당국에 호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환율 1000원 선이 무너졌지만 급락 조짐은커녕 자율적인 방어막이 구축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우선 수출업체들의 일방적인 달러 매도물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 주요 달러 매도세력인 중공업체들은 지난해 말부터 3월까지 집중적으로 달러를 팔아 위험관리에 나섰다. 그래서 4월 들어서는 팔아야 할 달러 매물이 줄었고 달러 매도에 소극적이 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주요 조선업체들과 거래하는 외국계 은행의 한 딜러는 “중공업체의 달러 매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이는 중공업체들이 급하게 팔아야 할 달러 물량을 대거 처리해 놓아서 앞으로는 매도 여력이 크지 않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의 환율 하락 전망에 대한 시각 변화도 시장수급에 영향을 주고 있다. 중소 수출기업들은 주로 수출보험공사의 환변동 보험을 통해 달러 매도 헤지에 나선다. 따라서 수출보험공사는 중소업체들의 달러 매물을 모아 주로 시장에 내다파는 쪽이다. 하지만 4월 25일 서울환시에서는 수출보험공사가 거꾸로 약 2억 달러의 달러를 사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보험공사의 한 관계자는 “1000원선 부근을 바닥이라고 보는 중소기업들이 늘면서 아직 만기가 남은 수출보험을 중도 해지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이번 주 초에는 이례적으로 달러를 사들였다”고 말했다.

美 금리인상으로 달러 유입 줄어 둘째는 고유가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국내 경기회복 조짐에 따른 수입 증가로 달러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외환 당국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들어 수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무역흑자 규모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 증가세는 지속되고 있지만 이미 속도 면에서 수입 증가세에 따라잡힌 지 오래다. 올해 상품수지 흑자는 1월 31억2000만 달러에 달했지만 2월에는 21억6000만 달러, 3월에는 15억7000만 달러로 줄어드는 추세다. 게다가 외환 당국이 해외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연내에 내놓겠다고 발표한 것도 심리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영균 한국은행 국제담당 부총재보는 지난달 27일 부산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강연에서 “내외금리차 역전에 따른 자본유출 확대 등으로 (달러)공급우위 기조가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외환당국도 달러를 해외로 내보내는 조치를 늦어도 연내에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외적으로 글로벌 달러 가치가 일방적인 약세 흐름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된다. 달러에 대한 엔화 값은 연초 101엔대에서 4월 초에는 109엔까지 상승한 후 4월 말에는 105∼107엔 수준에서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미국 경제가 유럽이나 일본 경제에 비해 ‘그래도 낫다’는 평가를 반영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유럽의 경제성장률이 1.5%를 겨우 넘어설 것으로 하향조정한 반면 올 미국 경제는 지난해 9월에 내놓은 전망치 3.5%를 3.6%로 상향조정했다. 미국은 지난해 6월 이후 일곱 차례 금리인상을 통해 정책금리 수준을 2.75%로 올려놓았다. 반면 유럽중앙은행 및 일본은행은 각각 2.0%와 0.0%로 낮다. 또 우리나라의 콜금리 3.25%와 격차가 0.50%p로 좁혀졌다.
中 위안화 평가절상 ‘복병’ 주변 여건이 환율 상승의 가능성을 높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변수는 남아 있다. 우선 갑자기 위안화 평가절상이 단행될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달러 가치의 상승을 막는다. 평가절상 시기와 폭에 관한 계획이 사전에 새나가면 중국 당국은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미칠 파장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사전고지’없이 절상이 단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오는 5월 초 노동절로 중국이 장기 연휴에 들어가는 시점에 위안화가 전격적으로 평가절상될 것이라는 기대가 국제금융시장에 팽배해 있다. 또 무역흑자 규모는 감소세지만 최근 대규모 LNG선 수주 등 조선업체와 다른 국내 기업들의 수출 호조세가 지속되고 있어 무역흑자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정미영 삼성선물 과장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 일류로 한 단계 ‘레벨 업’했다”며 “그러지 않고서는 고유가와 치열한 세계경쟁 속에서 이 같은 수출 호조세가 이어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당국에서 추진하는 ‘해외투자 활성화’도 단기간 내 실현되기 어려운 성격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해외 자산운용 노하우가 미흡한 데다 환 리스크 헤지에 따른 비용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투자가들에게 ‘건실하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최근 미 경제 지표가 좋지 않게 나오면서 ‘소프트 패치(경기회복 국면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경기침체)’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는 미국의 정책금리는 상승했으나 미국채의 장기금리가 하락한 것을 통해 확인된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전인 지난해 5월 1%였던 연방기금금리는 올 4월까지 2.75%로 상승한 반면 10년 만기 미국채 금리는 4.62%에서 4.27%로 오히려 하락했다. 최근 한국은행은 외환시장의 환율 결정 주요요인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면서 “환율이 일방적으로 하락할 것으로만 예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공식 의견을 내놓았다. 따라서 기업들이 일방적 환율하락 기대에 기초해 선물환 매도를 확대하고 결제수요 달러 매입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은 정상적인 환위험 관리라기보다는 투기에 가까운 행위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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