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열고, 한국은 막고…가상자산 거래소 격차 커진다
[가상자산 거래소 규제 점검]②
파생·외화거래·대차거래 허용하는 해외
국내는 현물거래에 갇힌 채 규제중… ‘사실상 금지’

[이코노미스트 정동진 기자]해외 주요국들이 가상자산 거래소를 제도권으로 편입하며 다양한 금융 서비스 확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부터 ▲외화 기반 거래 ▲투자자 간 대차거래 ▲유동성 공급(LP)까지 폭넓은 서비스가 규제 틀 안에서운영되면서 산업 성장을 이끄는 모습이다.
반면 국내 거래소는 여전히 원화(KRW) 중심의 현물 거래에머물고 있음은 물론, 외국인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파생상품 등 신규 금융 서비스 도입도 금융당국의 규제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최근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의 흐름은 투자자 보호와 서비스확장을 균형 있게 추진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각국은 거래소인허가제 도입과 함께, 일정 기준을 충족한 거래소에는 파생상품 거래나 외화 기반 서비스 등 고도화된 금융 서비스를 허용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자산 시장을 전통 금융 시스템과 통합해 투자자의 선택 폭을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가상자산 산업 포문 연 미국·홍콩
미국은 일찍이 거래소가 제공할 수 있는 사업 범위를 넓혀왔다. 뉴욕주는 이미 2015년부터 가상자산 사업을 허가하는 ‘비트라이선스’(BitLicense)를 도입했다. 이후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상품’으로 정의해 시카고상품거래소(CME) 등에서 합법적인 선물·옵션 거래를 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홍콩 역시 가상자산과 관련해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홍콩은 지난해 4월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했다. 또 홍콩 금융당국(SFC)은 2023년 6월부터 시행된 가상자산 거래소 라이선스(VASP)를 갖고 있는 거래소는 파생상품 같은 새로운 금융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었다.
싱가포르도 2020년부터 결제서비스법(PSA)을 시행하며 거래소들이 디지털 결제토큰 거래 및 기관 투자자 대상 커스터디 서비스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2022년 도입된 금융시장서비스법(FSMA)을 통해 스테이블 코인 등 연계 금융 서비스 확대를 위한 명확한 제도적 환경도 추가로 마련했다.
이러한 개방적 환경 속에서 글로벌 거래소들은 적극적인 사업 확장에 성공했다. 바이낸스(Binance)는 유로(EUR)·엔화(JPY)·파운드(GBP) 등 다양한 국가의 화폐(Fiat) 거래를 지원하며 글로벌 고객들을 끌어모은 결과, 일일 거래량 기준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는 거래소로 성장했다. 이 밖에도 기반 거래를활발히 지원하며 ▲사용자 간 대차거래(P2P Lending) ▲스테이킹 ▲예치 보상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미국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Coinbase)는 제도권 금융기관과의 협력에 중점을 두고 신뢰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기관 투자자를 위한 커스터디 서비스와 파생상품 거래소를 운영하는 한편,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 및 CFTC 등 주요 규제기관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서비스를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접근 방식은 미국 내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 자금을 유치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현물 거래 중심 고착화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한편 국내 거래소는 여전히 원화 중심의 현물 거래에 머무르고 있다. 파생상품이나 외화 거래, 대차거래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가 법적 근거 미비와 금융당국의 불허 방침으로 도입이 사실상 막혀 있는 까닭이다. 이 밖에 외국인의 실명계좌 개설도 제한돼 있어 해외 투자자의 국내 시장 접근 역시 어렵다. 일부 거래소들이 해외에 별도 법인을 세워 외화 기반 서비스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는 국내 본사와 분리된 운영이라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한다.
최근 일부 거래소는 대체불가토큰(NFT) 마켓플레이스나 스테이킹, 예치 보상 등 제한적인 신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가상자산의 금융상품 지위가 법적으로 불명확한 현재 상황에서 본격적인 서비스 확대는 쉽지 않다. 특히 파생상품과 대차거래 등 핵심 서비스는 관련 법령이 마련되지 않아 도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로 인해 거래소의 수익 다변화가 가로막히고, 투자자들 역시 시장 변동성에 대응할 마땅한 수단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국내 거래소 관계자는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지 않는 한 국내 거래소들은 제한적인 현물 거래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며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당국의 현재 방식보다는 규제하는 것 이외에는 자유롭게 풀어주는 미국식 규제 방식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서비스 구조가 고착된 국내 시장에서는 유동성 확보 수단도 제한적이다. 특히 글로벌 거래소들이 거래 체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활용하는 전문 유동성 공급자(LP) 제도조차 국내에는 도입돼 있지 않다. LP는 거래소에 유동성을 공급해 거래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돕는 핵심 장치로, 매수·매도 호가를 꾸준히 제시해 투자자가 원하는 시점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거래를 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관련 제도적 기반이 전무한 상황이다.
특히 거래량이 적은 중소 거래소들은 이 같은 환경에서 거래량과 호가 부족으로 인해 투자자 유입이 어렵고, 이로 인한 체결 지연과 이탈이 반복되는 악순환에 놓여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구조 때문에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판도가 고착화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바이낸스·OKX·바이비트 등 주요 글로벌 거래소들은 LP 제도를 적극 도입해 높은 거래 효율성과 시장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이에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결국 현물 거래를 넘어선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위해 가상자산의 금융상품 여부에 대한 명확한 판단과 새로운 서비스 도입을 뒷받침할 제도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거래 수수료 기반 사업만 허용되는 국내에서는 거래소별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출 수 없음은 물론, 글로벌 거래소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금융당국이 서비스 다양화와 투자자 보호를 균형 있게 고려한 제도를 만들어야 국내 거래소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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