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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좋은 음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건강에 좋은 음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Diet And Genes

호세 오르도바스는 의학의 미래를 살짝 엿보았다. 몸에 좋다는 석류주스 작은 병 하나에 4달러나 지불하고 속 쓰려 하는 사람들을 위한 희소식도 있다. 매사추세츠주 터프츠대의 영양· 유전체학 연구소장인 오르도바스는 만인을 위한 건강 식생활 정보(때로는 유행이라고도 불림)의 시대는 이제 곧 끝날 것이라고 믿는다.

적포도주가 밀크셰이크보다 혈관 동맥에 유익하다고 해도 누구에게나 좋은 것은 아니라고 오르도바스는 말한다. 달리 말해 프랑스인도 때로는 심장 발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안에 의사들은 환자의 유전자 프로필 분석을 통해 발병 가능성이 큰 특정 질병을 확인한 후 그에 따라 맞춤 영양식단을 짤 수 있게 될 것이다. 브로콜리를 먹어야 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브로콜리를 더 많이 먹어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영양학자나 돼야 그 방식의 이점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양 유전체학은 5년 전에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던 분야다. 이 학문이 추구하는 것은 한 세기 넘게 축적된 식생활 건강상식을 뒤엎자는 것이 아니다. 영양소와 유전자의 상호 작용으로 건강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가장 기초적인 차원에서 이해하자는 것이다. 과거의 패러다임은 일방적인 과정이었다. ‘나쁜’ 음식이 체내에 흡수됐을 때 ‘좋은’ 유전자가 개입해 방어하지 않는 한 심장병이나 암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를 통해 지속적인 상호 작용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음식은 몸을 보호하는(또는 해로운) 유전자의 활동을 강화하는 반면 또 다른 음식은 그것을 억제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직접 목격하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어떤 사람들은 출근길에 도넛의 유혹에 거의 매일 넘어가면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다. 고지방 또는 저지방 음식·와인·소금, 심지어 운동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제각기 반응이 다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건강한 식생활 지침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것으로 기대하는 과학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니 야채 찜기를 잘 보관하는 게 좋을 것이다.

영양 유전체학은 약품과 유전자의 상호 작용에 관해 이미 실시된 연구를 모델로 삼고 있다. 과학자들은 똑같은 약이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목숨을 살리고, 어떤 사람은 상태를 치명적으로 악화시키는 반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프로작·팍실·졸로프트 등 SSRI로 알려진 항우울제에 환자들 셋 중 하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SSRI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신경말단에 ‘재흡수’(reuptake)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그것이 두뇌로부터 고갈되지 않도록 해준다. 그 약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세로토닌이 생산돼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로토닌의 생산을 80%나 감소시키는 변이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지난해 말 듀크대 연구팀에 의해 발견됐다. 그런 사람들은 우울증에 잘 걸리고 SSRI 치료의 효과도 없다.

그러나 식품의 상호 작용은 일반적으로 훨씬 더 복잡하다. “약은 보통 한 번에 한 종을, 한정된 시간 동안 복용한다. 따라서 특정한 유전적 변이를 갖고 있다면 특정한 약의 복용을 피하거나 복용량을 조절하면 된다.” 미 질병관리예방센터의 유전체학·질병예방국장인 무인 코리 박사의 말이다. 그러나 영양소는 한꺼번에 많은 양을 평생 동안 소비하게 되며 처방전 없이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신진대사에는 수많은 유전자가 무수히 많은 방법으로 상호 작용한다. 2종 당뇨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 변이는 최소한 150종이 넘는다. 비만과 관련된 것은 300종 이상이다. 터프츠대의 오르도바스는 그런 상황을 배전반에 비유한다. “특정 스위치의 존재와 그것들을 켜고 끄는 법을 안다 해도 스위치를 켰을 때 불이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회로의 상류나 하류에 우리가 아직 모르는 다른 스위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제대로 된 회로도를 완성하려면 여러 해가 걸릴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골다공증·강박장애 등 온갖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맞춤 영양보조제 산업이 싹텄다. 심지어 유전자 프로필 분석을 통해 체질에 적합한 화장품 선택을 돕는 회사도 있다.

그 회로도의 각 부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녹차에는 심장병과 특정한 암의 예방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강력한 항산화제가 들어 있다. 그러나 녹차를 마신다 해서 모든 여성의 유방암이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다. 그 한 가지 원인은 COMT라는 효소 생산 유전자에 있는 것으로 남캘리포니아대의 연구 결과 나타났다. COMT는 암 억제 화합물을 무력화하는 물질이다. 활동력이 떨어지는 COMT를 생산하는 유전자 변이를 가진 여성들이 녹차를 마셨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1단계와 2단계로 알려진 두 종의 효소를 중심으로 상호 작용에 관한 세밀한 연구가 있었다. 두 효소는 순차적으로 작용해 체내로부터 이종원자고리 아민과 같은 특정 독소를 제거한다. 이종원자고리 아민은 안타깝게도 구운 쇠고기의 아주 맛있는 바삭한 겉부분에 형성되는 강력한 발암물질을 말한다. 사실 아민이 원래 해로운 것은 아니다. 1단계 효소가 아민의 신진대사를 시작한 후나, 2단계 효소가 작용을 끝내기 전에만 위험하다. 따라서 둘 간에 균형을 이루는 게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1단계 효소에 박차를 가하는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2단계 효소가 발암물질을 제거하는 것보다 더 빨리 발암물질을 만들어낸다. 이 유전자는 백인의 28%에서 발견되지만 아프리카인과 히스패닉계는 약 40%, 그리고 일본인은 약 70%(그러고 보니 일본인들은 위암 발병률이 높다)가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을 뜯어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마늘에는 1단계 효소를 둔화시키는 영양소와, 2단계 효소의 수치를 향상시키는 설포라페인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다. 설포라페인은 브로콜리에서도 쉽게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섭취하는 음식물에 대한 불확실한 추측을 줄이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대(데이비스)의 레이먼드 로드리게스 우수 영양 유전체학 연구소장이 한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 한 가지는 아포 E라고 알려진 단백질 생성 유전자다. 이 단백질은 콜레스테롤 통제에 주된 역할을 한다. E2·E3·E4라고 명명된 세 종의 주요 변이 유전자(또는 ‘대립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마지막 것은 치명적인 잠재력이 있다.

E4는 당뇨병 위험을 증가시키고 총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며 적당한 음주의 통상적인 건강 효과를 역전시킨다. 흡연 위험도 크게 높인다. “흡연은 모든 사람에게 해롭다. 그러나 E4를 가진 사람의 경우는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이것은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심장병에 걸리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오르도바스는 말한다. 그러나 E4는 환경에 극도로 민감하다고 그는 덧붙인다. 당뇨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과체중인 사람들뿐이다. 금연·금주를 하고 운동을 하며 포화지방이 적은 음식을 섭취하면 “E4에 수반되는 심장병의 모든 유전적 소인을 없앨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아포 E 유전자 검사의 보편화 주장에 충분한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윤리적인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아포 E4 대립 유전자가 가진 특유의 문제가 있다. 아포 E4는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확률을 두 배나 높인다. 많은 의사들이 환자에게 E4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길 꺼리며 환자 본인도 별로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알츠하이머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보다 넓게는 보험사들이 유전체 속에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차별 대우할 위험성도 있다. 그러나 ‘유전학: 영양과의 관계’의 저자 루스 드버스크는 그것을 기우라고 일축한다.

그렇게 따지면 위험성을 안 갖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병증에 대한 일정 정도의 민감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쁜 유전자를 가진 그룹이 따로 있고 나머지가 모두 깨끗한 것은 아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게다가 민감성이 꼭 운명을 판가름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E4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치매 예방을 위해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는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전체학 연구회사를 설립한 짐 캐퍼트는 자신의 유전자형에 꼭 맞는 영양학적 충고를 받고도 그것에 따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말한다. “보험회사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도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는가?”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기껏 검사를 했더니 운동과 건강한 식사를 하라는 진단이 나온다면 대체 검사를 받는 게 무슨 의미인가, 굳이 의사가 얘기해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이 질문의 대답은 바로 ‘처칠 효과’와 관계가 있다. 매일 사골과 샴페인을 즐기고 시가를 피우면서도 90세까지 산 윈스턴 처칠도 있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각종 경고들이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런 이들에게 ‘당신은 이런 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말할 수 있고, 그럴 때 그 심각성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드버스크는 말했다.

이 분야의 연구가 개인마다 다른 대립 유전자를 밝히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큰 목적은 영양과 유전적 특징의 상호 작용을 이해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콩을 많이 먹는 아시아인들에게 호르몬에 민감한 유방종양과 전립선종양이 많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뭘까? 콩에 함유된 화합물이 세포 표면의 에스트로겐 수용체에 들러붙어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한다는 게 가장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로드리게스는 루나신이라는 콩의 구성 성분 하나가 전립선 세포 속에 있는 이종 유전자 123종의 활동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123종의 유전자 중에는 종양의 성장을 억제하고 손상된 DNA를 회복시키며 아포토시스(손상된 세포가 증식하기 전에 자동적으로 ‘자살’하는 것)를 촉진하는 유전자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결국에는 같은 처방이 내려질 것이다. 콩을 더 많이 먹어라.

많은 연구가 수행되고 있는 또 다른 화합물은 커큐민이다. 카레의 원료인 심황 속에 함유된 노란 색소인 커큐민은 염증을 악화시키는 유전자의 활동을 억제한다. 심장병·결장암·알츠하이머병과 관련이 있다. “인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알츠하이머병 발병률을 보인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샐리 프로치 UCLA 신경의학 교수는 말했다. 그녀는 남편이자 동료인 그레그 콜과 함께 심황을 연구 중이다. 콜은 “제약업계는 우리 보고 ‘지금 뭐하는 거요. 우리를 파산시키려는 거요?’라는 식으로 반응한다”고 전했다.

물론 제약업계가 망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된다. 그보다 영양 유전체학은 제약회사들에 자연 속의 화합물을 분리·농축·합성·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이는 그들이 지난 100여 년 동안 해온 일이기도 하다. 콜과 그의 동료들이 탐구하는 것은 인간의 몸이 욕망의 결과로 생긴 위협 요인들을 극복하는 놀라운 회복력을 어떻게 진화시켜왔는지 그 신비를 밝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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