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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객원 기자, 현대차 美·中 현지공장을 가다

이호 객원 기자, 현대차 美·中 현지공장을 가다

대한민국의 기업들에도 새해는 찾아왔다. 기업은 유기체다. 생존 화두를 잠시도 잊을 수 없는 숙명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기업별로 생존 화두는 제각각이다. 국내의 대표적 기업 가운데 하나인 현대자동차의 생존 화두는 ‘글로벌 경쟁력’이다. 현대차는 이에 맞춰 미국·중국·인도 등 세계 각국에 현지 공장을 잇따라 설립하고 있다. 따라서 「이코노미스트」는 이호 객원기자를 12월 8일부터 16일까지 미국과 중국의 현대차 현지 공장에 보내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편집자> 을씨년스럽게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을유년의 찌꺼기를 날려 버리고 새해 병술년에 안겨줄 우리 경제의 힘찬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을 찾아 서울을 떠난 것은 12월 8일. 한국에서 14시간 가까이 날아가 첫 기착지인 애틀랜타에 도착한 것은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로 가기 위해서였다. 남의 나라에 입성할 때는 거만스럽게 위에서부터 비행기로 내려가기보다 밑에서 기어들듯이 배로 입항을 해야 대접을 받는다는데 그렇게 하지를 않아서인지 애틀랜타 국제공항의 이방인에 대한 접대는 아주 흉흉했다. 링컨 대통령이 이끄는 북부 연합군의 승리로 1870년에 이미 노예제가 폐지되고 흑인에게도 완전한 평등권이 부여됐지만 제복을 입은 공항의 미국 흑인 여자 입국심사원은 아직도 핍박받던 역사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 백인도 아닌 동양계 이방인에게까지 매서운 대접을 했다. 인종차별이 여전히 심하다고는 했지만 방문자를 향한 차가운 눈빛은 그들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저항감의 뿌리로 이해할 수밖에 다른 이유는 찾을 수가 없었다. “왜 왔는가?” “앨라배마 몽고메리에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하기 위해서 왔다.” “일을 하기 위해서 왔는가?” “자랑스러운 현대자동차 공장을 취재하기 위해서 왔다.” 그녀의 표정은 싸늘했다. 현대자동차에 대한 질투라면 차라리 예쁘게 보였을 것이다. 거대한 대륙 미국의 남부 앨라배마주가 자랑하는 3대 도시 중의 하나인 몽고메리시로 향하는 2시간 거리의 고속도로 주변은 산을 발견할 수 없는 광활한 수림의 평원이었다. 애팔래치아 산맥 남쪽으로 펼쳐지는 앨라배마주는 1763년부터 미 합중국에 편입된 1819년까지 영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풍부한 흑인 노동력과 온화한 기후로 텍사스·캘리포니아·미시시피 지역 등을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화려한 면직물 공업의 중심지로 성업을 했을 만큼 목화(면화)재배가 활발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농촌의 근대화와 공장 유치, 그리고 관광 진흥 정책으로 목화밭의 아름다운 광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목화밭의 대변신


현대자동차 앨라배마 공장은…
▷기공연도 : 2002년 4월 ▷공장가동 : 2005년 5월 20일 ▷부지규모 : 1744에이커(약 210만 평) ▷투자규모 : 11억 달러 ▷생산차종 : 쏘나타·신형 싼타페 등 ▷생산규모 : 연산 30만 대
그런 가운데 인구 22만 명이 조금 넘는다는 앨라배마주 제3의 도시 몽고메리가 그동안 주 정부의 적극적인 유치활동 덕분에 노동자들이 대거 찾아들면서 도시의 면모를 유지시키고 있었다. 이곳에서부터 ‘현대자동차 도로’라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공장으로 향하는 4차선 갈림길에 이르자 마침내 커다란 안내판이 방문객의 눈을 확 열리게 했다. 비록 ‘HYUNDAI Boulevard’라는 글자체 하나에 불과했지만 국내 도처에서 보던 ‘현대’와 미국이라는 대륙에서 보게 되는 그 의미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몽고메리시가 현대자동차를 유치하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를 안내판 하나로 충분히 느끼게 하는 것도 새로운 감흥이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대접이기도 했고 현대자동차에 대한 존경심이기도 했다. 애틀랜타에서 받았던 싸늘한 대접이 이처럼 사소한 안내 간판 하나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윽고 현대자동차 공장 전경이 한눈에 모두 담을 수 없는 넓이로 다가왔다. 사람의 시선으로 담을 수 있는 넓이의 한계가 30만평 정도라고 하는데 210만 평이나 되는 부지라고 했으니 상공에서 내려다보지 않고는 측정이 불가능할 것 같은 광활함이었다. 물론 부지가 넓다고 일류는 아니지만 공장 건물은 5만6000여 평 위에 단단하게 세워져 있었고 잘 다듬은 잔디와 신경을 써서 만든 분수대가 건물 주변을 장식하고 있었다. 국내에 있는 현대차 공장에서는 볼 수 없던 조경이었다. 일순간 방문객의 시야에는 스펙터클한 대형 화면에 자막이 박히듯이 현대자동차의 앨라배마 공장 약력서가 스피디하게 타이프를 치듯 탁탁탁 박히고 있다. 아무리 돈의 위력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불과 3년여 만에 황무지나 다름없었다는 벌판에 첨단장비를 동원한 완성차 공장을 건설하고 생산까지 완료했다는 것은 웬만한 추진력으로는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돈만 있다고 추진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거기다가 첨단 시스템을 갖추고 생산과 동시에 판매시장을 향해 돌격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니 현대자동차의 총사령관인 정몽구 회장의 지휘봉은 무엇으로 무장돼 있는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그 사이에 지역 사령관인 현지 공장장(부사장급)이 3명이나 바뀌었다는 것으로 지휘봉의 위력을 조금은 헤아려 볼 수 있을까. 문득 도요타 자동차의 오쿠다 히로시 회장의 얘기가 생각났다. 현대차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 메이커이며 경쟁상대의 하나이기도 한 도요타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비결에 대해 오쿠다 회장은 ‘목표와 팀플레이와 역할분담을 맡겨 3년 간격으로 레이스를 시켰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쿠다 회장에 비해 평균 1년여 간격으로 공장장을 교체시킨 정 회장의 비결은 맨땅에서 3년여 만에 첨단 공장을 만들어낸 것으로써 설명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특이한 것도 있었다. 현대자동차 38년 역사에 공장 기공식이든 준공식이든 공사의 시작과 끝을 기념하는 행사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울산공장도 기공식 없이 말뚝을 박으면서 시작했고 전주공장·아산공장도 기공식이나 준공식 테이프를 끊는 기념행사가 없었는데 아마도 기공식과 준공식 행사는 이곳이 처음 아니었을까 싶었다.

3년 새 현지 사령관 3명 바뀌어

▶현대자동차 앨라배마 공장에서 직원들은 ‘종업원’이 아닌 ‘팀 멤버’로 불린다. 그만큼 직원들의 주인의식이 강하다.

기자를 맞이해준 첫 번째 한국인은 현대자동차 진(陳) 부장이라는 사람이었다. 명함을 주고받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이름은 잊어야 했다. 검은 인종들이 생사의 남북전쟁을 치를 때 이곳 몽고메리는 남부군의 수도였다. 그래서 비밀 아지트의 중요 요원들이 신상공개를 하지 않았던 것처럼 현대자동차도 현지 법인장인 공장장을 포함해 임직원의 이름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해되는 일은 아니었다. 공장 내부를 둘러보기에 앞서 기자가 첫 번째로 궁금한 것은 현대자동차가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판매 7위권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자랑스러운 실적을 올리고 있는데도 미국에 직접 공장을 건설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건 앨라배마 공장 그랜드오프닝 기념식에서 정몽구 회장님이 하신 말씀으로 설명이 될 겁니다. 현대가 미국 중심부에 자동차 생산 거점을 확보함으로 인해 글로벌 경영의 초석을 다지게 되고, 동시에 세계적인 유수한 자동차 메이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실상부한 최고 메이커가 되기 위해 세계 자동차산업의 중심으로 들어왔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 현대차는 디자인에서부터 개발·생산·마케팅·판매·AS 등 고객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사이클의 모든 부분을 현지화하는 ‘Made in USA’ 시스템을 구축해 결국 미국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자동차를 판매하니까 미국 소비자들의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감정과 정서에 부응하겠다는 목적도 있던 겁니다.” 한마디로 미국 소비자들의 저항감을 희석시키고 차를 많이 팔겠다는 전략으로 미국 현지화를 택했다는 얘기였다. 진 부장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사실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 경영을 맡은 1999년 이후 6년여 동안 내수와 수출에서 사상 최대의 판매 실적을 올리면서 자신감을 얻게 되자 2010년까지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가 돼야 한다는 야심으로 이른바 ‘GT-5(글로벌 톱 5)’ 진입 달성을 선언하고 그 전략의 중심을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시동을 건다는 결정을 했던 것이다. 현 시점에서 보면 정 회장의 결정은 적중하고 있는 셈이었다. 2005년 말까지 현대차 판매량이 46만 대를 돌파하는 상황에서 현대차의 주력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제품을 적기에 공급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면서 시장 상황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수출은 일정 한계를 넘지 못한 채 주저앉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주저앉는 경험을 했다. 86년 소형 승용차 엑셀을 미국에 처녀 수출했을 때 모든 언론이 경이적인 기록이라고 했을 정도로 엑셀 돌풍을 일으켰다. 울산 공장은 한 달에 최고 2000여 명의 신규 인력을 투입하며 엑셀 생산을 증가시켰고 수출 첫해에만 16만8000여 대를 팔았다. 그리고 88년에는 26만2000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러나 시장 상황이 변하고 있음에도 신속히 대처하지 못하면서 엑셀의 판매는 내리막길로 향했다. 그러한 과거사를 분석해온 정 회장은 격변할 수밖에 없는 미래 시장을 이미 간파하고 최신 설비와 선진 생산기술을 접목시키면서 소비자의 욕구에 부흥할 수 있는 앨라배마 공장 건설을 지시했을 것은 틀림없었다.


“머리 싸매고 가동률 높이기 고민” 물론 현대차 입장에서는 해외생산 비중이 글로벌 선진 메이커들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2004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해외생산 비중이 제너럴 모터스(GM) 57.7%, 포드 49.4%, 폴크스바겐 62.7%, 혼다 60.9%, 도요타 41%, 르노 51.9% 등인데 비해 현대차 해외생산 비중은 전체 생산 실적의 14.5%에 불과했다. 그러니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15%도 되지 않는 해외 생산 비중으로는 세계 최대의 수출 시장에서 판매 고지를 선두 점령한다는 것이 절대 무리라는 것도 내다봤을 것이다. 더구나 정 회장은 각국의 모든 분석 자료를 집무실에 펼쳐놓고 무섭게 주시하면서 ‘막 후벼파고 뒤집어 보면서 끝까지 확인하는 스타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앨라배마 공장은 지난 5월 20일 쏘나타 첫 차를 선보인 이후 불과 5개월 만인 10월 12일, 하루 1006대를 생산하는 기록적인 가동률을 보이기도 했지만 완전한 정상가동은 시간이 필요한 듯 생산 개시 후 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는 평균 70~80%의 가동률을 나타내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래도 5월에 2200여 대에 머물던 것이 9월에는 1만5000여 대로 생산이 늘어나고 11월 말 집계로 7만7000여 대를 출시했다고 하니 “현재 70%가 조금 넘는 가동률이다. 매일 머리를 싸매고 가동률 높이기에 정신이 없다”는 공장장 안 부사장의 얘기는 엄살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진 부장은 한국 사람들이 소유에 대한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210만 평이나 되는 공장부지가 ‘누구거냐’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풀었다. “부지 전체가 평수로 치면 210만 평인데 우리 현대차 울산공장이 150만 평입니다. 여기는 프레스·차체·도장·의장·엔진을 한 세트로 하나의 공장 안에 다 들어 있는데 울산공장은 1, 2, 3, 4, 5공장까지 있죠. 미국은 땅이 크니까 땅을 많이 주고 나중에 공장을 더 지으라는 의미에서 넉넉하게 준 겁니다. 공짜로.” 귀가 번쩍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달라고 했다던 옛 풍속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역시 산업체를 유치하려는 앨라배마주의 적극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앨라배마 주정부하고 협상을 할 때는 앨라배마 법이 땅의 소유권을 넘길 수 없다고 되어 있더라고요. 99년 리스, 그러니깐 99년 동안 임대를 하는데 연간 1달러, 우리 돈으로 단돈 1000원 정도 아닙니까? 1달러로 빌려 주겠다, 그 다음에 필요하다면 또 99년 연장을 하면 198년이 되지 않느냐. 그런 조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게 아니었죠. 이왕이면 소유권을 통째로 화끈하게 달라고 한 겁니다. 우리는 농경민족이다 보니까 자기 땅에 대해서는 내 문서,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을 좋아하지 꼭 99년간 세를 사는 것처럼 하는 건 싫다고. 그랬더니 자기네 법이 소유권은 줄 수 없게 돼 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법을 바꿔라 했더니 법을 바꾸려면 국민투표를 해야 되는데 법이 통과될지도 모르지 않느냐고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좋다, 계약서에 땅을 99년간 리스를 하고 다시 99년 연장할 수 있도록 명시하는데 법을 바꾸도록 노력을 해서 소유권을 주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내용을 쓰자고 해서 그렇게 썼지요. 그렇게 써서 일단 계약은 하고, 두 달 후에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하더니 통과가 됐습니다. 그래서 소유권을 받았죠. 이게 굉장히 역사적인,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210만 평을 단돈 1달러에 현대자동차의 욕심도 컸지만 섬유와 철강 등 주력 산업의 퇴조로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해 온 앨라배마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중국도 그러했고 유럽 선진국들도 고용 흡수력이 큰 산업체를 유치하기 위해서라면 놀고 있는 땅 정도는 기꺼이 제공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다. 현대자동차 공장이 세워진 인도도 마찬가지였다. 인도가 200년 동안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법이 영미법이다. 그래서 보통 99년간 리스를 하지만 협상력에 따라 얼마든지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인도의 현대자동차 공장 65만 평 부지도 소유권은 현대차에 있다. 외자 유치가 됐건 기업 유치가 됐건 법률이나 제도를 따지는 시대는 지났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만 어림없는 일이다.

▶미국 현대차 매장과 앨라배마 공장 전경.

물론 앨라배마주 정부가 현대차를 유치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땅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기자가 만나본 제인(Jeanne M)씨는 자신의 직책이 몽고메리시의 ‘현대 가족 지원팀’이었다면서 상주 직원 가족들을 위해 영어강습에서부터 자녀들 입학 문제와 여가·문화생활까지 상담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몽고메리 상공회의소 엘런 지(Ellen G) 부사장은 여자의 몸으로 1년 동안 매일 땅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상하수도·진입로·가스 문제까지 해결하기 위해 행정관·땅주인·도로관리청 등을 드나들며 현대를 대신해 브리핑을 하고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고 지난 일을 회고했다. 이러한 주정부의 유치 노력 덕분에 현대자동차는 관청 한 번 들어가지 않고 공장 건설에 필요한 모든 문제를 해결한 셈이었고 몽고메리시는 당초 예상했던 1800명을 넘어 2600여 명의 일자리를 얻어낸 셈이었다. 물론 주정부는 앨라배마 공장의 직접적인 고용 창출만 내다본 것은 아닐 것이다. 현대자동차로 인해 한국에서 진출한 11개 부품업체와 미국 내 현대차 관련 75개 부품업체가 신규 채용한 인원이 5500명을 넘었다. 70%에 달하는 부품 현지화 비율을 감안하면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도 만만치 않다. 성공적인 윈윈이었다는 얘기였다. 진 부장에게 현실적으로 미국에 생산기지가 진출하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이 예상되느냐고 물었다. “지금까지 항상 한·미 간에 통상마찰이 생기면 우리가 늘 타깃이었으니까 그런 통상마찰도 줄여야 하고 인도·중국·터키에 현대차 공장이 진출했지만 글로벌 톱 기업이 되려면 미국시장에서 성공해야 된다는 건 분명하니까요. 미국에 생산 공장 없이 판매만 계속 한다면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회사들을 봐도 현지공장·미국공장 없이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미국에 자동차 생산 공장이 없이는 연간 50만 대 이상 팔 수 없을 거라고 봅니다. 우리는 100만 대, 200만 대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에 꼭 생산 공장이 있어야만 점핑할 수 있는 계기가 올 거고, 우리가 50만 대에서 만족한다면 생산 공장 없이도 가능하겠지요. 그래서 우리가 현대차를 홍보할 때 ‘Made in U. S. A’ ‘Made in Alabama’를 강조합니다. 현지화한다는 뜻이죠. 왜냐하면 미국 사람들이 굉장히 애국적입니다. 예를 들어 혼다 같은 경우에도, 이 사람들은 절대로 일본 회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도요타도 마찬가지지만 기업광고 하는 것을 보면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American company Honda’ 이런 식으로 합니다. 자기들이 일본하고 연관되는 것을 끊으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미국 사람들에 의해 미국에서 만들어진 차다, 그러니깐 ‘미국 사람들이 사라’ 그런 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현지공장을 세우고 현지화한다는 전략으로 나가는 겁니다.” 사실 현대차는 미국 시장을 위한 사전 준비를 충분히 해온 셈이다. 그것은 외인부대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판매와 대외 압력에 대비한 법률기구까지 구성해 놓았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선 판매를 위해 85년에 이미 현재의 판매회사인 HMA (Hyundai-Motor America)가 설립됐다. 엑셀 신화가 창조되던 그때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 디자인센터와 차량의 품질을 체크하고 향상시키는 퀄리티 센터가 있다. 그런가 하면 2005년에 준공한 주행시험장이 LA와 라스베이거스 사이의 거대한 사막에 만들어졌다. 이곳의 규모는 면적이 600만 평에 이른다. 또한 디트로이트와 미시간의 자동차 핵심지역에는 종합연구센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자동차의 안전법규, 배기가스 등에 관한 법규 정보를 수집하고 테스트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판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딜러점이 북미에 800개 정도 있고 플로리다와 마이애미에는 중남미 판매지역 본부가 있다. 그러면서 워싱턴에는 정보와 로비를 하는 워싱턴 사무소까지 두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2003년, 미 의회 일부에서 한국의 현대자동차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이유는 한국 정부가 북한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현대차 판매 수익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때 앨라배마주 의원들과 함께 의회를 상대로 설득과 이해의 자리를 만들어 무사히 넘긴 것이 워싱턴 사무소였다. 그러나 대내외적으로 손색없이 우수한 조건들이 갖추어졌고 미국 소비자들에게 알려져 있더라도 한 방에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다. 그것은 파업이다. 그래서 기자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해본 것은 앨라배마 공장의 노조 문제였다. “여기 팀 멤버가, 종업원이 현재 2600명 정도 됩니다. 보통 종업원을 말할 때 employee, worker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단어를 안 쓰고 같은 팀이다, 평등하고 똑같이 일을 한다고 해서 ‘팀 멤버(team member)’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노조 회사를 지향했고 현재까지 노조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국내의 현대자동차는 최장수 연례 파업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데 이곳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어쩌면 해외공장이 자꾸 늘어나는 것도 보기 싫은 일들을 보지 않겠다는 이유도 있을지 모른다. 사실 앨라배마는 노조 결성이 한국하고는 크게 달랐다. 몇 사람만 뭉쳐서 노조를 결성한다고 법적인 절차가 끝나는 게 아니다. 전체 노동자의 30%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하고, 노조 신청서를 접수해도 노동위원회에서 30일간 유예기간을 둔다. 그 사이에 위원회는 동의한 사람들을 만나 일일이 본인 의사를 직접 청취한다. 그런 다음에 다시 전체 투표를 붙여 50% 이상 찬성을 얻어야 되게끔 돼있는 것이다. 마침내 특별히 제작된 방문용 차량을 타고 기술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공장 내부 촬영을 철저히 금지시키고 있는 앨라배마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그야말로 사람보다 로봇이 더 많은 생산 현장이 펼쳐졌다. 그동안 국내 언론을 통해 간간이 접했던 공장 소개는 입구에서부터 인식을 바꾸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공장 전체의 레이아웃은 철판을 집어넣어 완성차가 생산돼 나오는 과정까지가 원스톱 시스템으로 처리돼 하나의 지붕 밑에서 모두 마무리되게끔 앉혀놓았다. 그리고 미국에서 오픈한 공장 중에서 가장 자동화 비율이 높고 현재의 자동차 제조기술로 자동화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했다는 공장 관계자의 설명이 과장스럽지 않다는 확인을 할 수 있었다. “차체공장을 보면 철판 두루마리가 들어오면 그것을 짝짝 펴고, 일정 길이로 자르고, 그 다음에 5400t 프레스 기계 2대가 있는데 그곳으로 이동시켜 문짝이라든가 형상 대물파트를 만듭니다. 물론 로봇이 다 찍어서 자동적으로 분류하고 창고까지 옮겨 놨다가 차체공장에서 필요한 순서대로 다시 자동적으로 빠지게 되어 있지요. 프레스숍에서 웰딩숍까지 보면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있다면 검사요원, 운전요원, 고장이 났을 때 처치요원이 있는 정도지요.”

“종업원이 아니라 팀 멤버”

▶앨라배마 공장 쏘나타 생산 라인.

자동화 비율이 높으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게 마련이다. 초기 투자자본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과 숙련이 되기 전에는 가동률이 높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앨라배마 공장도 당초에는 3월에 오픈을 하려다가 종업원들의 작업 숙련과 로봇의 테스트를 위해 5월로 연기했다지만 웰딩숍(용접기계)만 해도 270대의 로봇이 있고 페인트 공장에는 80대의 로봇이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 한 대의 로봇만 고장이 나도 전체 라인이 스톱되는 것이다. 반면에 장점은 당연히 많았다. 무엇보다 품질의 안정이었다. 현장에서 확인된 것이지만 작동하던 로봇이 멈추었다. 차체하고 로봇의 사이에 0.05mm의 갭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만큼 모든 게 치밀하게 조립되고 가공이 된다는 것으로써 사람의 눈으로는 확인조차 되지 않을 만큼 정밀하고 고품질의 제품이 생산되고 있음을 의미했다. 이 정도면 불량률 제로에 도전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앨라배마 공장은 된다는 얘기였다. 한국의 공장에도 로봇이 없는 것이 아니다. 십 수년씩 익혀온 숙련공들은 훨씬 더 많다. 그런데 신형차들이 줄줄이 리콜을 하고 있지 않은가. 첨단 자동화 시스템을 갖춰놓고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우리 공장이 전부 새로운 시스템에 전산화가 돼 있잖아요. 이런 첨단화는 현대차 역사상 처음입니다. 그런데다 우리 작업자들 대부분이 자동차 공장에서 일을 해왔던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목화밭에서 일했거나 제철소에서 일했던 사람들이고. 그러니 새로운 공장, 새로운 설비,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사람, 새로운 모델에 첨단 시스템이다 보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지요. 그런데 한번은 공장을 순시하다 보니 4시50분만 되면 기계가 서 버리는 겁니다. 작업자들은 아예 원인을 모르니까 보조요원이 달려와서 아무리 뒤져봐도 이유를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막 고치려고 여기저기 달라붙어 원인을 찾는데 5시10분이 되니까 기계가 슬슬 돌아가는 겁니다. 그게 한두 번이 아니고 몇 번씩 꼭 같은 시간에 매일 그래요. 미국에도 귀신이 있나, 미국 귀신은 시계를 차고 있나, 별 생각을 다 하는 거지요. 그 시간만 되면 서 버리니까요. 그래서 나중에 알았는데 저쪽에 창문이 있는데, 오후 4시50분이 되면 햇빛이 창문을 통해서 쫙 들어오는 겁니다. 원인이 그거였어요. 기계에 센서가 있어서 햇빛이 쫙 비치니까 온도가 올라가서 기계가 오작동을 한 겁니다. 그러다가 5시10분쯤 햇빛이 기우니까 다시 슬슬 작동하기 시작하고. 첨단 좋아하다가 식은땀 엄청 흘린 겁니다.” 새해에는 새로운 싼타페 후속 모델 CM(투싼)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으로 현재는 NF쏘나타 3.3 모델을 생산 중인 본 공장의 도장라인도 100% 무인 자동화 시스템이었다. 차체가 회전을 하면서 페인트가 입혀지는 회전식 전착방식(Ro-Dip)을 도입한 것은 균일한 페인트막을 유지하고 방청효과를 향상시키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차가 자체적으로 개발해 앨라배마 공장에 처음으로 설치했다는 보디라인(업그레이드 글로벌 보디라인)은 승용차와 SUV 차종을 동시에 생산이 가능한 라인으로 설계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아직은 욕심만큼 생산량을 높이지 못해 전 직원이 달라붙어 있다고는 했지만 1시간에 73대씩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모든 시스템이 정상 가동에 진입하고 있다는 방증이 된다. 2006년 새해에는 도요타의 텍사스 공장이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는 정보가 들어오고 있었지만 앨라배마의 현대자동차 공장은 곁눈질을 할 여유가 없다는 듯이 바쁘게 생산라인을 가동시키고 있었다.


베이징현대기차는…
▷설립연도 : 2002년 5월 ▷위치·규모 : 임하공업개발구 내 20만 평 ▷생산·판매 : 연 19만여 대로 중국 2위 2007년 60만 대 생산 계획 ▷생산차종 : 아반떼XD·쏘나타 등 ▷대리점 : 중국 300여 개 구축
이제 기자는 앨라배마를 떠나 뉴욕에 도착한 뒤 거대한 중국을 그려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또 다른 얼굴의 현대자동차 공장이 역동하고 있을 터였다. 뉴욕에서 취재 가방을 풀자 앨라배마에서 확보한 인터뷰 테이프와 자료 문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손에 쥐어지는 것은 ‘베이징(北京)현대’에 대한 참고 자료였다. 앨라배마 공장과는 규모나 시스템이 다를 것 같은 베이징의 현대자동차 공장은 이미 새로운 도시 ‘뉴(New)베이징’이 태어나도록 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베이징현대’가 ‘뉴 베이징’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에서 중국 대륙을 향해 장장 12시간의 장거리 비행에 들어갔다. 베이징 공항은 냄새부터 동양적이었다. 까탈을 부리는 공항 근무자도 없었다. 고향 동네에 들어선 것처럼 편했다. 사람마다 크지 않은 체구에 겨울을 막아주는 두터운 복장을 한 것이 비를 뿌리던 앨라배마의 겨울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매섭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베이징 택시의 85%가 현대차 공항 출구를 벗어나면서 기자는 그대로 멈춰서고 말았다. 누가 붙잡은 것도 아닌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게 다 뭐요!” “하하. 모르고 오셨습니까. 싹 바뀌었습니다.” 왕성하게 생긴 가이드는 기자의 눈빛을 이미 읽고 있었다. 손님을 기다리면서 한 대씩 빠져나가고 있는 택시 정류장에는 종잡아 1㎞는 될 정도로 노란색과 자주색으로 통일되게 도색한 택시들이 끝없이 꼬리를 물고 있었고, 그 택시들은 분명히 서울에서 보았던 아반떼XD와 EF쏘나타 차종이었다. 그중에는 신형 NF쏘나타도 있었지만 도무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택시들을 전부 교체하고 있는데 현대차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차주들이 거의 현대차로 바꿨습니다.” 가이드는 평범한 중국 소비자의 한 사람일 수 있었다. 그러한 그의 말 속에서 ‘현대차 소문이 좋다’는 한 마디는 그 어떤 광고보다 꾸밈이 없고 실감 있게 들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현대자동차 관계자를 통해 들으니 베이징시가 예상하는 전체 교체 택시 6만7000대의 85%에 해당하는 5만6900여 대가 현대차로 이미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중에 현지에서는 ‘엘란트라’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아반떼XD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지만 세계적인 메이커 GM·혼다·벤츠·도요타를 포함해 중국에만 118개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 있는데 수많은 차종을 제치고 85%나 현대차로 교체됐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감흥이었다.

▶베이징현대자동차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 고객들. 베이징현대차는 중국 전역에 300여 개의 대리점을 두고 있다.

동양의 대륙 중국에서, 그것도 최대 도시 베이징의 거리를 접수했을 정도로 택시기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현대차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가이드의 노력으로 택시 기사와의 인터뷰가 가능했다. “아직 새 차이긴 하지만 유지비가 생각보다 훨씬 적게 듭니다. 차가 우리 식구들 밥그릇인데요, 속을 안 썩여요. 다른 기사들도 좋아하는 이유가 다 있더라고요. 잔고장이 없어서 좋다는 사람, 내장이 마음에 든다는 사람, 외형이 잘 빠졌다는 사람, 기름이 적게 먹는다는 사람, 현대차 공장에 가면 서비스가 좋다는 사람. 그런 여러 가지가 합쳐진 게 현대차를 택하는 이유 아니겠습니까?” 늘 들어왔던 소린데 베이징에서 들으니 새삼스러운 것 같았다. 그러나 ‘베이징현대차’가 조직적인 판매망을 잘 갖추지 않고는 입소문만으로 큰 장사를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곧바로 베이징현대차의 심장부인 공장 본부를 방문해야만 궁금증이 풀릴 것 같았지만 다음날을 기다려야 했다. 이곳에서는 상하이GM, 광저우혼다, 이치(一汽) 폴크스바겐이라고 지역 이름을 앞에 붙이듯이 현대차의 대외적인 공식 명칭은 ‘베이징현대’였다. “여기서는 시스템이 한국하고 달라 직영이 아니고 대리점 제도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리점을 얼마만큼 빠른 속도로 확보하느냐, 거점 확보를 어떻게 하느냐, 좋은 딜러를 어떻게 잡느냐, 이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지요. 회장님이 대리점 확보의 중요성을 처음부터 간파하시고 ‘대리점부터 빨리 확장하라’고 해서 총력을 쏟았습니다. 우리 베이징현대가 2002년도 말에 시작했는데 그때 베이징에 4개의 대리점이 있었어요. 그걸 2004년까지 중국 전역에 180개로 늘리고 2005년에 120개를 추가해서 300개를 목표로 대리점 확장을 시켰습니다. 현재 베이징에만 13개 대리점이 있지만 대리점이 되겠다고 MOU를 맺은 것까지 합하면 300개가 넘습니다. 새해에는 속도 조절을 좀 하면서 한 50개 정도를 추가할 계획인데 결국 회장님 예상대로 대리점 확장이 판매에 중요한 요소가 됐지요. 그리고 베이징현대가 불과 3년 사이에 판매에서 수직 상승을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차종 선택이었습니다. 공항과 거리 곳곳에서 엘란트라(아반떼) 택시를 보셨다고 했는데 그게 상하이GM을 제치고 중국 내 전체 차종 중에 단일 차종으로는 지난달까지 12만 대를 넘게 팔아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노재만 베이징현대 총경리(현지 사장)는 원래 생산경영에 탁월한 소질이 있지 장사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결코 자랑하지 않으면서도 담담하고 태연스럽게 판매전략을 소개하는 것이 마치 옆에서 차를 팔고 있는 것처럼 현실감 있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차종을 선택할 때 한국에서 잘 팔리고 있는 것, 미국에 수출이 잘되고 있는 차종을 우선적으로 중국 시장에 투입한 것이 적중했다고 봅니다. 한국 소비자나 미국 소비자나 중국 소비자나 소득의 차이는 있겠지만 차를 보는 눈은 거의 같거든요. 그 다음에 고려했던 것이 중국 소비층의 경제력을 분석해 차종 선택의 타이밍을 아주 잘 맞춘 것이 주효했던 것이 아닌가, 우리가 2003년에 쏘나타를 풀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당시 중국 시장이 최고급 차종부터 중급차, 소형차, 저급차 전부 나왔는데 때마침 쏘나타급에 해당되는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겁니다. 그러다가 중국 정부가 에너지 절약 정책을 쓰기도 했지만 소비층이 점점 젊어지고 저소득층보다 중산층 수요가 많아지는 것을 파악했지요. 그래서 2004년 엘란트라를 투입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반떼XD가 되지요. 그러니까 엘란트라 시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엄청 커지는 거예요. 중국 소비자들이 중형하고 소형의 중간쯤 되는 엘란트라급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쏘나타나 엘란트라·액센트·투싼 등이 국내에서 생산을 했었지만 이름만 빌려 쓰고 생산은 직접 베이징에서 한다는 얘기다. 물론 중국에서는 광활한 대륙을 어디에서나 달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현지 도로 사정과 연료 품질, 엔진과 변속기, 그리고 소비자 취향에 따른 내부장식까지 중국 실정에 맞게끔 개조된 차량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베이징현대가 본격적으로 투자하고 생산하기 전에는 여기에 들어와 있는 차들이 대개 한국에서 중고차나 일부 밀수된 차들이 많았습니다. 대우도 있고 기아도 있고. 그러다 보니 서비스가 잘 안 된다, 품질이 좀 그렇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생산과 판매에 들어가면서 제일 먼저 중국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을 특공대라도 투입해 쓸어내고 대청소를 해줘야 한다는 각오로 완전히 생각이 바뀔 수 있도록 무지하게 노력했습니다. 그게 대리점 모집의 첫 번째 조건이 되기도 했는데 판매한 사람이 애프터서비스도 책임지도록 한 겁니다. 그것이 결국 성공했습니다.” 2005년 6월 4일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미국 디트로이트가 100년 걸린 것을 중국 상하이는 3년 만에 해냈다’면서 자동차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상하이를 치켜세운 적이 있었다. 상하이뿐 아니라 이미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은 중국 전체를 오래전부터 주목을 해왔다. 한때 북미의 최대 수입 브랜드였던 폴크스바겐이 미국 시장에서 철수를 신중히 검토하면서 대안으로 노린 곳이 중국이었고 그때가 벌써 85년이었다. 폴크스바겐만이 아니라 93년에 취임한 BMW의 베른트 피셰츠리더 사장이 BMW의 확대 전략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일성으로 터뜨린 것이 중국 시장을 조사하라는 것이었다는 건 이미 공개된 비밀이다. 중국은 멀지 않은 미래에 세계 자동차 시장의 최대 격전지가 될 것임을 내다보았고, 현시점에서 벌써 연간 500만 대가 팔리는 세계 3위의 시장으로 부상했다. 바로 이러한 시장성을 정몽구 회장이 간과할 리 없었겠지만 진출은 2002년에 결정됐다. 중국에서는 자동차를 기차(汽車)라고 표기하는데 ‘베이징현대’로 불리는 ‘베이징현대기차유한공사’는 2002년 5월, 합작계약서를 체결하고 10월 설립이 허가됐다. 여간 신속히 처리된 것이 아니다. 물론 중국이라는 체제를 감안한다면 공개되지 않은 비화가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기자가 만난 중국 외교가의 한 인사는 “정 회장의 외교력이 일구어낸 성과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국 고위층과 인맥이 두터운 설영흥 부회장(당시 현대자동차 고문)의 역할도 있었을 것이다.

정몽구 회장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

▶베이징 순이구에 위치한 베이징현대차 건물. 워낙 공장 가동 속도가 빨라 ‘현대 속도’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아무튼 중국이 WTO에 가입한 후 최초로 중앙정부의 정식 비준을 받아 타기업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베이징기차와 현대자동차가 50대 50으로 투자해 자본금 4억4500만 달러의 합자기업으로 태어난 베이징현대는 베이징 중심부에서 자동차로 40여 분 거리에 있는 순이(順義)구 임하공업개발구라는 공업단지 안의 20만 평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다. “처음에 여기 공장은 2.5t 트럭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건물 골조만 남기고 완전히 새로 짓다시피 했습니다. 공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폐허된 상태였으니까요.” 노 총경리의 얘기는 영화에서 본 전쟁의 흔적보다 더 비참한 광경이었고 마치 몰락한 디트로이트의 GM ‘뷰익’ 생산 공장을 연상시켰다는 것이다. “공장 안에서 돼지를 키웠는지 저쪽 끝에는 울타리 근처로 돼지 막사가 수십 동이 있었어요. 기가 막히는 겁니다. 그때 나는 회장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이 있었단 말이죠. 2002년 말까지 쏘나타 2000대는 생산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에요. 2002년 말이면 불과 2개월 남은 시점입니다. 어떡합니까. 당장 부지부터 정비하고 한편으로는 건물 보수에 돌입하고 동시에 공장 레이아웃을 구상하면서 생산설비를 갖추도록 지시해 놓고 부품 회사들까지 적기 납품이 될 수 있도록 하라고 고함을 쳐댄 거지요.” 말은 어눌하고 조용해도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었다. 삼성자동차를 만들 때 일본 도요타 공장을 보지 말고 현대자동차 아산 공장을 보라고 했을 정도로 첨단시설과 높은 가동률을 자랑했던 그 아산공장 공장장이 노 총경리였으니 진두지휘를 했던 노하우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제도가 앞을 막았다. 폐허가 된 공장을 새롭게 건설하자는데 공장 부지 안의 나무는 한 그루도 자를 수 없다는 얘기였다. “나무라고 해봤자 멋있는 소나무 같은 조경 식수를 한 것도 아닌데 공장 안에 있는 나무라도 베려면 베이징시에 신고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시간도 없지만 우리 터에 우리가 공장을 새로 만들기 위해선 데 언제 신고하고 언제 허가받습니까. 저녁에 직원들을 시켜서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전부 다 베라고 했어요. 불도저 동원해서 갈대밭 다 뒤엎어버리고 나무 몽땅 베어내고 공장을 정비했죠.” 무섭게 밀어붙여 정말 2002년 12월까지 단 2개월 만에 쏘나타 1호차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투입된 주재원 60명과 숙련도 되지 않은 현지인들을 채용해 두 달간 손발을 맞춰가며 2000대 생산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1046대를 생산해 1002대를 판매하는 대성과를 올렸다. 순이구 사람들은 ‘현대차 공장이 하는 짓들’을 보면서 천지가 개벽하겠다고 말했고 중국 언론들은 ‘현대 속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지금 중국 언론에서 흔히 인용하는 현대 속도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순이구에는 뉴 베이징이 건설되고 있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였다. 현대차 공장이 들어서면서 협력 업체만 69개사가 달려들었다. 한국에서 성우·한일이화·한라공조 등 56개 부품 회사가 진출해 인근에 공장들을 세웠다. 주변의 집값이 오르고 집세도 급상승했다. 현대차 공장에서만 4000여 명의 현지인을 채용했으니 부품 공장에 채용된 인원까지 합하면 2만여 명이 넘을 것이다. 현지인들이 받는 임금도 중국의 평균 임금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일반 기능공의 월평균 수령액이 잔업과 특근을 합쳐 2800위안대라고 했다. 우리 돈으로 35만원이 넘는다는 얘기다. 이 정도면 중국 내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한 번 들어오면 나가지를 않아 이직률이 제로에 가깝고 결근이 1% 미만이라고 했다. “회사의 경영 목표로 볼 때 글로벌 전략 속에서 중국 공장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되느냐, 우리가 2010년 정도에 세계 5위권 회사로는 성장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 양적인 성장이 필요합니다. 물론 질적인 성장을 함께해야 되겠지요. 그렇게 볼 때 적어도 500만 대 이상은 현대차 그룹이 생산해야 세계 5위 내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 목표 중에 20% 정도는 중국 공장이 담당해야 되겠다는 것이죠.”

2개월 만에 쏘나타 1호 생산 판매도 호조였다. 이미 언급했던 대로 대리점 확대와 함께 엘란트라(아반떼XD)를 적기에 풀어 2004년 1분기에만 4만4000여 대를 판매해 동급의 혼다 어코다, 도요타 캠리, GM 뷰익을 제쳤다. 그래서 판매 1위에 등극하고 중국의 베스트카 반열에 올랐다. 전체 통계로도 중국 국가정보센터(SIC)가 공식 발표한 2005년 11월 집계 자료를 보면 6월에 출시한 투싼과 기존의 쏘나타를 업그레이드해 9월에 선을 보인 NF쏘나타까지 3종을 합해 21만6000여 대를 판매했다. 매출 22억7000여만 달러로 중국이 자랑하는 ‘상하이GM’을 바짝 추격한 3위에 등극했다. 12월 집계를 기다려보면 23만 대 돌파에 25억 달러로 정확히 나올 것이다. 이것은 중국 시장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록이다. 폴크스바겐이 35만 대까지 올라오는데 약 7년이 걸렸다. 더구나 폴크스바겐은 중국 내에 2개의 공장을 가지고 있다. 85년에 진출한 상하이와 91년에 진출한 창춘에 공장이 있지만 시장 점유율이 7.9%와 7.4%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 비해 3년차밖에 되지 않는 베이징현대가 하나의 생산 공장으로 7.6%를 차지했다는 것은 경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판매를 총괄하고 있는 베이징현대기차유한공사 엄광흠 본부장(상무)은 그래도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판매를 아무리 잘해도 차를 고품질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소용없고 차가 아무리 좋아도 팔지 못하면 무용지물 아니겠습니까. 근데 우리 현대차는 두 가지가 손바닥을 치면 짝소리가 날 정도로 궁합이 아주 잘 맞고 있습니다. 차가 잘 나오고 있다는 건 소비자들이 더 잘 알고 있고요. 우리가 자동차 판매 영업을 해 본 사람, 현재 판매사원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 서비스 기술자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딜러로 뽑았죠. 물론 그 사람들이 우리 현대차 브랜드만 보고 투자를 200만~300만 달러씩 하는 거니까 대단한 것이고 엄청난 그룹이지만 아직 욕심에 차지는 않습니다. 판매량을 보면 대리점당 평균적으로 연간 800대인데 1000대는 팔아야지요.” 미국보다 실적이 좋은 셈이다. 미국은 현대차 딜러가 평균 700대를 판매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도 욕심을 더 내고 있었다. “지금 300개 가까운 대리점이 전국에 퍼져 있는데 새해부터는 지역사무소를 개설할 계획입니다. 처음에는 저희 본부에서 관리를 직접 했는데 너무 광대하기 때문에 상하이·광저우·선전·우한, 그 다음에 서쪽으로 청두·시안, 북쪽으로 창춘까지 5개 권역에 사무소를 만들겠다는 것이죠.” 중국 전역을 본격적으로 먹겠다는 얘기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기자가 베이징에서 가까운 ‘생홍두’ 딜러점을 방문했을 때 장웨이 부총경리는 첫마디에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유가 심각했다. 한국의 대리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도 크고 시스템도 뛰어났다. 특이한 것은 1급 자동차 수리공장에 버금가는 애프터서비스 공장을 대리점 울타리 안에 두고 있었는데 ‘현대차는 고장이 없어서 수리비로 남기는 게 없다’는 얘기였다. 재미있는 투정이 아닐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현대자동차의 철학이 장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관심은 좋은 품질로 미국이 됐건 중국이 됐건 많이 팔아서 한국 자동차가 세계의 거리를 누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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