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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 부동산 대책 그후 1년] 14% 내렸다더니 ‘오히려 올랐네’

[8·31 부동산 대책 그후 1년] 14% 내렸다더니 ‘오히려 올랐네’

#1“강남 아파트 때려 잡으려다가 지방만 죽인 꼴 아닙니까.” 부산시 금정구 구서동 H아파트 33평형 주민 황모(40)씨는 요즘 죽을 맛이다. 8·31대책 이전만 해도 1억4000만원을 호가하던 아파트가 지금은 1억2000만원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다. 황씨는 “강남을 겨냥한 세금 융단 폭격에 지방부동산 시장이 엉뚱하게 유탄을 맞은 꼴”이라고 말했다. #2서울 강남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54)씨도 요즘 밤잠을 설친다. 2년 전 충남 당진에 사놓은 농지 때문이다. 당시 김씨가 산 가격은 평당 30만원. 하지만 지금은 20만원에 내놓아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 김씨는 “거래, 세금 규제를 담은 8·31대책으로 토지 시장이 완전 동맥경화증에 걸렸다”고 말했다. 8·31대책이 발표된 지 딱 1년이 흘렀다. 8·31대책은 보유, 양도세 부담을 무겁게 매겨 가수요를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다. 당연히 타깃은 강남권 다주택자 등 부동산 부자들이었다. 때문에 8·31대책이 나오자 강남권 큰손(자산가)들은 크게 당황했다. 정부도 ‘부동산 투기는 끝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표적을 빗나갔다. 강남 아파트값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강남권 옥죄기에 준강남권으로 돈이 몰려 이들 지역 아파트값이 폭등세를 연출했다. 건교부는 강남아파트 가격이 최근 3개월간 14%나 떨어졌다고 발표했지만 시장에서는 정말 떨어진 것인지에 대해 못믿어하는 눈치다. 그리고 지방이나 수도권 외곽은 투자수요가 급감하면서 1년 내내 찬바람이 불었다. 토지시장의 투기도 일단 잡혔다. 반면 상가시장은 예상대로 반사이익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몰려 활황세를 띠었다.

▶중대형 쏠림 현상, 지역 양극화도 심해졌다=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2005년 8월 31일 이후 1년간 수도권 5대 신도시 아파트값은 평균 16.12% 올랐다. 서울지역(10.18%), 경기지역(7.18%)도 상승폭이 비교적 컸다. 이 같은 상승세는 2003년 10·29 대책 이후 1년간 안정세를 보인 것과 대비된다. 양천구는 1년 새 23.06%나 올랐다. 강남 재건축을 억누르자 투자자들이 규제가 덜한 일반 아파트로 몰린 결과다. 강남구(21.20%)도 서울 평균 상승률의 2배에 달했다. 서초구(12.92%)와 송파구(12.09%)도 평균 이상 올랐다. 하지만 강북구(0.86%), 중랑구(1.73%), 은평구(2.24%) 등 강북권은 소비자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해 지역별 차별화가 극심했다. 강북구의 김모(56) 공인중개사는 “주택시장이 실수요로 재편되다 보니 투자 가치가 낮은 강북권에는 매수세가 끊겼다”며 “1년 전에 비해 값이 오르지 않거나 내린 곳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수도권도 사정이 비슷했다. 재건축 바람이 분 의왕시가 17.06% 상승해 매매가가 가장 많이 올랐다. ‘판교신도시 분양’ 영향으로 용인시가 16.93%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동두천시(-0.74%), 의정부시(-0.69%), 오산시(-0.01%) 등은 1년 전에 비해 오히려 가격이 떨어졌다. 동두천의 한 중개업자는 “미군기지 이전 등 악재가 많기 때문인지 분양가보다 시세가 낮은 ‘깡통아파트’도 적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평형별 양극화도 8·31대책 이후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이다. 이번 조사 결과, 상승폭이 큰 랭킹 30위권에 든 아파트 가운데 90% 가량을 40~60평형대가 차지했다. 신도시의 경우 1년간 20평형 미만은 2.54% 오른 반면 40평형대 이상은 20% 가까이 올랐다. 분당 서현동 해내밀공인 이효성 사장은 “보유세와 양도세 중과로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려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중대형 쏠림현상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재건축 때리기’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재건축 상승률(서울 9.61%)이 일반 아파트(10.29%)에 미치지 못한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지난 1년 지방 아파트 시장 성적표는 참담했다. 부산이 0.17%, 대전이 0.88% 내렸다. 부산 해운대구 좌동 경남선경 아파트 50평형은 2억70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5000만원 이상 떨어졌고 재송동 금호 33평형도 3000만원 이상 하락했다. 그나마 온기가 남아있던 경남도 약보합세(-0.09%)를 면치 못했다. 진해시 석동 LG진해 자이도 평형에 따라 2000만~3000만원 하락했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지방 아파트 분양 시장은 공급과잉에다 투자수요 감소로 초기계약률이 20~30%에 그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8·31대책이 1년이 지났지만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같은 강남의 랜드마크 아파트들의 가격은 오히려 요지부동이라서 눈길을 끈다.







▶토지거래 급감, 불황의 늪에 빠지나=
8·31대책의 약발이 가장 잘 먹힌 곳이 토지시장이다. 토지거래 허가구역, 투기지역 여부에 관계없이 거래가 크게 줄었다. 수요가 그만큼 감소했다는 뜻이다. 한국토지공사에 따르면 올 1분기 토지거래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3% 줄었다. 2분기에는 무려 34.1%나 감소했다. 올해부터 부재지주의 농지와 임야에 대한 양도세 실거래가 부과에 이어 내년부터 세율이 9~36%에서 60%로 강?퓽?투자자들이 발길을 끊은 때문이다. 더욱이 토지거래 허가구역에선 전매제한 기간이 최장 5년으로 늘어나고 사전거주 요건이 강화(전 세대원 6개월→1년)되면서 된서리를 맞았다. 경기도 평택의 아동공인 김영석 사장은 “8·31대책 이전만 해도 끊이지 않았던 소액 투자자마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거래가 끊기면서 일부 지역에선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 1년 전보다 30~50% 떨어진 값에 나오는 매물도 적지 않다. 충남 태안군 이원·근흥면 일대 관리지역 임야는 1년 전보다 30% 가량 낮은 평당 10만∼20만원에 불과하다. 한 중개업자는 “거래가 끊기다 보니 일부 땅 주인들이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급히 팔아달라’며 매물을 내놓지만 거래가 안 된다”고 말했다. 강원도 춘천과 양양, 경기도 가평 일대도 급매물 기준으로 지난해 여름보다 10~20% 떨어졌다. 가평군 김모 공인중개사는 “허가구역이나 투기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아 외지 투자자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나마 수요층이 있는 도심 일반주거지역, 상업지역 등의 땅값도 약세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충청권 일부 지역은 최근 6개월 새 10% 이상 가격이 떨어졌지만 매수세가 없다. 강남구의 한 중개업자는 “잇따른 규제책에도 도심 땅은 끄떡없었는데 요즘 들어 시세보다 싸게 나오는 매물이 제법 있다”며 “땅 주인들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토지시장의 큰 고객이었던 큰손들도 떠난 지 오래다. 시중은행 PB센터 관계자는 “5억~20억원대 땅을 팔아달라는 고객들이 많지만 새로 사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강원대 부동산학과 김갑열 교수는 “8·31대책으로 토지시장은 확실히 잡힌 것 같다”며 “분위기에 휩쓸려 비싼 값에 땅을 산 투자자들에겐 애물단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가는 여전히 온기=
상가는 8·31대책 이후 몸값이 치솟고 있다. 요즘 강남권에서 30억~100억원대 상가 빌딩은 매물이 모자라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상가는 주택이나 토지와는 달리 종합부동산세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투자 메리트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강남권 일대 상가빌딩은 1년 전보다 20~30% 오른 곳도 많다. 상가 114 유영상 소장은 “상가 임대료(사용가치)는 거의 오르지 않았는데도 시장가격(교환가치)만 오르다 보니 일부 상가건물은 거품이 끼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남권 상가빌딩 수익률은 연 3~5% 정도에 머물고 있다. 2~3년 전보다 많게는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상가빌딩 수익률이 은행 정기예금 금리보다 못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상가 뉴스레이다 박대원 연구위원은 “상가는 8·31대책의 수혜주로 꼽히지만 가격이 너무 높아 투자 메리트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주택시장은 당분간 하향 안정세가 불가피해 보인다. 내년 1가구 2주택자들의 양도세 중과(50%)를 앞두고 미리 처분하려는 매물이 계속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는 연말까지 3~5% 정도의 하락세를 점치고 있다. 다만 수요층이 탄탄한 강남권의 경우 이미 7~8월 급매물이 한차례 팔려 하락폭이 줄어들 수 있다. 10~12월 막판 절세매물이 나올 수 있으나 이미 소화된 물량이 많아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수도권 외곽지역이나 지방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가뜩이나 수요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절세매물로 시장이 경색될 수 있다. 토지시장은 침체가 더 오래갈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토지시장은 상승기에도 아파트와 상가가 어느 정도 오른 뒤에 온기가 도는 등 후행 성향이 강하다. 때문에 내년 이후 주택가격이 반등한다 해도 토지시장의 활황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양도세 중과 등으로 투자를 한다 해도 남는 게 없어 투자상품으로서 매력을 잃었다. 다만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의 개발에 따른 보상자금이 풀려 시장을 교란시킬 여지는 있다. 하지만 토지 투자환경이 좋지 않아 전국적으로 확산되기보다는 국지적인 현상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상가의 경우 당분간 활황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금리의 인상에도 불구하고 노년층이나 여유층이 여전히 상가를 많이 찾고 있기 때문이다. 9호선 등 역세권 예정지나 서울 강남권 학원단지 등의 상가는 앞으로도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객이 한정된 오피스텔이나 주상복합 상가나 테마쇼핑몰 등은 갈수록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가시장이 전체적으로 호조세를 띠겠지만 주택시장처럼 차별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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