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9·11과 IT 재해 복구
[CEO 칼럼] 9·11과 IT 재해 복구
2001년 9월 11일, 일군의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미국 뉴욕의 국제무역센터(WTC)에 비행기가 충돌하는 끔찍한 테러가 발생했다. 이 악몽 같은 테러로 무려 3000여 명이 사망했고, 미국 경제는 2000억 달러 이상의 피해를 보았다. 이렇듯 역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기록될 ‘9·11 테러’가 일어난 지 올해로 어느덧 5주기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9·11 테러를 보면서 국방 전략의 개편이나 안보·전력 증강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했고, 실제로 관련 분야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됐다. 하지만 정보기술(IT)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9·11 테러로 세계 시장경제의 상징이던 국제무역센터가 붕괴됐을 때 이곳에 입주한 대다수 기업이 보유한 전산 시스템과 IT 인프라가 파괴됐다. 당연하게도 기업의 중요 데이터가 유실됐다. 일순간에 물리적 자산을 잃은 기업들의 비즈니스는 그대로 멈추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우려도 잠시, JP모건이나 메릴린치 같은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은 정상화를 찾고 영업을 재개했다. 이들 기업이 대형 테러의 피해를 보고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비즈니스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원격지에 데이터 정보를 백업하고, 비상시 메인 전산센터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재해복구시스템(Disaster Recovery System)’을 구축해 둔 덕분이다. 재해복구시스템 덕분에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최소화했음을 물론이고 기업의 신뢰도는 오히려 탄탄해졌다. 만약 한국에서 9·11 테러가 일어났다면 상황이 어땠을까. 당시 정보통신부 조사 결과 대부분의 국내 기업은 데이터 백업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재난·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테러가 일어났다면 시스템 인프라는 물론 수년,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해 온 기업의 정보 자산까지도 송두리째 잃어버렸을 것이다. 정보화시대에 기업의 정보 자산은 곧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지난해 미국에서 발표된 한 조사에서 재해 발생으로 24시간 이상 기업 정보 데이터에 접근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1년 후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 IT 재해 대비 계획을 세우고 있는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4배 이상 생존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 자산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기업의 생존까지 좌우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9·11 테러는 우리 기업들과 주요 정부 기관들의 정보 자산 관리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후 금융사의 재해복구센터 구축은 의무화됐고, 정부는 ‘국가기간정보시스템 공동백업센터’를 가동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많은 노력이 이뤄졌다. 5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놀라운 발전이다. 하지만 재해복구시스템의 상당수가 구축이 의무화된 금융권이나 정부기관을 중심으로 도입돼 있고, 실제로 정보 자산의 보호와 관리가 필요한 제조업이나 유통업에서는 아직도 도입이 미흡하다. 정보 자산의 관리에 양극화 현상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정보 자산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안전한 정보 관리 인프라와 철저한 대비 체계를 갖추지 않는다면 예기치 않은 사고와 재해로 소중한 정보 자산을 잃게 되는 것은 일순간이다. 이제 기업들은 단순히 영업 활동을 하고 매출을 높이는 것에서 나아가 ‘정보’라는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관리·보호해 비즈니스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튼튼한 정보 관리 체계의 마련이 정보 자산을 위한 ‘안심 보험’이자 무한 경쟁시대에 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첫걸음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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