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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인 이야기

중국 상인 이야기

중국인은 천부적으로 교섭과 협상에 뛰어난 민족이다. 비즈니스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교섭에서 이기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자기방어 수단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사건과 굴곡이 잇따른 혹독한 시대를 살아왔다. 또 중국은 ‘인치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것처럼 법규보다는 인간관계, 교섭 여하에 따라 결과가 바뀌어 왔다. 그러나 중국 상인들도 베이징·상하이·광둥성 등 지역별로 관습과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중국 바이어와의 미팅 역시 지역별로 차별화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심 좋은 베이징 상인 우선 베이징 상인의 특성은 입심이 좋다는 것이다. 입심만으로 보면 가히 중국 최고다. 말을 좋아하는 이들이지만 특히 정치 문제에는 유난히 깊은 애정과 관심을 표현한다.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지위고하, 직업 여부를 막론하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예를 들어 미술관에서 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도 베이징 사람과 다른 지역 사람 간 차이가 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미술품의 예술적 가치만을 보고 평가하는 데 비해 베이징 사람들은 화가의 정치적인 배경과 인간관계, 같이 간 영도자의 태도와 관점 등에 따라 미술품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다는 말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근대 문학가인 라오서(老舍)는 이런 베이징 사람을 정치병에 걸린 환자라고까지 꼬집었다. 강한 관시(關係)주의, 무사안일주의, 비밀주의로 포장된 모습은 베이징 상인의 또 다른 실체다. 과거 황실에서부터 말단 관료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권력과 관시망을 이용해 돈을 모으고, 뇌물과 상납이 횡행하던 모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베이징 상인은 관료적 모습을 많이 가진다. 중소업체야 좀 낫지만 대기업의 경우 무리하다 싶은 가격 인하 요구는 기본이고, 대금 결제에 이르기까지 조금 과장해 말하면 공권력 행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베이징 상인과의 협상에서는 우리 기업도 어느 정도의 체면과 무게를 잡는 것이 필요하다. 베이징 상인은 상대방이 체면을 차리지 않거나 무게를 잡지 않으면 무능하거나 실력없는 자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또 인간관계를 중시하다 보니 이를 깨뜨리는 말이나 행동도 삼가야 한다. 함께 밥을 먹더라도 계산할 때 ‘더치페이’를 말해서는 안 된다. 인정미가 없다는 반응이 바로 돌아온다. 상하이 상인과 광저우 상인에 비해 허풍과 허세도 심하다. 베이징 상인과 거래 때는 관료 냄새를 풍기거나 정치 지도자급을 비롯한 고위 라인과의 관시를 공공연하게 과시하는 것도 때론 필요하다. 중국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지식을 쌓아 정치 문제를 논하고 맞장구쳐주는 것도 협상에 도움이 된다. 이런 부류를 뜨내기 상인 취급하는 광저우 상인이나 허풍쟁이라고 무시하는 상하이 상인과는 달리 베이징의 경우 이러한 접근법이 오히려 호감과 신뢰를 얻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창장(長江) 삼각주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상하이는 중국 최대의 경제중심지로, 선전과 함께 중국에서 가장 높은 소득 수준을 자랑한다. 상하이 상인들은 최고 경제도시에 살고 있다는 강한 자부심과 우월의식이 있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지난 1985년 미국 나이키사는 장장 2년에 걸쳐 진행된 상하이시 운동화 생산공장 설립 협상을 결국 포기하고, 광저우로 최종 투자지를 선택했다. 한 미국 기업인은 “상하이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통상 가지고 있는 ‘중화사상’을 넘어 일종의 자만심까지 가지고 있다. 외국기업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외국기업 투자를 원치 않는 모습 같다”고 말했다.

배타성 강한 상하이인 지리적인 위치와 일찍이 개방된 역사적인 배경으로 상하이 상인은 서방경제와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베이징 상인이 다소 피동적으로 국제화를 말하고 있는 반면, 상하이 상인은 적극적인 자기 계발을 통해 주동적으로 국제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상하이 상인은 자아의식이 강한 편이다. 보다 나은 생활과 삶의 질을 추구하는 한편, 실사구시적인 측면에서 실리 또한 중시한다. 상하이 상인은 사업에 있어 체면과 이름보다는 경제적인 실리를 중시한다. 눈앞에 당장 이익이 보이면,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도 금세 의기투합해 손을 잡는다. 그러나 일단 경제적인 이익이 실현되고 나면 미련없이 바로 해산한다. 베이징 상인에 비해 상하이 상인은 타지역 출신에 대해 배타성이 강하다. 그렇다 보니 외지 기업인 역시 상하이 상인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는 타지역 기업인들이 상하이 기업과의 합작을 꺼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외지 출신이라도 일단 업무상 탁월한 능력을 보이면 상하이 상인의 인정을 받는다. 수입이 최고 수준은 아니더라도 좋은 교육 배경과 똑똑하고 패션 감각이 있는 ‘화이트 칼라’는 같은 상하이방(幇)으로 대접받는다. 상하이 상인은 사업수완이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소심하다고 평가받는다. 사업 상담에 있어 상하이 상인들은 먼저 시장 상황과 경쟁업체 및 상대 기업의 현황에 대해 미리 조사한다. 조사가 끝난 후에도 이해득실을 충분히 따진 다음에야 협상에 나선다. 상하이 상인과의 비즈니스 협상에서는 종종 작은 문제로 인해 이견이 발생하고 시간이 지체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상하이 상인과의 상담에서는 특히 인내심이 필요하다. 상하이 사람은 제품 구매 때 중국 본토기업 제품보다는 수입제품, 외자기업 제품을 선호한다. 외국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 역시 다른 지역에 비해 강하다. 베이징에서는 잘나가는 하이얼이 상하이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하이 사람은 합리성을 추구하고 평등과 규범을 중시한다.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 어느 지역보다 계약서 작성을 중시한다. 그리고 일단 계약이 체결되면 이행을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계약서는 종이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여타 중국 기업인에 비해 상당히 서구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사고방식 때문에 오늘날 상하이는 흔히 생각하는 중국과 다른 이성적·합리적·규범화된 도시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광저우(廣州)는 홍콩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홍콩인의 생활 방식은 일찍이 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광저우 상인들은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돈을 벌 것인가에 온통 관심을 쏟는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근면 성실하고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감내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있다. 돈벌이를 위해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장사판에 뛰어드는 이들도 늘고 있다. 실리 추구와 사업에 대한 관심은 광저우 상인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으로, 남다른 상인 기질을 지니고 있다. 광저우는 전 세계 화교 상인의 총본산이다. 전 세계 화교 상인 대부분이 광둥성과 푸젠성 출신이다. 동남아 주요 상권을 쥐고 있는 ‘화교 상술’은 바로 ‘광둥 상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광둥성 북부 차오저우와 산터우인들은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릴 정도다. 광저우 상인들은 벤처정신이 강하다. 이들은 크게 생각하고 과감하게 실천하며 새로운 것에 대한 변화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이를 자기 것으로 소화해 발전시켜 나가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상담에서는 자기 본심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 있다. 초기 면담에서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되도록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상대방 앞에서 직접적인 거절을 하는 경우도 드물다. 따라서 광저우 바이어와 상담할 때에는 상대방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 한다.

상술 뛰어난 광저우 상인 자긍심이 높아 베이징쪾상하이에 대한 경쟁의식도 매우 강하다. 실리를 추구하는 이들은 베이징인들의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간 언행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또한 중국 북부지역 상인 대부분이 본격적인 상담에 앞서 먼저 ‘친구(朋友)’가 되자며 인간관계를 강조하는 데 비해 광저우 상인들은 상대 회사의 경영실적, 매출액과 순이익, 기술수준 등 객관적인 경영지표를 꼼꼼히 따진다. 이들에게 체면과 인간관계 형성은 그 이후다. 이들은 신용을 중시한다. 그러나 의심이 많아 신뢰를 구축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흔히들 광둥 사람들은 네 번은 만나야 마음을 터놓는다고 하며, 한 사람을 완전히 신용하는 데 1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미신을 중시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모든 중국인이 그렇지만 특히 광저우 상인의 ‘6’과 ‘8’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다. ‘6’과 ‘8’ 숫자의 발음이 순조롭다는 ‘순(順)’자와 (돈을) 번다는 뜻의 ‘발(發)’자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사업할 때 풍수지리를 따지고 길일 선택을 위해 점집을 찾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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