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으로 알코올중독 치료한다
약으로 알코올중독 치료한다
기존시설의 12단계 치료법과 초호화 재활센터 요법 난립하나 약물 치료 병행시대 머지않아 어쩌면 10년 안에 의사가 알약으로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시대가 온다. 중독의 생화학 원리를 더욱 많이 이해해가면서 연구원들이 새 치료 방법을 찾아낼 전망이기 때문이다. 맥주 깡통 뚜껑을 따는 것에서 시작해 20년 전 두 번쯤 만난 적이 있는 누군가를 전화로 붙들고 흐느끼는 과정까지 이어지는 알코올 중독의 전형적인 뇌신경 수순을 차단할 방법 말이다.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의 발명에 맞먹는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국립알코올중독연구소(NIAAA)의 의사 마크 윌렌브링은 말했다. 음주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약간의 전문적 조언과 주치의의 처방전을 받게 된다. 대다수 사람에게 큰 선물이 되겠지만 운동선수·국회의원·영화배우의 경우는 다르다. 현대의 유명인사들이 누리는 결정적인 통과의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재활센터에 들어가면서 모든 죄를 용서받고, 새 인생을 시작하며, 바버라 월터스를 안심시켜주지 않는가. 이 통과의례는 1983년 이래 미국 문화의 한 모습으로 고착됐다. 당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비극적이고 천박한 미모의 뒷모습을 보이며 베티 포드센터에 들어갔다. 그로써 훗날 음주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대형 여가수·코미디언·록가수 후배들에게 용감한 겸양의 모범을 보였다. 그 뒤로 중산층과 상류층을 겨냥한 입원치료 프로그램이 미국 전역에서 온갖 간판을 내걸고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서로 다른 치료법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 간에 논쟁도 불붙었다. 분위기가 캠퍼스처럼 비교적 엄한 포드센터 같은 기존 시설과, 신종 초호화 재활센터가 극심하게 대립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바닷가에 지은 맨션 형태의 신종 시설들은 전통적인 12단계 치료법 대신 침술·마사지·승마요법·원주민식 대화모임 등을 도입했다. 30일 입원 비용이 4만~10만 달러 수준이다. 이런 고급 시설은 말리부 언덕에서 태평양의 일몰 광경을 구경한 뒤 금주(禁酒) 훈련을 시작하면 정신적 괴로움이 좀 덜 삭막하다는 생각으로 재활치료에 임한다. “색마(色魔)”나 “옹고집” 따위의 딱지를 다느니 차라리 “중독” 소리를 듣는 쪽이 덜 창피하다고 판단하는 연예인들의 이미지 복원이라면 모를까, 그런 시설에서 재활은 무슨 재활이냐고 코웃음치기 쉽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말리부에만 입원치료센터가 26개니까 간단히 계산해도 모든 병실을 채울 연예인이 모자란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머지 병실은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그러나 베니스 해안의 피닉스하우스 같은 “고도의 조직적” 분위기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변호사·기업인·가정주부 등 일반인들의 차지다(개빈 뉴섬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예외인가 보다. 그 도시에 있는 들랜시 스트리트 재단에서 재활치료를 받겠다고 말했다. 전과자가 상당수 섞인 그곳의 입원자는 약 400명이며, “처세술”을 배우고 그 재단의 식당과 기타 사업체의 직원으로 일하면서 최장 2년을 보낸다. 시장이 그 일을 어떻게 할지는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제생활을 모방한 환경에서 더욱 든든한 힘을 얻는다”고 프라미시스 레지덴셜 센터(말리부)의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 리처드 로그는 말했다. 그가 고객들 명단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 고급 시설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은 사람들 중에는 벤 애플렉, 켈리 오스본, 다이애나 로스가 있다고 한다. 르네상스 말리부를 운영하는 대니얼 개틀린은 바다 풍경이 시설의 일환일 뿐 아니라 긍정적인 치료기능을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밖에 나가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시에라투손의 아도베카시타(멕시코식 전원주택)에선 마크 폴리 하원의원이 안식을 구한 적이 있다. 그곳의 환자들은 말(馬)과 교류하는 법을 배우면서 자신의 “인간관계 문제”를 푸는 기회를 갖는다. 말이란 유권자나 영화사 간부와는 달리 트집을 잡지 않는 동물이다. 캘리포니아 랜초미라지에 있는 베티 포드 센터의 대표이사 겸 최고경영자 존 슈워즐루즈는 “온천”과 “치료센터”의 경계선이 흐릿해지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온천 사람들이 ‘우린 병상이 500여 개나 있다’고 자랑한다. 우리가 하는 일을 하찮게 만든다.” 슈워즐루즈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말리부에 있는 일부 시설들이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베티 포드센터에 입원한 동안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다는 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NIAAA의 의사 윌렌브링은 1급 요리사와 승마용 마구간이 치료 정신에는 위배된다고 동의했다. “재활시설에서는 빈민가 출신자 옆에 앉아 자신이 그와 진배없는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편이 가장 좋다. 겸양을 배우는 일이 재활과정의 일부다.” 실은 일부 예외를 빼고 대다수 입원 프로그램이 비슷하다. 표준 입원기간은 한 달이다. 알맞은 기간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프로그램이 처음 도입된 1980년대에 대부분의 의료보험에 해당하는 최장기간이 한 달이었다. 이제 의료보험은 대체로 입원치료를 거의 지원하지 않는다. 가장 보편적인 패러다임은 1960년대 헤이즐든 재단이 개발한 12단계 프로그램이다. 재활치료를 마친 사람이 알코올중독자재활협회(AA)와 그 산하단체에서 지원을 얻도록 하는 모델과 세계적 차원의 기존 네트워크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대다수 전문가는 이것이 재활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8일간 재활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뒤 꾸준히 사후관리를 하지 않으면 재발률이 꽤 높다”고 워싱턴 대학 부설 중독행동연구소의 G 앨런 말랫 소장은 말했다. “우리는 환자가 이곳을 나간 뒤 AA에 가서 후원자를 찾기 바란다”고 시에라투손의 임상과장인 의사 샤리 코비트는 말했다. 패시지스어딕션 큐어센터(말리부)의 공동 창립자 크리스 프렌티스에 따르면, 12단계 프로그램의 단점은 중독에 직면한 사람의 무력감을 강조함으로써 멍청하고 창피한 기분이 들게 한다는 점이다. 프렌티스는 원래 부동산업에 종사하다가 알코올 중독에 걸린 아들을 살려내는 과정에서 재활치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재활센터로선 거의 유일하게 12단계 프로그램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개발한 1대1 집중 대면요법과 개인적 자신감 부여를 “치료법”으로 선전한다. “우리는 환자를 회의에 보내지 않는다”고 프렌티스는 자랑했다. “떠날 때는 완치돼서 나간다.” 그러나 약물로 치료하는 사람들은 중독의 “치료” 가능성을 전혀 믿지 않는다. 일부 프로그램은 12단계 프로그램을 대체하거나 최신 요법으로 보완한다. 인식행동요법은 약한 자존심과 패배주의적 사고(“나는 평생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죽어도 별볼일없는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의 극복에 중점을 둔다. 동기요법은 변화욕구를 권장하고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왜 술 마시기 싫은가? 술을 끊고 싶은 욕구가 어느 정도 강한가?). NIAAA의 윌렌브링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자가 포함된 연구에서 이런 프로그램의 효력은 12단계 프로그램과 비슷했으며,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치료의 형태보다는 치료하겠다는 의지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재활 프로그램을 마치고 1년 뒤 알코올 중독자의 약 3분의 1이 술을 끊는다. 그 밖에 40%는 상태가 꽤 좋아지지만 때때로 심한 과음을 하고, 나머지 4분의 1은 다시 중독자가 된다. 현재 이 분야에선 치료에 방해가 된다며 휴대전화와 잡지도 금하는 시에라투손 같은 고립형과, 환자의 일상생활에 맨정신 상태에서의 행동을 포함하려고 시도하는 사회지향형 사이에 논쟁이 한창이다. 원더랜드 센터는 린제이 로한을 치료해야 하는 헛수고나 마찬가지인 임무를 맡았다. 이들은 환자를 유혹의 세계로 내보낸다. 센터가 웨스트 할리우드에 있기 때문에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맨정신의 동료”가 동행해 환자 대신 생명수인 “맹물 칵테일”을 주문한다. 각 프로그램의 반응은 개인별 편차가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단순한 동기다. 슈워즐루즈의 시설에서는 여러 해 동안 7만6000명을 치료했다. 일부는 한 번 이상 다녀갔다. 그는 베티 포드센터를 거쳐가는 유자격 의료 종사자와 민간항공기 조종사는 통상적으로 그 뒤에도 술을 끊는다고 지적했다. 약물시험에서 또 한번만 떨어지면 일자리를 영영 잃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사도 그런 방법으로 배우를 다루면 가십 칼럼에 등장할 기삿거리가 크게 줄지 않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약물로 중독을 고치는 안전하고 믿을 만한 치료법이 개발되면 진정한 돌파구,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난다. 프로작이 나왔어도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았듯이 중독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런 약이 나오면 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의 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연구원들은 지난 1월 뇌의 특정 부위를 다친 사람은 즉시 흡연 욕구를 잃어버린다는 놀라운 주장을 했다. 그로써 중독환자의 치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알코올 중독제로 개발 중인 신약이 열 가지쯤 된다. 큰 기대를 품을 만한 제품도 있다”고 윌렌브링이 말했다. 물론 1990년대에도 항울제를 사용해 중독을 치료할 가능성을 놓고 사람들이 흥분했지만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알코올과 함께 반응해 구토하게 만드는 앤타뷰스 역시 실망을 안겼다. 좀 더 세련된 약품 날트렉손은 뇌의 진정제 수용체를 차단해 술을 마셔도 되지만 그런다고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치료 석 달 뒤의 재발률을 20~40% 떨어뜨리기도 한다). 연구자들이 중독 과정을 더 많이 알아감에 따라 좀 더 기발하고 효율적인 약품의 개발이 가능하다. 이미 시중에 나온 간질약(안정성 검사에서 한발 앞서간다는 뜻) 토파막스는 뇌의 두 화학물질인 글루타메이트와 GABA 사이의 균형에 영향을 미친다. 중독자의 뇌에선 글루타메이트가 과다 분비돼 약물이나 알코올 섭취 욕구를 높인다. GABA는 그것을 억제한다. 따라서 균형을 되찾으면 욕구가 떨어진다. 알약에 담긴 의지력이라 하겠다. 임상시험이 임박한 다른 종류의 약품들은 스트레스 반응을 억제한다. 연구자들은 치료 후 재발을 막는 데는 그것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한다. NIAAA의 윌렌브링은 아무리 효능이 뛰어난 약품이라도 반드시 행동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표면에서 그치지 않는다. 연구에서 500달러나 주고 이발한 연예인의 뇌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는 결론도 나올 테니 말이다. 그런 약품의 출현은 자존심을 맞춰주는 온갖 비품과 태평양의 일몰을 갖춘, 연예인 중독자라는 의료계 고유 특별상품의 종식을 뜻할지도 모른다. 이 분야의 권위자는 방송인 빌 모이어스의 아들 윌리엄 모이어스(47)다. 그 역시 알코올과 코카인 중독 경험자다. 네 차례 재활센터를 드나든 끝에 마침내 1994년 술을 끊었다. 현재 헤이즐든 재단의 대외업무 부국장으로 일한다. 헤이즐든 재단은 미네소타에서 이름 높은 치료센터를 운영한다. 헤이즐든은 베티 포드와 마찬가지로 연예인을 받아들이지만 중독으로 고생하는 일반인도 많이 받는다. “회복의 최선책은 놀이터를 평평하게 해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여배우든 식당 종업원이든.” With ANNE UNDERWOOD, RAINA KELLEY, KAREN SPRINGEN and KAREN BRESL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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