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월급쟁이 지갑이 가엾구나
물가가 오른다고 난리다. 올 들어 전철 등 공공요금이 오르더니 최근 라면이나 스낵류 제품값이 잇따라 오르고 있다. 통계청은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하지만 국내 물가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악명’을 떨치고 있다. 그나마 이들 물가통계는 일반 소비자물가다. 샐러리맨들은 자기가 늘 먹고 쓰는 물가가 얼마나 오르는지 알지 못한다. ‘샐러리맨 물가’는 얼마나 오른 것일까? 이코노미스트가 국내 최대 물가조사 전문기관인 한국물가정보와 함께 국내 처음으로 샐러리맨 물가지수 37년치를 분석했다.
A기업 K부장(44)은 “요즘 회식하기가 두렵다”고 말한다. 회식 한 번 하는데 드는 돈이 만만치 않아서다. 직원 사기를 올린다고 앞뒤 생각없이 먹으면 뒷감당이 힘들다. 이해가 된다. 등심 1인분에 보통 싼 게 3만5000원이다. 양도 많지 않아 최소 1.5인분은 먹어야 한다. 거기에 식사비와 술값이 합쳐지면 부서원 8명이 먹는 데 40만~50만원이 들어간다. 2차까지 생각하면 한 번 회식에 70만~80만원은 각오해야 한다. “회식 때 등심은 없다는 것이 정론이 됐다”고 한다. “1988년 입사 때만 해도 등심을 실컷 먹었지요. 회식 때뿐 아니라 사적인 자리에서도 등심을 먹는 게 부담이 안 됐습니다. 경기도 좋았고 물가도 쌌지요. 그런데 요즘은 정반대입니다. 경기는 나쁘고 물가는 비쌉니다. ” K부장의 말이 맞다. 일단 예전에는 경기가 좋았고 회사 지원도 나쁘지 않았다. “IMF 전만 해도 1인당 회식비가 월 10만원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IMF 이후 월 회식비가 1인당 2만~3만원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한다. 월 회식비가 5분의 1로 깎인 것이다. “회식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K부장은 “부장 판공비나 개인 영업비 등을 써야 하고, 그것도 부족하면 개인 용돈을 털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반면 값은 올랐다. 90년에는 정육점에서 등심 500g을 5700원에 샀다. 지금은 3만5000원이 넘는다. 6배나 올랐다. 일반 식당에서 먹는 등심 1인분은 200g이 기준이다. 회식비는 줄고 등심 값은 오르고…. 샐러리맨은 죽을 맛이다. 등심만 그런 것일까? 물론 아니다. 다른 물가도 많이 올랐다. 샐러리맨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제품들의 물가는 어떨까?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하지만 딱히 답을 주는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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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람료는 63배 올라 이코노미스트가 한국물가정보와 국내 처음으로 샐러리맨 물가지수를 산출해 봤다. 샐러리맨과 가까운 26개 품목을 뽑아, 70년부터 2006년까지 37년치를 재분석한 이 지수는 샐러리맨만을 타깃으로 한 국내 첫 물가지수다(상자글 참조). 단순 가격으로만 따졌을 때 가장 많이 오른 것이 경유다. 70년 ℓ당 14원 하던 경유는 오일 쇼크가 한창이던 80년에는 215원으로 올랐다가 오일 쇼크가 끝난 90년에는 179원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2000년에는 680원, 2006년에는 1272원으로 고공 비행을 계속했다. 70년과 비교하면 90.9배, 2000년과 비교해도 1.9배가 뛴 것이다. 경유값이 이렇게 급등한 것은 전반적인 기름값 상승에 세금 인상까지 포함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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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심이 물가상승 순위 2위를 차지했다. 70년 1근 기준으로 500원 하던 한우 등심이 2006년에는 3만5506원으로 무려 71배 뛰었다. 샐러리맨이 회식 자리에서 등심을 먹기 힘든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마시기도 부담된다. 지난 37년 동안 커피숍 커피의 가격 상승은 70.5배. 상승률로 따지면 3위로 한우 등심만큼이나 올랐다. 70년 50원 하던 커피값이 2006년에는 평균 3527원이나 한다. 관객 1000만 시대. 하지만 영화 한 편 보러 가는데 관람료가 부담된다고 느낀 적도 있을 것이다. 옛날에는 1000원쯤 했던 것 같은데…. 맞다. 지금 40대가 대학을 다니며 연인의 손을 잡고 한창 극장가를 다닐 때인 80년대, 영화 한 편 보는 돈은 1000원 안팎이었다. 80년 기준으로 918원. 하지만 50대 중후반 사람들에게는 체감되는 차이가 더 클 게 뻔하다. 70년 영화 관람료는 111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지난 37년 동안 영화 관람료는 63배 올라 물가상승 항목 4위. 5위는 목욕료다. 70년 60원 하던 목욕료는 지난해 3773원으로 62.8배 뛰었다. 설렁탕값은 97원에서 5500원으로 56.7배, 60원 하던 자장면은 3273원으로 54.5배, 15원 하던 시내버스료는 800원으로 53.3배 뛰었다. 26개 품목 중 50배 이상 값이 뛴 것이 8개. 9위는 술안주용 땅콩값 48.3배, 10위는 신문구독료로 42.8배 뛰었다. 값이 덜 오른 품목에도 눈이 간다. 맥주와 소주값이 가장 적게 올랐다. 대중을 상대로 한 술값이 가장 덜 오른 것이다. 특히 맥주값은 지난 37년 동안 6.4배밖에 안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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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품목 중 상승률이 가장 낮았다. 70년 병(500㎖)당 156원이었던 맥주값은 지난해 소매가(할인점 포함) 기준 1290원. 소주값은 360㎖ 병당 72원에서 950원으로 13.1배 올랐을 뿐이다. 2000년을 100으로 잡고 각 품목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해 계산한 ‘샐러리맨 물가지수’는 70년 4.7에서 2006년 133으로 28.3배 차이가 난다. 이 샐러리맨 물가지수를 10년 단위로 보면 재미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70년 4.7이었던 물가지수는 80년 33.3으로 7.1배 뛰었지만 90년에는 43.8로 큰 변화가 없다. 샐러리맨 물가는 80년대 가장 덜 올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00년의 지수 100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샐러리맨 물가지수의 변화를 일반소비자물가지수와 비교해도 재미있다. 70년대 소비자물가와 비슷하게 올랐던 샐러리맨 물가는 80년대와 90년대에는 소비자물가보다 오름폭이 훨씬 떨어졌다. 80~90년대 샐러리맨들은 70년대보다 살기가 훨씬 좋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는 2000년대 거꾸로 뒤바뀐다. 일반소비자물가보다 더 많이 샐러리맨들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국내 처음 조사…어떻게 했나 |
이코노미스트와 한국물가정보가 공동으로 개발한 샐러리맨 물가지수는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전체 인구의 30%가 임금을 받는 샐러리맨인데도 그동안 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물가정보가 하나도 없었던 탓이다. 물가조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조사됐다. 첫째, 품목은 26개로 한정시켰다. 품목 선정은 일반소비자물가의 조사 대상인 489개 항목 중 샐러리맨과 특별히 관계 깊은 품목들이다. 여기에는 식료품 15개, 유류 2개, 피복·신발 2개, 교양·오락 2개, 교통·통신 3개, 이·미용 서비스 2개 품목이 포함된다. 둘째, 물가는 70년부터 2006년까지 10년 단위로 나누어 계산해 냈다. 각 품목의 물가 및 물가지수는 매년 11월 기준으로 현재 가격은 2006년 11월을 대상으로 했다. 셋째, 지수는 품목별 가격에 가중치를 부여해 산출했으며, 가중치는 일반소비자물가 조사의 방식에 따라 가계에서 소비되는 비중을 감안한 것이다. 가중치를 부여하는 이유는 각 품목이 샐러리맨에게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즉 샐러리맨에게 설렁탕과 속옷이 갖는 의미는 매우 다르다. 설렁탕은 매일 먹는 ‘점심’을 상징하는 품목으로 가격변화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속옷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설렁탕의 가중치는 속옷의 가중치보다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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