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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가 기업의 흥망 좌우

기후가 기업의 흥망 좌우


기업이 환경 변화 적응하면 경제도 살고 지구도 살아나… 온난화에 특화된 제품이 유리 세계 최대 보험시장인 로이드 보험협회의 상징은 거래소다. 아주 오래전부터 미래예측을 업으로 삼는 말쑥한 정장 차림의 보험업자들이 이곳을 가득 메웠다. 그들은 아주 치밀하게 계산된 50년 평균치를 이용해 다가올 자연재해를 예측하곤 했다. 하지만 2004년과 2005년의 허리케인은 그런 기존의 평균치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사상 최대 폭풍우 10개 중 일곱 개가 미국 해안을 강타했다. 그 때문에 2005년 한 해 동안 로이드의 회원사를 비롯한 보험사들은 600억 달러 가까운 돈을 보험금으로 지급했다. 최악의 시나리오 중 가장 최악인 수치였다. “기후 변화로 인해 극단적인 재해가 발생하면 우리가 그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고 피터 러베니 로이드 회장은 말했다. 따라서 보험사들이 앞으로 기후 변화를 더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면 보험업계 전체가 몰락할지 모른다고 로이드는 최신 보고서에서 경고했다. 그 대책의 일환으로 로이드는 놀라운 개혁을 단행했다. 과거의 예측치는 과학보다 경험치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뒀지만 지금은 그 반대로 한다. 그리고 로이드는 전문가의 해수면 상승, 강우량 증가, 기온 급상승 경고에 크게 의존한다. 보험사들이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에 관한 연구가 많이 늘었다. 약 5억 달러에 달하는 보험사들의 연간 연구개발비 중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새로운 데이터 덕택에 로이드 같은 보험사들은 이제 플로리다주 해안에 불어닥칠 다음의 대형 폭풍우에 대비한다. 보험사 예측에 따르면 그 피해액이 1000억 달러를 웃돌지 모른다. 지구온난화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보호할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고객은 곧 보험에 들기조차 어려워질지 모른다고 로이드의 러베니 회장은 경고한다. 하지만 그는 미래를 낙관한다. “인류는 에어컨과 중앙난방 장치를 발명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새로운 환경에도 적응해 나간다.” 지구온난화는 지구를 바꿀 뿐 아니라 기업에도 유례없는 진화를 강요한다. 물리적 환경과 규제 환경의 급변으로 불가피하게 일부 기업은 사라지고 일부는 번창할 듯하다. 차분하게 지구 종말을 경고하는 영국 정부 발행 스턴 리뷰는 지구온난화가 계속돼 금세기 말에는 전 세계의 실질생산이 20%나 줄지 모른다고 지난해 말 예측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은 이미 적응해 가는 중이다. “직업 경제전문가인 나도 사람들이 돈벌이 방법과 도전에 대처하는 방법을 얼마나 기발하게 생각해 내는지 평생 경탄해 왔다”고 리먼 브러더스의 경제정책 수석고문 존 러웰린은 말했다. 이제 와서 그런 능력이 없어질 리는 없다. 물론 망하는 기업도 나온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석유 회사, SUV에 주력하는 자동차 회사, 따뜻한 털을 전문으로 하는 의류 회사 등이다. 하지만 흥하는 기업도 생긴다. 해수 탈염(脫鹽) 회사, 가뭄 대처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 하이브리드카(휘발유-전기 혼용 차) 제조사, 극한 기후를 이겨내는 건축자재 생산업체 등이다. 언제나 창의력을 발휘한 금융서비스 산업은 아니나 다를까 이미 새로운 수익창출 방법을 찾아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후 두뇌회전이 빠른 헤지 펀드 매니저들은 이른 시일 안에 그처럼 파괴적인 허리케인 시즌이 다시 찾아올 가능성은 작지만(80분의 1 안팎) 보험사들이 해안 지대 보험료를 두세 배 인상할 공산이 크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카트리나 발생 후 1년도 안 돼 헤지 펀드들은 230억 달러의 자본을 새로 조성해 재보험사에 투자했다. 현재까지는 그 투자로 짭짤한 수입을 챙겼다. 2006년이 조용하게 지나간 후 파트너 리 같은 많은 재보험사는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다. 카트리나는 또 완전히 새로운 시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지난 3월 시카고 상품거래소는 세계 최초의 대형 허리케인 선물거래소를 개설했다. 보험사들이 대형 폭풍우 발생 가능성에 돈을 걸어, 실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지불해야 할 거액의 보험금 부담을 줄이고 그런 위험을 회피하려는 취지다. 북극에서 기회를 찾는 기업도 있다. 얼음이 없는 새로운 항로를 이용해 화물을 더 빨리 수송하거나 더 접근이 쉬워진 천연자원 보고를 개발하는 식이다. 기온이 변화함에 따라 토지의 용도도 바뀐다. 비옥한 농지는 과거 메말랐던 시베리아, 캐나다 북부, 알래스카 지역 등 북쪽으로 이동한다. 이미 알래스카의 몇몇 농민은 난쟁이 밀, 사탕무, 미국 방풍나물 등 새로운 환금작물을 재배한다. 유명한 프랑스 포도원들은 날씨가 더 선선한 잉글랜드로 언제 이주해야 우수한 포도 품종을 계속 생산할지 저울질하는 중이다. 캐나다 유콘주의 앞날을 내다보는 다이아몬드 채굴업자들은 두꺼운 얼음길이 녹아 사라지자 헬리콥터를 이용해 장비를 수송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따뜻해진 세계에 특화된 제품을 개발하는 기업이 가장 이득을 볼 가능성이 높다.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카 덕택에 자동차 업계의 진로를 좌지우지하게 됐다. 항공사들은 에어버스 380(하늘의 SUV 격)을 외면하고 보잉의 연료효율이 뛰어난 드림라이너를 선호한다. 영국의 대형 수퍼마켓 체인 테스코는 향후 5년간 풍력발전 매장, 식료품 이동거리 추적 라벨 등에 10억 달러를 투자한다. 기후 변화를 의식하는 소비자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다. 물처리 등의 산업 전반이 힘을 받는다. 지중해로부터 중국에 이르는 남부 지역에 물부족 사태가 예상됨에 따라 바닷물을 담수로 만드는 기업이 금세기의 연금술사로 떠오를 듯하다. 세계 최대 탈염 공장을 운영하는 프랑스의 베올리아 워터는 최근 스페인 남부에 1억2800만 유로 규모의 역삼투압 공장, 그리고 중국 간쑤성에 16억 유로의 물처리 공장 건설 계약을 따냈다. 이 회사의 총수입은 지난해 10% 증가해 100억 유로가 됐다. 텍사스주의 하이드로 솔루션스 같은 댐 건설 전문업체에도 해수면 상승과 폭풍우에 노출된 도시를 보호하려는 공사의뢰가 늘어난다. 대형 제약사들도 적지않은 수익을 올린다. 기온이 상승하면 일부 지역에서 말라리아와 뎅기열 같은 열대성 질병이 확산된다는 설이 있다(과학자들이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 이론을 바탕으로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GSK)과 노바티스 같은 제약사들은 수십억 달러를 들여 그런 질병의 백신을 개발하는 중이다. GSK는 올해 6% 비중인 백신 사업을 2010년까지 14%로 확대한다. 메릴린치는 최근 백신 분야를 2007년 가장 유망한 장기투자 분야 중의 하나로 선정했다. 백신산업 전체의 2005년 매출액은 100억 달러였으며 2010년에는 150억 달러로 증가하리라 예상된다. 최근까지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던 재생 에너지도 앞으로 분명 빛을 볼 듯하다. 오염 배출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정부규제 덕택에 마침내 재생자원의 장기적인 상품성이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유럽연합은 이미 기업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비용을 부담케 했으며 호주, 캘리포니아, 미국 북동부에도 비슷한 제도가 운영된다. 이런 움직임 덕택에 재생 에너지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 GE와 파워라이트사는 지난 3월 28일 포르투갈 남부에 세계 최대 태양열 발전소의 개막식을 성대히 거행해 큰 주목을 받았다. 호세 소크라테스 총리도 찬사를 보냈다. 풍력과 태양력 발전 시장만 해도 현재 170억 달러에서 2010년에는 850억 달러로 커진다고 런던의 웨스트홀 캐피털은 예상했다. 골드먼 삭스에 따르면 이 분야의 지난해 수익률은 시장 전체 평균보다 10~20% 높았다. 물론 돈이 있는 곳에 컨설턴트가 있다. 이미 기후 변화는 다수의 환경 컨설팅 회사를 낳았으며 환경 문제에 관해 기업에 조언해주는 법률 회사도 무수히 많다. 올여름 마시 보험사, 예일대, 세레스 연구소는 지구온난화가 제기하는 위험(그리고 기회)을 주제로 포천 1000대 기업 이사 대상의 세미나를 주최한다. 제너럴 모터스로부터 세계 최대의 닭고기 가공업체 타이슨 푸즈에 이르는 많은 기업이 현재 최고환경책임자(chief environmental officer)를 둔다. 한편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환경 컨설턴트들은 대기업의 경우 시간당 1000달러까지 챙긴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기업이 기후 변화에 적응하면 경제뿐 아니라 세계를 구할지도 모른다. 실리콘밸리 미래연구소의 폴 사포 연구원은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는 정부 당국자들은 의욕을 잃은 반면 기업 관계자들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모습에 놀랐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최근 오존파괴 제품의 생산 중단에 성공했다(그 결과 오존층이 살아난다). 마찬가지로 기업들이 (정부가 정한 온실가스 배출 제한의 도움으로) 연료전지와 태양력 기술 같은 대체 에너지원을 완성해 인류가 초래한 기후 변화를 억제하리라 기대된다. 블루칩 기업들은 얼음이 녹더라도 전 세계 GDP의 성장을 계속 이끌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뎅기열도 치유하게 될지 모른다. 로이드 거래소 한복판에 루틴 벨이 있다. 과거 바다에 나간 배가 실종되면 이 종이 울렸지만 지금은 침묵을 지킨다. 이젠 다른 곳에서 경종 소리가 들린다. 더워지는 대서양에 더 많은 허리케인이 온다거나 유럽이나 인도에 이상난파가 일어난다는 과학적 예측 등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현명한 기업은 그런 경종에 대비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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