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하는 교황
은둔하는 교황
베네딕토 16세, 전임자와는 달리 학자 스타일로 지도력 발휘 안해 4월 19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즉위 2주년을 맞는다. 몇 주 뒤에는 브라질에 갈 예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황이 중남미에 가는 일은 별 이야깃거리가 못 됐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워낙 세계여행을 즐겨 즉위 100일 동안 멕시코와 카리브해를 여행했다. 그러나 4월 중순 팔순을 넘기는 베네딕토는 좀처럼 바깥 나들이를 하지 않으며 유럽 가톨릭의 재흥에만 관심을 쏟는 듯하다. 교황은 브라질의 아파레시다두노르티 읍을 찾아가 자신들의 영향력 쇠퇴, 복음교회의 성장, 게이 결혼과 낙태를 합법화하려는 당국의 움직임 등을 걱정하는 지역 성직자들을 만날 계획이다. 교황은 말을 신중하게 가려 해야 한다. 지난해 고국 독일을 방문해 지나가는 말로 선지자 마호메트를 헐뜯었다가 격론을 유발하고 베네딕토의 화형식까지 열렸다. 교황이 중남미에서는 좀 더 융숭한 대접을 기대해도 좋다. 그러나 그곳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그에게 실망한 신자가 많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의 일부 가톨릭 신자는 그가 너무 냉담하다고 비난하고, 유럽인들은 그가 사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못마땅해 한다. 중남미에서는 원래부터 인기가 없었다. 가톨릭 신자가 4억5000만 명이나 되는 중남미는 그 지역 출신이 요한 바오로의 뒤를 잇기 바랐다. 많은 중남미인은 결국 그의 뒤를 이은 사람에게 무시당한다는 기분을 느꼈다. 일부 문제는 스타일에 있다. 전임 교황은 교구 사제 출신으로 국제무대에서 활약했다(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포함해 8개 국어를 구사했다). 베네딕토는 무색무취의 학자로 신학과 철학을 강의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는 교수로서 조용한 사람이며 정치에 능한 배우 스타일이 아니다”고 미국의 신학자 마이클 노백은 말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차이점은 성격만이 아니다. 요한 바오로는 오랜 재위기간에 100회 이상의 해외여행을 하면서 개도국 세계에 진정한 관심을 표명했다. 베네딕토는 새 책에서 아프리카 원조를 늘리라고 촉구했지만 머릿속에는 오로지 유럽 생각뿐인 듯하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시야를 그처럼 좁게 잡은 이유가 전통으로의 복귀를 뜻한다고 말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출 전에는 교황이 유럽의 일에서 더 큰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 양해사항이었다”고 그리스도회의 토머스 윌리엄스 수사는 주장했다. 베네딕토는 유럽을 중시하면서 우군을 많이 얻지 못했다. 교황 즉위 직전, 당시 요제프 라칭어 추기경은 이탈리아인들에게 “유럽은 공적 양심에서 하나님을 배제하는 문화를 개발해 왔다”고 경고했다. 지난 3월에는 유럽의 “위험한 개인주의”를 비난했다. 3월에는 이탈리아의 주교들이 나서서 게이와 미혼 커플들에게 권리를 확대하려는 정부 계획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런 움직임이 정치인과 많은 신자의 비위를 건드렸다. 한 국회의원은 베네딕토에게 이탈리아에서 “교회 독재”를 펼치려 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라칭어는 미혼 커플의 민권 같은 사안에 지나치게 간섭하려 들고 사고가 너무 구식”이라고 밀라노의 가정주부 마리아 노벨라 달랄료는 말했다. 한편 나머지 세계에서는 베네딕토의 존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에서 가톨릭이 가장 많다는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뒤에도 그의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세계 가톨릭 인구의 거의 절반이 살며 요한 바오로가 큰 관심을 쏟았던 중남미에도 그는 별 관심이 없다. 콜레지오 드 멕시코(멕시코시티)에서 종교문제를 연구하는 사회학자 로베르토 블랑카르테는 “그는 우리를 철저히 무시했다”고 말했다. 베네딕토가 눈에 보이지 않자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중남미에서는 매일 가톨릭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8000명으로 추산된다. 여론조사 기구 라티노바로메트로에 따르면 1995~2005년 가톨릭 신자로 자처하는 현지인의 수가 9% 떨어졌다. 가톨릭 교회의 쇠퇴가 가장 두드러진 나라는 신자가 세계에서 둘째로 많은 멕시코다. 코아우일라 주는 지난 1월 동성 간의 시민결합을 허용했다. 두 달 전에는 멕시코시티가 동성 커플의 민권을 인정했고, 조만간 낙태도 합법화될 전망이다. 과달루페 성모상이 나라의 상징물 자리를 놓고 국기와 경쟁하는 사회에서 옛날에는 그런 조치를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좌파 정치인들은 이제 교황청을 겁내지 않는다. 요한 바오로 시대의 정치인들은 “[교회를] 어느 정도 존중하고 그들과 싸워봤자 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고 멕시코 국립 인류학·역사학 대학의 종교 역사가 엘리오 마스페레르 칸이 말했다. 이제 그들은 교회를 “종이 호랑이”로 간주한다.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의 법관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은 지난해 낙태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베네딕토가 중남미에서 좀 더 활약한다고 해도 사태가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 그가 이 지역 일에 한 번 간섭한 일이 가톨릭 신자들의 마음을 달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멀어지게만 만들었다. 교황은 지난해 10월 해방신학자 존 소브리노 신부를 신랄하게 규탄하는 교황청 문서를 직접 결재했다. 여기서의 모순은 진보적 가톨릭 사회운동인 해방신학이 요즘은 이미 용도폐기됐다고 간주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교황의 비난은 많은 사람 눈에 비열하고 불필요한 행위로 비췄다. 성직자 출신인 브라질인 레오나르도 보프는 공개서한을 보내 교황의 재가는 “나를 슬프게 하고 빈민들을 속였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또 베네딕토가 얼마나 보수적이며 주류에서 동떨어졌는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그것이 장차, 특히 그가 구시대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중남미 국가에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킬 듯하다. 교황청은 4월 하순 앞으로는 신도들이 사전승인 없이 라틴어 미사를 올려도 좋다고 승인할 전망이다. 이것은 대대적인 시대의 역행이다. 교황 바오로 6세가 1969년 라틴어 미사를 폐지시켰다. 현대 가톨릭 신자 중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비교적 소수다. 그러나 라칭어는 그런 데 개의치 않는다. “그는 옛날 교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구시대 인물”이라고 2006년 교황 전기를 내 절찬 받은 작가 데이비드 깁슨은 말했다. 깁슨에 따르면 문제는 베네딕토가 “자신이 학자가 아니라 세계 지도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 하는 듯하다”는 점이다. 사실 결코 적성에 맞지 않는 자리에 선출됐다는 사실이 교황의 큰 불행일지도 모른다. 교황청은 사제와 수녀의 극심한 부족 사태에 직면했고, 도덕적 권위는 아동 성추행 추문으로 얼룩졌다. 그런 처지이니 세계의 11억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현재와 미래의 문제와 씨름하도록 인도할 목자가 필요하다. 그들은 대신 낡은 의식과 논쟁을 되살리는 일에 더 관심 많은 은둔적 지식인을 얻었다. With JACOPO BARIGAZZI in Milan and MAC MARGOLIS in Rio de Jane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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