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나 산보다 깊은 사람의 향기
바다나 산보다 깊은 사람의 향기
▶압록강 대교 앞에서 찍은 사진. |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반복되는 일상’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한다. ‘일탈’을 꿈꾸고 산 지 수십 년. 하지만 당장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2년 전부터 골방에서 뒹굴고 있던 여행용 가방을 챙겨든다. 우연히 만난 여행사 사장을 통해 뜬금없이 백두산 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뱃길 여행이다. 뜻밖이다. 뱃길이라 값은 조금 쌌다.
무기력한 일상 벗어나 배를 타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에 카메라 배낭과 멜빵 가방까지, 주렁주렁 메고 끌고 하면서 어렵사리 인천항 제1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행여 배멀미가 걱정스러워 약을 먹고 단둥페리 동방명주호에 몸을 싣는다. 지정된 3층 객실 안은 비수기라 우리 일행의 전용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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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고 동창 다섯 사람의 이야기 일행이 다들 잠이 든 후에도 끝까지 남아 얘기를 했던 사람은 에스원 협력사인 미성통신의 김노경(56) 전무다. 한양대 공대를 졸업했다는 그는 다섯 명 중에서 가장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여행 중 여러 차례 같이 대작할 기회가 있었는데, 필자보다 더 늦게까지 자리를 지켜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렇게 술을 좋아함에도 몸이 날렵해 백두산 천지는 손쉽게 올라갔고, 늦둥이 딸 키우는 재미에 폭 빠져 있는 듯하다. 배는 요동도 없이 단둥 동항에 멈추었고, 시각은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한국과 시차가 한 시간 차이니까 중국 시각으로는 오전 9시다. 이내 옌볜대학을 졸업했다는 40대 중반의 조선족 남자 안내원과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운전사가 기다리는 버스에 올라 도착한 곳은 단둥의 조선관(0415-3139919)이라는 식당.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조선족 아가씨의 접대를 받으며 식사를 하고 버스는 본격적으로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가는 도중 고교 동창 중에서 후배라는 노경래(53)씨는 안주를 구입한다는 이유로 자그마한 소읍에 잠시 차를 멈추게 했다. 그는 배 안에 들어서자마자 러닝셔츠에 파자마를 입고 다녔으며, 경기도 양평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시골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때 연예기획 쪽에서도 일을 하고 지금은 재건축업을 하고 있었다. 시골 집은 별장으로 이용하고, 사촌 동생이 노웅래 국회의원이었다.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외모와 달리 순발력이 빼어났는데, 후일담으로 “단체에서 분위기가 흐려지면 안 되니까 조율을 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나중에 공항까지 마중 나온 아내(일행 중 유일하게 아내가 마중 나왔으며 덕분에 충무로까지 합승할 수 있었다)에게 ‘추워서 혼났다’는 말로 어리광을 피웠다. 소읍을 구경하고 강냉이튀김을 사고 난 후 사람들은 여행이 즐거운지 버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먼저 잡은 사람은 ‘동서케터링’의 이경택(56) 사장이었다. 8대 2 가르마를 탄, 얼굴에는 정교함이 가득해 첫눈에도 ‘성실맨’이라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동창들보다 다소 젊게 보였으며 농담도 섞지 않고 말을 하는 본새가 진지해 선뜻 다가서기 쉽지 않은 스타일이다. 젊어서 경남기업에 다니다 대우 부도사건 이후 사업체를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학교 식당에 식품을 대주는 사업체라는 말은 주변 친구에게 들었다. 그는 그날 이후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으며 담배도 피우지 않고 사진 찍는 것조차 싫어해 별로 노출된 이야기가 없다. 단지 그의 딸이 유명한 가수의 코디네이터였다는 정도다. 또 한 분, 버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며 점수를 받은 사람은 대우교역의 김정선(56) 사장이다. 쌍꺼풀 진 눈에 얼굴빛이 거무칙칙하고 피부가 성글어 첫인상이 매우 강하다. 별명이 ‘너훈아’라고 하는데, 분위기도 약간 비슷하다. 그는 ‘인생’이라는 트로트 가요를 맛깔스럽게 부르는가 싶더니 김종환의 ‘백년의 약속’을 미성으로 불러 젖혀 좌중을 뒤흔들었다. 오죽했으면 집에 두고 온 부인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이 생길 정도였을까? 부인이 오래전부터 광장시장에서 포목점을 하고 본인은 의약품 등등 무역업을 하고 있단다. 흥겨운 시간을 보내면서 그렇게 6시간 정도 달렸을까? 종착지는 퉁화였고, 차를 내리자마자 미아리 미식성(0435-3254788)이라는 곳에서 바쁘게 밥을 먹고 이내 스케줄대로 발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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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백하역에 내려 백두산에 오르다 이어 퉁화역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제복을 입은 중년 여성이 기차에 오른 것 빼고는 어릴 적 타던 완행열차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흔들거리는 기차, 침대칸에 몸을 싣고 백두산의 초입인 이도백하역까지 대여섯 시간 정도 달려가야 한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와 칠흑처럼 어두운 차창 밖으로 희미한 불빛이 스며들었다. 어릴 적 기차여행을 하던 추억에 코끝이 찡해진다. 아주 잠시 잠을 청하고 이도백하역에 내릴 때는 이른 아침. 강원도식당(0433-5751166)이라는 곳에서 아침을 먹었다. 양양 고향땅에서 이곳에 온 지 40년이 흘렀다는 최옥자라는 여주인의 솜씨가 제법 근사하다. 가마솥에 밥을 짓고, 더덕과 고사리, 된장찌개 등등. 구수한 숭늉 한 잔으로 입을 축이고 드디어 백두산으로 향했다. 이곳부터는 지프다.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미인송이라는 소나무 군락지의 설화가 멋지다. 지금은 문을 닫아 걸었다는 대우호텔을 지나 장백산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매표소 앞에 섰다. 백두산(2750m)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장백산이라는 이름만 남아 있는 고구려 땅. 역사는 흘러갔지만 괜스레 가슴속 한쪽에 울화가 치민다. 다시 셔틀로 바꿔 탔다. 차가 멈추는 곳(대략 1800m고지 정도)부터는 본격적인 산행이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이 눈앞에 다가서고, 멀리 장백폭포와 반대편에 백두폭포의 두꺼운 얼음층이 시야에 들어온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면서 눈길을 걷고 터널을 지나 천지를 만났다. 하지만 호수의 물은 볼 수 없고 오로지 얼음판이다. 10월 중순부터 다음해 6월 중순까지 얼어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백두산의 민족 정기를 받으며 들뜬 표정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백두산 여행이 잘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건은 그 이후부터다. 산에서 시간이 많이 지체돼 온천욕은 할 수 없게 되었고 대신 전날 미리 돈을 냈던 설장차(1인당 3만원)를 타고 천문봉에 올라 천지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일정을 접기로 했다. 바퀴가 마치 탱크처럼 되어 있어 힘이 좋아 보이는데, 문제는 사각진 공간에 30여 명의 인원을 콩나물시루처럼 쑤셔 박는다는 것이다. 거리도 길어서 40여 분은 족히 올라가야 한다. 산행에 지친 몸과 짊어진 배낭, 사람들로 꿈쩍할 수도 없는 상황. 밀리고 찌그러지고, 밖은 볼 수도 없는 역경을 견디면서 올라가서는 겨우 ‘천지’라는 팻말 앞에서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는 일뿐이었다. 날씨가 갑자기 흐려졌기 때문이다. 일행들의 불만스러운 목소리는 커지고, 겨우 내려와 라면과 찬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고구려 문화유적지가 흩어져 있는 지안(集安)까지 갔다.
길을 잃어도 즐겁기만 하지만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일이 인생.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지프 3대에 나누어 탔다. 맨 앞 차량에 가이드가 타고 길을 안내하는데, 지름길이라는 비포장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문제는 서로의 사인이 맞지 않아 차 3대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있지만 그것조차 연락이 안 되는 상황. 차 안은 금세 또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눈은 계속 내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운전사만 있는 암울한 현실 앞에서도 필자의 궁금증은 계속된다. 여행객 중 남자 두 명이 함께 왔다. 두 사람은 한성중·고 동창생이라고 했는데 여행 시작부터 내릴 때까지 나이를 줄여 말해 늘 헷갈리게 했다. 무역업을 하고 있다는 강은형(53)씨는 미국에서 과자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고 한다. 대기업이 끼어들기 전까지는 ‘재미’가 있었단다. 그는 여행 떠나기 한 달 전쯤 허리를 다쳐 기어다닐 지경이어서 아내가 배 여행을 극구 말렸는데, 다행히 떠날 즈음에는 나아져 조심스레 뱃길에 올랐다고 한다. 사업차 미국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배 여행은 처음이라는 그는 이 여행을 위해 전날 밤새 일을 하고 왔다고 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묘하게 숨기길 좋아했으며 콩나물시루 같은 설장차에서 뜬금없이 화를 내는 바람에 사람을 당황하게 했다. 같이 온 친구 말로는 그래서 그의 별명이 ‘휘발유 혹은 프로판가스’라고 했다. 순간순간 눈치를 잘 봐, 눈 한번 싹 돌리고 나서 여흥 장소는 잽싸게 피해버리고 나서는 뒤에 가서 꼭 한마디씩 한다. “이 작가, 어제 내가 알던 노래 부르던데” 하면서 말이다. 또 친구라는 현건성(52)씨는 지프에 동석한 사람이다. 미륵보살 같은 인상에 웃음이 편안한데, 선글라스는 구식이면서도 독특했다. 그는 88년부터 해외 여행을 다닐 정도로 여행 베테랑이었다. 학창시절에도 공부를 잘해 반장을 도맡아 했고, 연세대를 졸업했고 바이엘 제약회사를 다녔으며 상무까지 재직했다고 한다. 처음 직장일로 해외 여행을 가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단다. 여행이 너무 좋아 회사까지 퇴직하고 지금은 제약업 도매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꽤 잘사는지 친구는 그가 ‘벤츠’를 타고 다닌다고 했으며, 말 중에 아들이 중국 유학 중이라고도 했다. 여행 경험이 많은 그는 비행기보다 배 여행이 훨씬 좋다고 했다. 그리고 필자에게 우선 베이징을 가보고 자금성을 보라고 일러주었다.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보였다. 또 한 사람이 혼자 온 이창열(46)씨다. 처음 배 안에서는 조용히 잠을 자는가 싶더니, 지프 안에서는 끊임없이 말을 해댔다. 대구가 고향이라는 그는 사투리를 많이 썼고, 특히 졸본성이나 고구려 유적지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졌다. 한때 룸살롱과 레스토랑을 경영하다 체질에 맞지 않아 그것도 때려치우고 지금은 혼자 여행을 다닌단다. 얘기 도중 아들을 중국에 유학보내고 있다고 했으며 집도 마포에 이름난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놀면서 돈은 어떻게 벌었을까 내심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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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벗처럼 배 안에서 밤새 여흥 어쨌든 베일이 벗겨지듯 사람 속살이 드러나고 오랫동안 사귄 사람처럼 친밀해졌다. 그날 어찌어찌해서 겨우 일행을 다 만났지만 목적지인 지안까지 4~5시간을 더 달려간다는 것은 무리였고, 여기서부터 일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자그마한 소읍의, 한족이 하는 정통 중식집인 백순비우(0439-6522278)라는 식당에서 양고기 샤부샤부를 먹었다. 양고기에 대한 선입견으로 먹기를 꺼려하고 있는데, 일행 중 이영철(57)씨가 말문을 연다. 우선 이들은 부부팀으로 50대 후반인데도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스타일이었다. 이영철씨는 깔끔한 외모만큼 칼 같은 성격으로 접근이 쉽지 않았는데, 흘려들은 말로는 수도공고를 졸업했다는 것과 ‘중국 안산’에 사업체가 있다는 정도다. 그래서인지 중국에 대해 제법 조예가 깊은 듯 차근차근 설명을 잇는다. “중국에서는 양고기를 최상의 고기로 치는데, 얼마나 인기가 높으면 ‘양두구육’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왔겠는가”라고. 백두산에서 길을 잃고 헤맬 당시 의외로 여행을 매우 재미있어 했다. 그는 “잘 짜인 편한 여행은 순간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기억에 남는 게 없었다. 이렇게 고생을 하니 훨씬 즐거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후 일정도 괜찮았다. 지안시의 고구려 유적지를 샅샅이 둘러보고 다시 단둥으로 나와 북한 식당에 들러 북한 아가씨의 접대를 받으며 흥겹게 놀았으며 저녁에는 숙소를 빠져나와 가이드, 여행사 직원과 함께했다. 중국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꼬치구이집(‘串’자라는 글자는 중국식으로 ‘촨’으로 읽힌다)에 앉아 양고기, 생선류, 조개류, 닭발 등 1위안짜리 꼬치를 원없이 먹었다. 중국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독한 고량주를 마시고 조선족이 하는 노래방까지 갔다. 돌아오는 날, 환도장성에 올라 고구려 박작성의 사라진 흔적을 찾으며 울분을 토해냈고, 유람선을 타고 지척으로 신의주를 보고, 북한 사람들의 몸짓을 보면서, 이렇게 가까운 곳인데 왜 그다지도 멀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하는 생각들이 맴돌았다. 5박6일 동안 친해진 사람들은 재래시장에서 저녁에 먹을 안주를 많이도 준비했다. 인천항으로 오는 배에 올라 떠나던 첫날처럼 자리를 잡았지만, 떠날 때의 서먹함은 사라지고 헤어짐의 아쉬움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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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여행코스 ▶ 1일째 : 인천항 제1국제여객터미널에서 만남(오후 2시30분쯤)-승선 및 출항(오후 4시쯤). 석식과 조식은 선상에서 해결. ▶ 2일째 : 중국 단둥 동항 도착(오전 9~10시쯤)-전용버스로 단둥으로 이동(40분 소요)해 중식-환런에서 주마간산으로 졸본성 감상-퉁화 도착 후 석식-발마사지-열차 이동. ▶ 3일째 : 이도백하역 도착(오전 4시30분쯤)-조식 후 지프로 백두산 북파로 이동-셔틀 이용해 1800고지부터 산행-하산(도시락을 먹기로 했지만 설장차 일정 탓으로 뒤로 미뤄짐)-설장차(개인부담금 3만원) 타고 천문봉·천지 감상 후 기념품 가게에서 찬밥과 라면으로 끼니 해결-지안으로 이동(이동 중 서로 길을 잘못 들어 이름도 알 수 없는 소읍에 정착)-소읍 식당에서 양고기 샤부샤부 먹고 퉁화시 호텔로 이동(새벽 2시 넘음). ▶ 4일째 : 호텔 조식-퉁화에서 지안으로 이동-광개토왕릉·장수왕릉·고분군 등 고구려 문화유적지 감상-지안에서 중식(참기름, 참깨, 장뇌삼 등 판매)-단둥 이동 후 평양식당에서 석식-압록강 대교 야경-호텔 도착. ▶ 5일째 : 호텔 조식-호산장성-유람선 타고 압록강 대교와 신의주 감상-중식 후 동항으로 이동-승선. ▶ 6일째 : 인천항 도착(오전 9시쯤). |
·여행사 정보 강산여행사(011-239-2511, www.kangsantour.co.kr) 조영달 사장을 만나 여행 신청을 했고 여행길에는 연안여행사(010-9468-6645, www.yeonan.co.kr)와 고구려여행사(019-204-0893)가 함께했다. 세 곳 다 신청이 가능하며 개인적으로 가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고 짜임새도 괜찮다. ·여행출발 시간과 비자 매주 수, 금요일 인천항 제1국제여객터미널 출발(단 인원이 15명 이상 되지 않으면 다른 여행사로 합류할 수 있음.) 여권이 없어도 신분증만 있으면 선상비자도 가능. ·여행경비 48만원(5월 말까지만 적용. 6월부터는 종주코스이기 때문에 변동) ·여행 준비물 백두산은 한겨울뿐 아니라 5월 말 해빙기 때도 눈이 남아있을 수 있으므로 겨울 등산장비는 필수. 등산화, 스패치, 모자, 눈빛 차단 선글라스, 장갑, 지팡이 등.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백두산 입구 상점에서 빌려 쓸 수도 있다. 짐은 따로 맡아주기 않기 때문에 여행용 가방을 준비해 넣어가는 것이 좋다. ·그외 참고사항 음식은 대부분 우리 입맛에 맞았다. 유난히 입맛이 까다롭지 않다면 따로 밑반찬은 준비 하지 않아도 된다. 소화제, 두통약, 변비약, 설사약 등은 꼭 챙겨 가고, 현지 상점을 이용할 때는 중국돈(위안)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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