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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가 의사보다 대우 좋다”

“기술자가 의사보다 대우 좋다”

▶김 지사는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와 우호협력을 체결했다.

인도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 도약의 속도가 무서울 정도였다. 미국을 상대할 나라가 누구인가. 인도인들은 바로 ‘인도 자신’이라고 말한다. 나는 벵갈루루에 있는 세계적인 IT기업 인포시스(Infosys)의 나라야나 무르티(61) 명예회장을 직접 만나고 나서야 인도인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았다. “우리는 미국과 경쟁한다는 생각으로 기업을 시작했습니다. 세계 최고가 목표입니다.” 단호하게 목표를 말하며 무르티 회장은 내게 인포시스를 소재로 쓴 베스트셀러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를 건넸다. 인도라고 미국이나 영국만 못하라는 법은 없지 않으냐는 이야기다. 무르티 회장은 인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킨 주인공이다. 인도인들은 그를 두고 ‘인도의 빌 게이츠’ ‘뉴 인디아의 간디’로 부른다. 그가 단순히 미국 증시에 기업을 상장한 게 전부라면 굳이 빌 게이츠나, 마하트마 간디로 추앙할 이유는 없을 터인데, 대화하면서 그가 그럴 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열린 사고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많은 사람이 그렇듯 저도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투옥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결코 약한 자의 편도 아니며, 가난한 자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회주의에 희망은 없었습니다. 인도의 절대빈곤, 경쟁이 무시되는 사회주의의 게으름과 무책임에 실망했고 전 스스로 사회주의자에서 기업가로 변신했습니다.” 나는 나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사회주의에 반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인으로, 그는 기업인이라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생각과 철학이 비슷하다는 생각에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아내에게 받은 250달러로 20여 년 만에 직원 5만8000명, 재산 12억 달러의 글로벌 기업을 키워낸 전설 같은 인물과 공통점을 발견해서일까.

▶인포시스의 나라야나 무르티 회장과 함께한 김 지사.



“한국 현실과 너무 달라 창피” 그러나 마음 한쪽은 무거웠다. 인도는 이미 세계시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제자리걸음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눠 다툼을 벌이고 있다. 중국·인도·싱가포르·홍콩 등 각국이 분초를 다투며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가장 경쟁력이 높다는 수도권을 꽁꽁 묶을 궁리에 아까운 시간 다 보낸다. 내일의 대한민국 국력을 결정지을 공장도, 학교도, 문화시설도 세우지 못하게 한다. 규제에 묶여 ‘죽은 땅’으로 방치돼 있는 땅이 수도권에만 수천만 평에 이른다. 그러면서 말로만 경제 선진국, 교육 선진국, 문화 선진국을 외친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자칭 IT 강국, 한국에는 왜 ‘인포시스’ 같은 기업이 없는 것일까. 이공계 출신과 기술자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구호가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인도의 기술자들이 대학교수, 의사, 변호사보다 나은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은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인도에서 대학 졸업 후 받는 IT 기술자들의 초임이 월 1000달러다. 우리 돈으로 100만원쯤 되니 그렇게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도 대학교수의 월급이 400달러라는 점에 비춰 이들 IT 기술자에 대한 예우가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 기술은 국가의 명운이 걸린 문제다. 후손들의 삶을 결정하는 문제다. 이공계 출신이 의사 시험 보고, 변호사 시험 보고, 공무원 시험 보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내일은 없다. 인도는 IT 강국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만 존재하는 나라는 아니었다.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 웃통을 벗고 일하는 ‘도비갓’이라는 빨래터에서 나는 인도의 어둠을 보았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당신 같은 높은 분이 왜 이곳까지 찾아왔느냐.” 그래서 “당신들 사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자 “우리 정치인은 아직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며 반가워했다. 우리를 안내했던 인도 고위관료 수행운전사조차 “비천한 이곳을 찾는 인도 지도자는 없다”고 말했다. 이게 오늘날 또 다른 인도의 실상이고, 인도인의 눈에 비친 인도 지도자의 모습이다. 무르티 회장과 같은 기업인은 21세기의 간디 노릇을 하는 반면, 정치인은 그렇지 못했다. 정치인은 과연 어때야 하는가. 간디 기념관을 설레는 마음으로 찾았다. 하지만 간디 기념관은 너무나 초라하고 낡아서 실망감이 없지 않았다. 모금함에 얼마의 기부금을 내면서 지도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국가 지도자에 대한 정부의 예우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상념이 일었다. 나는 인도의 경제중심지 마하라슈트라 주와 인도 역사상 처음으로 우호협력을 체결했다. 사실 놀라운 성과다. 마하라슈트라 주는 경기도 면적의 31배, 인구만도 1억 명에 가까운 거대 도시다. 경기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규모다. 마하라슈트라가 추진하고 있는 대형 건설 프로젝트만도 국제공항 3개, 항구 50개, 철도, 도로, 신도시, 자동차 등 어마어마하다. 잘만 하면 우리에게 엄청난 이득을 안겨 줄 수 있는 도시다.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때 데쉬무크 주 총리가 “경기도는 아주 특별하다”고 말했다. 마하라슈트라가 왜 많은 도시를 두고 대한민국 경기도를 사업 파트너로 삼았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개방성이고, 배우겠다는 학습의 자세다. 마하라슈트라는 삼성, LG, 현대차의 투자를 유치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마하라슈트라가 경기도를 파트너로 삼았듯이, 우리 경기도 역시 마하라슈트라가 필요하다.


일본…대졸 초임 우리보다도 적어


기업들 한국 투자 주저… 우리 아이들은 뭘 먹고 사나
5월 10일 오전 9시 비행기를 타고, 일본 도쿄에 가서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업체 30여 개를 대상으로 ‘경기도 투자유치설명회’를 하고 오후 8시 비행기로 돌아왔다. 단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자니 도쿄호텔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돌아왔다. 피곤하기도 하지만 내 마음은 몹시 무겁다. 우리나라에 투자할 기업이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ㆍ디스플레이가 이 정도인데, 어느 업종이 우리나라에 투자하겠다고 할지…아무리 생각하고, 물어봐도 답이 없다. 처음엔 우리도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화수 한국노총 경기도본부 위원장과 삼성 간부들, 일본에서 경기도에 들어와 효율을 높인 기업들도 함께 갔기 때문이다. 또 모든 기업이 아니라 F기업, H기업 등을 타깃으로 정해놓고 간 것이었다. 이들 기업은 이른바 LCD 디스플레이의 핵심 부품을 만드는 기업이다. 그들의 최대 바이어인 삼성, LG필립스LCD 등과 가까워진다는 이점에도 그들의 대답은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첫째는 인건비 문제다. 그들은 “일본 공대 출신 초임이 우리 돈으로 160만원 정도인데 한국은 우리보다 비싸다”고 말했다. 인건비 측면에서 일본보다 우리가 유리하지 않게 되었다. 땅값도 우리가 너무 올라 일본과 비슷해졌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물론 일본의 엔고(高)가 끝나고, 최근 3년간 우리의 원화가 30% 절상돼 원고(高)가 된 원인이 크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일본의 대졸 초임은 제자리걸음인데 비해 우리는 해마다 5% 정도씩 오른 것 역시 원인이다. 일본은 지난 20년간 뼈를 깎는 노력으로 비용 절감을 이루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한 것이다. 이화수 한국노총 경기도본부 위원장은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일자리다. 고용 안정을 위해 외국 기업들이 국내에 진출해 기업을 설립하면 다소나마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 특히 현대자동차 같은 경우에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계속 주장하고 성과급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단행했는데, 걱정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우린 거꾸로 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태목 경기도 사무관은 “투자 여부는 두고 봐야 하지만 걱정스럽다”며 이렇게 말했다. “LCD 디스플레이 산업의 기술은 독점적이다. 핵심부품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70~80%의 독점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이 굳이 한국에 들어와야 할 이유가 있나. 일본에 공장이 있는데 한국에 또 하나를 지으면 이중부담이고 한국은 노동시장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환경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순 없다. 그런데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 대통령이나 부처 장관들은 어떤가. 공장 지을 사람도 없는데 ‘지어라’도 아니고 ‘짓지 말라’며 규제한다. 대낮에 촛불 들고 돌아다니는 꼴이다. 우린 우물 안 개구리다. 중국ㆍ일본을 같이 보면서 살아야 하는데, 정말 샌드위치 신세가 돼 버린 걸까. 돌아오는 하네다 공항 대합실에서 안성의 어떤 공장 젊은 사장이 날 알아보고 “할 말이 많다”며 한참 하소연했다 1000명을 고용해 2000억원 매출을 올리는 작지 않은 전자공장 사장인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공장을 할 수 없을 정도인데, 투자한 시설비가 300억원이 넘으니 당장 걷어치우고 외국으로 나갈 수도 없다”며 괴로워했다. 벌써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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