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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주자들에 ‘정책 세일’ 압박용?

대권 주자들에 ‘정책 세일’ 압박용?

“미래 예측과 국가 미래전략 수립을 전담하는 국가미래전략처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해야 한다.” “10년 후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 끝에 8대 신성장동력 산업군을 제안한다.”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경제공동체 구성을 통한 동북아 신질서 구축 때 주도적 구실을 할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일까? 아니다. 모두 민간 포럼에서 나온 주장이다. 그것도 지난주(11월 5~9일)에 출범한 새내기 포럼에서 나온 얘기들이다. 대선이 30여 일 남았으면 위 발언들은 주로 대선 후보 입에서 경쟁적으로 나올 법하다. 하지만 대선판이 혼전에 빠지고, 정책대결이 사라지면서 각 대선캠프는 새로운 공약을 내놓는 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그 자리를 재계·학계 인사들이 모여 대신 하는 양상이다. 지난주에만 전경련 신성장동력포럼, 국가미래정책포럼, 한반도미래포럼, 차이나포럼 등 경제 관련 조직이 앞다퉈 발족했다. 최근 조직된 포럼은 모두 ‘국가 성장동력 산업’ ‘국가 미래 전략’ ‘중국 리스크’ ‘한반도 경제’ 등 우리나라 경제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당연히 ‘다음 대통령을 맡겨 달라’는 대선 후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경제 이슈고, 진지한 고민과 토론이 벌어져야 할 주제다. 하지만 사실상 이런 기대는 물 건너 갔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9일 오전 7시30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20층에는 100여 명의 재계·학계·연구기관 관계자가 모였다. 학계에서는 서정선(서울대 의대), 김태유(서울대 산업공학과), 정경원(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한민구(서울대 전기공학부), 김현수(성균관대 과학기술대학원) 교수 등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모였다. LG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 한국산업기술재단, 한국개발연구원 등 연구기관에서도 15명 정도가 참석했다. 50여 곳에 달하는 전경련 소속 기업 임원들과 각종 산업협회장들도 보였다. 이들은 ‘신성장동력포럼’의 출범 멤버였다. 이날 좌장을 맡은 김윤 삼양사 회장은 “10년 후 한국이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최대 고민거리”라며 “기업인과 학자들이 모여 미래 성장동력 산업의 해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이날 ‘미래 트렌드와 차세대 유망 산업’이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선 조용수(미래전략그룹장) LG경제연구원 박사는 “한국경제는 성장 한계에 당면해 있다”면서 8대 유망 산업군을 제시했다. 정부가 2003년부터 주도적으로 ‘10대 성장 동력산업’을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나온 제안이라 특히 주목을 끌었다.

최근 2주일 사이 5개 생겨
조용수 박사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10대 성장 동력산업은 대부분 제조업·기술 중심”이라며 “환경 에너지와 디자인, 금융, 법률 등과 같은 비즈니스 서비스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8대 유망 산업군은 헬스케어, 엔터테인먼트, 환경 에너지, 차세대 통신, 지능형 부품·소재, 메카트로닉스, 비즈니스 서비스, 라이프 서비스. 이와 관련해 조 박사가 ‘제조업 기반의 서비스산업 육성’을 강조하자, 정경원 카이스트 교수는 “서비스나 솔루션이 뛰어나도 제조업이 없으면 사상누각”이라고 했다. 임승순 한양대 교수는 “신성장동력 산업을 선정하는 것에 앞서 국내 산업의 전반적인 기술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토론은 시종 진지했다. “새로운 산업 육성에서 인재 양성 부문이 등한시된 것 같다”(김현수 성균관대 교수), “기존 산업이나 제품을 업그레이드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한 축과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축을 갖고 이 문제를 고민해 보자”(이은호 전경련 부회장) 등의 의견도 교환됐다. 대선 후보들이 TV토론에 나와 “10년 후 한국이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나?”를 놓고 벌일 논의와 고민을 이들이 이른 아침에 모여 하고 있었다. 앞서 지난 5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는 ‘국가 미래정책 포럼’이 출범했다. 오명 (전 과기 부총리) 건국대 총장이 이사장을 맡은 이 포럼에는 학계를 중심으로 120여 명의 전문가가 모였다. 오명 이사장은 “국가와 사회 전반에 걸친 패러다임 전환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국정운영 시스템의 정비 없이는 우리나라의 생존과 발전 전망은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 직속기구로 국가미래전략처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미래정책포럼 산하 국가미래정책연구원장을 맡은 김성태 성균관대 교수는 “영국의 총리 직속 미래전략처,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핀란드 국회 소속 미래상임위원회처럼 우리나라도 국가 미래전략 수립을 위한 싱크탱크 역할을 할 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이 모임은 미래를 향한 지식인 연대로 우리나라가 당면한 문제를 미래지향적으로 조명하고 대안을 제시해 비전 있는 정책 수립과 집행이 이루어지게 하는 촉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칭 국가미래전략처는 오래 전부터 신설이 논의됐던 기관. 하지만 여야 어떤 후보도 이를 공약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날, 산학연 1000여 명이 회원으로 참가하는 ‘차이나 포럼’도 출범했다. 대한상공회의소, 무역협회가 주관하고 산업자원부가 후원하는 이 포럼은 중국에 대한 국가 전략 마련을 위한 민관 공동 네트워크 형태다.

정치적 목적이란 시각도
중국 리스크가 갈수록 심화되는 가운데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자’는 취지에서 발족한 차이나포럼은 정부와 재계·학계가 머리를 맞대 중국 발전방향을 분석·전망하고 그 결과를 정부 정책과 기업 전략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한·미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북한 경제를 연구하는 한반도미래포럼도 지난 5일 출범했다. 정덕구(전 산자부 장관·고려대 교수) 니어(NEAR)재단 이사장이 주도한 이 포럼에는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한미연구원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정덕구 이사장은 이날 포럼 출범식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경제공동체 구성을 통한 동북아 신질서를 구축할 때 주도적 구실을 할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며 “한반도미래포럼은 한반도 경제 구상을 목표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실질적 연구와 국제 지적 네트워크 구축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민간 포럼이 잇따라 출현하는 것과 관련, 일각에서는 “대선 캠프 공약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일환”이라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실제로 각 대선캠프는 그동안 공약을 만드느라 각종 산업협회, 시민단체, 기관, 학회 등과 다각적인 접촉을 벌였다. 한 예로 한국벤처협회 관계자는 “여야 할 것 없이 캠프 쪽에서 공약을 만들 아이디어를 제출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며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최대한 얻을 것은 얻는다는 방침에 따라 요구사항을 만들어 제출했다”고 말했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포럼이 출범하는 것 역시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지난 9일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신성장동력포럼’ 출범식에 참석한 한 대기업 상무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하고 기업은 따르라는 분위기에 이번 포럼 출범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전경련과 국가미래정책포럼 측은 “순수한 의도로 출범한 것이지, 정치적 고려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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