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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 목 좋은 상권 샅샅이 뒤져

한 달간 목 좋은 상권 샅샅이 뒤져

백견이불여일행(百見而不如一行)이라는 말이 있다. 창업 세계에서 통하는 얘기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접해도 현장에서 만나는 반전과 위기를 모두 예측할 수는 없다. 이코노미스트가 예비 창업자를 위한 생생한 창업일지를 마련했다. 윤민철 예비 사장의 창업 준비부터 영업까지 과정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광면’ 화정로데오점 윤 사장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김원석 신씨화로 대표의 창업 노하우도 정리했다.
오늘도 허탕이다. 여주, 양평, 이천…. 여기저기 땅을 보러 다니는 동안 여름 한철이 다 갔다.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일주일에 두 번 대학교에서 강의해 모은 종자돈을 잘 굴려봐야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다. 잘 모르는 증권은 이제 공부를 시작하려니 막차 타는 것 같아 그만뒀다. 그런데 부동산도 쉽지 않다. 땅값은 오를 대로 올랐고 규제 때문에 시장이 좋지 않다. 수익형 부동산이 뜬다니 분양보다 임대 쪽이 유리할 것도 같다. 상권을 찾아볼까? 추석을 보내고 신촌 ‘걷고 싶은 거리’의 부동산 사무소를 찾았다. 괜찮은 곳을 몇 군데 봤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1층 매물은 권리금이 너무 비싸고, 값이 적당한 곳은 위험이 따르는 2층이다. 희한하게 싼 집이 있어 건축대장, 등기부등본을 조사해 보니 무허가 불법 점포였다. 한숨이 나왔다. 하루에 한 군데씩만 찾자고 마음먹고 한 달 동안 홍대앞, 신사동, 이대앞, 서소문, 광화문, 서울역, 화정, 일산 등 시간 날 때마다 상권을 뒤졌다. 점포를 구할 때까지 아이템을 찾기로 했다. 사업 경험이 전혀 없는 나는 ‘신씨화로’로 유명한 김원석 대표를 찾았다. 상권분석에 관해 조언도 구하고 적당한 아이템을 소개받을 생각이었다. 김 대표는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아이템 두 가지를 제안했다. 일본식 바(Bar)형 라면전문점인 ‘광면’과 커피전문점인 ‘앤트스텔라’였다. 두 브랜드 모두 1호점을 낸 상태다. 마침 광면 1호점이 집에서 가까운 일산 웨스턴돔에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하루도 빠짐없이 먹을 정도로 라면을 좋아하던 나는 우선 광면 1호점을 찾았다. ‘아니, 이럴 수가?’


윤 사장의 ‘광면’ 창업 일지

▶점포 구하기 9월 말~10월 중순=신촌, 홍대앞, 신사동, 이대앞 등 상권분석 10월 15일=집에서 가까운 화정 로데오거리 8평짜리 1층 계약

▶설비 공사 10월 17일=열쇠 건네받고 철거 시작(기초설비, 목공, 도색, 조적, 바닥, 전기 공사) 11월 1일=요식업협회에서 위생교육 받음, 관할 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 마침(바닥공사 중 하수구 막힌 것 발견)

▶비용 가게 임대료=보증금 2000만원, 권리금 7000만원, 월세 170만원 체인점비=인테리어비 3500만원, 시설비 1500만원, 기타 1500만원
라면을 먹으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처음 본 광경이었다. 인테리어도 세련되고 심플했다. 두세 번 먹어보니 맛도 괜찮았다. 광면은 손님이 원하는 대로 라면을 선택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신라면, 안성탕면, 너구리…. 평소 즐겨 먹던 대로 주문할 수 있다. 이거면 되겠다는 느낌이 왔다. 마음을 굳히자 일 진행이 빨라졌다. 화정 로데오거리에 실평수 26.4㎡(8평)짜리 1층 가게가 매물로 나왔다. 화정은 집 근처라 잘 안다. 24시간 유동인구가 많고 대부분 10, 20대라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광면과 잘 맞았다. 보증금 2000만원, 권리금 7000만원, 월세 170만원에 건물주와 계약을 맺었다. 창업을 결심한 지 두 달 만이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광면에서는 메인 메뉴인 라면과 함께 꼬마김밥을 파는데 점포를 얻은 건물에 이미 김밥전문점이 있었던 것. 그쪽도 유명 가맹점 김밥 업체였다. 분양빌딩은 상가 주인만 오케이 하면 문제가 없지만 임대빌딩은 건물주가 모든 입점 상가를 관리하기 때문에 아이템을 중복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분양빌딩과 임대빌딩의 차이? 직장생활만 한 내가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장사했다는 김밥전문점 사장이 건물주에게 강하게 항의한 모양이다. 결국 내년에 김밥전문점이 점포를 비울 때까지 라면만 팔기로 건물주와 합의했다. 그쪽 가게에서도 라면을 팔지만 먼저 입점했으니 할 말이 없다. 억울했지만 이렇게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권리금 잔금을 치르고 상가의 전 주인에게 열쇠를 건네 받았다. 철거가 시작됐다. 공사 기간은 한 달. 설비 공사, 인테리어도 본사에서 맡아 해 줬다. 인테리어비 3500만원, 시설비 1500만원, 기타 1500만원으로 가맹비는 6500만원 정도 들었다.


창업 전 오려 두세요

목 좋은 점포 고르려면…

□ 점심시간을 피하라 점심때 북적이던 곳도 저녁에는 유령 상권 될 수 있다

□ 타깃층과 유동인구 나이대가 같은지 확인하라 학교 주변에서 호프집이 성공하겠는가. 손님은 학생 지도하느라 지친 선생님이 전부다

□ 뜨는 사업인지, 지는 사업인지 판단하라 일몰(日沒)하는 사업에 뛰어들면 인생도 몰락할 수 있다

□ 주변에 새로운 지하철역이 생기는지 주의하라 출퇴근 동선이 바뀌어 상권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계약을 잘하려면… □ 셜록 홈즈가 돼라 건물주의 인품·사생활·부채 관계를 알 수 있는 정보는 모조리 수집한다

□ 전 세입자가 왜 점포를 내놓았는지 물어라 대부분 건강, 이민, 가정불화, 동업자와의 갈등을 얘기한다. 더 깊은 속사정을 숨기려고 둘러대는 핑계일 수 있다

□ 건물주가 자기 건물에서 외식업을 하는지 알아보라 직접 외식업을 하고 있다면 무조건 들어가면 안 된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데 남이 하는 사업이 잘되면 과연?

□ 건물주가 아는 사람일 때 더 조심하라 웃으면서 시작해 멱살 잡고 끝나는 수가 있다.
상하수도, 바닥, 전기, 냉난방, 환기구 공사는 무척 중요한 작업이다. 진흙으로 미술작품을 만들 때 먼저 세우는 뼈대 같은 역할을 한다. 공사는 순서대로 잘 진행되는 듯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엄습해 오는 이 불안감은 무엇일까. 아, 간판! 간판 자리는 기본 뼈대 공사만큼 중요하다. 가게의 얼굴 역할을 하는 간판은 매출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여러 상가가 같이 있는 건물에서는 위층, 옆 가게 간판이 내 가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가게 입구 옆에 위층의 호프집 간판이 붙어 있었다. 경비실에 물어봤지만 어쩔 수가 없단다. 간판을 한 번 붙인 자리는 목숨 걸고 양보 안 하는 게 이 세계의 불문율이라니. 또 새로운 것을 배웠다. 창업이 증권, 부동산보다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입구 옆에 간판을 붙인 상가가 나갈 때를 잘 포착하는 수밖에 현재로선 뾰족한 방법이 없다. 임차하기 전 정면, 좌우, 측면, 돌출 부분 등 구석구석 꼼꼼하게 간판 자리를 챙겨야 한다. 어느새 11월이다. 생각보다 날씨가 따뜻해 미장 작업을 수월하게 끝냈다. 11월 첫날에는 요식업협회에서 위생교육을 받았다. 교육증이 있어야 사업자등록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교육은 오픈 전에 서둘러 받는 것이 좋다. 교육도 받고 관할 세무서에 사업자등록도 마쳤다. 사업자등록증을 받고 나니 내 가게라는 것이 실감났다. 가벼운 마음으로 세무서를 나서는데 작업 현장에서 걸려 온 전화. “급히 오셔야겠는데요.” 무슨 일일까. 마음이 다급해졌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기술자들이 일은 하지 않고 멀뚱멀뚱 나만 바라봤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이 온통 물이다. 공사를 하던 중에 하수구에서 물이 역류했다는 것이다. 경비실에서는 전에 있던 만두 가게에서 나온 만두가 하수구를 막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추측을 내놓았다. 건물주를 만나야겠다. 보수 공사비가 만만치 않게 들 것 같았다. 하필이면 사업자등록증을 받은 날 이런 일이 생길까. 오픈 때까지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다시 한번 되뇌었다. 공사 단계에서 첫 번째 위기를 만난 광면. 위기를 어떻게 해결했을지 두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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