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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두산 공용어로 쓸 생각”

“영어를 두산 공용어로 쓸 생각”

▶1955년생으로 고(故)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5남.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거쳐 미국 보스턴대 MBA를 졸업했다. 95년 두산그룹 기획조정실장 시절 두산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02년 두산 사장 취임 이후 고려산업개발, 대우종합기계, 밥캣 등 굵직굵직한 M&A를 성공시키며 두산의 주력사업부문을 소비재에서 중후장대 산업으로 바꿔놓았다. 지난해 말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에 취임했다.

지난 3월 14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미국 출장 중이었다. ‘2008 주목 받을 CEO’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하자 “전 큰 그림만 그렸을 뿐인데 실무진 덕택에 좋은 평가를 받게 된 것 같다”면서 “앞으로는 박정원 두산 부회장처럼 젊은 CEO들을 더 주목하게 될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박 회장이 미국에 간 이유는 명료했다. 지난해 인수하면서 전 세계 건설업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밥캣’과 두산인프라코어의 시너지를 구체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인수한 밥캣은 잉거솔랜드(Ingersoll Rand)사의 소형 건설장비 브랜드로 이 분야에서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포클레인이라는 회사에서 유래한 이름을 굴삭기 대신 포클레인이라 부르듯 외국에서는 소형 건설장비를 밥캣이라 부를 정도다. 당시 두산은 밥캣과 함께 잉거솔랜드로부터 어태치먼트(attachment)·유틸리티(utility) 등 2개 사업부문도 함께 인수했다. 이들 역시 해당 분야에서 세계 1위로 3개 부문이 함께 지난해 올린 매출은 26억 달러(2조4000억원), 영업이익은 3억7000만 달러(3416억원)에 달한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밥캣 인수’를 통해 전 세계 건설장비기계 기업 중 17위에서 7위로 단숨에 10계단 뛰어올랐다. 하지만 박 회장은 여전히 배고픈 목소리였다.
“인수보다 시너지에 관심”
“지금까지 사람들은 우리가 밥캣이라는 큰 덩치의 외국 회사를 인수했다는 데만 관심이 많았지, 우리와 얼마만큼 시너지를 내느냐에 대한 미래 가치에 대해선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기업과 기업의 결합은 단순히 매출이 늘거나 시장이 확대되는 차원이 아닙니다. 서로 문화를 공유하게 되면 두 기업은 하나의 유기체가 되고, 이를 통해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게 되죠.” 두산 외에도 과거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 기업 M&A에서 성공한 사례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M&A 이후에 낭패를 봤다. 이질적인 두 문화의 기업이 만나면서 여러 문제점을 낳았고 이는 결국 회사의 존립까지 흔들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두 나라의 문화가 이질적일지는 모르지만 성공한 기업들의 문화는 비슷하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라며 “이를 위해선 두 회사 모두 글로벌 스탠더드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이에 대한 일환으로 향후 두산그룹의 공용어를 영어로 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박 회장은 “일정 직급 이상이나 글로벌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영어를 사용하도록 할 생각”이라며 “사실 지금도 회의에서 한 명이라도 외국인이 끼어 있으면 회의를 영어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을 향한 박 회장의 행보는 외부적인 상황과 무관치 않다. 박 회장은 “현재 미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우리는 폐렴을 앓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표준이 되면 외부적인 요인에 상관없이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강력한 주문으로 직원들 사이에선 이미 ‘글로벌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지난 추석 때 박 회장은 미국 노스타코타 현지에 가 있는 두산의 밥캣 인수팀에 전화를 걸어 “명절 음식을 보내주겠으니 차례를 지낸 후 음식을 먹으면서 고향 분위기를 느끼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인수팀은 “아무리 우리 고유의 명절이라도 우리가 그런 행사를 한다는 자체가 현지 직원들로선 부담이 될 것 같다”며 박 회장을 만류했다. 박 회장은 “이 정도면 제 주문이 어느 정도 먹힌 거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두산은 지난 10여 년 동안 잇따른 구조조정과 M&A에 성공하며 덩치를 키웠다. 97년 2조7000억원에 불과했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18조2000억원을 달성했다. 그동안 내실도 탄탄해졌다. 98년 1600억원에 불과했던 영업이익(EBIT)이 지난해 1조6000억원으로 무려 10배나 뛰었다. 두산은 최근 밥캣 인수처럼 국내뿐 아니라 해외 기업 M&A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발전소 보일러 원천기술을 가진 영국 미쓰이밥콕, 친환경 엔진 원천기술 업체인 미국 CTI, 수(水)처리사업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 AES사 등을 잇따라 인수한 것이 좋은 예다. 박 회장은 “국내 중공업 회사들을 인수해 보니 기술력이 선진국에 비해 떨어지고 새로운 시장 개척이 쉽지 않았다”며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기술을 갖추고 시장을 넓히는 데 가장 빠른 방법이 그 기술과 시장을 가진 업체를 인수하는 것이더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평소 순간적인 상황이나 운에 의존해 승부를 내는 내기 골프나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목욕탕의 열탕에 들어가도 상대방이 먼저 나갈 때까지 절대 나가지 않는 것과 같은 ‘끈기’ 있는 승부를 즐긴다. 박 회장이 M&A에 성공한 비결도 이와 무관치 않다. “가장 잘하는 M&A는 파는 기업과 사는 기업 모두 사이 좋게 윈윈으로 끝나는 겁니다. 하지만 그 회사에 관심이 있는 경쟁자가 있을 경우엔 승부사 기질이 발휘될 때가 있어요. 이럴 경우엔 잘게 승부를 걸면 상대방은 경쟁자를 의식해 계속 뒷걸음질할 뿐입니다. 우리가 향후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제대로 산정해 한 번에 상대방에게 제시해야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박 회장의 또 다른 M&A 성공비결은 ‘항상 준비된 M&A’라는 점이다. 박 회장은 “M&A에 능하기 위해선 평상시에 준비해야 한다”며 “우리는 내부 준비팀을 통해 우리와 관련된 회사 수백 개를 ‘쇼핑 리스트’에 담은 후 그 가치를 산정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은 밥캣 인수 역시 공식적으로는 지난 5월에 뛰어들었지만 처음 검토한 것은 2년 전이었다.
“좋은 회사 굳이 흔들 필요 있나”
M&A에 대한 목적도 분명하다. 현재 두산의 M&A는 ‘글로벌 인프라 왕국’을 향한 퍼즐 맞추기와 같다. 박 회장은 “전 세계엔 지금 중동·중국·인도 등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건설, 기계, 발전소, 담수시설 등 인프라 시장이 매년 수백 조원씩 급증하고 있다”며 “우리로선 기존 인프라 분야에서 시장점유율을 늘릴 수 있거나 아예 새로운 인프라 시장에 진입하는 데 도움이 되는 회사를 인수해 왔고 앞으로도 인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수한 기업은 철저하게 ‘현지화’로 꾸려지는 것이 두산 M&A의 특징이다. 점령군 파견도 최대한 자제하고 현지 경영진을 그대로 유지한다. 해외 기업의 경우 법인명도 바꾸지 않는다. 박 회장은 “과거 두산중공업이나 두산인프라코어의 경우 인수 후 그 회사에 파견한 직원은 과장급 이상만 따질 때 10명에 불과하다”며 “기존에 잘나가고 있는 회사를 인수했기 때문에 우리가 애써 흔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밥캣도 현 경영진을 비롯한 고용 인력을 그대로 유지했다. 박 회장은 “경쟁력 있는 경영진이니까 세계 1위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재계에서 초미의 관심을 일으키고 있는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해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겠다”며 “우리와 관련된 모든 기업이 관심 대상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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